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강철 4권은 히틀러가 수감 생활을 끝낸 후, 나치당에 돌아가 본격적인 선거 활동을 펼친다.
무솔리니를 롤 모델로 삼아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합법적으로 권력을 거머쥐기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활동일 뿐이지 정치 깡패를 비롯한 각종 비리를 일삼았다.
물론 당시 사회상을 본다면 폭력과 비리는 '안 하면 병신'에 가까웠다. 그만큼 바이마르 공화국이 막장이라는 증거 중 하나다.
[민주주의와 선거?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쥐어주는 사회?]
[테르스 왕국의 평민 의회와 비슷한 제도인가?]
[그보다 고차원적인 제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자들이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다.]
그리고 선거하면 민주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독자들은 난생 처음 듣는 정치체제, 민주주의를 보며 의문을 가졌다.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국민이 주권과 투표권을 가진 정치 체제. 솔직히 이것만 말한다면 쉬이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이에 나는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가장 먼저 민주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부터다.
1688년 잉글랜드에서 명예 혁명이 발발해 '권리장전'이 통과되고, 1776년 미국의 독립혁명을 통해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을 비롯한 귀족들의 모가지가 날아가고 민주주의가 현실화됐다.
하지만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자유주의'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모든 백성들에게 투표권을 쥐어주고 왕을 선출하는 제도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며 동시에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만약 51%의 투표율로 선출된 왕이, 나머지 49%를 압박한다면 이곳에 '자유'가 있는가?]
위의 말은 놀랍게도 테르스 왕국의 귀족, 카마르 백작이 꺼낸 비판이다. 내가 재판을 받았을 당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줬던 귀족.
실제로 전생의 어느 한 학자는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위의 말과 비슷한 명언을 꺼낸 적이 있다.
특히 저 명언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구분점을 명확히 알려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등장하지도 않았겠지.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극단적으로 이용한 사람이 피와 강철의 주인공, 히틀러다.
그는 뮌헨 폭동이 실패한 이후,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도구'로 이용하며 자유를 완벽하게 억압했다.
다시 말해 카마르 백작이 꺼낸 저 비판은 히틀러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는 거나 다름없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는 결국 피와 강철 세계관에 응용되는 것.]
[아닌 말로 제논 같은 영웅에게조차 똑같은 한 표가 주어준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다수의 선택이 결코 옳은 게 아니다.]
때문에 몇몇 학자들, 특히 철학자들이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한 바라 그닥 실망스럽다거나 하지 않았다.
[모든 '국민'들에게 주권과 투표권을 쥐어준다는 것 자체가 나라의 발전을 이끌 수도 있다.]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옳지 않지만, 그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것 자체부터가 굉장한 메리트.]
[어쩌면 나라를 진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가 발굴될 수도 있지 않는가? 서로가 동등한 권력을 쥐고 있으니.]
그렇다 해서 무작정 비판만 하는 학자만 있는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여기에는 평민 출신 학자뿐만 아니라 귀족도 포함돼 있었다. 권력을 내려놓을지언정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렇듯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양한 갑론을박이 오고 갔으나 결론적으로 하나의 의문이 등장했다.
[굳이?]
[현재 상황에 꼭 필요한 제도인가?]
그렇다. 민주주의에 대한 찬반론은 많지만 학자들은 입을 모아 굳이 지금 필요한가? 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독재자와 시민의 피를 먹고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제이로스 혁명을 통해 약간이나마 기틀을 잡았다.
하지만 제이로스 혁명은 프랑스 혁명과 유사하면서 '권리장전'이 등장한 명예 혁명과도 비슷하다.
다시 말해 그런 혁명이 또다시 터지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가 탄생할 일은 거의 전무하다는 뜻이다.
특히 카마르 백작이 꺼낸 비판이 억제에 큰 효과를 보였다. 평민 의회가 존재하는 테르스 왕국조차 '자유'에 한해서는 매우 민감하다.
'이건 내가 어찌 할 부분이 아니니까.'
난 그저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것만 알려줄 뿐이다. 누누이 언급했지만 이 세상과 지구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많다.
그러니 내가 알던 민주주의와 비슷하면서 다른 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민주주의는 장기적인 정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매우 심각한 단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긴 수명을 지닌 마족이나 엘프 입장에서 그닥 효율적인 사상이 아니다.
'테르스 왕국도 테르스 왕국이지만 따지고 보면 드워프가 제일 민주주의에 가깝지.'
