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84화 (485/763)

세실리가 복학했다. 복학이라고 말하니 유급을 당한 것 같다만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전에 말했듯이 국정 때문에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헬리움 내에 숨어있던 강경파 마족 즉, 악마 숭배자와 내통하고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했다고.

강경파 마족은 헬리움 내에서도 인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었기에 여론마저 세실리의 편이었다.

물론 스탈린마냥 다짜고짜 '너 숙청' 이러진 않고 충분한 증거를 모은 뒤 진행한 일이다. 게다가 첫 시작은 비밀리에 진행됐다.

재미있는 점은 강경파 마족으로 착각할만큼 강한 태도를 보였던 마족은 애국자였고, 그 옆에서 부추긴 자가 강경파 마족이었다고.

그 자를 처형하면서 애국자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본인의 뜻을 꺾지 않았다. 악마 숭배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강경파였던 것이다.

이렇듯 하나둘씩 헬리움을 좀 먹던 해충들을 숙청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악마 숭배자와 손잡은 자들은 이유불문 즉결처형. 억울한 자들이 생기지 않게 신전 안에서 고해성사를 시키는 건 덤.

이럴 때를 보면 억울한 자들이 생기지 않아 괜찮은 것 같다. 말 그대로 새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새장 같은 느낌.

아무튼 헬리움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숙청은 이런 식으로 종료됐다.

"강경파 마족 중에서는 반란을 도모한 자도 있었어. 백성들을 선동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자는 말까지 했지."

"그런 자들은 진작에 걸리지 않아?"

"그러면 탄압한다고 명분만 쥐어주는 꼴이었을 거야. 네가 우리 마족을 구원해줘서 망정이지,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위험했을 걸?"

겨울 방학 때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엘프가 공산주의라면 마족은 파시즘이라고.

실제로 헬리움은 파시즘이 유행할 건덕지가 많아도 너무 많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인마냥 종족 단위로 패배감이 물들어 있는 데다가 공공의 적이었으니.

다행히 히틀러처럼 천재적인 연설과 선동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 무엇보다 일상 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만약 경제마저 폭망했다면 조금만 선동해도 파시즘에 물들었을 터. 원래 사람은 적당히 잘 먹고 잘 살면 만족하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 공개처형을 시켰지. 강경파 마족이야말로 헬리움을 멸망시킬 진정한 악이라고 말이야."

"어······ 뭐라고? 공개처형?"

"응. 다른 나라도 공개처형을 하잖아."

이외에 '중세'의 무시무시함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세실리가 말하기를 죄질에 따라서 교수형이나 투석형으로 처형했다고.

이제 막 근대로 넘어가고, 제이로스 혁명 덕분에 인권 개념이 싹 트고 있으나 공개처형은 유지되고 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개처형은 경고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오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도 유럽인들은 할 게 없어도 너무 없는 나머지 공개처형을 구경거리 삼았다. 심지어 투석형처럼 직접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나는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붉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세실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옆에는 아델리아가 구워준 쿠키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마리가 앉아있다.

"마리?"

"움?"

내 부름에 쿠키를 먹다가 말고 나를 쳐다보는 마리. 푸른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져있다.

"내가 밖에 잘 나가지 않아서 그런데 미네르바 제국도 공개처형을 해?"

"우물우물. 당연하지. 한 달에 한 번씩 수도 중심지에서 진행돼. 때마침 진행되는 곳이 있는데 한 번 보러 갈래?"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구경거리는 못될 것 같다. 새삼스레 이곳이 중세 시대라는 걸 깨달았다.

함부로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법이 제정되었어도 인권을 '침해한' 사람들에게는 얄짤없는 세상.

내가 거북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세실리는 궁금한 게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아이작의 세상은 공개처형이 없어?"

"있는 곳은 있지. 다만 대부분 사라지는 추세야. 우리나라는 사형제마저 반쯤 폐지였고."

"어째서? 공개처형만큼 선전하기 딱 좋은 제도가 없을 텐데."

"사형도 마찬가지야. 사형을 미뤘다가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세실리와 마리는 물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델리아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공개처형을 진행한 이유는 범죄자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추가 범죄 예방을 위한 '경고'에 가깝다.

너네가 만약 범죄를 저지른다면 이런 식으로 죽는다! 그러니 범죄를 저지를 거야, 말 거야? 이런 식.

전근대까지만 해도 공개처형이 유지되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공포감만 조성되어 시민들이 거부감을 일으킬 뿐이지.

