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 자작, 그러니까 마셜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인물처럼 보이긴 했다.
두꺼운 입술도 인상적이었지만 뜨겁다 못해 불탈 것 같은 푸른 눈동자는 정열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
사람의 눈은 마음과도 연결돼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체리의 어두컴컴한 눈동자를 생각하면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마셜의 정열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냥 사람 자체가 활기찬 성격을 띠고 있는 걸 수도 있지.
"포격? 방금 포격이라 하셨습니까?"
이제는 아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충 알 것 같다.
흘러가는 식으로 포탄이라 중얼거렸더니 마셜의 눈동자가 전보다 더 반짝이는 게 아닌가.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마티우스 후작이 서둘러 제지에 나섰다.
"칼라스 자작. 자중하도록 하게.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마이샬 영식께서 분명 포격이라 하셨습니다!"
"잘못 들은 거겠지. 그 생각은 자네 혼자만 갖고 있는 걸세."
마티우스 후작은 다급히 제지하는 와중에 내게 눈치를 줬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무언의 눈짓이다.
그러나 그럴 생각은 없다. 마셜이 입에 거론했던 '포격'이 계속 마음에 걸렸으니까.
한 번쯤 들어봐도 되지 않을까. 어째서 그가 포격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티우스 후작님? 죄송하지만 칼라스 자작과 얘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전 괜찮습니다. 꽤 재미있는 대화가 나올 것 같거든요."
"하아······"
골치 아파진 상황에 마티우스 후작이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그는 칼라스 자작을 제지시켰던 손을 슬며시 치웠다. 이제 더이상 그를 막는 손길은 없다.
'꽤 아끼는 사람인 모양이네.'
이런 자리에 데려온 것도 그렇고, 무례를 끼쳤는데 쩔쩔매며 제지한 것도 그렇고 사이가 꽤 각별한 것 같다.
군사 가문은 그 특징상 계급에 민감하다. 헌데 저러는 걸 보면 칼라스 자작이 그걸 메꿀 정도로 뛰어나다는 거겠지.
그런 사람이 어째서 포격에 환장하는지 궁금하다. 이 세상은 화약보다 마법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게 정상이니.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그나저나 포격이라는 거, 한 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예. 후우······"
내 앞에서 설명할 생각에 긴장되는지 숨을 몰아쉬는 마셜. 그동안 마티우스 후작은 약간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고츠 후작은 허허 웃었고 케이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으니.
하나 같이 마셜을 '괴짜'로 취급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마이샬 영식께서는 대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한 위력을 지닌 무기지요. 하지만 마법이 있잖습니까. 대포는 제작 과정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나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들죠."
이 세상의 대포는 전장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화약 무기가 발달되지 않아 고폭탄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굳이 대포를 발명시킬 바에야 마법사를 양성시켜 마법을 난사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깔려있었으니.
하지만 사실 전장포 수준에서 멈춘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발전이다. 역사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종족 전쟁을 다시 살펴보자.
종족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에게 있어서 '마법'은 꿈도 못 꾸는, 그야말로 선택받은 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전유물이다.
때문에 종족 전쟁 전까지 대포의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마법을 접하고 난 이후부터는 거리를 둔 상황이다.
마법은 더 큰 발전을 기여했지만 동시에 특유의 언밸런스함까지 낳았다.
"예. 그렇습니다. 마이샬 영식의 생각처럼 대포는 제작 과정만 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죠. 포탄도 마찬가지고요. 아마 대부분 이 비용으로 마법사를 양성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실 겁니다."
마셜도 대포가 비싸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드워프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드워프는 대장장이의 종족으로 알려져 있는만큼 '야금술'의 발전도는 산업 혁명에 돌입한 수준이었으니.
따라서 대포에 가장 필요한 철의 공급은 돈만 들인다면 쉽다. 그럼에도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리 비싼 건 아닙니다. 마법사 한 명을 양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1만 골드가 소요됩니다. 심지어 그것마저 확실한지는 불투명하죠."
