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1화 〉 게리오스 왕국(1)
* * *
"그거야 당연히······"
모건 왕이 던진 질문에 데이모스는 말을 하다 말고 미간을 좁혔다. 처음에는 당연히 신들이 엘프와 마족을 제외한 모든 종족을 창조했을 거라 생각했다.
자연의 여신은 쌍둥이 남매신, 루미너스와 모라를 낳았고 그들의 권능 하에 세상이 창조되었다.
그 세상 속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이 태어나고, 더 나아가 지성이 존재하는 인간과 수인, 드워프가 등장했다.
엘프는 천사가 스스로 날개를 뜯고 지상에 강림한 것으로 유명하고, 마족의 기원은 방금 전에 밝혀진 참이다.
하지만 악마의 기원이 인간임이 밝혀지고 모건 왕의 질문을 들으면서 한 가지 커다란 의문이 피어올랐다.
악마의 기원이 인간이라면, 다른 종족의 기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악마와 마족은 어째서 인간만 변화할 수 있던 것이지?
수인과 드워프의 기원도 인간인 것인가? 그들은 각자만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여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혈'을 떠올리니 그건 또 아니다. 기원이 다르다면 아예 임신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문제는 여기서도 갈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종족에게 씨를 뿌리거나 받아들여 임신을 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종족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인간과 이종족 간의 혼혈은 존재해도 이종족과 이종족 간의 혼혈은 없다. 만약 있었다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터.
심지어 오크나 고블린에게 강간 당해 새끼를 품은 인간은 있어도 다른 종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족 전쟁 당시에도 인간의 겁박을 받던 수인이 엘프의 강한 씨앗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이외에도 이종족끼리 만남을 가졌으나 아이를 가진 적은 없다. 드물게나마 존재하는 기록이다.
'······어째서?'
하나 하나 곱씹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수인과 드워프는 불분명하다.
인간이 악마로 진화한 것처럼, 수인과 드워프도 정말로 인간이 기원인 것일까.
그렇다면 누가······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넓고, 바다는 이 세상보다 더 넓다네. 루미너스의 종자여.]
"··· ···"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걸 주었지. 식량, 무역, 보물, 힘, 마지막으로 별을 보는 능력과 진실까지. 하지만 바다의 분노를 느꼈을 때, 짐은 바다를 멀리 해야 된다고 느꼈다네. 짐의 왕국은 바다의 사랑을 받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저주가 되어 돌아왔고.]
모건 왕은 시를 읽는 듯이 과장된 손짓을 하며 데이모스와 원정대원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데이모스도 그 말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모건 왕은 여전히 왕좌에 당당히 앉아있다.
[우리 왕국은 너무 많은 진실을 알게 되어 신들의 초조함을 샀으며, 결국 모든 게리오스 왕국민들이 악마가 될 때까지 방치되었지. 그 과정 속에서 마족이 된 외지인들도 있었지만 신들은 가만히 기다렸다네. 대부분의 진실이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기 전까지 말이야.]
"······말도 안 됩니다. 어째서 루미너스 님께서 피조물들이 쓰러지는 걸 지켜봤다는 겁니까?"
데이모스는 거의 음해나 다름 없는 말에 조용히 받아쳤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에 하나 둘씩 의문을 품다 보니 신을 향한 신앙이 야금야금 갉아먹힌다.
동시에 격렬히 부정했다. 신들은 사랑하는 피조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참된 자에게는 힘을, 사악한 자에게는 천벌을 내리신다.
죄를 지어도 타당한 이유와 진심으로 참회한다면 죄를 벌하실지언정 죄인을 감싸주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 악마 전쟁 당시 게리오스 왕국을 방치했다니 쉬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모건 왕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더니 방금 전처럼 시를 읆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들은 우리 왕국이 무너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피조물들이 힘없이 쓰러지는데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는가? 어찌하여 바다가 대부분을 쓸어가고 나서야 세계수의 씨앗을 주었는가?]
"··· ···"
[그대들이 믿는 신들이 피조물을 사랑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너무 인간적이지.]
루미너스와 모라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말이 있다. 그들은 너무 인간적이며 그렇기에 부모 같이 따스하다고.
루미너스는 의젓한 성격이고 모라는 말괄량이처럼 장난기가 많았다. 피조물들은 이 또한 매력이라 여기며 굳건히 신뢰했다.
자연의 여신도 때로는 천재지변을 일으키나 신격을 보았을 때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믿고 있다.
[높이 차오른 바다는 짐의 왕궁은 물론 대부분의 진실을 덮어버렸지. 대신 남아있는 진실은 아직 곳곳에 존재할 터.]
"··· ···"
[짐의 후손이 그 길을 미리 뚫어놨을 테니 잘 찾아보게나. 아마 재미있을 걸세. 끌끌끌.]
모건 왕은 그리 말하며 자세를 삐딱하게 잡은 뒤 불길한 웃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반응이 기대가 된다는, 실로 악질적인 모습이었다.
