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6화 〉 회색 사막(3)
* * *
이 세상의 신들은 유독 거짓말을 못 한다.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 하는 건지 몰라도 여태까지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그대신 지금처럼 돌려서 말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거짓말을 못하니 아예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피조물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관대하게 넘어간다.
어차피 자신 앞에서는 거짓말을 해봤자 의미가 없는 수준이고, 새하얀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듯이 처벌하기에도 애매하니까.
대신 살인과 같은 중죄는 엄벌에 처한다. 신전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누군가 저지하기도 전에 천벌이 떨어진다.
그러니 세이비어에 어떤 신탁을 내렸는지 알려줄 수 없다는 것도 이때문일 터. 약간 실망스럽긴 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제가 알아서는 안 되는 신탁인 건가요?'
[그렇단다. 미래의 축이 흔들릴 수도 있는, 적어도 우리 입장에는 중요한 문제라······]
'우리요?'
신들만 콕 집는 듯한 발언에 말을 잘라버렸다. 신 앞에서 정말 무례한 태도였으나 나도 모르게 의구심을 품어버린 것이다.
루미너스도 본인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너, 너의 위상을 다시 되새겼으면 좋겠구나. 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세상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수준인데 신탁까지 건드리면 우리는 물론이고 너에게까지 안 좋은 시선이 갈 수도 있단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건 그냥 찔러본 거에 가까워서 별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엄청난 결례를 넘어 말 그대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천벌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행위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편한 어른에게 묻는 거에 가까웠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큰일날 뻔한 상황인 것이다.
'······이건 제가 실수할 뻔했네요. 죄송해요. 루미너스 님이 편해서 저도 모르게 실례를······'
[걱정 말거라, 아이야.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귀여운 거위가 손가락을 문다고 해서 목을 비틀 정도로 속이 좁진 않단다.]
늘 느끼는 거지만 루미너스를 포함한 신들은 하나 같이 기똥찬 비유를 해주셨다. 저 말 하나로 내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귀여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걸 보면 나를 어여삐 여기는 건 확실하다.
허나 그와 동시에 초월자와 필멸자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깨닫게 만들었다. 내가 아무리 꽥꽥 소리 질러도 거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이니.
'그래도 착하셔서 다행이야.'
전생의 신화를 본다면 소위 인성이 박살난 신들이 여러 존재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가 그 절정에 다다른다.
난봉꾼에다가 권위적인 제우스는 두말 할 필요도 없고, 자애롭기로 소문난 신들도 인간이 권위에 도전하는 순간 곧바로 신벌을 내린다.
실제로 성격이 '그나마' 좋은 여신, 아테나마저 아라크네에게 무엄하다고 신벌을 내렸을 정도.
따지고 보면 한 명 한 명이 지극히 인간적인 신들이었으나 그렇기에 감정적이다. 개개인마다 성격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신들.
[······아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우리는 착하지 않단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루미너스가 약간 무안해진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머릿속에서 울려펴지는 그의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있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느낌이다.
내 속마음을 읽고 양심이라도 찔린 건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클라크가 신을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악하다는 게 아니라 단지 인간적이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도 저 같은 필멸자를 사랑하는 건 진심이지 않나요?'
[너희를 사랑하는 건 진실이란다. 이건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지.]
거짓말을 못하는 신들이니 저 말은 100% 진실일 터. 나는 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을 꺼냈다.
'그렇다면 필멸자들이 루미너스 님을 비롯해 신의 도움이 필요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다소 무례한 질문이긴 해도, 내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전생의 신화에서도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들은 많았다. 하나 같이 신벌을 맞긴 했다만 여기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멀리 가지 않아도 악마 숭배자가 있지 않은가. 다만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신들은 악마 숭배자를 직접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악마 전쟁처럼 세계 전체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드러낼 일은 없을 터.
하지만 내가 말한 건 신의 권위가 아니라 '도움'이다. 전생의 지구처럼 필멸자들 스스로 문명을 발전해 나가는 시스템.
