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7화 〉 입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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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강철 3권은 두체, 무솔리니의 쿠데타 성공 소식부터 루르 점령, 그리고 뮌헨 폭동으로 이어진다.
무솔리니의 쿠데타 성공까지는 알 수 있겠지만 루르 점령은 뭔지 이해하기 힘들 텐데 간단하다.
독일이 미친듯한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고 있을 당시 프랑스가 전쟁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압박한 사건이다.
사실 말이 압박이지 그냥 강제로 삥 뜯은 거다. 심지어 프랑스도 잠깐 미쳤는지 방해하는 민간인을 군사 재판으로 총살까지 시킨다.
이로 인해 독일 국민들의 분노가 최대치로 끌어올랐으나 독일이 뭘 할 수 있겠나. 무능한 정부만 욕하는 것밖에 없다.
게다가 이 사건으로 인플레이션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상승했으니 독일인들의 생활은 더 고달파질 수밖에 없었다.
[무능한 정부가 나라를 무너뜨렸다. 굳이 히틀러가 아니더라도 혁명은 발발했을 것.]
[베르사유 조약이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는가?]
[노력이라도 했어야 됐다. 공산주의가 정권을 무너뜨릴 뻔했는데 가만히 있는 게 말이 되나?]
[프랑스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무고한 민간인을 군사 재판으로 사형시킨 것인가?]
또한 그 놈의 베르사유 조약이 끝까지 바이마르 공화국을 물고 늘어진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데타가 터지는 건 당연한 수순.
그러나 뮌헨 폭동은 확실한 '동기'는 있어도 세밀한 '계획'은 없었다. 히틀러가 무솔리니의 쿠데타를 보며 즉흥적으로 만든 거니.
이때문에 폭동 자체는 완전히 망했다. 기껏 잡았던 고위 관료를 놓쳐버리고, 더 나아가 히틀러가 체포당한다.
[반전이라면 반전. 혁명이 성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군대와 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니.]
[대체 왜 일으킨 거지? 명분은 충분하나 그걸 이용하지도 못했다.]
폭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수많은 독자들이 의문을 품었다. 계획 자체도 엉성할 뿐더러 진행마저도 개판이었으니.
사실 히틀러는 연설 및 선동을 비롯한 정권 잡기에 능했을 뿐이지, 원래부터 이런 계획에는 젬병이다.
훗날 독소전쟁, 그것도 스탈린그라드에서 보여줄 행보를 상기하자면 일종의 복선이라 보면 편하다.
아무튼 뮌헨 폭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모두가 의심을 품은 상황에서 히틀러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나는 독일을 위해, 모든 독일인을 대신해 무능한 정부를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면, 그대들은 결코 ]
재판장에서 꺼낸 말 자체는 위와 다를 바가 없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붙잡힌 혁명가들의 말로.
하지만 히틀러는 재판장을 본인의 연설장으로 뒤바꾸었으며, 일약 스타로 발돋음한다.
당시 어떤 말을 꺼냈는지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아 잘 모른다. 단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지.
따라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킬 수 있을지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제대로 먹혔다.
[애국자도 이런 애국자가 없다. 다수의 사람들은 불평을 하지만, 애국자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무능한 정부에 맞서 무기를 든 자. 과정은 이상해도 그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민심을 얻는 자야 말로 진정한 승리자.]
상황 자체만 본다면 히틀러는 숭고한 혁명가 그 이상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그의 속내가 얼마나 광기로 가득 차 있는지 전혀 모른다.
이후로 재판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면서 '나의 투쟁'을 집필하지만, 이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책 하나로 히틀러의 이미지가 혁명가에서 광기로 뭉친 폭군으로 변모할 테니.
나치당이 정권을 붙잡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의 투쟁이 어떤 내용인지 밝힐 예정이다.
단, 이 명언만큼은 무조건 넣을 필요가 있었다.
[국가의 권위는 절대 스스로 종결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폭정이라 하더라도 불가침화되고 신성화된다. 만약 국가의 권력수단이 민중을 폐허로 인도한다면, 저항은 모든 개개인 시민의 권리일뿐만 아니라, 의무이다.]
그 '히틀러'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게 놀랍긴 해도 진짜 수록된 말이다. 저걸 썼을 때만 해도 본인이 독재자가 된다는 걸 전혀 몰랐겠지.
저것만 본다면 정말로 숭고한 혁명가가 따로 없다. 이를 통해 독일을 향한 '애국심' 하나는 진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가 너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된 거지만. 어쨌거나 저 명언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강력한 국가라 할지라도,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외세의 침략에 무너지는 제국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나,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제국은 부활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지도자들이 마음에 품어야 할 글.]
꾸준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 세상은 제이로스 혁명 덕택에 군주들이 자기 멋대로 폭정을 저지를 수 없다.
