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83화 (484/763)

피와 강철 7권과 8권은 짧은 주기 사이에 발매됐다. 제논 일대기와 달리 역사적 사실만 짜임새 있게 설명하면 되는 거였으니.

무엇보다 7권의 중후반은 미국의 역사와 잠재력을, 8권의 중후반은 소련의 건국 역사만 설명하면 끝이다.

전생에서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만약 웹소설이었다면 욕을 엄청 먹었겠지.

하지만 여기는 웹소설은커녕 '책'이 대중들에게 겨우겨우 보급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제논 일대기를 집필했을 때는 매진 행렬이 이어져서 피바람이 몰아쳤다.

결정적으로 피와 강철은 판타지로 취급하고 있는 바, 길고 긴 설명이 이어져도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는 중이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 민망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처음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이랄까.

아무튼 피와 강철 7권과 8권이 짧은 텀으로 발매되면서 독자들은 환호하는 중이다.

[또다시 이어지는 매진 행렬. 신간의 텀이 짧아도 너무 짧다.]

[피와 강철 출판사, 그리드 상회. 현재 인쇄할 종이가 현저히 모자란 상황.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반면 머스크를 포함한 출판사는 울고 웃는 중이고. 제논 일대기 발매 초기에 발발했던 현상이 다시 재현됐다.

제논 일대기도 출판사에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매진 행렬이 이어져서 곤혹을 겪은 적이 있다.

이건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발달되고 인쇄소까지 인수하면서 해결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다르다. 책을 공장처럼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있어도 원자재를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종이의 재료가 나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이 세상은 전생과 달리 나무를 조달하는데 여러모로 부담이 따른다.

왜냐하면 다름아닌 몬스터의 존재. 대부분의 몬스터는 짐승처럼 자연 속에 서식하며 나무를 베면 벨수록 그들의 서식지와 가까워진다.

이에 몬스터를 먼저 처리한 후, 숲의 나무를 베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또한 나무만 벤다고 다가 아니다. 나무를 종이를 만들기 위해 '가공'이 필요하다.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가공만 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조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으나 진짜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금도 모험가들의 의뢰도 폭증하고 있다.

'종이가 발명된 상황이라 망정이지.'

만약 양피지였다면 제논 일대기조차 발매되지 못했을 터. 종이를 발명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어쨌거나 한바탕 원자재 공급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지만 신간들은 뿌려질 대로 뿌려졌다.

다시 말해 평가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는 의미. 나는 천천히 집필하기로 마음 먹었다.

[썩은 살을 도려내는 히틀러. 이제 더이상 바이마르 공화국 아니, 독일에 고름은 없다.]

[아프긴 하겠지만 필요한 작업이다. 지긋지긋한 정치는 더이상 필요없다.]

[더욱 공고해지는 히틀러의 권력. 이 권력을 통해 독일은 한층 더 발전될 것이다.]

가장 먼저 수권법 이후에 진행된 숙청, '장검의 밤'부터다. 장검의 밤은 히틀러가 나치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킨 사건이다.

대놓고 정권을 휘두르겠다고 천명한 순간이었으나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쉬쉬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인해 설마 독일이? 라며 애써 무시했으니까. 사실상 2차 세계 대전의 단초를 마련한 사건이다.

또 한 가지. 히틀러가 숙청했던 '에른스트 룀'은 동성애자였다. 그가 숙청되면서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수용소로 끌려간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히틀러가 개인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다며, 군인은 도덕집단이 아니라고 옹호했다는 것.

아무튼 정권을 완전히 붙잡은 히틀러는 이후에 조금씩 막나가는 행보를 보여줬다. 가장 큰 예로 유대인 탄압이다.

-나는 대전쟁에 참전했으며 황제 폐하에게도 훈장까지 받았소!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요?! 난 유대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란 말이오!

참전용사이자 유대인이었던 자신을 탄압하자 국가에게 읍소하는 유대인의 외침. 하지만 그 유대인은 얼마 가지 않아 끌려갔다.

아직 홀로코스트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시기라 감옥으로 끌려간 것밖에 없다. 허나 이 장면만 해도 독자들에게 큰 파장을 선사했다.

[유대인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건가? 어째서 참전군인마저 박해하는 것인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도 그 국가에 스며든다면 같은 국민이지 않은가?]

[히틀러는 유대인 탄압을 통해 독일 국민들을 한데 모으고 있다. 과연 이 과정이 옳은 건가?]

원래 독자들조차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넘어갔다. 주인공(?)인 히틀러조차 싫어하니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며 말이다.

허나 애국자조차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탄압받는 모습을 보며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제논 일대기 발매 전의 마족과 비슷한 상황인 것인가? 반유대주의라는 사상이 폭넓게 퍼져있으니 흡사하다.]