드워프는 종족 특징 자체부터 창작과 발명에 집중돼 있다. 남의 것을 존중하되, 본인 또한 발전하는 스타일.
드워프의 나라, 마키나도 군주제를 표방하고 있었으나 솔직히 말해 있으나 마나다.
나라에 큰 위협이 될만한 부분들만 규제를 가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으니.
또한 현재 마력 기관차 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니 꽤 재미있는 정치 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
'산업 혁명이 발발하면 자연스레 정착할 거야.'
본래 과학과 문화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 본다면 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민주주의는 괴상한 형태로 등장할지언정 언젠가 등장할 것이다. 산업 혁명이 터진다면 세상은 전보다 훨씬 복잡해질 테니.
물론 그때까지 내가 멀쩡히 살아있을지는 모르겠다. 신성력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다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열심히 글을 쓰는 것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가지고 싸우든 말든 선택은 그들이 하는 거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눈물 나는 혈투. 하지만 정작 득표율은 저조해······]
[총선이 무엇인지 몰라도 2.6%라면 매우 적다. 정말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러니 당장은 히틀러와 괴벨스의 눈물 나는 똥꼬쇼부터 알아보자. 대공황이 터지기 전 나치당은 그야말로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았다.
뮌헨 폭동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된 히틀러였으나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 미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던 상황.
물가가 미쳐 날뛰는 상황에도 독일인은 그나마 먹고 살만하여 나치당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세계 경제가 폭삭 주저앉는, '대공황'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에 발생한 대전쟁이 '지옥'이었다면, 대공황은 '연옥'이다.]
[일거리는 물론 식량조차 제대로 얻을 수 없는, 그야말로 연옥 그 자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발생한 것인지 몰라 아무도 대처할 수 없었던, 혹은 이유가 너무 많아 대처할 수 없었던 대공황.
나는 대공황이 발생한 미국을 비극으로 가득 채워진 '지옥'이 아니라 절망이 넘치는 '연옥'으로 묘사했다.
주식이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고, 투자자와 기업인들이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상황.
실업자들이 넘쳐나 노숙자가 증가하며, 어떻게든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의 모습을 비추었다.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을까? 아니면 막을 수 있던 재앙이었을까?]
[기계 혁명이 발발한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너무나도 달라······]
[만약 이 세상에도 기계 혁명이 발발한다면, 정말로 등장할 수도 있는 재앙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옥이나 다름없는 상황만 집중했을 뿐, 대공황 자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게 산업 혁명으로 경제 및 금융이 복잡해졌으니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세상에도 경제, 금융, 주식, 채권과 같은 개념 자체는 확립돼 있다. 그걸 대공황에 접목시키려니 너무 어려울 뿐이지.
그래도 피와 강철을 '판타지'처럼 취급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해보다는 스토리 자체에 집중했다.
[대전쟁은 대체 어떤 전쟁이었기에 이런 연옥이 딸려오는 것인가?]
[이 모든 일은 대전쟁 하나로 인해 발생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나라가 아닌 세계 전체가 폭삭 주저앉는 일은 없었을 터.]
[바이마르 공화국이 화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내어 유럽 경제의 폭락을 야기했을 수도······]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1차 세계 대전이 주목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1차 세계 대전이 아니라 '대전쟁'이라 묘사했다.
가끔 이를 파악한 독자들이 어째서 1차 세계 대전이라 아니라 대전쟁이라 묘사했는지 의문을 표했지만, 소수만 눈치챈 거라 거의 묻혔다.
어쨌거나 피와 강철 4권은 대공황으로 인해 막장이 된 미국을 비추면서 끝난다.
5권부터는 마찬가지로 대공황으로 인해 개판이 된 바이마르 공화국과, 그걸 등에 업은 히틀러가 정권을 붙잡는 과정을 쓸 예정이다.
'이제 슬슬 쎄한 느낌이 들겠지.'
안 그래도 카마르 백작이 꺼냈던 비판 때문에 과연 민주주의가 옳은 것인가? 라는 의구심을 품은 상황이다.
당연히 그 민주주의를 통해 정권을 붙잡는 히틀러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독자들은 애써 외면했다. 히틀러가 조금 이상한 사상을 품었다지만 독일을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으니.
이미 독자들의 뇌리에 히틀러는 '애국자'이자 '영웅이 될 재목'으로 박혀있는 상태다.
'장검의 밤이 지나면 스탈린의 대숙청도 묘사해야겠지.'
독소전쟁 초기에 소련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원인, 대숙청.
대숙청 하나로 능력 있던 장교들이 대거 사라졌으며,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 때 결과를 제대로 체험한다.