왕과 귀족의 권위는 굳건할지라도 인권을 포함한 기본적인 권리를 자기 멋대로 해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귀족과 평민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놓고 핍박할 수 없다는 거지, 군주제 특유의 문제점은 여전하다.
게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었기에 부패한 지도자들을 향한 '경고'에 가깝다.
'어차피 폭정을 저지르고 있는 지도자도 없고.'
나와 척을 졌던 프리드리히 국왕, 아니지 이제 국서구나.
아무튼 프리드리히 국서 또한 대외적으로는 '현군'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나와 갈등을 빚기 전에는 평민 의회와의 사이도 원만했다.
왕비였던 마리아에게 왕위를 넘겨준 후에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재 마리아 여왕도 왕국의 혼란을 잠재우고 무난한 통치를 이어가는 중이라 들었다.
[쿠데타를 멀리서 지켜보는 남자의 이름은 '박사' 괴벨스. 그의 모습이 비추어진 걸 보면 필히 중요한 인물일 터.]
[괴벨스 박사는 히틀러의 곁에 서는 것인가? 아니면 적으로?]
[영웅의 곁에는 훌륭한 동료가 모이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듀오, 괴벨스가 등장하는 것을 끝으로 3권은 종료된다.
4권부터는 히틀러의 수감 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나치당 창설, 그리고 만악의 근원 '대공황'이 발발한다.
대공황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세계관 최강자 '미국'의 현황 또한 보여줄 필요가 있겠지.
무엇보다 대공황을 비롯하여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그래야만 장애인이었던 FDR의 집권 또한 납득시킬 수 있을 테니.
[히틀러의 신체적 결함이 드러나다. 그렇다면 제논도······]
그런데 씨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나는 신문에 떡하니 적혀있는 글귀를 보며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안 그래도 내가 히틀러라는 음모론에 살짝 화가 난 상황인데 저딴 말까지 폭발할 것 같다.
여태까지 관계를 맺은 여자들만 해도 몇인데. 게다가 밤마다 즐겁다 못해 뜨거운 성생활을 보내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확 고소해버리고 싶었으나 아직 이 세상에는 검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 음모론을 꺼낸 사람을 붙잡아 달라고 잡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이 사람의 인생은 망한다.
'그렇다고 안 넣을 수도 없는데······'
히틀러의 신체적 결함을 넣은 이유? 간단하다.
훗날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즐기차게 부를 노래의 주제가 바로 저거기 때문이다. 참고로 소련군뿐만 아니라 영국군도 부를 예정이다.
도대체 어디서 소문이 흘러 군인들이 부른 건지 의문이지만 지금 공개해야 개연성이 부과된다.
다짜고짜 히틀러는 짝부랄이라네~ 라고 노래하면 이게 무슨 소리지? 싶을 테니까.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분노를 넘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민감한 부분이라 몰매를 맞았다만······'
나를 히틀러로 취급하다 보니 발생한 상황이었으나 건드리기 예민한 부분이라 다들 질타했다.
맨 처음 가설을 내놓았던 평론가도 서둘러 사과했으나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이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수근거릴까봐 무섭다. 다른 의미로 바깥에 못 나오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딴 개소리 뱉은 놈이 누구야!"
그리고 나보다 더 화난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사랑스러운 약혼녀, 마리다.
그녀는 뉴스를 보자마자 곧장 나에게 달려왔으며, 본인이 직접적으로 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얼굴을 붉혔다.
듣자하니 이런 소문만으로도 '명예'에 큰 흠집이 발생한다고. 더군다나 나 같은 예술가에게 명예야 말로 목숨이자 전부다.
"당장 사형시켜도 할 말이 없는 소문이야! 아델 언니도 그리 생각하지?"
"그런데 사형까지야······"
마리의 분노에 아델리아가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그녀도 단순히 찌라시 정도로만 여기고 있던 참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나는 신체 건강한 수준을 넘은, 아주 절륜한 사람이었으니.
밤마다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아델리아로서는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작고 귀여운 백곰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마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열을 뻗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형까지는 심한 것 같아. 대신 언론에 말은 해야겠지.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나기 전에 말이야."
"후우······ 알겠어. 이건 네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게 나을 거야."
마리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가 화를 삭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사실 이 찌라시는 나뿐만 아니라 마리에게도 타격이 가는 일이다. 남편이 시원찮아서 밤마다 외로울 거라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댈 테니까.
당장은 내 명성이 하늘을 찌르듯이 올라가서 대놓고 말하기 어려울 테지만,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뒤에서 온갖 흉담을 보는 건 기본이고 자칫하다간 고립될 수도 있었으니. 언제까지 온실 속의 화초로 지낼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시정할 필요가 있다. 이에 어떻게 하면 될지 말하려던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열받네. 마음 같아서는 확 보여주고 싶은데."