[제논 일대기 이후도 마족은 구원을 받았을 뿐이지 차별적인 시선은 알음알음 남아있다.]

[제논 사후, 먼 미래에 마족 또한 이런 취급을 또다시 받을 수도······]

다른 사람도 마족과 유대인이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서로를 비교하며 평가했다. 실제로 마족과 유대인은 비슷한 점이 많다.

마족은 악마전쟁 당시 차별이란 차별을 받다가 훗날 헬리움을 건국했다. 유대인도 과정은 비슷하다고 할 수 없으나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오스만 제국이 분열되면서 등장한 나라에다가 인정조차 못 받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유대인은 국가 없는 민족이 맞다.

[히틀러는 영웅이 아니라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다. 영웅이라면 탄압이 아니라 포용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유대인을 탄압하지 않는다면 독일인은 또다시 분열될 것. 결집을 위해 확실한 적을 두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이 독일의 경제와 금융을 꽉 쥐고 있었으며 가난한 독일인과 달리 부유한 자들이 많았다. 상대적 박탈감이 어마어마할 텐데 증오는 당연하다.]

[억울하지도 않는가? 본인의 능력을 살려서 일하는 것조차 안 된다는 건가?]

이에 히틀러를 욕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 동시에 히틀러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언쟁을 벌였다.

아무리 그래도 탄압은 안 되는 쪽과,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었으며 효과가 있다는 쪽.

여기서 힘이 강한 건 후자 쪽이었다. 나는 여기서 반유대주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역사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당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관점으로. 그러니까 히틀러의 관점으로 말이다.

[국가조차 없으면서 그 국가를 어지럽히는 민족은 해충에 불과하다! 히틀러가 옳다!]

아. 참고로 위의 말은 책 속의 인물이 아니라 평론가가 꺼낸 말이다. 저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근대마저 저런 생각을 품고 있는데 이제 막 근대로 넘어가는 중세는 오죽할까.

이해를 위해 엘프를 한 번 들여다 보자. 신의 선택을 받은 종족이라 자부함과 동시에 교만에 가장 어울리는 종족이다.

지금도 이런데 300년 전은 오죽할까. 엘프를 제외한 다른 종족을 멸시하고 깔보기 바쁘지. 물론 이후에 참교육 당했지만.

아무튼 이처럼 민족성을 넘은 종족성이 진하게 남아있다. 종족 간의 차이가 뚜렷하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이념이다.

[마족은 헬리움을 건국했으나 유대인은 그렇지 않다.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민족은 미꾸라지나 똑같다.]

[유대인의 삶은 마족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헬리움이 존재하지 않는 마족의 삶일 수도······]

[국가가 있기에 민족이 있는 것이다. 민족만 존재하는 건 무의미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유대인을 그리 평가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유대인을 구원받지 못한 마족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사실 상황만 본다면 맞는 말이라 나 또한 동감했다.

더구나 유대인만 그런 거지 현실의 마족에게도 피해가 가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면 미친놈으로 취급하겠지. 나 또한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한 히틀러. 그는 본인의 힘으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했다.]

중간중간 히틀러의 동물 사랑에 대해서도 보여줬다. 이것도 철저한 고증이다.

[근데 유대인을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가?]

오. 아주 정확해. 나중에 홀로코스트를 보면 까무러치겠군.

이외에 '우생학'적 사상이 가득한 히틀러를 보며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나눴다.

부정적인 의견이 아니라 긍정적인 쪽으로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우생학은 이 세상에 완벽히 스며든 상황이다.

미비한 과학의 발달 때문도 아니다. 진짜로 학문으로 분류돼 있는 상황이며 이데올로기조차 아니다.

왜냐고?

[마법과 마나가 없는 세상에도 우생학이 통하는 것인가? 그런데 히틀러의 아버지는 왜 무능한 건가?]

[피와 강철 속 세상은 재능이 아니라 명성과 죄만 이어질 것.]

[그렇지 않다. 재능은 부모를 닮는 것이며······]

판타지여서 그런지 몰라도 우생학이 정확히 들어맞거든. 만약 멘델이 이 세상의 유전학을 연구했으면 때려치웠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과 엘프 사이의 혼혈은 귀가 짧을지언정 반드시 엘프의 특성을 따라간다. 이건 엘프가 직접 연구한 분야다.

또한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와 가족을 보면 알 수 있다.

'악마 숭배자가 유전자 개량을 하려고 했었지?'

이건 최근에야 드러난 그들의 만행이다. 인간이 마족으로 변했던 것과 비슷한 실험인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지금은 전부 다 파기되었지만 그들의 연구 자료는 아주 훌륭한 소재로 남게 됐다.

특히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름아닌 인간과 이종족 간의 자식이다.

