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9화 〉 왕과 노예(2)
* * *
모건 왕의 선제 공격을 시작으로 두 사람 간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됐다.
서로 간의 관계는 가족 이상으로 두터웠으나, 그릇된 선택으로 모든 게 틀어진 왕과 노예의 관계.
모건 왕과 노예가 서로에게 선언했듯이, 그들은 더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단지 반란을 선언한 노예와 그에 대항하는 주인만 있을 뿐.
[흐읍!]
쾅!
모건 왕이 발을 크게 굴러 지축을 뒤흔들었다. 소리는 물론이고 왕궁의 지축이 약간이나마 흔들렸다.
원령은 그때의 상황을 재현할 뿐이지,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아주 약하지만 지진이 난 것처럼 지축이 흔들렸다.
도대체 생전에 얼마나 강했으면, 또한 남아있는 원념이 얼마나 강하면 현실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일까.
게다가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무수한 사람들의 절규. 그 절규도 악령 못지 않게 정신을 뒤흔들었다.
필시 이곳에 무언가 남아있다. 데이모스는 원령들이 보여주는 상황을 보면서 직감했다.
펄럭!
모건 왕이 지축을 흔들자 노예는 어느새 돋아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박쥐처럼 피막이 존재하는 거대한 날개. 뿔처럼 악마의 또다른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부위.
공중으로 날아오른 노예는 한동안 날개를 펄럭이며 모건 왕을 내려다 보았다. 뒤이어 오연한 목소리로 말한다.
[난 여태까지 네 놈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는 내려다 볼 수 있군. 너를 포함해 모든 것들이 한없이 작아보여.]
노예가 주인, 그것도 왕에게 하는 말로서 아주 적절한 도발이다. 왕의 입장에서는 저만한 치욕도 없을 터.
하지만 모건 왕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으로 양손 도끼를 굳게 쥔 채, 허리를 서서히 비틀었다.
[높이 날아오를수록 그 추락은 뼈아프지.]
파앙!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모건 왕이 도끼를 강하게 휘두른다. 방금 전 비틀었던 허릿심까지 이용하는 모습.
비록 원령이었기에 어떤 현상이 펼쳐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던 노예가 다급히 피하는 걸 보아 검기 비슷한 기운을 발사한 모양이다.
그리고 노예가 피한 곳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쾌청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다. 저게 그 흔적인 모양이다.
콰앙!
노예는 날개짓을 멈추고 그대로 도끼를 내려쳤다. 이에 모건 왕도 장대로 간신히 막아냈다.
거대한 도끼날과 노예의 막강한 근력에도 장대가 부서지지 않는 걸 보아 마나를 주입시킨 모양.
기록상으로도 모건 왕은 전선을 뛰어나니던 정복 군주였으니 마나를 사용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어째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난 단지 네 놈을 세계의 왕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서쪽의 인간들만이 아니라 수인, 드워프, 그리고 엘프들을 포함해서!]
노예가 크게 외치면서 모건 왕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모건 왕은 악마가 되면서 더욱 강해진 노예를 막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냐! 세계를 파괴하는 게 정녕 지배라 믿는 것이냐!]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밀리는 건 아니었다. 아까 들었듯이 노예의 무예 스승은 모건 왕.
노예의 전투 방식은 모두 꿰뚫고 있었으며, 악마가 되었다는 게 변수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몰라도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다.
만약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했다면 모건 왕은 속수무책으로 밀렸을 터.
모건 왕은 방어적으로 나서면서도 노예를 천천히 갉아막었고, 노예는 새롭게 얻은 힘으로 모건 왕을 압박했다.
[당신은 나에게 모든 걸 줬어! 나에게 없던 힘을! 나에게 없던 명예를! 나에게 없던 꿈을! 나에게 없던 가족을!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스스로 꿈을 포기한 것이냐! 어째서!]
허나 여태까지 쌓여있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인지, 노예가 압박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과정에서 몸에 상처가 생겨도 재생력으로 금방 회복헀고, 체력 또한 악마가 되면서 대폭 증가한 상황.
반면 모건 왕은 아무리 강해도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백 명의 영혼을 갈아마셨다 해도 태생적인 한계에서는 벗어나기 힘들다.
쿠웅
긴 싸움 끝에 결국 모건 왕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도끼로 땅을 지지하여 쓰러지는 건 면했지만 몸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다만 노예도 멀쩡한 건 아니다. 방어를 등한시하고 공격만 하다보니 상처로 따지자면 모건 왕보다 훨씬 많았다.
악마가 되면서 얻은 재생력으로 커버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그 재생력은 전부 마나와 체력으로 소진되었다.
때문에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로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허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분노로 채워져 있다.
[······부탁입니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까와 달리 매우 정중한 말투로 모건 왕에게 말하는 노예.
