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화 〉 후속작(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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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라이벌, 스탈린의 초상화가 공개되면서 수많은 뇌피셜이 쏟아졌다.
히틀러가 선역으로 추측되고 있다면 스탈린은 그에 대항하는 라이벌 식으로.
어째서 이런 뇌피셜이 쏟아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니 소련의 서기장, 즉 지도자라는 점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련은 당대 미국보다 훨씬 큰 영토를 가진 최강대국이었으며, 스탈린은 강철의 대원수라 부를 만큼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이다.
반면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는 정보밖에 없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분명 강했지만 결국 패배하는 국가다.
이후로 나치당을 이끄는 히틀러가 탁월한 외교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게 되나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
사람들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는 것만 보고 소련이 히틀러의 출생지, 오스트리아를 점령할 거라고 예측하는 중이다.
'라이벌은 맞긴 맞지.'
가설들 대부분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거지만 그들이 라이벌이었다는 건 맞다.
문제는 히틀러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마였으며 스탈린은 인간 백정이었다는 것.
그나마 공통점이라 하면 두 사람 모두 최악의 독재자였다는 점. 그리고 인생사는 비슷했으나 물과 기름처럼 상반된 삶을 살았다.
아무튼 온갖 뇌피셜들이 튀어나오는 와중에 두 사람이 라이벌이라는 것 하나만 정확하다.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말이다.
'히틀러는 자기 라이벌이 처칠이라 했으니.'
아무튼 이들 중에 선역은 없다. 독소전쟁은 그저 악마와 괴물 사이의 전쟁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단지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이 변명할 여지도 없는 '악'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의로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가장 온화한 편이려나?'
영국은 독일한테 두들겨 맞은 탓에 미국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반격을 가했고, 소련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복수에 미친 괴물이다.
미국은 일본에게 진주만 공습을 당한 후로 참전했으니 '정의'에 가장 가까운 편이다.
실제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악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자진해서 입대했으니. 진주인공이 미국인 셈이다.
이렇게 따진다면 소련도 정의에 가깝지만 그들은 '복수'에 집중할 예정이다.
'다 좋은데 핵폭탄을 최초로 투하했다는 게 흠이지.'
사실 이것도 흠이라 하기에는 어쩔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국이 예상보다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서 일본은 국민들 전체가 전체주의로 무장한 상태다. 죽창 하나만 쥐어주고 버티라고 다그쳤으니 말 다했지.
미국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일본을 '굴복'시켜야 할 무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핵폭탄인 거고.
'다른 지도자들의 그림도 그려달라고 부탁할까?'
나는 스탈린이 등장하면서 온갖 뇌피셜이 돌아다니는 걸 보며 고민했다. 저마다 다양한 뇌피셜을 쏟아내니 꽤 흥미롭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 제국의 도조 히데키. 히틀러가 워낙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해서 그렇지, 이들도 만만치 않은 전과를 자랑한다.
또한 추축국이 있다면 연합국 또한 특색이 짙은 지도자가 존재하는 법.
스탈린부터 시작해서 천재적인 외교술을 자랑하던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
마지막으로 세계관 최강자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하 FDR까지.
개인으로만 따지자면 각자 개성이 넘치다 못해 범람할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여기에 각 국의 명장들까지 합친다면 수가 너무 많아질 터. 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공개를 안 하자니 아깝다.
'······이건 천천히 공개해야지.'
어차피 전개가 흐르면 흐를수록 주인공은 독일에서부터 소련과 미국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무엇보다 각 나라마다 입장을 보여줘야 되니 전개를 세심하게 짜야 된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반복하면 정신 사나워진다.
이것도 글로만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훌륭한 노예······ 아니, 삽화가 칼스가 존재한다.
지금도 내가 준 초안을 토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테니 전개만 집중하면 될 것이다.
'다른 것도 기대가 되지만 루즈벨트도 궁금하네.'
세계관 최강자라 부르는 FDR은 모두 알다시피 소아마비로 인해 하반신이 불편해 휠체어를 끌고 다닌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4번이나 지낸 미친 괴물이자 대공황과 2차 세계 대전을 극복했다.
4선만 본다면 정치를 잘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테지만 대공황과 2차 세계 대전을 버틴 건 매우 거대한 업적이다.
특히 대공황 당시에 펼친 뉴딜 정책만 하더라도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뉴딜 정책의 효과가 너무 커서 미국 스스로도 자기 힘을 몰랐다고 했나?'
아무튼 FDR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꽤 평가가 좋은 대통령이지만 그가 하반신 마비라는 부분을 신경 써야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에게 신체적 및 정신적 결함이 존재한다면 위세가 상당히 내려가기 마련이다.