1만 골드는 대한민국 원화로 환산하면 10억원이다. 전투기 파일럿을 양성하는 비용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파일럿은 '교육'을 받으면 되지만 마법사는 '재능'의 편차가 매우 심하다는 것.
당장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조차 일인데 마법은 말 그대로 재능의 영역이다.
더구나 마법사가 꼭 군대에 소속되지는 않는다. 모든 학자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법사는 전부 학자다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군대에 입대하여 대량살상무기를 영창할 바에야 여유로이 연구를 하며 적적하게 지내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나 대포는 다릅니다. 발전하면 발전시킬수록 위력이 올라가지, 결코 낮아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른바 '양산'이 가능하다는 게 최대 장점이죠."
"양산이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 개의 대포가 한 번에 발사되어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키는 모습을! 마법사가 마법을 영창할 때 대포는 장전만 하면 끝입니다. 화력! 포격이야 말로 화력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마법덕후가 아닌 화력덕후가 여기 있네. 나는 대포찬양론을 내뱉는 마셜을 보다가 피식거렸다.
그런 내 피식거림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마티우스 후작이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다른 사람의 반응도 그와 비슷했다. 정말로 괴짜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으니까.
심지어 그와 처음 만난 아델리아조차 저게 뭔 개소리인가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나마 고츠 후작의 반응이 제일 낫다. 그는 아예 마셜의 의견에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 없었다면 이게 자연스러운 건데.'
사실 마셜은 판타지 세계관이 낳은 비운의 화력덕후라 할 수 있다. 지구에서는 대포 즉, 포격이 화력의 대부분을 담당했으니.
땅을 점령하는 건 보병이지만 그 보병을 전부 갈아버리는 건 포병이다.
이 세계로 치자면 대규모살상 마법을 뻥! 뻥! 발사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어떠십니까? 흥미가 동하지 않습니까?"
"그······ 칼라스 자작. 이제 끝났으면 가도록 하지."
마셜이 눈을 반짝이며 내게 의견을 묻고 있을 때 마티우스 후작이 서둘러 그를 끌고 갔다.
마셜도 여한을 다 풀었는지 힘도 주지 않고 마티우스의 손길에 질질 끌려갔다.
이대로라면 괴짜의 기행으로 끝날 테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칼라스 자작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예?"
"에?"
내 부름에 마티우스 후작은 물론, 마셜조차 예상치 못했는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마셜 본인도 이상한 소리라는 걸 깨달았는지 반쯤 포기했었던 모양.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을 바라보다가 질문을 꺼냈다.
"확실히 대포를 발전시킨다면 마법에 버금가는 위력을 낼 수 있겠죠. 그러나 화력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다른 부분도 집중하는 게 어때요?"
"다른 부분이라면······?"
"예를 들면 사거리가 있겠죠. 제아무리 화력이 훌륭해도 사거리가 짧다면 상대쪽에서도 대비를 할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전장식 대포가 사장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사거리다. 바로 앞에 대포가 있는데 멀쩡히 맞아줄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대포는 그 위력이 위력인만큼 대비를 해도 똑같겠지만 대비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된다.
"지형에 따른 각도 조절도 필수겠죠. 이외에 장전 속도와 포탄의 기능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을 겁니다. 아까 말씀했다시피 포격의 가장 큰 장점은 '화력'이지만 그 화력을 온전히 내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발전이 필요할 겁니다."
"··· ···"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각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각도에 따라 대포의 사용법이 달라질 겁니다. 무작정 화력만 외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철의 대원수가 그랬듯, 포병은 전장의 신이다.
하지만 나는 포병 출신도 아니고 최전방에서 구르고 구르던 알보병. 당연히 알고 있는 지식이 거의 전무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각도에 따라 화포의 사용법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
"또한 앞에서 장전하는 게 아니라 뒤에서 장전하는 방식도 고려해주세요. 아시겠죠? 여기서 더 말하고 싶지만 제 작품과 관련된 거라 말을 하기 어렵네요."
"······마이샬 영식."
"네?"