[주술은 이미 시행되었고, 게리오스 왕국민은 엘프보다 더 강한 존재로 거듭날 겁니다. 땅과 바다, 더 나아가 세상 전체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 ···]
[당신이 원하는 결과이잖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수백 명을 영혼을 갈아마시면서 이 붉은 머리와 황금의 눈동자를 얻지 않았을 테죠.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러시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화를 유추하건데 붉은 머리와 황금의 눈동자는 희생자가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특징인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백 명의 영혼을 갈아마셨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3000년 전의 시대 양상은 지금보다 훨씬 잔혹하고, 또 비인륜적이었을 것이다.
노예 입장에서는 사람을 희생시켜 괴물이 되는 것과 악마가 되는 건 서로 비슷해 보였을 터.
[······그곳에 마음은 있느냐?]
[··· ···]
[왕이란 응당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 왕국을 지배할 수 있는 법. 하지만 마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마음이 없는 그 나라는 결국 멸망하게 돼 있다.]
하지만 모건 왕은 노예와 달리 '최후의 선'을 넘지 않았다.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영혼을 몸에 담아도 그는 '마음'을 중요시 여겼다.
쿠웅!
그리 말한 모건 왕이 굳게 쥔 무기를 강하게 내려친다. 현실에서 흙먼지가 휘날릴 정도로 강한 흔들림.
뒤이어 그는 무릎에 손을 얹으며 도끼를 지지대 삼아 서서히 일어났다. 만신창이인 몸이어도 태산이 우뚝 솟는 듯한 위압감을 풍긴다.
마침내 두 손으로 도끼를 쥔 모건 왕은, 앞의 노예를 향해 당당히 말했다.
[사람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사람이다. 얼굴과 몸이 변해도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건 사람이다. 그러니 네 놈도 아직까지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 ···]
[하지만 바깥의 그 놈들은?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더냐? 그놈들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지. 악으로 가득 찬 마귀······ '악마'라 부르면 되겠구나.]
원정대는 모건 왕의 말을 듣고나서 깨달았다. '악마'라는 단어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그러면 저는 뭡니까? 악마의 모습을 했으나 당신 말대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마족. 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엄연히 마음을 지닌 '종족'에 포함돼 있지. 물론 그것마저 얼마 가지 않겠지만 말이다.]
'마족'의 어원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원령들의 대화를 통해 모든 전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신과 같은 자리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스윽
모건 왕이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는지, 노예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도끼를 쥐었다.
[앞으로 저 혼자 세상을 내려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왕이시여.]
우극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인지 무기가 으스러질 정도로 꽉 쥐는 노예. 근육으로 두터운 두 팔이 조금씩 약동하며 힘을 표현했다.
모건 왕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도끼를 두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네가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난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 ···]
[그러니 오거라. 너의 가장 큰 벽을 넘어보거라.]
그 말에 노예의 눈이 약간이지만 흔들리고, 동시에 무기를 쥔 손에 힘이 약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노예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모건 왕에게 달려들었다.
발 한 번 한 번 내딛을 때마다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은 울림. 모건 왕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노예를 가만히 지켜봤다.
[흐아아아아아!]
노예가 자신의 도끼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온 세상을 갈라버릴 정도로 거센 기합을 내질렀다.
그 기합은 자신의 모든 힘을 싣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었지만,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은 느낌 또한 들었다.
쿵!
이에 모건 왕도 한 쪽 다리를 앞으로 내딛으며 도끼를 한 바퀴 붕 휘둘렀다. 그 반동을 이용해 도끼를 고개 뒤로 잡아당긴다.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호흡마저 일순간 멈춘 최후의 일격.
[하아!!]
마침내 왕의 무기가 내려쳐지고.
쾅!
노예도 무기를 내려침으로써, 서로의 무기가 서로 충돌했다.
퍼엉!
"으악!"
"크윽······!"
"모두 조심하시오!"
왕과 노예의 무기가 서로 부딪히자마자 커다란 충격파가 발생했다. 마치 돌풍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 위력이다.
성기사들은 그나마 버틸만 했으나 데이모스 추기경을 비롯한 고고학자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생전에 얼마나 강했으면 원령으로도 이런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걸까.
보통 왕궁은 천재지변에도 잘 무너지지 않게 튼튼히 짓는 편이지만, 유독 알현실이 엉망진창이었던 이유가 있다.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이유도 저 충돌 때문이겠지. 바닥에 넘어진 데이모스는 성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났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 ···]
[······쿨럭.]
놀랍게도, 노예의 몸에 도끼날을 반 이상 박아넣은 모건 왕의 모습이었다. 노예의 양날 도끼는 날부분이 완전히 소실돼 있었다.
분명 모건 왕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어찌 하여 노예로부터 승리할 수 있던 것일까. 그것도 악마화가 진행되어 신체 스펙이 상승한 노예를.
[망설였구나.]
