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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75화 (476/763)

아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 물어볼 것이다.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아이, 아리엘은 어디로 갔냐고.

그녀는 지금 저택에 남아 어머니에게 기초 교육 및 상식 교육을 받는 중이다.

아리엘은 알을 깨고 나올 때부터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었지만 그래봤자 신생아다. 부족한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도덕성은 제대로 존재하여 사람을 때려도 된다거나 그런 건 없지만 상식은 전무한 수준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내야 한다는 것도 몰랐으며 남의 마음을 함부로 밝히면 안 된다는 것도 몰랐다.

이에 겨울 방학 때는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교육하여 상식을 채워주긴 했으나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손수 나서서 아리엘의 교육을 도맡았다. 또한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면 곤란하니 또래와 만나 사회성도 기를 예정이라고.

이 과정에서 정체를 들켜도 상관없었다. 천사의 등장은 큰 파장을 낳겠으나 내가 잘 설명할 계획이다.

단지 내가 그녀의 곁에 없다는 게 아쉬웠을 뿐이지. 부모가 된 입장에서 아이를 떨어뜨리는 건 절대 좋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가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지만 어머니는 걱정 말라며, 본인이 알아서 할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릴리도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했었지.'

장남, 데이브와의 나이차가 무려 20살 이상이나 나는 늦둥이 막내 릴리. 사실상 나에게조차 딸뻘이다.

그러므로 아리엘과 릴리의 관계도 조카와 고모다. 아, 참고로 릴리가 고모다.

개족보도 이런 개족보가 없겠지. 심지어 아리엘은 겉보기에는 5살 아이처럼 보여도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결국 서로 다듬고 품어주다 보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라는 어머니의 의견 아래에 저택에 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주말마다 저택을 방문하여 아리엘과 열심히 놀아주고 있다. 릴리도 기어다녀서 심장에 해를 끼치는 생명체가 둘이다.

아무튼 아리엘의 근황은 여기까지 끝내고 다시 넘어와서.

"이렇게 입으면 돼?"

나는 인생 처음으로 발을 디딜 사교계 데뷔를 위해 예복을 맞추고 있다. 위치는 당연하게도 레킬리스 공작가 저택.

신입생 환영회 당시에는 누나, 니콜이 대충 잘 어울리는 것으로 맞췄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자그마치 장인어른, 레킬리스 공작의 생일이라 수많은 귀족들이 방문할 예정이었으니.

따라서 나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예복을 착용했으나 솔직히 말해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안에는 나름 비싸 보이는 흰색 셔츠를 착용했다만 나머지는 신입생 환영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금박 무늬가 각인된 붉은색 예복. 황금색과 붉은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모습이다.

화려하다고 하기에는 밋밋하고, 밋밋하다고 하기에는 각인된 금박이 빛을 낸다.

"충분해. 아이작 너는 머리 때문에 어딜 가나 얼굴이 가장 눈에 띌 거야. 화려한 옷은 필요 없다는 거지."

"예복으로 상대를 품평하는 것도 있지 않아?"

"그건 본인의 재력을 과시할 때 주로 하는 방식이야. 초식 동물이 육식 동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부풀리는 식이지. 진짜 품평은 대화에서부터 나오는 법이야."

내 복장을 스타일링해준 마리가 흡족한 얼굴로 설명했다. 보통 같으면 하인 혹은 하녀를 시키겠지만 그녀는 본인이 직접 스타일링했다.

예복 또한 내가 장인어른 생신에 참석한다는 말을 하자마자 바로 맞췄다.

레킬리스 공작가는 아카데미 바로 코앞에 위치해 있는 덕택에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델 언니도 어디 끼거나 그러진 않죠?"

"응. 딱 좋은데?"

마리는 이 다음으로 아델리아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현재 메이드복이 아니라 마리가 맞춘 예복을 입고 있다.

다만 공식적으로 내 호위 기사였기에 드레스가 아닌, 가슴쪽에 프릴이 달린 셔츠와 비단으로 제작한 검은색 바지를 입은 상태다.

보이시한 아델리아의 스타일에 안성맞춤에다가 기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 그녀에게 딱 맞는 복장이다.