종교는 어디까지나 결집하기 위한 매체로 이용되고, 신의 존재마저 불확실한 세상.
만약 이 세상의 필멸자들이 그런 세상을 원한다면 어떻게 나설지 궁금해졌다.
[··· ···]
내 질문에 답하기 다소 난감했던 건지 루미너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이건 비단 루미너스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악마 전쟁 이후, 이 세상은 신들의 비호 아래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허나 동시에 발전을 늦추기도 했다.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신들에게 기도하면 끝이지만, 반대로 그 위기를 극복할 능력을 스스로 기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궁금했다. 과학이 발전되면 발전될수록 종교는 자연스레 옅어지기 마련.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묵혀있던 사고 방식을 부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세상은 '신'이란 거대한 장막이 펼쳐져 있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필멸자들이 이 장막을 부숴달라고 요청한다면, 루미너스를 비롯한 신들이 요구를 들어줄까?
[······아이야.]
'예. 루미너스 님.'
[필멸자들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사라져야 된다고 생각하느냐?]
루미너스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적의는 없었지만 불안과 슬픔에 찬 듯한 음성이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구는 이 세상과 달리 신의 존재가 불분명하고, 인간들만이 지구를 다루었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사건사고가 터지고, 수천만 명이 사망하는 대전쟁까지 펼쳐졌으나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허나 그 발전도 잠깐, 지구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들로 인해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다. 세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이 죽어가는 중이다.
'루미너스 님.'
[말하렴.]
'루미너스 님을 포함한 신들은 부모 같은 존재예요. 아이를 위해서 사랑을 주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따끔하게 훈계하는, 그런 부모요. 하지만 부모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루미너스와 신들은 부모 같은 면모가 강하다. 모라는 핍박받았던 마족과 다크 엘프를 어둠 속에 숨겨주었으며, 루미너스는 자신을 믿는 인간들에게 강력한 힘을 선사했다.
하지만 너무 강력해진 나머지 세이비어가 가히 광기 어린 전쟁을 일으켰고, 전세계에 악명을 떨쳤다.
그 상황을 보다 못한 루미너스가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또다시 대전쟁의 겁화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모도 실수를 하는 법이에요. 본인이 좋다고 믿었던 것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훈계라는 명목으로 강도 높은 처벌까지 내릴 수도 있죠. 이 행동들이 결코 옳다고 할 수는 없죠.'
부모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나오는 행동들이다.
실제로 본인들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고 가혹 행위를 저지르는 부모가 널려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체리의 아버지, 레티시 백작도 하마터면 딸을 자살로 몰고 갈 뻔했다. 그저 이 길이 옳다고 믿는 이유로.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부모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고, 아이도 뚜렷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비난할지언정, 그들의 마음만큼은 비난해서는 안 돼요.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를 위해 애를 쓰는 부모의 마음. 과연 이것이 비난 받아야 할 이유일까요? 절대 아니라고 봐요. 단지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방식의 차이라······]
'부모 아래에서 아이는 언제나 아이인 법이에요. 그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죠. 그리고 뒤늦게 깨달을 겁니다. 부모님이 어째서 자신을 감싸고 보호했는지. 자신의 선택에 얼마나 큰 책임을 지는지.'
지구의 인간은 제한이 없는 발전을 이룩한 나머지 종족 단위로 자살이 가능해졌으며, 더 나아가 자신들의 보금자리마저 파괴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만약 여기서 지구의 신들이 중간에 간섭했다면, 발전을 늦출지언정 스스로의 보금자리마저 파괴시키지는 않았을 터.
여기서 무엇이 옳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방식의 차이이며, 각기 다른 부작용을 보일 뿐이다.
'그 아이는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겠지만, 스스로 발전할 수도 있죠. 제가 살던 세상의 인간이 그런 식으로 발전했고, 지금도 진행 중일 거예요.'
