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79화 (480/763)

피와 강철 6권은 전에 말했다시피 히틀러의 수권법,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당선, 마지막으로 일본의 만주 침략으로 끝을 맺는다.

히틀러의 수권법 발의까지는 정치물이어서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 세상은 더러운 정치보다 화려한 전투를 선호하니까.

이 때문에 정치와 관련이 있거나 평론가가 아닌 이상 큰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히틀러를 과소평가한 파펜. 그는 결국 히틀러의 손에 떨어졌다.]

[수권법은 히틀러를 왕으로 만들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왕에게 있어서 응당 가져야 할 권리다.]

사람들은 더럽고 복잡한 정치물에 신경 쓰는 것보다는 히틀러가 발의한 수권법에 집중했다.

수권법은 히틀러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법안. 헌법 아래에 사람을 두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두는 법이다.

이 법안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박살냈으며 사상 최악의 독재자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권법을 보면서 이게 왜? 라는 반응만 보였다. 이곳은 군주제가 기본 디폴트값이었으니.

때문에 독자들은 히틀러가 드디어 왕이 되었구나! 라는 찬사를 보냈다. 왕이 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바이마르 공화국, 아니 독일 제국의 부활밖에 없을 터.

[파펜은 어째서 히틀러를 과소평가한 것인가? 정치신인이라고 너무 얕본 건가?]

[얕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과 정치는 그것과 별개다.]

[대통령 또한 히틀러의 운영 방식에 흡족한 상황. 과유불급이라는 말에 잘 어울린다.]

히틀러의 권력을 빼앗으려 시도했던 파펜은 당연하게도 욕을 듬뿍 먹었다.

피와 강철은 현재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단지 히틀러의 비중이 많을 뿐이지.

그래서 파펜의 속내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었으며 독자들은 그를 고깝게 볼 수밖에 없었다.

[감히 주인공인 히틀러를 위협하려 들다니! 그의 욕심이 스스로를 떨어뜨렸다.]

[더이상 정치적으로 히틀러에게 위협이 될만한 인물은 없다.]

[파펜의 운명은 바이마르 공화국 밖으로 도주하던가, 아니면 숙청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위의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히틀러의 정치적 위협이었던 파펜이 완전히 사라져 독자들은 쌤통이라 생각했다.

물론 시간이 흐른다면 '파펜좌, 당신이 옳았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지.

허나 파펜 그 자체만 본다면 평범한 정치인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상대가 세계 최악의 악마였기에 안 좋은 평가가 뒤따른 것이다.

어쨌거나 히틀러가 수권법 아래에서 일인독재가 시작했을 때쯤, 비슷한 시기에 FDR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국은 현재 대공황으로 국가 기반이 망가져 있는 상황이다. 히틀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

[당장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줄 것이 분명하다.]

FDR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도 그다지 큰 눈길을 끌지 못했다. 단지 왕이 된 히틀러와 투표로 당선된 FDR의 차이점을 보여줄 뿐이지.

이때 미국은 여전히 대공황으로 빌빌거리고 있던 상황이다. 가히 대기근에 맞먹는 경제의 추락.

독일은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다름없는 반면 미국은 아래로 추락하는 거인에 불과했다.

'뉴딜 정책이 아니었으면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발돋음하지도 못 했겠지.'

물론 뉴딜 정책조차 완벽하지는 않았다. 루즈벨트 집권 2기에도 불황은 찾아왔으니까.

바로 여기서 아이러니함이 발생한다. 히틀러가 대공황을 통해 정권을 붙잡았듯이 미국도 2차 세계 대전으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끝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제부터는 정치물이 아니라 성장물이다.'

피와 강철 6권까지가 정치물이라면 이후부터는 망해가는 나라를 부흥시키는 내용이다.

문제는 그 안에 '유대인'을 향한 탄압이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것.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는 진작부터 뿌려져 있다.

이제 정권을 붙잡았으니 그 사상이 표면적으로 드러날 예정이다. 유대인을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우생학적 법안까지.

아마 이쯤부터 독자들은 의문을 지닐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유대인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탄압하는 걸까라고.

솔직히 말해 당시 세계는 반유대주의가 곳곳에 퍼져있어서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

게다가 유대인 탄압은 독일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던 결정적 계기다.

이 세상으로 따지자면 제논 일대기 발매 이전의 마족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탄압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홀로코스트는 난리나겠지.'