"생각보다 큰 효과가 없었거든. 시민이나 다른 나라로부터 비판 받을 여지도 있고 범죄율 하락에도 큰 의미를 두지 못 했어. 결정적으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사회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범죄자를 처단했는데도?"

"흠······"

나는 설명하려다 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적어도 이 세상은 공개처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의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스케일이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하니까.

또한 몬스터의 존재로 인해 폭력 즉, '무력'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최근에는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무력을 동반했지 않는가.

무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짓누르는 건 더 강한 무력이다. 무슨 일이 터져도 국가가 직접 지켜줄 거라는 믿음.

그러니 이 세상에서 공개처형이 사라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인권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형 자체의 폭력성은 무시무시하다.

"꽤 복합적인 이유가 있어서 설명하기가 어렵네. 내가 살던 세상은 무력으로 사회가 어지럽혀지는 경우는 잘 없었거든. 대신 반란 같은 경우는 이유를 불문하고 사형이야."

"아. 그렇구나. 무력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겠네. 그럼 사형제는 어째서 반쯤 폐지된 거야?"

"옛날에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도 있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도 있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할 수도 있고."

대한민국 같은 경우는 인권도 인권이지만 정치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군사독재 시절 당시 수많은 정치인들이 사형됐으니.

지금이야, 워낙 흉악 범죄가 판을 치다 보니 사형제 폐지 반대가 더 높지만 여러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이다.

"······정치적인 부분이랑 억울한 사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 이해가 가. 그런데 범죄자의 인권마저 챙겨준다는 건 아니지?"

내 말에 세실리가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이에 나는 쿠키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는데?"

"혐의가 확실한데도?"

"응."

"인권을 해친 범죄자들의 인권을 지켜준다니 아이러니하네."

"그것 때문에 말이 많긴 해."

우리나라는 유독 인권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일이 많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과거만 하더라도 '국가'가 직접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는데 강할 수밖에 없지.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2번이나 등장했으며 그 유명한 5·18 민주화 운동에서는 국가가 직접 국민들을 사살했다.

그야말로 피로 물든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만 하더라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발발했다.

이것만 하더라도 인권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정도로 과해서 문제지.

"늘 말하지만 내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러니 공개처형은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아. 억울한 자만 없으면 되니까."

"모라 님 앞에서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면 진짜로 억울한 거겠지. 아니면 천벌을 맞거나."

"이럴 때 보면 신의 존재가 좋긴 한 것 같아. 적어도 억울한 자가 덜 나올 테니까."

"··· ···"

내 말에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주변. 분위가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분위기를 느끼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유는 몰라도 하나 같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이 사람들이 혹시 전생에서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중인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설마 내가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적 없어?"

"없어."

군대에서 겪은 부조리를 제외하면은 절대 없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건 정말로 사고였으니 억울하다기보다는 날벼락이었고.

내 단호한 대답에 세실리는 물론, 다른 사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몰라도 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모양새다.

"다행이네. 우리는 네가 억울한 일을 겪은 줄 알고 걱정했거든. 정말 없는 거 맞지?"

"없다니까 그러네."

몇 번을 확인시켜주고 나서야 믿는 눈치다. 나를 걱정해주는 건 좋지만 쓸데없는 착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마치 나를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 공예품 취급하는 것 같달까.

육체는 마구잡이로 다스리는 반면 마음은 부드럽게 달래주니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일단 이건 됐고, 세실리 누나도 앞으로 아카데미를 다닐 거지? 2학년부터 다녀야 되나?"

"그렇지. 아, 그리고 이제부터 아이작이랑 대놓고 다녀도 되지?"

세실리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내가 아니라 마리에게 묻는다. 아무래도 지난번 보았던 짝부랄 사건 때문인 듯하다.

짝부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대신 나의 우월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던 그 사건.

그 사건 하나로 타고난 장사로 소문이 퍼진 건 물론이요, 사교회 당시 수많은 영애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다.

세실리도 이 사건을 모를 리가 없을 터. 더구나 나와 그녀의 밀애 관계가 조금씩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 건의한 것이다.

"안 돼. 아이작의 기숙사로 찾아오는 건 괜찮지만 대놓고 다니는 건 미뤄."

하지만 마리는 의외로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단호한 목소리하며 눈까지 감은 걸 보면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세실리도 이 점을 예상치 못 했는지 의문스러운 표정을 보일 때, 마리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입 밖으로 꺼냈다.

