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0화 〉 빙의(3)
* * *
클라크가 나에게 빙의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이건 레오나의 주술보다는 아리엘의 새싹 덕분이다.
주술은 신에게 신성력을 받아 그걸 토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믿음'을 통해 능력이 발현된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술이 딱 그런 식이다.
그래서 도박성이 짙었으며 리스크도 적고 리턴도 적다. 말 그대로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하지만 여기에 공물, 그것도 신의 기운과 가까운 공물이 있다면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무슨 원리인지는 주술사조차 모른다. 그냥 기도하니까 되더라~ 라는 식으로 넘어간다고.
아무튼 클라크의 영혼을 빙의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작업이 필요했다.
우선 레오나가 아리엘 머리 위에 돋아난 새싹을 뽑는 것부터 시작했다. 혹시 몰라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뽑았다.
새싹을 너무 많이 뽑아서 그런지 아리엘이 정수리를 긁적거리긴 했다만 별다른 문제는 없다.
이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클라크의 영혼을 밖으로 빼내는 것. 그리고 나에게 빙의시키는 것이다.
이게 가장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주술은 언제나 예상 외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법.
"자. 이거 입 안에 넣으세요."
[알았다. 흐어어어······]
레오나가 건네준 새싹을 입 안에 넣자마자 클라크가 바람 아니, 영혼이 빠지는 소리를 냈다.
침대에 누워있는 상황이라 별다른 변화는 느끼지 못 했지만, 눈구멍 안쪽에서 빛나던 황금빛이 암전된 걸 보아 의식을 잃은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몰라 살짝 당황할 때, 곁에서 지켜보던 아리엘이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앗! 할아버지 둥둥 뜨고 있다!"
"어디? 어디?"
"여기에!"
아리엘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게 웬 걸. 아까 전에 클라크의 입 안에 들어갔던 새싹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
그걸 보며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쯤, 레오나는 그 새싹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시적이지만 그 새싹이 클라크 씨를 지탱하는 매개체가 될 거예요. 다시 몸 안에 들어가면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아, 참고로 지금 말씀하셔도 저희는 듣지 못해요."
"괜찮은 거 맞지?"
"내가 전문적인 주술사가 아니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공물이 워낙 좋으니까 괜찮을 거야."
확실히 아이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지.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사이 둥둥 떠다니던 새싹은 다시 클라크의 원래 몸으로 들어갔다. 벌어진 입 안으로 새싹이 들어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팟!
영혼이 완전히 되돌아 왔는지 전원이 꺼진 것처럼 어두웠던 눈구멍에 황금빛이 다시 반짝였다.
보아하니 아무런 문제 없이 영혼이 뼈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괜찮으시죠?"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해도 괜찮다.]
클라크는 그리 말하며 입 안에서 새싹을 손으로 뺀 후, 레오나에게 전달했다. 레오나는 그 새싹을 다시 나에게 전달했다.
나는 건네받은 새싹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매개체가 되는 새싹이라 해도 겉보기에는 평범하디 평범한 새싹이다.
이게 정말로 클라크를 내 몸에 빙의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일까. 주술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 약간 의심스럽다.
"이건 클라크 씨의 장례를 치러도 언제든지 강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야. 발할라에 계셔도 네가 언제든지 부를 수 있다는 뜻이지. 대신 잃어버리면 절대 안 돼. 알겠지?"
"이거 말고 예비분은 더 못 만들어?"
"안 돼. 그러면 영혼이 반으로 쪼개져서 클라크 씨가 이성을 유지할 수 없어. 보통 제어할 수 없는 악령을 봉인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지. 반대로 그 매개체를 모은다면 악령이 봉인에서 풀려나는 식이고."
"아하. 뭔지 알 것 같아."
소설이나 만화에서도 자주 보던 클리셰 중 하나다. 흔히 엑조디아라는 말로 표현하는 편이다.
아무튼 간에 이 새싹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 나는 손 위의 새싹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걸 어떻게 해야 잃어버리지 않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여러모로 맹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런데 이건 새싹이잖아. 시간이 지나서 말라버리면 어떻게 해?"
"보통 영혼이 깃든 공물은 시간이 흘러도 변질되지 않아. 클라크 씨가 먼저 연결을 끊어버린다면 모를까, 웬만해서는 멀쩡하겠지. 우리 수인은 이걸 이용해 대상의 생명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대상이 크게 다친다면 영혼이 연결된 공물 또한 손상을 입고, 죽어버리면 아예 가루가 되는 식으로 말이야. 물론 회복한다면 다시 재생돼."
"오······"
"그리고 본체가 있는 방향으로 살살 날아간다는 특징이 있지. 이걸로 대상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실로 판타지적인 내용이면서도 여러 매체에서 본 설정이다. 대상과 영혼이 이어진 물건과, 상태에 따른 변화. 마지막으로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까지.
제논 일대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건데 정말 아쉽다. 특히 이건 진의 각성 및 죽음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던 설정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레오나와 좀 더 빨리 친해지는 건데 정말 아쉽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지.