내가 종족 전쟁에서 발생한 수인 학살이 홀로코스트와 비슷하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 비교가 불가능하다.

수인 학살은 적어도 수인을 '야만인' 즉, 사람 취급을 했던 반면 홀로코스트는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했으니.

간단히 말해 일종의 조직적인 도축장이다. 거기에 소나 말 같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을 넣는다는 차이점이다.

수인도 수인이지만 마족들도 격한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다. 마족은 태어나서부터 배척 받던 종족이라 유대인에 몰입하겠지.

'1차 세계 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한 유대인도 많았고.'

정말 의외겠지만 당시 독일인과 유대인은 서로 잘 섞였다. 조상 혹은 아버지 세대가 유대인이어도 본인은 독일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유대인 혐오자께서 우생학적 사고방식이 가득했다는 게 불운이었지.

이에 나는 7권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혹은 '이게 맞나?'라는 의문을 조금씩 넣을 예정이다.

유대인이 경제와 금융을 콱 들어쥐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그들 덕분에 그나마 나라가 유지될 수 있던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독일 경제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났을 테니까. 나라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그 유명한 질소비료의 개발자, 프리츠 하버마저 독일에서 추방됐다. 유대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황제에게 훈장까지 받았다고 외치는 유대인을 보고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건 좀 궁금해진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오스트리아 병합과 폴란드 침공, 프랑스 6주를 보며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할까.

하루 빨리 집필하고 싶다만 여기서부터 전개를 잘 짜야 된다. 독일도 독일이지만 세계 정세는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법.

특히 미국의 '잠재력'에 대해 알음알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야, 지구에서 살다 왔기에 '미국은 강하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니다.

뜬금없이 강해져서 세계관 최강자의 자리에 턱 앉게 된다면 개연성이 어긋날 테니까.

오히려 대공황으로 비틀거리는 약자처럼 보일 것이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즐비하고, 실업자들은 넘쳐나며, 자살하는 투자자들이 속출하는 나라.

피와 강철이 판타지처럼 취급된다지만 최소한의 개연성은 잡아야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법이다.

'방장 사기 맵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힘들다는 거지.'

근데 이 망할 놈의 미국은 태생부터 사기여서 뭐라 설명하기도 힘들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븐하임과 달리 태생부터 막강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 애당초 영국의 식민지였다.

산업 혁명 이전에는 지정학적 문제로 발전할 수 없었지만, 산업 혁명 이후에는 지정학적 가치가 폭발하여 최강대국이 된 케이스였으니.

이걸 잘 풀어나가야 훗날 미국의 파괴력을 실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피와 강철 7권은 독일의 유대인 탄압과, 미국의 간략한 역사 및 잠재력에 대해 묘사할 계획이다.

"아이작. 칼라스 자작에게 편지가 왔어."

"또?"

그전에 열혈팬부터 어떻게 해결해야겠지. 나는 마셜으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아델리아의 말에 미간을 살짝 구겼다.

지난번 포격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눈 이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부치고 있다.

원래라면 다른 팬들처럼 한꺼번에 읽는 식으로 할 예정이었지만 칼라스는 예외로 뒀다.

그의 어머니가 꾸었던 태몽이 범상치 않은 걸 넘어 호러에 가까웠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마이샬 영식.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편지 보낸 지 이틀밖에 안 지났어 이 사람아. 나는 첫 문단부터 보이는 인삿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나온 말들은 포격에 대한 찬양론과 더불어 마티우스 후작이 예산 배정에 고민하고 있다는 등.

또한 데이브와 니콜이 복무 중인 북부가 현재 어떤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현재 북부에 관한 정보는 마셜이 전부 알려주고 있다.

'곧 있으면 예산을 받아서 싱글벙글하겠네.'

원래 마티우스 후작은 포병 병과에 회의적이었으나 나의 의견 덕분에 생각이 바뀐 듯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곳곳에 포진돼있는 데다가 마셜은 오직 화력만을 외치던 상황.

내 의견이 있었다지만 군비는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분야다. 군대는 예로부터 돈 잡아먹는 하마였으니까.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곧 있으면 마키나에서 마력 기관차의 첫 시승식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현재 마티우스 후작님께서 그곳으로 향한 상황으로·······]

"오?"

여느 때처럼 안부나 묻는 편지인 줄만 알았더니 아니었다. 놀랍게도 마력 기관차의 첫 시승식에 관한 이야기다.