오죽하면 히틀러가 그걸 보고 어? 저 새끼들 속 빈 강정이네? 라며 쳐들어갔으니.
어쨌거나 피와 강철 4권에 등장한 민주주의로 인해 시끌시끌해졌지만 나는 유유히 준비에 나섰다.
무슨 준비라고?
[애니머즈. 피와 강철에 등장한 민주주의에 큰 흥미를 가져······]
[대족장 지나이 크로추커. 힘의 논리에만 움직인다면 야만인과 다를 바가 없다.]
뭐긴 뭐야. 억까 당할 준비지.
레오나를 통해 뿌렸던 씨앗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왔다.
'이 새끼 설마 대족장 하기 싫어서 적당한 구실을 대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한 번 상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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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강철 4권이 등장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의견이 오고 가는 상황 속.
피와 강철은 제논 일대기와 달리 독자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품평을 내리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마나와 마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상. 가장 나약한 종족 중 하나인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 신의 존재가 불분명한 세상.
이런 세상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기계 혁명'으로 급성장을 이룬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보면서 '판타지'처럼 취급하고 있었으나, 소수의 사람들은 판타지라 취급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로 예측하고 있었으며 이중에서 '과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진전은 있어?"
"아뇨. 제논에게는 접근조차 거의 불가능해요. 그 사람이 먼저 오지 않는 이상 저희가 만나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설령 기회가 닿더라도 미네르바 제국에서 거부하겠죠."
"으음······"
햇빛에 탄 것 같은 구릿빛 피부에 은색 눈동자. 마지막으로 눈 밑에 문신처럼 그린 문양.
머리카락 색은 제각기 달랐지만 특징 하나만큼은 명확한 사람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중 리더로 추측되는 남자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난색을 표했다. 이들은 무슨 목적으로 제논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던 걸까.
"굳이 그 총이라는 무기에 집착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보다 다른 활동에 집중하는 게 어때요?"
난색을 표하는 남자에게 가녀린 여성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은색 눈동자처럼 짙은 은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 질문에 남자, 아살라 반드 사에라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른 활동이라면 어떤 거? 전사들을 양성하는 거 말이야?"
"예."
"손재주만 좋은 우리 민족이 제국의 기사들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
아살라의 대답에 할 말이 없어졌는지 여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내심 아쉬웠는지 포기하는 표정은 아니다.
이에 아살라는 재차 한숨을 내쉬더니 착잡하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국에는 인재가 많아. 많아도 너무 많지. 우리 스타비르크 지역 정도는 깡그리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어째서······"
"제국 쪽도 출혈이 심하니까. 게다가 당장 우리보다는 북부 지역을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고."
스타비르크 지역은 본래 미네르바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독립 의지가 강해졌다.
그 원인은 악마 숭배자의 소행이라니, 제국의 핍박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차별' 때문이다.
스타비르크 민족은 역사적으로 드워프 다음으로 손재주가 좋다고 널리 알려진 민족.
즉, 미네르바 제국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무기 생산 공장'이나 다름없다.
이에 미네르바 제국도 처음에는 넉넉한 대우를 약속했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차별이 시작됐다.
더군다나 종족 전쟁 이후에 마키나와 호의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한 이후에는······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렇다고 제국은 스타비르크 지역을 포기할 수 없다. 아이작이 설명했듯이 스타비르크 지역은 전생의 대한민국과 비슷한 지형, '반도'였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어떻게든 이 '총'이라는 걸 발명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제논과의 만남이 필수지만······"
"안 되는 게 문제죠."
"하아······ 맞아."
스타비르크 지역의 주민들도 참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있다. 왼쪽과 위는 미네르바 제국이, 오른쪽과 밑은 테르스 왕국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 와서 순순히 제국에 편입된다면 테르스 왕국이 압박을 가할 것이고, 그렇다고 테르스 왕국에게 지원을 받자니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든 '군사'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미네르바 제국에게 있어서 스타비르크 지역은 '계륵'이었으니.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명분을 키워야 된다.
"어쨌거나 지금 만들고는 있어? 비슷하게나마 만들면 돼."
"우선 대포처럼 화약을 이용하고 있습니다만 오래 걸릴 겁니다."
"피와 강철에 나온 것처럼 만들 필요는 없어. 단 한 발만이라도 석궁 이상의 위력을 보인다면."
당장 스타비르크에게 필요한 것.
"우리에게는 화력. 개인이 지닐 수 있는 화력만이 답이야."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