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3화 〉 낚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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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피와 강철이 발매됨과 동시에 아카데미의 개학이 이루어졌다.
본래라면 개학이 되자마자 클라크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는 뒤로 미루었다.
갈 때가 되면 무조건 갈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왜 일정을 미루었는지 물어보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이 바둑이라는 거 말이다. 정말 재미있더구나. 조금만 더 하다가 가마.]
바둑에 흠뻑 빠져버려 장례까지 뒤로 미룬 것이다. 상대는 당연하게도 우리 가족이다.
세실리와 아르웬처럼 폐인 같이 바둑을 두는 건 아니지만 대련이 끝나면 항상 대국을 둔다고.
심지어 우리 가족도 처음에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니 서서히 빠져들었다.
특히 데이브와 니콜은 휴가가 끝나면 부대에도 알릴 거라고 했으니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유희 문화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문득 전생에 유명했던 카드 게임 하나가 떠올랐다. 본인만의 '덱'을 만들어 서로 맞붙는 게임.
적어도 내 세대에서는 유희왕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는데 크고 나서는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코찔찔이 시절에 친구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나도 용돈을 야금야금 모아서 카드를 샀다가 운빨좆망게임에 치를 떨었지.
시간이 흘러 흔히 '돌겜'이라 칭해지는 게 유명해졌으나 큰 관심은 없었다.
'한 번 만들어 볼까?'
그림을 인쇄하는 기술까지 존재하니 카드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머스크에게 건의해야지.
제논 일대기는 30권이 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데다가 현실을 고증으로 삼은 소설이다.
내가 잘 모르는 마법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적절하게 밸런스를 두면서 제작하면 될 것이다.
'이런 건 머스크에게 직접 부탁해야지.'
그 사람이야 말로 이런 일에는 적격이니 나는 최종 승인만 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2차 세계 대전이 더 중요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저택에 조금만 더 있다가 오는 건데.'
현재 나는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할 일이 너무 없어서 글만 쓰는 기계가 되고 있다.
원래라면 엘레나도 만나고 앞으로의 일정도 알아야 하지만 알다시피 그녀는 현재 회색 사막 원정을 떠났다.
담당 교수도 출장을 간데다가 애초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니 유유자적하게 생활하는 중이다.
"누나."
"응?"
"나 이번 학기에는 교수로 일할까?"
글만 쓰다보니 너무 무료해져서 아델리아에게 저런 질문까지 건넸다. 그에 아델리아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워낙 뜬금없이 꺼낸 말이라 잠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교수로 일한다니?"
"내가 제논이라는 걸 발표하고 나서 총장님이 건의해주셨거든. 내가 원한다면 교수직을 주겠다고."
지금도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난 기억하고 있다. 당시 총장도 내가 여건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을 터.
하지만 반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제논이라 명성이 자자한 내가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친다?
학생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오겠지. 이건 자뻑이 아니라 진짜다.
문제는 여기에 불순한 분자들 즉, 악마 숭배자도 끼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실제로 아무 생각없이 운동을 하다가 악마 숭배자에게 기습까지 당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절대 안 되지. 지금은 케이트 씨도 없잖아."
"그렇지?"
당연하게도 가뿐히 묵살당했다. 아델리아의 말마따나 현재는 케이트도 없어서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래도 내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악마 숭배자의 동태 때문이다.
이벤트의 영향인지 몰라도 악마 숭배자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최근에는 뉴스조차 거의 없다.
다만 그렇다 해서 완전히 뿌리가 뽑힌 건 절대 아니다. 현재도 음지에서 알음알음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교수가 되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달라붙을 텐데 글을 쓸 시간도 없잖아. 네가 쓸 건 제논 일대기보다 복잡할 거라며."
"2권은 거의 다 쓰고 있어."
"······벌써?"
"응."
아델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1권이 등장한지 겨우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신간을 집필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물론 사흘만에 후다닥 쓴 건 절대 아니다.
남는 게 시간인데다가 히틀러가 나치당에 입당하는 과정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니. 여기서 시간이 가장 컸다.