마력 기관차는 내가 큰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마키나에서 꾸준히 개발하고 있던 발명품.

이전에 에인스가 내 허락 하에 특허 아닌 특허를 내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답했다.

그로부터 1년이 넘는 시간 끝에 마력 기관차가 발명된 모양이다.

언론에조차 언급되지 않은 사항인데 마셜이 알고 있는 걸 보면 정보통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 사람이 없으면 보급이 망가진다고 했었지?'

태몽조차 비범한 마셜에 대해 궁금해서 조사하니 병참, 그것도 엄청 유능한 친구라는 걸 알게 됐다.

마티우스 후작이 사교회에 데리고 온 이유도 병참 관련 사항 때문이라고.

이름도 그렇고 직종도 그렇고 꿈도 그렇고 여러모로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다.

'그나저나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마음 같아서는 시승식에 참여하고 싶다. 조금 뻔뻔한 말일 수도 있겠다만 나 또한 마력 기관차 개발에 일조(?)한 사람이잖나.

더군다나 발명가인 에인스조차 내 허락 하에 특허를 뿌리겠다고 언급했다.

당장 에인스조차 나를 공동 발명가로 취급하고 있는 마당에 내가 가서 시승식에 참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누나."

"응?"

"마력 기관차 시승식에 참여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마리에게 등짝 맞기 전에 취소하는 게 좋을 걸?"

물론 어림도 없지. 나는 아델리아로부터 날카로운 제지가 돌아오자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사교회도 다소 즉흥적인 면모가 있었으나 내부에서 진행된 반면 시승식은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물론 전세계에서 귀빈들이 모이는 만큼 경계가 삼엄할 것이다.

'악마 숭배자들도 활동을 거의 멈춘 상황이고.'

이유는 몰라도 악마 숭배자의 활동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죄다 쥐구멍으로 숨어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박멸된 건지 전혀 모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머스크도 슬슬 '이벤트'를 종료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묻고 있다.

어차피 더이상 나올 것도 없는데 괜히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끝마치자는 의견이다.

나 또한 그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어서 슬슬 정리할 생각이다.

"그······ 아이작?"

"응?"

생각에 잠겨 고민하는 도중에 아델리아가 조심스러운 투로 나에게 물었다.

이에 나는 편지에서 시선을 떼어 그녀를 쳐다봤다. 메이드복이 아니라 그때처럼 와이셔츠와 바지를 입은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헌데 왠지 몰라도 아델리아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다.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내 시선을 피한다.

"이번 6권 막바지에 등장한 나라 있잖아."

용기를 낸 건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아델리아. 나는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미국?"

"아니. 그거 말고 동아시아 쪽에 있던 나라."

"일본?"

"응."

"일본이 왜?"

무엇이 궁금한 걸까. 스포일러가 안 되는 선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할 용의가 있다.

독자들이 다음 편을 궁금해 하는 것처럼 내 주변 지인도 마찬가지일 테니.

원고를 보여줄 수는 없어도 설정에 관한 건 약간이나마 알려줄 수 있었다.

"일본이 점령한 영토를 보니까 네 나라도 포함돼 있던데·······"

"아. 그거? 맞아. 일본한테 점령당했지. 우린 그걸 일제강점기라 불러."

"······왜 그렇게 된 거야?"

측은한 눈빛으로 내게 묻는 아델리아. 하늘색 눈동자에는 이유 모를 슬픔이 담겨있다.

나 그 시대 사람 아니라니까 그러네. 전에 설명을 했다지만 알 수 없는 착각 속에 빠져있다.

이건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지인들도 비슷했다. 지금은 잘 살고 있다니까 그건 그것대로 더 못 믿는 중이고.

어쨌거나 대답을 해야겠지. 나는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었거든."

"······대체 왜?"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 ···"

그리 답하니 아델리아가 답답한 듯, 가슴을 약하게 치기 시작한다. 하기야 듣기만 해도 답답하겠지.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그럼 지금은 독립했으니까 그 사람들과 후손은 처벌받았겠네?"

"아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독립을 외친 분들이랑 그 후손들은 반대고."

"··· ···"

아델리아는 내 말에 고구마 수십 개를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걸 보며 피식거렸다.

"우리나라가 원래 좀 머저리 같은 경향이 있어서 그래."

*****

비슷한 시간. 마키나.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마력 기관차를 제 발명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에인스는 마키나의 왕 앞에서 거친 항의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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