인간과 이종족 간은 임신이 가능했던 반면, 이종족과 이종족 간의 임신은 불가능했다. 악마 숭배자답다면 악마 숭배자다운 실험이다.

'인간을 기본 베이스로 둔 건가?'

어쨌거나 멘델이 봤다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세상인 것이다. 유전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려면 몇백 년은 걸리겠지.

피와 강철 속에서도 우생학이 통할지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있다만 넘어가도록 하자.

이후로 미국의 역사와 잠재력에 대해서 설명하고, FDR이 본격적으로 '뉴딜 정책'을 발의하는 것으로 7권은 종료된다.

곧바로 이어진 8권에서는······

[역시 히틀러! 그는 영웅이 맞다!]

[라인란트 재무장으로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는 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되었다.]

[누가 그를 폭군이라 칭하는가? 썩은 살을 도려내는데 고통을 동반하는 건 상식이다. 히틀러야 말로 진정한 독일의 황제로다.]

7권에서 보여준 유대인 탄압은 까맣게 잊었는지 히틀러를 찬양하기 바빴다.

약간 익살스레 표현하자면 '믿고 있었다고. 젠장!' 딱 이거다. 저 표현만큼 달리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저건 리스크가 큰 도박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어쩌려는······]

물론 예리한 자들은 히틀러가 행한 일이 무모했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실제로 라인란트 재무장은 도박에 가까웠으니.

[히틀러를 의심하지 마라!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다.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

싸그리 다 묻혔다. 이미 독자들의 귀에 평론가들의 이야기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본인들이 독일인이 된 것마냥 히틀러를 찬양했으며 그가 주인공이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은 화재가 되기 전에 꺼뜨려야 하는 법. 나는 이럴 줄 알고 라인란트 재무장 뒤에 소련의 건국 역사를 설명했다.

공산당 선언부터 시작해서 레닌의 혁명 활동. 러시아 제국의 멸망과 소비에트 연방의 등장.

마지막으로 스탈린의 승계와 대숙청의 조짐까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히틀러의 라이벌로 널리 알려진 스탈린의 첫 등장이다.

[히틀러가 넘어뜨려야 할 스탈린의 등장. 그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 것인가?]

[독일이 아무리 성장해도 소련의 압도적인 국력을 상대하기는 힘들 것.]

걱정 마세요. 곧 있으면 대숙청으로 인재들의 모가지가 전부 날아갈 겁니다.

이렇듯 스탈린의 짧고 굵은 등장을 끝으로 피와 강철 8권은 종료됐다.

'의외로 공산주의에 대한 말은 별로 없네.'

아무래도 노동자들을 일깨우는 사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산업 혁명이 터지지 않아 노동자들의 불만은 거의 전무했으니.

피와 강철 9권은 천천히 낼 예정이다. 중일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서도 각색할 필요가 있었고.

별의별 괴상한 사건이 터지는 군대지만 아버지조차 머저리라며 대차게 깠다. 어떤 머저리가 똥 싸러 간 병사를 실종 취급하냐고.

'고증인 걸 어떡해.'

어쨌거나 세상이 히틀러에 환호(?)를 하는 동안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 된다. 여기서 일이 터져봤자 악마 숭배자 말고 뭐가 있겠어.

아, 이건 세상 일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이 아닌 개인적인 일은 언제 어디서든 예상치 못하게 터지는 법.

7권에서 보여줬던 유대인 탄압이 마족의 옛 상황과 유사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작. 이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우리 마족처럼 구원받았어?"

오랜만에 찾아온 세실리가 급한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듣자하니 일이 거의 다 끝나서 여유를 얻었단다.

나는 걱정에 가득 찬 세실리의 붉은색 눈동자를 마주하다가 시선을 스윽- 돌렸다. 뒤이어 볼을 긁적거리며 조용히 답했다.

"구원······ 이라기 보다는 탄압에서 벗어났지. 훗날 헬리움처럼 나라를 세우니까."

"휴우. 다행이다."

내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심으로 안도하는 세실리. 드레스로도 감출 수 없는 풍만한 가슴이 유난히 돋보인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마족도 악마라는 이유로 학살 당한 전적이 있거든. 혹시나 유대인도 그런 과정을 밟을까봐 걱정되서 그랬어."

"··· ···"

"히틀러가 정신을 차려서 유대인을 도와주는 거야? 덕분에 나라를 세우는 거고?"

엄······

"······미리 말하면 재미없지?"

"그래? 하긴 그렇겠지. 일단 알았어. 기대하고 있을게."

미안해, 세실리 누나. 나는 행복한 미소 띠며 싱글벙긋 웃는 그녀를 애잔하게 바라봤다.

세실리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구원(?)한다는 상상에 빠진 모양인지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대인도 우리 마족처럼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유대인 전체가 피폐물을 찍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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