[··· ···]
그리고 그 의문을 모건 왕이 바로 해소시켜줬다. 그의 목소리는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착잡함과 슬픔이 배여있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기에 반란을 저지를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상의 관계였기에 넘지 못했다.
모건 왕을 향한 노예의 마음은 진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다른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도 정작 본인은 악마가 되지 못했다. 모건 왕이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걸 두 눈으로 보겠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촤악!
모건 왕은 상체에 박아넣었던 도끼를 그대로 사선으로 베어내렸다. 당연히 노예의 상체가 사선으로 갈려졌으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지금 자세히 바라보니, 노예가 쓰러진 자리에는 피가 굳어진 흔적이 존재했다. 분명 노예는 저 자리에서 사망했을 터.
마족답게 비극적인 최후라고 할 수 있는, 어쩌면 마족의 시작을 알리는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허억······ 허억······ 커윽······]
상체가 반으로 갈라졌음에도 노예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숨을 거칠게 헐떡거리고 초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마족이어도 저 정도 치명상이면 사실상 결과는 정해졌다고 봐야 된다.
모건 왕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노예를 내려다보다가 서서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에 노예도 모건 왕 쪽으로 눈을 돌렸다.
[네 마음은 짐······ 아니, 나도 알고 있다. 그 욕심도 사람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
[쿨럭······ 저는······ 이제]
[걱정 말거라. 네 죗값은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가도록 하마. 나의 손자이자 너의 아들은 죄인의 자식이 아니라, 노예의 자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왜······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당신을 배신하고, 더 나아가 왕국을 넘어 세상을 위기에 빠뜨렸는데.
목숨이 경각에 다다라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지만 모건 왕은 노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노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도 내 자식이기 때문이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 ···]
[왕으로서 이름과 명예는 더럽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죄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 아버······]
차마 끝까지 '아버지'라는 단어를 내뱉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 노예. 모건 왕은 뜬 눈으로 죽은 노예의 눈을 조용히 감겨줬다.
[어리석은 아들아. 네 죄는 내가 끝까지 짊어가도록 하마.]
모건 왕은 그리 말하면서 느닷없이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노예와의 혈투로 넝마가 된 옷이라 벗는 건 쉬웠다.
그리고 나서는 노예에게 옷을 입혀줬다. 노예는 짧은 바지를 제외하고 그 어떤 옷을 입지 않았기에 갈아입히는 건 쉬웠다.
마침내 노예에게 왕의 의복을 입고, 반대로 노예의 의복을 입은 모건 왕. 혹시 몰라 상체가 반으로 갈라진 흔적에 따라 옷을 베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예의 머리카락을 자신처럼 짧게 깎아버려 쉽게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거대한 '혼란' 속에서는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왕은 모든 오물을 뒤집어 쓸 것이고······]
그리 중얼거린 모건 왕, 아니 모건은 양날 도끼를 굳게 쥐었다.
방금 전 여파로 인해 한 쪽 날이 완전히 부러져 평범한 도끼의 형태처럼 변한 상태다. 마치 몰락을 앞둔 게리오스 왕국처럼.
[왕국은 왕의 그릇된 선택으로 멸망하리라.]
저벅 저벅 저벅
시체를 뒤로 남겨둔 채 알현실 밖으로 향하는 모건. 그가 알현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끊겼던 비명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죄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죄를 저지른 '왕'은 '노예'가 제 손으로 죽였다. 더이상 '죄인'은 없다.
왕국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해 알현실 밖으로 나서는 노예 한 명만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아서 마이샬!]
쿠웅!
모건은 노예의 이름을 꺼내면서 발을 굴렀다. 발을 구르자 바깥의 비명 소리가 일시적으로 멎었다.
원령 상태였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방금 전 그 행동으로 악마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비명이 멎은 걸 보면 신빙성이 높다.
그사이, 모건은 도끼를 두 손으로 쥐며 사자와 같은 포효성을 내질렀다.
[왕의 노예이니라!]
스르륵
그 말과 동시에 원령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상황 재현이 드디어 끝을 맺은 것이다.
원정대는 상황이 모두 종료되자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런 것 같군요."
데이모스는 줄줄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입을 열었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이 굉장하다.
하지만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얼마나 강한 원념이면 이런 상황 재현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일까.
마음 같아서는 이곳을 좀 더 조사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정신력이 바닥날 게 분명하다.
우선은 휴식이다. 바깥으로 나가서 휴식부터 취하는 게 나을 듯하다.
[어떤가? 짐의 최후가.]
"그거야 당연히······"
잠깐. 이거 누구 목소리야. 데이모스는 자동적으로 대답하려다가 말고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었던 목소리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이에 데이모스뿐만 아니라 원정대는 알현실의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옮겨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후손에게 보여준 뒤로는 그대들이 처음이로군.]
방금까지만 해도 알현실에서 포효하던 왕, 모건이 왕좌에 당당히 앉아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