참고로 1권의 막바지에 히틀러가 나치당의 전신, 독일 노동자당으로 향한다며 마무리를 짓지만 독일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할 예정이다.
'그때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은 개판 중의 개판이었으니까.'
나라 자체가 워낙 개판이라 정권이 두 개로 쪼개졌을 정도다. 하나는 바이마르 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수립한 정권.
정치적 내전이었기에 국가가 파멸되지는 않았으나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 깡패들이 득세하고, 정치적 숙청이 이루어졌다.
당연히 그걸 직접 지켜본 독일인들 입장에서는 혁명을 좋게 볼 수 없었으며 이건 히틀러도 마찬가지.
히틀러가 독일 노동자당으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생각이다.
'테르스 왕국이 제일 움찔할 것 같은데.'
현재 이 세상에서 혁명하면 십중팔구 테르스 왕국을 떠올린다. 사실만 말만 왕국이지, 테르스 공화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혁명을 나쁘게 묘사한다면 테르스 왕국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나. 잘 설명해야겠지.
공산주의도 이념 자체만 본다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나, 하필이면 최고 권위자가 스탈린이었기에 문제가 터진 거다.
아무튼.
"안 될까?"
"······나한테 말고 마리에게 물어봐. 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곁을 지킬 테니까."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은근슬쩍 그녀의 허리를 한 쪽 팔로 감싸안았다. 그리고 가볍게 잡아당겼다.
아델리아도 내가 허리를 감싸안은 순간부터 힘을 주자 않아 자연히 내 허벅지 위에 안착했다.
마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수업에 들어간 시간. 클라크마저 저택에서 쉬고 있다.
다시 말해 나와 아델리아를 제외하면 기숙사에 아무도 없다. 은밀한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했다.
"그나저나 방학동안 참느라 안 힘들었어?"
"······조금."
내가 속삭이듯이 말하자 아델리아가 부끄러워하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번 방학은 레오나와 지냈으니 꽤 쌓여있을 터.
그녀는 인내심이 강한 거지, 결코 성욕이 적은 게 아니다. 반대로 운동을 하는 여자라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
"이제 눈치 볼 필요 없으니까 언제든지 말해도 돼. 아까 말했듯이 남는 게 시간이거든."
"알았어. 그러면······"
내 말에 아델리아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옷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한다. 메이드복을 벗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뒤이어 운동으로 단련된 어깨가 드러나고, 그 밑의 맨살이 서서히 공개되었다.
"그······ 아이작?"
"응?"
메이드복을 반쯤 벗은 아델리아가 속옷 차림으로 조심스레 묻는다. 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눈동자에는 미묘한 부끄러움이 담겨있다.
내가 그런 그녀를 보며 의아해 하고 있을 때, 한참동안 우물쭈물거리던 아델리아가 쑥쓰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말했잖아. 전쟁? 아무튼 전의 인생을 합친다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음······ 그렇지?"
"그, 그러면······"
말을 더듬거리던 아델리아는 어느 순간 홍시처럼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입을 열었다.
"이, 이럴 때에 오,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
"··· ···"
"펴, 평소에는 안 부를게. 대신 안길 때만이라도······"
저번에는 장난식으로 불렀기에 상처를 입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의를 벗은 채 부끄러워하며 오빠라 불러도 되냐는 귀여운 부탁.
평소 늠름하던 아델리아가 저런 부탁을 하니 심장에 큰 무리가 오는 것 같다.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비참한 과거를 보았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지금에야 나라는 사람이 생겼지만, 좀 더 기대고 싶어서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동생에게 완전히 기대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했으니. 하지만 전생을 밝힌 이상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아델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그럼 단 둘이 있을 때만 오빠라고 할래? 마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을게."
"······!!"
단 둘만의 비밀이라고 하자 나에게 안긴 아델리아가 크게 움찔거린다. 귀까지 빨개지고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누이 언급했듯이 아델리아는 육체보다 이런 정서적 교감을 더 선호한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다가 얼굴을 붙잡아 천천히 돌렸다. 이미 헤롱헤롱거려서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다.