저기에 레이피어만 딱 쥐어준다면 전형적인 여기사다. 그것도 고고한 아우라를 풍기는 여걸.

외모도 여느 귀족집 영애보다 월등했기에 부족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기사 같네."

"그럼 이때까지 뭐라고 생각했니?"

"쿠키를 맛있게 구워주는 메이드?"

"때린다?"

"미안."

장난에는 장난으로 되돌려주는 아델리아. 그녀도 내가 장난이라는 걸 알았는지 피식거렸다.

말은 저렇게 했지 지금도 꾸준히 실력을 키우는 그녀다. 절대 폄하한 건 아니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농담에 가깝지.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가 다시 앞을 쳐다봤다.

전신 거울 속에 비추어진 내 모습은 전과 달리 귀족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신입생 환영회 때는 어른 흉내를 내는 청소년 느낌이 났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게 선명했다.

"이제 다 끝난 거야?"

"일단은. 시작하기 전에 화장만 살짝 고치면 될 거야."

"음······"

나는 화장이라는 말에 마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붉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나처럼, 그녀는 은은한 푸른빛을 띄는 백발의 소유자다.

어딜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모. 더구나 진한 색상의 나와 달리 백발이라는, 터치하기 어려운 색이다.

피부마저 눈처럼 새하얘서 화장을 약간만 해도 티가 확 나는 수준이다.

"마리 너는 화장한 거 맞지?"

"한 거 맞아. 조금밖에 안 했을 뿐이지. 너무 과하게 하면 달걀 귀신이 되거든. 혹시 이상해?"

"아니. 너무 예뻐서 그래."

빈말이 아니라 평소에도 예뻤는데 지금은 더 예쁜 것 같다. 특히 청순함과 성숙미가 한데 어우러져 산뜻한 매력을 발산했다.

내가 어른이 된 것처럼 마리도 신입생 환영회 당시와 비교했을 때 성장한 모습.

기다란 백색 머리카락도 포니테일로 묶어 사슴 같이 새하얀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 있다.

저 목덜미에 진한 키스 마크를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가까스로 억눌렀다. 지금은 참아야 된다.

"나도 내가 예쁜 거 알아. 너도 네가 잘생긴 건 알고 있지?"

"일단은?"

"뭐가 일단은이야? 제논이 아니었어도 네 얼굴만 뜯어먹고 살 여자들이 지천에 널려있을 걸? 내가 먼저 꿀꺽해서 다행이지."

"하하하."

나는 마리의 익살스러운 표현을 듣고 얕게 웃음을 흘렸다. 뒤의 아델리아도 웃긴지 조용히 웃었다.

"아무튼 준비는 다 됐으니까 대기실로 가자.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

"가족분들은?"

지금 와서 말하지만 레킬리스 공작가와는 이미 만남을 가졌다. 내가 생신 파티에 참석한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고.

마음 같아서는 생신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장인어른, 드미트리는 한사코 사양했다.

대신 1년 내에 손자를 데려온다면 평생동안 선물은 필요없을 거라고. 그 말을 들은 마리가 내 옆구리를 찌른 건 덤이다.

"가족들도 우리처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들어갈 거야.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나도 같이 들어가는 거지?"

"응. 다른 건 몰라도 주객전도만큼은 방지해야지. 아빠보다 네가 더 유명하다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아빠니까."

다시 언급하지만 오늘은 마리의 아버지, 드미트리의 생신이다. 나는 마리의 약혼녀로서 파티에 참석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어. 아빠가 아니라 너에게 시선이 갈까봐 그렇지?"

"응. 다른 날도 있는데 하필이면 생신날이잖아. 생각이 좀 짧았나 싶기도 해."

"아냐. 아냐. 그 반대지. 이 기회에 너와 레킬리스 공작가 사이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거든.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지만 정식적인 약혼녀는 나잖아? 사실 그 바람둥이라는 것도 내가 밤을 버티지 못해서 정부를 끼워넣은 거라 했으니 모두가 인정하고 있을 거야."

"··· ···"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 몰라 쓴웃음만 지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처럼 부인이 남편의 밤일을 버티지 못해 정부를 끼워넣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이건 전직 기사들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다. 기사들은 인간 흉기 수준을 넘어 병기에 가까워 일반인이 버티기 어려우니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 아델리아와 딱 눈이 마주쳤다.

