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57화 (458/763)

〈 457화 〉 후속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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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 일대기 시리즈가 스쳐간 영웅을 끝으로 완결이 났다. 제논 일대기 1권을 발매하고 나서 거의 2년 반에 가까운 기간 동안의 기간이었다.

중간중간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더 나아가 헬리움에서 타자기를 받았지만 무시무시한 집필 속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냥 밥만 먹고 일만 한 수준이랄까. 보통 같으면 한 달에 1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열흘에 한 번 꼴로 나왔다.

어쨌거나 길고 긴 시간 동안 다사다난한 사건사고를 겪은 제논 일대기는 더이상 발매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독자들은 작가인 나에게 고생했다는 응원을 보내는 한편, 이제 뭘 봐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차 창작을 기꺼이 허락한 제논 일대기라지만 제논 축제는 1년에 한 번씩 진행되며 그 사이를 충족해야 된다.

물론 30권이 넘는 방대한 양이라 정주행을 해도 상관이 없으나 보관 문제도 그렇고 계속 읽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작가의 말에 제논 일대기와 전혀 다른, 이른바 신작이 등장할 거라고 예고했다. 여태까지 늘 언급된 세계 2차 대전이다.

[짧고 간결한 프롤로그. 과연 이것들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정보가 풀리지 않아 무엇 하나 예상되는 게 없다. 마나와 마법이 없고, 또 신이 없는 세상. 과연 이게 멀쩡히 존재할 수 있을까?]

[다소 이단적으로 느껴지나 제논의 작품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짧디 짧은 프롤로그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의견을 나눴다.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추론조차 거의 못 하고 있다.

그 대신 프롤로그에 언급된 '기계 혁명'과 '제국주의', 마지막으로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아돌프 히틀러'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제논 일대기에도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는 만큼 기계 혁명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이건 현실에서도 진행되는 사항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정복'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정복과는 다소 다른 의미지만 이건 차차 풀어나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아돌프 히틀러.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다는 문맥 뒤에 그의 탄생을 알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이······ 맞긴 하다. 이건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동의하는 바다.

본래 역사에서 한 개인이 대체 불가능한 요소로 자리잡는 경우는 희박하지만, 히틀러는 그 반대다.

선동이 제대로 먹히는 시대와 사회, 더 나아가 독일의 절망스러운 분위기까지. 이런 상황에서 히틀러가 없었더라면 나치 독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을 성장시켰다는 것도 단기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았고.'

히틀러는 분명 절망에 빠진 국민들을 도취시키고 경제를 회복시켰다. 허나 그것이 '침략'을 위한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대공황으로 우후죽순 불어나는 실업자들을 죄다 군수업에 넣어버리고, 그를 통해 나온 막강한 무력으로 서유럽을 평정한 거다.

애당초 예술가였던 양반이 행정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유능했다면 나치 독일이 진작에 이겼겠지.

이것이 독일인들의 눈과 귀를 가려버린 결정적 원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최악의 수로 돌아오나 그는 서유럽을 평정했기에 감당할 수 있던 것이다.

'아마 사람들도 이걸 보면서 어? 생각보다 엄청 유능한데? 라고 착각하겠지.'

나는 이것을 제대로 노릴 계획이다. 언뜻 본다면 진짜로 한 나라를 구원하고, 더 나아가 최강대국으로 만든 위대한 주인공으로 보이겠지.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응? 이게 뭐야? 라는 의문이 점점 흘러나올 것이다.

특히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정책을 마주한다면 이 사람이 비로소 '악'이라는 걸 깨달을 테지.

과연 어떤 반응들이 속속 튀어나올지 정말 기대된다.

'그렇다고 히틀러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민주주의가 어떤 건지 명확히 인지시켜야 돼.'

이 세상 사람들은 '독재자'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애당초 전제군주제가 기본값이라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테르스 왕국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다른 나라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귀족은 물론 왕족들조차 백성들을 쉬이 압박하지 못하며, 심지어 평민 의회의 힘마저 강한 상황이니.

어찌 보면 입헌군주제의 중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테르스 왕국민들에게 질문하면 평민 의회를 기본값으로 여기고 있다.

'테르스 왕국이 있으니 민주주의를 좀 더 이해시키기 쉬울 거야.'

지난번 지인들에게도 부가 설명을 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이 세계판 프랑스 혁명 즉, 제이로스 혁명이 진짜 성공한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귀족을 비롯한 왕족의 모가지가 뎅겅 잘려나갔다고 하자 기함했다.

이후에 리나에게도 이 얘기를 해줬더니 창백해진 얼굴로 자기 목을 쓰다듬어서 조금 웃기긴 했다.

'일단 시대상은 넘어가고, 가장 큰 문제는······'

나는 노트에다가 적힌 '유럽'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는 툭­ 툭­ 치면서 고민에 빠졌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의 전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피카레스크 작품에 가깝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땅덩어리는 전세계에 비하자면 매우 작다. 아마 이 부분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전쟁은 본래 다양한 이유로 발발하니 세계 전쟁으로 규모가 커진 건 알겠다. 그런데 이 좁은 땅덩어리가 어떻게 세계에 영향을 끼쳤는가?

당장 소련의 영토를 보면 세계의 반을 삼킨 수준이다. 미국은 두말 할 여지가 없는 개사기 땅이고.

'주요 나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어.'

'영토'만 본다면 소련은 절대 뚫을 수 없는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모두 알다시피 더럽게 추운 지역이다.

지하 자원은 전세계에 뿌리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하나 그걸 제외한다면 여러모로 부실하다.

하물며 역사적으로 혁명이 여러 번 발생한 탓에 정치적으로 굉장히 불안했으며, 스탈린의 등장 이전까지 몸집만 큰 허수아비에 가깝다.