"적어도 아이작이 나랑 결혼한 뒤에 밝혀. 그전에 밝히면 내 입장이 정말 애매해지니까. 아르웬 여왕님도 선물만 줬다고 했을 뿐이지 제대로 드러내지 않잖아?"

"칫. 알겠어. 그럼 매일매일 찾아와도 되는 거지?"

나를 바라보면서 요염하게 혀를 핥는 세실리. 겨울 방학 이후 며칠이 흘렀으니 그동안 쌓인 게 많을 터.

바둑에 빠져있던 탓에 악주기마저 넘긴 상태지만 욕망은 남아있다. 나는 쓴웃음만 지었다.

"마음대로 해. 자존심 상하지만 나 혼자 버티는 건 무리거든. 분명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째 한 번을 못 이기는 거지?"

마리는 가뿐히 승낙하면서 툴툴거렸다. 나는 그런 마리가 너무 귀여워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툴툴거렸을 때가 언제였다는 듯 나에게 기대는 마리.

그녀의 말마따나 마리는 더이상 밤에 나를 이길 수 없다. 서로의 약점이 어디인지 다 알고 있지만 체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

최소한의 소양을 익힌 아델리아와 세실리와 달리 마리는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으니.

옛날이었다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를 독점했겠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중이다.

"그래도 결혼은 내가 제일 먼저 할 거지만. 헷."

"··· ···"

그렇다 해서 정실의 위치를 내려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마리가 놀리듯이 말하자 세실리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아델리아? 그녀는 첩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어서 아무런 불만도 없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에 가깝겠지.

나는 기묘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헛기침을 했다. 그와 동시에 슬그머니 마리를 떨어뜨렸다.

마리가 입술을 댓발 내밀었으나 손을 잡아주는 걸로 끝냈다.

"흠흠. 그럼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는 중이야?"

"그건 걱정 마. 이번에 올 제논 축제에서 보여줄 수 있을 거야. 알븐하임이랑 의견 조율도 끝냈고."

"다행이네."

"아참. 알븐하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르웬 여왕이 재미있는 짓을 꾸미려는 것 같더라."

"무슨 짓?"

나는 알븐하임, 그것도 아르웬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집중했다.

겨울 방학 이후로 각자 사정 때문에 서로 연락을 못 하고 있다만 세실리는 영화 관련 때문이라도 연락을 주고 받는 상황.

뒤이어 세실리는 빙긋 웃더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만한 말을 꺼냈다.

"히틀러의 연설을 인용하려는 것 같던데? 연설 자체만 본다면 백성들을 도취시키기에 딱 좋으니까.."

"어······"

"너에게는 비밀로 해달랬지만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책 속에 나온 연설을 그대로 따라하는 건······"

"지금 당장 연락해줄 수 있어?"

그것만큼은 막아야 된다.

물론 아르웬의 연설 스타일은 히틀러와 다르다. 히틀러는 과격한 제스쳐와 호소력이 짙은 연극톤으로 군중들을 매혹했다.

반면 아르웬은 다정하면서도 잔잔한, 감성적인 목소리로 백성들을 결집시켰다.

히틀러가 거칠디 거친 파도라면 아르웬은 깨끗한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는 느낌이다.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결정적으로······

"조금 설명할 게 있어서."

그냥 따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

아이작이 서둘러 아르웬과의 연락을 시도하고 있을 때쯤.

피와 강철 7권과 8권은 머스크의 눈물 나는 노동을 통해 겨우겨우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원자재가 부족해서 곤혹을 겪었지만 머스크는 본래부터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

무엇보다 '돈'이 있다. 돈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아도 많은 걸 해결해주는 법.

돈만 조금만 더 땡겨서 원자재를 구입한 결과 피와 강철 신간들은 무리없이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8권에서 등장한 공산주의의 제대로 된 이해와 소련 건국 역사는······

"공산주의라······"

어느 한 드워프에게 크나큰 감명을 불어넣었다.

불씨는 서서히 피어오르고.

"이봐. 에인스! 여기다 넣으면 돼? 이거 제대로 굴러가기나 할까?"

"한 번 시험해봐야지. 마법에도 거뜬히 버틸 수 있을 정도면 돼."

"포탄은 어떻게 넣으려고?"

"그냥 대포를 넣는다고 생각해."

불씨를 피울 장작이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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