아델리아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하늘색 눈을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내가 정부로 취급되는 게 싫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누나가 기분 나빠할까 봐."

"기분 나쁘기는 무슨. 난 너랑 이어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니까 그러네."

쓸데없는 내 배려에 아델리아가 귀엽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그러면서 내 볼을 살포시 꼬집기까지.

밤에는 오빠라 부르며 수줍어하지만 평소에는 늠름한 누님처럼 행동하는 그녀만의 매력이다.

비참한 과거를 딛고 어엿한 내 사람으로 거듭난 아델리아에 가슴이 포근해졌다.

"내가 테르스 왕가의 사생아라는 게 밝혀져도 상관없어.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잖아?"

"그래도 돼?"

"날 걱정하는 거라면 안 해도 돼. 프리드리히 국서가 나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부터 완전히 다 털어냈으니까."

옛날에는 테르스 왕가를 언급만 해도 불안 증세를 보였는데 이제는 당당하다.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낸 모양이다.

나는 부드럽게 웃어주는 아델리아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소중한 사람이 과거를 완벽히 떨쳐내어 행복한 걸 보니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것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갈 거야. 지난번에 시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잖아. 여러 가문에서 선을 봐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이것만 잘 견제하면 될 거야."

대기실로 향하는 도중에 마리가 주의해야 될 점에 대해 하나둘씩 알려줬다.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도 처음인데 내 명성이 명성이다 보니 명심해야 될 게 많다.

먼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내 여성 편력(?)부터 시작하여 예법, 가문간의 관계 등등.

나는 사교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만큼 사람 얼굴을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보통 인사할 때 본인의 이름과 가문을 밝히니까.

다만 예의주시해야 할 사람들이 몇몇 존재했다.

"가장 주시해야 될 건 3명의 후작들이야. 북부 지역을 맡고 있는 마티우스, 동부의 클로제, 마지막으로 남부 바다를 맡고 있는 고츠. 이 세 명은 너보다 아빠에게 신경을 쓰겠지만 집중하는 게 좋아."

"후작 가문은 보통 군사 가문이지 않아? 정치보다는 군사 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로 아는데?"

미네르바 제국은 군사력이 막강한 만큼 군사 가문의 위세가 강하다. 하지만 각자 사정이 너무 바빠서 거의 다 정치에서 손을 뗐다.

네이비 기사단이 근무하는 북부 지역은 모두 알다시피 과거만 하더라도 지옥의 구렁텅이였고, 동부는 스타비르크와 알력 다툼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부 바다를 맡고 있는 테리칸 가문. 바다의 영향력이 전생보다 적은 세상이나 그렇다고 등한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게다가 바다 건너 테르스 왕국이 있으며, 테르스 왕국은 해군이 막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다는 악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제대로 된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았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거리 항해'에 한해서다.

미네르바 제국과 테르스 왕국 사이의 바다는 그리 넓지 않아 해군이 있는 건 그리 이상한 게 아니다. 연안을 따라 항해를 하면 그만이니.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고 저마다 지역을 담당하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거야. 대신 예산을 어떻게든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지. 남부를 제외하면 북부와 동부는 각기 사정이 나빠 예산을 어떻게든 당겨야 하는 상황이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네."

레킬리스 공작가는 황실의 비즈니스 파트너. 다시 말해 황실에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레킬리스 공작가를 거쳐야 된다.

제아무리 후작이어도 특수한 절차가 아닌 이상 황실에 접촉하는 건 상당히 까다롭다. 그걸 레킬리스 공작가가 대신하는 것이다.

레킬리스 공작가도 그만한 권한이 있었으니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라서 아빠에게 맡기면 돼. 때마침 케리손 백작가도 흔들리고 있으니 어찌저찌 되겠지. 너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사람들의 질문에만 대답하면 될 거야."

"알았어."

"아!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당부할게. 나를 제외한 다른 영애 앞에서 함부로 웃지 말기. 사람 좋은 미소까지는 좋지만 너무 푸근하게 웃지는 마. 알겠지?"

"하하하······"

역시 질투하면 마리지. 나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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