내 설명에 어안이 벙벙해진 마셜이 아닌, 마티우스 후작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는 방금 전 부끄러움에 파묻힌 표정이 아니라 눈을 동그랗게 뜬, 정말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대는······ 정말로 대포가 마법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아뇨. 대포는 마법을 대신할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마법으로 엘프와 마족을 이길 수 없다. 애당초 종족 자체부터가 넘사벽이다.
하지만 마법이 내는 파괴력은 따라갈 수 있다. 여기서 과학이 더 발전되어야 하겠다만 나는 '화력'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이다.
만류귀종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다양한 물줄기가 있어도 결국 그 끝은 바다로 향하는 법.
마법처럼 신묘한 힘이 아니라 오직 화력 하나만을 본다면 대포를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파괴력만큼은 마법에 비견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애당초 대포가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전쟁이죠. 전쟁에서 마법 같은 효과를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 ···"
"물론 그 과정은 힘들겠죠.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칼라스 자작이 언급한 포격은 말 그대로 화력만을 위한 공격이라는 점. 명심해주세요."
과학이 발전되면 발전될수록 군대의 병과는 다양해졌다. 그나마 사라진 병과는 '기병'밖에 없다.
그 기병마저도 다른 병과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사라진 거지, 웬만해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병과에 포병이 추가될 뿐이지 마법사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자.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더이상 하고 싶은 질문은 없으신가요?"
"저, 저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마셜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언제나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그의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움이 새겨져 있다.
본인의 꿈 아닌 꿈에 호응해줄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다는 얼굴.
나는 손을 올리며 괜찮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러자 마셜이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 마이샬 영식께서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내가 포방부에 있던 몸이거든. 알보병이었지만.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간신히 억눌렀다. 이 사람이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지 심히 궁금해진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화력이 강했던 대한민국. 6·25 전쟁 당시 탱크 하나가 없어서 빌빌거렸던 최약국이었는데 참 신기하다.
어쩌면 그 트라우마가 짙게 남아서 그랬던 거겠지. 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듣다보니 생각난 겁니다. 이런 이런 게 있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밖에 없어요."
"으음······"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티가 나는 대답이다. 마셜도 내 능청스러운 답을 듣고 더이상의 질문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이제는 내가 질문할 차례. 가만히 듣다보니 궁금해진 부분이 있다.
어째서 마셜은 화력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마법이라는, 굉장한 문물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제가 질문할게요. 칼라스 자작께서는 어째서 대포에 마음을 빼앗긴 거죠? 마법이라는 걸출한 문물이 있는데도?"
"아. 그건······"
의외로 활기찼던 방금 전과 달리 대답을 망설이는 칼라스 자작. 나는 그걸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그는 내 눈치를 살살 보다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제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태몽이 그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이죠."
"태몽이요?"
"예."
들으면 뭔 개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신의 존재가 명확한만큼 태몽조차 쉬이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가끔 영웅들의 태몽조차 비범하다하지 않는가. 미신이라면 미신이지만 판타지 세상이라 꽤 중요하다.
"무슨 태몽을 꾸신 건가요? 아까 말씀하셨던 포격?"
"아닙니다. 단 한 발의 포탄으로 도시 전체가 소멸해버리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예?"
잠깐만.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버섯 모양의 구름이 피어올랐다고 하더군요. 그건 마법조차 불가능한 일이라 화력에 집중하게 된 겁니다."
"··· ···"
이게 많이 위험한데.
******
혹시 몰라 신전으로 달려가 루미너스에게 물어봤다.
'저 말고도 다른 환생자가 있는 건 아니죠?'
[없단다.]
'그럼 칼라스 자작의 어머니가 왜 그런 꿈을 꾼 거예요?'
[우연이란다. 이건 정말이야. 내 신격을 걸 수 있어.]
덕분에 신이 억울해 하는, 정말 진귀한 경험을 겪었다.
어쨌거나 기묘한 만남이 이루어진지 며칠이 흐르고.
[피와 강철 6권 발매! 히틀러가 정권을 붙잡다!]
히틀러가 수권법을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을 점령하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이 남자는 누구인가?]
세계관 최강자 또한 등장했으며.
[동쪽의 제국 일본. 만주를 침략하다.]
동아시아의 패자(머저리)의 존재도 언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