원정대원들은 모건 왕의 말이 끝나자 저마다 데이모스를 쳐다봤다. 이제 모든 결정은 그에게 달려있다.
데이모스도 마음 같아서는 그 진실, 그것도 신탁이 내려준 진실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루미너스께서는."
[흠?]
"루미너스께서는······ 저희를 사랑하는 게 확실합니까?"
신자, 그것도 추기경의 자리에 오른 자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감히 신을 의심하다니, 당장 심문실로 끌려 가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건 왕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나아가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을수록 의심이 짙어졌다.
정말로 루미너스를 비롯한 신들이 피조물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단지 이용하는 것밖에 되지는 않을까.
그런 거라면 자신들은 대체 누구를 숭배하고, 또 누구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모건 왕도 그런 데이모스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나? 때로는 안아주면서 때로는 회초리로 때릴 뿐. 피조물을 향한 신의 사랑은 틀림없는 진실이니라.]
"······다행이군요."
[그대들이 찾은 진실을 세상에 밝히든, 아니면 묻어버리든 짐은 상관하지 않으마. 어차피 현세에는 관심도 없으니까 말이야. 아, 대신 하나 부탁해도 되겠나?]
부탁이라는 말에 데이모스가 고개를 들어 모건 왕을 쳐다봤다. 모건 왕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흥미가 돋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 말했던 짐의 후손.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을 이곳에 데려왔으면 좋겠네.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워낙 바쁜 분이시라."
[짐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다. 300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켰는데 오래 걸려봤자 100년밖에 더 하겠나? 후손이 죽기 전에 만나면 돼.]
데이모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거라면 상관없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지만, 이동 자체는 쉬우니 문제가 없다.
[또 한 가지. 후손이 썼다던 그 책이 궁금하구나.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세상를 뒤흔들었는지 궁금하거든.]
"그건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좋군. 그럼 이제 가보거라. 짐의 왕궁을 여기저기 들쑤셔도 상관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건 왕은 손을 휘적 휘적 내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이제 더이상 할 말은 없다는 뜻.
데이모스는 본인의 왕궁을 털어도 상관없다는 그의 말에 의구심을 가졌으나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만 차오르니 차라리 진실을 찾는 편이 훨씬 낫다.
그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탁에 따르자면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곳, 다시 말해 지하 쪽에 진실이 있을 터.
모건 왕이 언급했던 진실은 신탁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건 지하에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진실을 찾는다면 곧바로 바다에 던져야겠지. 데이모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단 도서관부터 찾아봅시다."
"예, 예. 알겠습니다."
데이모스와 원정대원들은 알현실 밖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모건 왕은 그들이 알현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윽고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원정대원이 모건 왕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왼쪽이다.
[이제 모습을 드러내도 되지 않겠느냐? 짐이 명령하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 거다.]
모건 왕은 짐짓 엄격한 목소리로 허공에다가 지시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스르륵
놀랍게도 그가 똑바로 쳐다보는 곳에서 누군가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모건 왕은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봤다.
사막에 사는 사람처럼 구릿빛 피부에다 반쯤 잘려나간 귀.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은발과 맹금류처럼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
마지막으로 노출이 심한 복장과 그 아래로 드러난 몸매로 하여금 뭇 남성의 눈길을 이끌기 충분했다.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의 명령에 따라 원정대를 따라 온 다크 엘프, 시리스.
그녀는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모건 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건 왕이 했던 이야기를 그녀도 함께 들었다.
[능력을 보아하니 확실히 모라의 종인 모양이군. 지금은 엘프가 아니라 다크 엘프라 부른다던데?]
"당신은······"
묻고 싶은 것이 많은지 복면 아래에 감춰진 그녀의 입이 열렸다가 도로 닫혔다.
모건 왕도 그런 시리스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어깨를 으쓱거렸다가 왕좌에 등을 기대었다.
[모라는 성격대로 귀여우면서도 자애로운 면모가 있지. 애초에······ 아, 이것도 못 말하는구만.]
또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신경질을 내는 모건 왕. 방금 전도 그렇고 신들 쪽에서 제한을 걸어놓은 듯했다.
아무렴 어떤가. 모건 왕은 예의 삐딱한 자세로 시리스를 지그시 쳐다봤다. 시리스도 말없이 그와 마주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때, 모건 왕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어째서 본인들의 피부만 구릿빛인지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나?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말이지.]
"······별로."
말은 그렇게 했으나 직접 들으니 궁금하다. 다크 엘프는 여타 엘프와 달리 구릿빛 피부를 갖고 있었으니.
이 피부 때문인지 다크 엘프는 대부분 모라를 숭배했으며, 그 결과로 종교 분쟁이 발발해 알븐하임으로부터 추방당했다.
여기까지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러나 다크 엘프 스스로도 어째서 이런 피부를 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인간들 중, 남방민도 다크 엘프와 비슷한 피부를 지녔으나 그들은 사막 지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피부가 까무잡잡할 수밖에.
반면 다크 엘프는 원래 알븐하임에서 태어나 생활하던 종족이다. 모건 왕의 말을 듣고 나니 궁금해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궁금하긴 궁금한 모양이군.]