"마리?"
"이참에 얼마나 대단한지 확 밝혀버려?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성불구인 것보다는 우월한 게 더 좋으니까."
"······내 의견은?"
살짝 어이가 없어져서 그리 물으니 마리가 나를 쳐다본다. 이어서 한참 바라보더니······
"앙!"
느닷없이 내 얼굴을 붙잡고 그대로 뺨을 깨물었다. 그녀만의 애정 표현이다.
이런 애정 표현 자체는 익숙해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깨무는 강도가 강해서 약간 움츠렸을 뿐.
그녀는 한동안 내 뺨을 깨물거나 쪽쪽 빠는 등. 애정을 표현하다가 고개를 뒤로 물렸다.
"··· ···"
마리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가끔씩 내 아랫도리를 힐끔거리는 것만 뺀다면.
뒤이어 그녀는 내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주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길래 저러는 걸까.
다만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리는 내가 아니라 뒤에 기립해 있는 아델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델 언니."
"응?
"언니를 좀 이용해도 될까요? 이건 아이작 개인 명예가 걸린 중대 사항이거든요."
"어······ 마음대로 해."
아델리아에게까지 허락을 받았겠다, 마리는 곧장 나를 쳐다봤다.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는 짙은 열망이 담겨있다. 저 열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마리는 어깨에 올린 손을 서서히 올려 내 얼굴을 붙잡았다. 자연스레 뭉개지는 내 뺨.
그 상태로 한참동안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때, 마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하씨······ 차라리 못 생기기라도 하지. 왜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마뤼?"
볼이 눌려서 발음도 부정확하다. 마리는 장난감처럼 내 볼을 만지작거리며 한탄했다.
"조금만 못 생겼으면 얼마나 좋아? 아니지. 그러면 내 자식들도 못 생겨질 수도 있어서 안 돼. 그냥 잘난 게 문제지. 이런 남자를 나 혼자 차지하겠다는 것부터가 욕심이었어."
"··· ···"
"아이작."
말을 해봤자 발음만 부정확해질 테니 고개만 끄덕였다. 내 끄덕임에 마리가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니콜 언니에게 들었어. 망나니로 살 거냐, 아니면 쓰레기로 살 거냐. 그리고 넌 전자를 선택했지. 그렇지?"
"웅. 그러치."
"그럼 됐어. 이제 조금씩 밝히면 되겠지. 어차피 아르웬 여왕과 이어졌다는 소문도 슬금슬금 떠오르고 있으니까. 세실리도 한참 작업 중에 있고."
그리 말하며 내 볼을 주물럭거리는 마리. 도통 내 얼굴에서 손을 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손길이 기분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무언가 편해지는 느낌이라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러자 마리는······
"하. 진짜. 너 지금 꼬시는 거지?"
"으응? 그게 무슨 소리······"
쪽!
강렬한 키스로 응대했다.
이후로 마리는 내가 직접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주변인이 밝히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나 또한 이런 경우는 주변인의 증언(?)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므로 내 신체가 멀쩡하다고 밝히는 건 마리 즉, 레킬리스 공작가가 직접 나섰고······
[제논의 약혼녀, 마리 하우젠 레킬리스. 그와의 밤은 거대한 흉기를 가진 한 마리의 짐승을 상대하는 것 같았으며······]
[그를 버티지 못해 결국 다른 여자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경우가 많아······]
[영웅답게 화끈한 제논의 밤일. 약혼녀가 직접 끌어들일 정도로 절륜하다면 혹시 다른 여인도······]
[알븐하임의 선물이 여왕 그 자체라는 소문이 점점 돌아다니고 있다. 과연 진실은?]
나는 오해 아닌 오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물론.
[제논에게 빠져든 여인은 과연 몇 명인가? 설마 헬리움의 공주마저도?]
[영웅의 곁에는 여인들이 몰리는 법이다.]
[과거 제논이 테르스 왕국에서 받은 재판. 그 이유가 프리드리히 국서의 사생아 때문이라는 소문도······]
망나니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지구였다면 온갖 몰매를 맞았겠지.
하지만 이 세상은 이제 막 근대로 넘어가는 중세 시대.
"마리. 어머니에게 편지가 왔어."
"그래? 뭐라셔?"
"귀족들이 자기 딸을 찔러넣으려고 계속 요청하고 있다는데?"
"다 찢어버리라 해."
그딴 건 없었다. 나를 방어력 0인 남자로 만들었을 뿐이지.
"정말 괜찮아? 네 입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잖아."
"어차피 결혼이랑 임신은 내가 먼저 할 건데? 문제라도 있어?"
"······아냐."
난 정말 좋은 여자를 만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