지금 이곳도 다를 바가 없다. 황태자, 레오르트에게 신체적 결함이 있었더라면 황위 계승은 리나에게로 전달됐겠지.
물론 루즈벨트도 본인에게 하반신 마비가 있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숨긴 것으로 알고 있다.
허나 그걸 배제하더라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이렇듯 주요 지도자에 대한 건 대충 끝마친 상황인데······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어?"
바둑에 홀딱 빠져있어야 할 두 사람, 세실리와 아르웬이 뒤늦게 신문을 접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휴식 겸 오랜만에 책을 읽는 도중에 찾아와서는 알 수 없는 부탁을 건네는 그들.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책을 조용히 덮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마족도 다크 서클이 생기긴 하는구나.'
대체 바둑을 얼마나 뒀으면 미미하게나마 다크 서클이 생길 정도일까.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세실리에게 미미한 퇴폐미를 선사했다.
아르웬도 다크 서클이 생기긴 매한가지였으나 신디를 보았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게다가 외모가 너무 어려 보이는 탓에 세실리와 달리 말괄량이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어쨌거나 겨울 방학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들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는 별 거 없다.
"그게······ 우리가 방금 막 신문을 봤거든?"
바둑을 두느라 다크 서클이 생긴 세실리가 민망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옆의 아르웬도 비슷하게 민망한 웃음을 흘린다. 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며 한 쪽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이제 슬슬 겨울 방학도 끝나니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잖아? 아이작 너도 아카데미로 돌아갈 거고."
"아마 그렇지? 누나는?"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서 학기 중간에 올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바둑을 더 알려달라고?"
그리 묻자마자 세실리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하기야 그런 거라면 신문을 봤다고 언급조차 하지 않았겠지.
다시 말해 히틀러와 스탈린의 그림을 보고 무언가 떠오른 게 있는 모양이다.
작품에 대해 궁금해진 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세실리가 기다란 머리카락을 베베 꼬면서 입을 열었다.
"네가 공개한 그림들을 보고 생각난 게 있거든. 전에 아르웬 여왕님에게 보여줬던 연설문."
"응."
"혹시 히틀러나 스탈린이 꺼낸 연설이야?"
링컨이 들었다면 무덤을 박차고 나왔을 질문이다. 나는 다급히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아니. 그건 첫번째 연설문. 두번째 연설문은 링컨이라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 그러니까 지도자 중 한 명이야. 첫번째가 히틀러지."
"그렇구나."
"보아라. 내 말이 맞잖느냐. 그런 연설은 주인공밖에 못 하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세실리와 달리 아르웬은 거 보라는 듯이 으스댔다.
보아하니 아르웬이 먼저 연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그 연설을 누가 했는지 의견을 나눈 모양이다.
그 끝에 나를 찾아온 거고. 그녀도 히틀러를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그럼 그 연설을 어느 정도 수정해서 나에게 보여줄 수 있어? 약간만 응용할게."
"뭐?"
다음에 이어진 그녀의 부탁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세실리의 부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 헬리움과 마족 전체를 파시즘의 광기로 몰아넣을 속셈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그녀의 설명을 듣고나서 아차싶었다.
"전에 여왕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연설이었다고. 처음에는 쉬이 넘겼는데 곰곰히 생각하니 마족에게 정말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
"··· ···"
"이번에 악마 숭배자와 연관된 귀족도 거의 몰아냈겠다, 한 번쯤 연설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부탁을 했지만 본인도 썩 부끄러웠는지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세실리.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통 추측하기가 어렵다. 여태까지 바둑에만 신경이 팔려있던 그녀가 어째서 저런 부탁을 하는 것일까.
혹시 아르웬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르웬은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하더니 살짝 민망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하다면 나도 도와줬으면 좋겠구나."
"너는 왜?"
"그대도 알다시피 알븐하임이 그대에게 준 선물은 알븐하임 역사상 유례가 없던 사건이니라.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들이 서로 서로 단합하고, 또 선택했지. 그러니 단합을 강조하는 연설만 한다면 더 좋을 거라 생각해서······"
이미 엘프식 공산주의가 물들어 있는데 얼마나 더 빨간색으로 칠할 생각일까.
이러다 공산당 선언까지 발표할 것 같아 절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한 쪽은 파시즘. 다른 한 쪽은 공산주의.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결이다.
심지어 둘 다 현재 상황으로 보자면 매우 적절한 이념이라 더욱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족은 그동안 받았던 핍박을 전부 걷어내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엘프는 개인이 아닌 전체로 나아가고 있으니.