"··· ···"
감정 표현이 거의 없음에도 단번에 시리스의 속마음을 알아챈 모건 왕. 시리스는 눈매를 좁히며 모건 왕을 주시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신들을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고, 더 나아가 수많은 진실들을 알 수 있는 것인가.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건 왕은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에 의문을 넣었을 뿐.
예로부터 철학자가 그러지 않았는가. 그 철학이 발달되어 과학을 비롯한 수많은 학문을 낳았다.
모건 왕도 다를 바 없다. 단지 그것이 신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게 문제다.
그 의문 하나 하나가 세상에 큰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그전에 엘프의 기원이 천사라는 건 알고 있겠지. 신의 미움을 받아 지상으로 추락했다는 것까지도.]
"······날개를 스스로 뜯고 내려왔다는 건 알고 있다. 죄를 지은 동지들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응? 그건 어떻게 알고 있지? 바다가 세상을 삼키면서 쓸려나간 진실 중 하나일 텐데.]
이건 예상치 못했는지 모건 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도리어 의문을 표했다. 놀람이라는 감정이 똑똑히 새겨져 있다.
시리스는 그 반응을 보자마자 자연스레 아이작을 떠올렸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으나 말하기로 정했다.
어차피 원정대가 제논 일대기를 갖고 오면 알게 될 테니까 큰 문제는 없을 터. 겸사겸사 모건 왕의 반응도 궁금하다.
이에 그녀는 모건 왕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의 사실을 꺼냈다. 그러자 모건 왕은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 후손에 대해서 점점 더 흥미가 가는군. 우연이라 하기에는 악마 숭배자의 존재도 알아차렸고 말이야. 정말로 예언자라도 되는 건가?]
"··· ···"
[뭐, 지금은 상관없겠지. 아무튼 네가 말한대로 엘프는 천사가 스스로 날개를 뜯고 지상에 강림한 존재. 하지만 여기서 몇몇 엘프가 알븐하임이 아닌 사막에 떨어졌지. 그 사막을 정처없이 헤매다가 겨우겨우 알븐하임에 도착했지만, 그 결과로 피부가 까맣게 변했다네.]
의외로 평범하디 평범한 기원이다. 시리스는 긴장하여 몸에 힘을 주었다가 탁 하고 풀었다.
그냥 사막에 떨어져서 피부가 까맣게 변한 거라니. 왠지 모르게 선조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렇듯 기원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여러 역사가 튀어나오는 법이지. 특히 언어가 가장 재미있어. 그때 당시 그 사람을 무슨 뜻으로 불렀는지, 또 어떤 식으로 우대했는지 대충 알 수 있지.]
"··· ···"
[그대도 짐의 왕궁을 탐험하면서 재미있는 역사를 찾아보게나. 어쩌면 그대가 섬기는 모라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스르륵
시리스는 더이상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기척조차 내지 않고 알현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쯤 원정대는 이곳 저곳 살펴보고 있을 터. 자신은 그런 그들보다 더 은밀한 곳을 찾을 예정이다.
이윽고 시리스마저 알현실 밖으로 나가자 모건 왕 홀로 알현실에 남게 됐다. 그는 왕좌에 앉아있다가 대충 손짓했다.
그그그그극 쿠웅!
그가 손짓 하자마자 알현실의 두터운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모건 왕은 알현실의 문이 닫히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뒤이어 단상으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오더니 아무도 없는 앞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누추한 곳에 귀하신 손님이 오셨군.]
아까 전과 달리 다소 빈정거리는 말투에다가 전혀 환대하지 않는 목소리. 표정마저도 호의적이지가 않다.
제 3자가 보면 시리스조차 없는 허공을 향해, 고립된 알현실에서 홀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 본다면 이질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그건 바로 뻥 뚫린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강렬한 '빛'.
그 빛은 유독 한 자리를 집중적으로 비추는 중이다. 마치 누군가 '강림'하려는 것 같이.
[내 후손이 악마 숭배자를 친히 조졌을 때는 좋았겠지.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어두운 곳에 있는 법이야. 저 넓은 바다의 심해처럼 말이지.]
파앗!
일순간 빛이 몰린 지점으로부터 강력한 섬광이 번쩍거렸다. 정면으로 마주했다면 눈이 머는 걸 넘어 타는 수준이었을 것이리라.
허나 모건 왕은 혼령이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듯한 빛무리를 보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불만인가? 하기야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겠지. 짐은 바다를 누비면서 그대들이 숨기려던 진실을 두 눈으로 보았고, 후손은 그 진실을 다른 사람이 찾도록 만들었으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빛무리 앞에서 말만 하는 모건 왕만 있을 뿐.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여전히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이면 신답게 우리가 알아서 찾도록 놔뒀어야지. 본인들의 과거가 그렇게나 부끄러웠나? 어디 한 번 말을 해보게나. 빛의 신······ 아니.]
마지막으로 그의 입에서 꺼내진 건.
[전쟁의 신이여.]
루미너스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