스탈린은 히틀러의 라이벌이자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군림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을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시켰다.

'원래라면 작품 속에 녹여내야겠지만 그러면 독자들이 혼란스러울 거야.'

지구는 이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역사, 지형, 지리, 기후, 마지막으로 민족까지 하나도 모른다.

톨킨의 작품은 북유럽을 기반으로 창작했기에 그나마 받아들이기 쉽지만 지구는······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레오나의 말마따나 '판타지'처럼 느껴지기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겠지만 '설정'은 치밀하게 짜야 된다.

'생각해 보니 거의 매 권마다 삽화를 그려야 되네.'

전개를 보다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삽화도 필수다. 제논 일대기는 삽화의 중요도가 떨어졌지만 2차 세계 대전은 거의 필수다.

물론 전선 묘사 자체는 모라의 도움을 받는다면 되겠지만 장비가 문제다. 무거운 강철로 제작된 수많은 병기들.

이 철덩어리가 하늘을 날고 바다를 마음대로 항해한다고? 라는 의문보다 이미지 자체가 중요하다.

'전생이었다면 삽화가 한 명을 구했을 텐데······'

내 명성이 명성인만큼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구한다면 쉽게 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 설명을 이해할 수 있냐 없냐다.

아닌 말로 내가 전차를 그려달라고 해서 그 사람이 뚝딱 그려주겠는가? 절대 아니지.

우선 내가 기본적인 틀부터 잡아주고, 그 사람에게 부탁하여 그려주는 게 낫다.

정 안 되면 내가 따로 그림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러고 보니 작년에······'

그림 하니 떠오르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작년에 처음으로 개최했던 제논 축제.

축제 당시 꽤 인상 깊었던 화가가 한 명 있던 걸로 안다. 헥토파스칼 킥을 꽤 익살스럽게 그렸던 화가.

아쉽게도 이름은 모르지만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삽화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한 번쯤 만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전용 ost도 만들고 싶은데······'

한 번 명성을 얻고 나니 욕심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리루스 악단의 실력이 지구에 비해서 꿀리지 않아 그런 걸까.

각각 나라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ost도 제작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 세계에도 음악을 녹음하여 원할 때마다 재생하는 물건이 있긴 하다. 당연하지만 음반이 아니라 녹음 구슬이다.

음질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이것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아 평민은 꿈도 못 꾸는 수준이다.

'······이건 넘어가자. 그냥 리루스 악단에게 따로 부탁해야지.'

녹음보다는 차라리 그들에게 직접 부탁하여 작곡한 후, 전세계를 누비면서 공연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아니면 영지 내에 음악 감상만을 위한 방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 영지는 문화의 도시로 발돋음하고 있으니 상층부에서도 호의적으로 반응할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리루스 악단과의 만남이 필수다. 나는 화가 다음으로 리루스 악단에 동그라미를 쳤다.

'독일은 정복과 광기, 마지막은 슬픈 운율로 패배주의적 느낌이 들게 하고······'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정을 치밀하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

제논 일대기 후속작, 정확히는 아이작의 차기작이 등장한다고 발표가 된지 약 사흘이 흘렀을 쯤이었다.

저마다 각기 프롤로그를 보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출판사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발표를 꺼냈다.

[제논 님께서 먼저 그 세계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을 알 수 있도록 지도를 그려주셨습니다. 이 지도를 먼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차기작의 세계 지도를 먼저 공개한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도는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물건.

더 나아가 다른 세상이라 해도 세계 지도라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이들 눈에는 또다른 세상을 창조한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

뒤이어 세계 지도가 대중들에게 공개된 이후로는,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련의 광활한 영토를 보아라! 미네르바 제국에 비해서 결코 뒤처지지 않으니 필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일 것이다!]

누구는 미친듯이 넓은 소련의 영토를 보며 탄성을.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나라들은 하나 같이 다른 곳에 비해서 영토가 매우 좁다. 이들이 어떻게 제국주의 즉, 정복 사업을 펼쳤단 말인가?]

누구는 생각보다 좁은 유럽의 땅을 보며 의문을.

[이 드넓은 바다를 항해했다니 믿을 수 없다.]

누구는 모든 대륙을 합친 것보다 넓은 태평양을 보며 경악을.

[인간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나라가 많아도 너무 많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세계가 이렇게 분할되었단 말인가?]

누군가는 이 세상보다 훨씬 많은 나라에 믿지 않았다.

이처럼 대부분 '믿기 힘들다'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그와 동시에 납득했다.

말이 되지 않으니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레오나가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다르다 해서 부정하지 않고 쉬이 받아들였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슨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제이로스 혁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프랑스 혁명도 있지 않았는가.]

[그 과정 속에서도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산재해 있었을 터. 어떻게 이 위험을 돌파했는지 궁금하다.]

[신의 존재가 불분명하다면, 과연 이 세상에도 '종교'가 존재할까?]

학자들이라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없는데도 제이로스 혁명과 비슷한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으니.

다만 아이작이 '기원 전'과 '기원 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 학자들은 이 세상의 역사가 200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추측하고 있다.

[전혀 다른 세상. 모든 것들이 의문 투성이인 세상. 그러나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

[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판타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판타지'라 부를 것이며, 제논이 이 세상을 어떻게 묘사할지 기대를 품어······]

세계 지도까지 공개되니 기대감이 더 부풀어 오르는 효과를 낳았다. 사실 아이작은 이것을 노린 것이다.

1권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조금씩 밑밥을 뿌리는 작업. 이걸 통해 갈증을 약간이마나 해소시키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작은······

"반갑습니다. 저는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 세간에서 제논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저명하신 예술가 님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어······"

앞으로 신나게 굴릴······ 아니.

아주 훌륭한 동업자가 될 화가 한 명과 대면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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