"오빠라고 불러봐. 다 받아줄게."
"오, 오빠······"
"응. 아델."
"오빠. 아이작······ 오빠."
이미 한 번 선을 넘어버리니 더이상 거침이 없다. 아델리아는 홀린듯이 말하고는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나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그녀의 가녀린 등을 껴안고 토닥거렸다.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으나 차차 익숙해져야지.
마리가 여전히 애 같다고 말했으나 이럴 때만큼은 듬직한 모습을 보여야 된다.
'이제는 내가 보호 받는 게 아니라 지켜야겠지.'
제논 일대기가 완결이 나고 2차 세계 대전을 발매하면서 생긴 다짐이다. 더이상 숨어봤자 큰 이득도 없다.
악마 숭배자가 걸리긴 해도 계속 숨는다면 그들에게 쫄았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차라리 당당하게 활동해야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며 악마 숭배자들도 함부로 못 나설 것이다.
'궁금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클라크와 만나면서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악마 숭배자는 어떤 경위로 악마 숭배자가 되었을까.
본래 진실은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존재하기 마련이니 한 번쯤 접촉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과정 속에서 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 이건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
'일단 책은 꾸준히 낼 거니까······'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아래를 바라봤다.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아델리아가 눈에 들었다.
그 상태 그대로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다가 우뚝 멈추었다. 내가 멈춘 곳은 브래지어의 후크.
툭
익숙한 손놀림으로 후크를 풀자마자 아델리아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나마 나를 껴안고 있기에 속옷이 내려가진 않았다.
"······오빠."
"응."
"앞으로······ 계속 이래도 되죠?"
가엾게 느껴질 법한 그녀의 질문.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답했다.
"물론."
"··· ···"
"항상 곁에 있어줄게."
그 말을 하자마자 아델리아는 나를 껴안던 힘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스윽
자연히 속옷 또한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안. 나와 아델리아는 간만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대신 첫날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그럴까. 학생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사랑이 이어졌으며······
"오늘 내가 하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하는 건데! 먼저 하는 게 어디 있어! 오늘부터 내 차례잖아!"
"미, 미안. 어쩌다 보니······"
"흠. 흠."
당연히 마리에게 들켰다. 나는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데 오늘부터 내 차례라는 말은 대체 뭘까. 정말로 차례를 정해놓은 건가.
어쨌거나 사과는 해야겠지. 나는 분통을 터뜨리는 마리를 달래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델 누나 잘못은 없어.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거야."
"그래? 그럼 계속하면 되겠네."
"계속······?"
내가 의문을 가지든 말든, 마리는 와이셔츠 단추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침대로 천천히 다가왔다.
"아직 할 기운 남아있지? 아니지. 오히려 너도 쌓여있었겠네. 그렇지 않고서야 아델 언니를 먼저 건드리지 않았을 테니."
"······마리?"
그때만큼은 작고 귀여운 아기 백곰이 아니라.
"닥치고 세우기나 해."
포식자로 널리 알려진 북극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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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소설, 피와 강철은 1권의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마나와 마법이 없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이목을 끌었으나 종족이 나약한 인간밖에 없다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엇보다 이 세상과 달리 과학이 극도로 발달했다는 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전혀 다른 세상 같으면서도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으니.
하지만 1권에서는 '과학'이 아니라 당시 발생했던 사건들, 그리고 히틀러와 '사회'에 대해서 설명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히틀러라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이외에 여러 의견이 오고 갔다.
이렇듯 1권의 분석마저 덜 끝난 상황에서, 아이작은 놀라운 집필 속도를 과시하듯이 2권을 곧바로 발간했다.
2권의 내용은 바이마르 공화국 즉, 독일 제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냐면 개판 5분 전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가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더욱 혼란으로 치닫았으며 정치적 내전이 팽배하던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명령을 받은 히틀러가 향한 곳은 독일 노동자당. 즉, 나치의 전신이 되는 곳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히틀러는 노동자당에서 열정적인 연설을 펼친다. 독일에 대한 찬양과 게르만 민족의 우월함을 알리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같은 평가를 내렸다.
[애국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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