그 중심이 나라는 건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은 이것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연설만큼은 절대로 줄 생각이 없다.
"안 돼. 그건 못 들어줘."
"흠. 알겠다."
"왜? 아르웬 여왕님의 부탁은 들어줬잖아."
아쉬울지언정 어깨만 으쓱이고 넘어간 아르웬과 달리 세실리는 불공평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역으로 질문할 차례였다. 나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물었다.
"저번 연설은 누나 혼자서도 잘했잖아. 갑자기 왜 이런 부탁을 하는 거야?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히틀러의 연설을?"
"그거야 앞으로 네가 쓸 작품의 주인공이 그 아돌프 히틀러잖아. 연설까지 할 정도면 분명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겠지. 그 연설을 통해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소련의 스탈린에 대항하는 거 아냐? 초상화까지 있는 걸 보면 맞는 거 같아서."
"··· ···"
무언가 심히 엇나간 것 같아도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대답이다. 나는 순간 말문을 잃어버려 세실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히틀러는 괴벨스와 함께 청중을 압도하는 연설 및 선동으로 정권을 휘어잡았다. 또한 실의에 빠져있던 독일인을 고양시켜 무구한 발전을 이룩했다.
심지어 본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까지 병합시켰으니 독일인에게는 영웅이 맞다. 그 이후가 문제지.
'이게 이렇게 되나.'
아직 상세한 정보가 풀리지 않아 세실리와 아르웬도 히틀러를 선역으로 추측하는 모양이다. 스탈린은 당연히 악역이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들에게 지구의 문명을 설명했으나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대부분 문화에 치중했을 뿐.
그러니 나에게 미리 연설문을 받아 일종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듯했으나 그건 절대 안 된다.
기껏 세워놓았던 탑이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으며 또다시 공공의 적으로 찍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스포일러는 하기 싫고······'
정말 '맛있는 반응'을 보기 위해 최대한 정보를 풀지 않는 중이었는데 벌써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나는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안 될 것 같아."
"어째서? 정말 중요한 내용이야?"
"내용도 내용이지만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을 거야."
변명 같긴 해도 반쯤은 진실이다. 생전 히틀러가 펼쳤던 연설을 본다면 거의 연기에 가까울 정도로 정열적이다.
그런 스타일을 세실리가 따라한다? 빈말로도 어울린다 할 수 없으며 역효과만 날 수 있다.
"그리고 연설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되지 않아?"
"불확실한 것보다 이미 입증된 연설을 사용하는 게 더 낫잖아. 너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도 없고."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른 걸 줄게."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가 훨씬 나을 것이다. 본문은 길지만 중요 부분을 쏙 쏙 골라내면 된다.
"정말로? 정말로 줄 거야?"
"응. 그 대신 히틀러가 말한 연설은 절대 아니야. 어쩌면 마족에게 더 잘 어울리는 내용일 수도 있어."
"와아! 정말 고마워!"
와락!
세실리는 내 말에 엄청 기뻐하며 내 얼굴을 와락 껴안았다. 거대한 흉부가 내 얼굴을 강하게 짓눌러 숨이 턱 하고 막힌다.
하필이면 내가 의자에 앉아있던 탓에 그대로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가슴 특유의 말랑말랑한 느낌이 얼굴을 타고 전달된다.
남자로서 기분은 좋긴 하다만 그 전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나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두드렸다.
"후아······! 크흠. 큼. 기쁘다니 다행이네. 아무튼 볼 일은 이게 끝이야?"
"일단은? 아르웬 여왕님은 하실 말이 있어요?"
"··· ···"
세실리의 질문에 아르웬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뒤이어 본인의 가슴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시무룩해지는 것이 아닌가.
결코 작지 않은 크기였으나 세실리에 비해서 매우 빈약한 크기. 하지만 그녀에게는 국보급 하체가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여왕님?"
"으, 응? 무슨 일이냐?"
"여왕님은 아이작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전 다 끝났거든요."
"으음······"
그 말에 아르웬이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나는 그녀의 은회색 눈동자와 마주하며 손을 올렸다.
괜찮으니 말해도 된다는 내 표시에 그녀는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단합과 관련된 연설은······"
"그건 안 돼."
"쩝."
나는 오늘 파시즘 마족과 공산주의 엘프의 탄생을 막았다.
그로부터 하루가 흐르고······
[마나와 마법이 없는 세상 속의 무기! 그 이름은 총?]
나는 세상에 '총'의 존재를 알렸다.
[모든 이를 '마법사'로 만들어 주는 기적의 지팡이.]
약간 과장을 보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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