어쩌면 우주 항해술이 발달되어 다른 행성으로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이루어지겠지.
물론 필멸자가 초월자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에 신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린애로 보일 것이다.
'새는 새장 속이 가장 안전하지만, 새는 결코 새장 안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에요. 선택할 권리를 줘도,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많은 생각이 드는 말이로구나. 우리가 보호하는 세상은 그 무엇보다 안전하지만, 날개짓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니.]
'그렇죠. 다만 어디까지나 조언으로 취급해주세요. 신이 간섭하지 않는 세상에서 왔다지만 지금의 이 세상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거든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나는 혁명가나 사상가처럼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과 거리가 멀다.
그저 책을 쓰고 호의호식하면서 즐길 건 즐기는 소시민에 가깝다. 신을 비판하는 책을 편찬할 것도 아니니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 과학이 점차 발전된다면 피조물은 자연스레 신에게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고맙구나. 사실 조금 걱정했단다. 너는 다른 차원, 그것도 우리와 같은 초월자의 간섭이 전혀 없던 곳에서 온 영혼이지. 인생은 마음에 들어도 이 세상에 불만을 가졌을까봐 우려가 했거든.]
'음······ 그러고 보니 그런 사상은 지닌 사람은 없었나요? 루미너스 님을 포함한 신들이야말로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라거나······ 네. 아무튼 이런 사상을 지닌 사람이요.'
전생의 무신론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그곳은 신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 여기는 대놓고 존재하니까.
아까 내가 했던 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대신 그 사상을 직접적으로 퍼뜨리는 인물이 있나 싶어서 질문한 것이다.
그리고 루미너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나로 하여금 입을 다물기 충분했다.
[악마 숭배자들 쪽에서 유독 눈에 띄는 편이란다.]
'··· ···'
[구, 굳이 그들이 아니더라도 은근히 많아. 내가 홧김에 천벌을 내려서 그렇지······]
루미너스가 내 감정을 읽었는지 황급히 부가 설명을 꺼냈다.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어떤 미치광이가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대사건.
그 사건 하나만큼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과 매우 유사한 면모를 지녔다. 정말로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었지.
뭐, 그 후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해도 천벌을 맞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대신 교단 쪽에서 친히 데려다가 '심문'을 하겠지만 말이다.
'······루미너스 님.'
[마, 말하렴.]
'저 예뻐해주실 거죠?'
[무, 물론이지. 우리가 너를 내칠 일은 영원히 없을 거란다. 이건 진심이야.]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의심은 거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착하신 분인데 마음의 상처를 주긴 싫다.
나는 그와 몇 번 대화를 나누다가 곧바로 모라의 신전으로 향했다.
머스크의 출판사로 가기 전, 마지막에 적어야 할 노래 가사를 기억해내기 위함이다.
[얘. 그 노래 말고 똑같은 이름의 다른 노래를 넣는 게 어떠니?]
'영화에서 나온 노래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네 기억을 뒤지니 그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미래를 보고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개인적인 취향이에요?'
[당연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지!]
'··· ···'
모라 이 여신은 거짓말을 알기나 할까. 나는 그녀와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진이 빠지는 느낌에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두 노래를 함께 넣는 걸로 끝냈다. 솔직히 진과 릴리의 관계를 대입시켰을 때는 러브홀릭스가 더 낫긴 하다.
'번역하는 것도 힘든데······'
[힘내! 열심히 응원할게!]
'··· ···'
루미너스가 참 고생할 것 같은 성격이긴 하다.
[뭐라고?]
'안녕히 계세요!'
일단 번역이나 하러 가야지.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차, 찾았다! 유적이다! 유적이 여기에 있다!"
"어디? 어디? 지, 진짜다! 빌어처먹을 신기루가 아니라고!"
"기지를 세워라! 잠시 여기서 휴식하도록 한다!"
회색 사막 원정대가 '서쪽 끝'이라 부르는 게리오스 왕국 유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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