"나중에 나도 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대신 아까 말했듯이 하나밖에 못 만들어."
"찢어서 나눌 수는 없어?"
"그러면 손상된 부분에서부터 다시 재생될 거야. 찢겨나간 부분은 그냥 평범한 새싹이 될 테고. 엄연히 '하나'로 취급되거든."
그건 좀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많이 만들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조만간 사람들을 모아서 상의를 해야 될 것 같다. 저택에서 보관할지, 아니면 특정 사람이 전담해서 보관하고 있을지 말이다.
이렇듯 진기명기한 주술 수업을 뒤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클라크와 새싹 사이의 연결도 확인됐으니 남은 건 '빙의'다.
"간단해. 클라크 씨와 연결된 새싹을 입에 넣으면 돼."
"······입에 넣으라고?"
"응. 물론 그 전에 클라크 씨의 영혼이 몸에서 떨어져야겠지. 잠깐 실례할게요."
[흐어어어······]
레오나는 내 손에 있던 새싹을 다시 클라크의 입 안에 넣은 후, 가볍게 머리를 툭 쳤다.
동시에 클라크가 특유의 영혼 빠지는 소리를 내고, 눈구멍에서 새싹이 쏙 빠져나왔다.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걸 보면 제대로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온 모양이다. 아리엘의 시선이 새싹 쪽으로 향한 걸 보면 확실하다.
이어서 레오나는 허공을 떠다니는 새싹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꺼냈다.
"저 새싹을 가져서 입에 넣으면 돼. 삼켜도 걱정하지 마. 소화도 안 될 뿐더러 목을 타고 다시 나올 거거든."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네."
"똥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낫잖아?"
부르르
상상만 해도 끔찍했던 것일까. 공중을 떠다니던 새싹이 부르르 떨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 말을 꺼낸 레오나는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실실 웃고 있었지만.
이윽고 공중을 떠다니던 새싹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나는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새싹을 바라봤다.
정말 이걸 입에 넣으면 되는 거냐는 표정으로 레오나를 바라보니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문적인 주술사는 아니더라도 레오나는 따지고 보면 왕족이다. 기본적인 이론 자체는 빠삭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무엇보다 공물이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세계수의 새싹이다.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암."
나는 입을 벌리고 새싹을 그대로 넣었다. 입 안에서 새싹이 떠다니는 느낌이 들다니 이내 혀 위로 안착했다.
여기까지 별다른 차이점은 느끼지 못 했지만······
"오! 정말 된 것 같은데? 어? 뭐야?"
내 입이 멋대로 열리지를 않나. 갑자기 내 두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나. 고개를 절로 돌아가지를 않나.
"이, 이거, 이, 이거 된, 아니 뭐······ 내가 먼저······"
버퍼링이라도 걸린 건지 말이 나오다 말다가 계속 반복했다. 정말로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너무 당혹스러워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도 내 몸은 자기 스스로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레오나는 내 반응을 보고 킥킥 웃더니 나에게 말했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제대로 된 모양이네. 세대 간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서 그런지 너무 자연스러운 걸?"
"된된 게거냐야? 아씨."
"우와. 아빠랑 할아버지가 겹쳐 보인다."
말이 반복되서 나온 탓에 내가 툴툴거리고 있을 때 아리엘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아마 그녀의 시선에는 나와 클라크의 영혼이 서로 겹쳐보이는 듯하다.
레오나의 말도 그렇고, 아리엘의 반응도 그렇고 내 몸에 클라크가 빙의된 건 확실해졌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서로 소통하고 싶으면 속마음으로 말하면 돼."
[이렇게 말이냐?]
레오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머릿속에서 클라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텔레파시처럼 뇌속에서 웅웅 울리는 느낌이다. 썩 기괴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이다.
그 소리를 듣고 흠칫 놀란 것도 잠시,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조용히 되내었다.
'······들려요?'
[오! 들리는구나. 이거 참. 살면서 많은 걸 눈으로 지켜봤는데 신기한 것들이 많아.]
클라크는 그 말하며 버릇대로 관자놀이를 검지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이건 내가 아니라 클라크의 행동이다.
내 몸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건 정말이지 적응하고 싶어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냥 무섭다. 빈말이 아니라 안쪽에서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들어왔다.
가끔 만화에서 남의 몸을 조종하는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에게 조종당하는 사람이 울고 불며 그만하라는 장면을 알 것이다.
그 사람의 심정을 백배 이해할 수 있달까. 클라크라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그만하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번에는 그럴 뻔한 적도 있었고······'
[아. 그 일 말이냐?]
속으로 말했지만 빙의 상태였기에 클라크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나는 그걸 듣고 순간 멍해졌다가 바로 다짐했다.
적어도 클라크가 내 몸에 들어왔을 때는 생각마저 조심해야겠다고. 아리엘이 막 태어났을 때와 비슷하다.
[괜찮다면 몸부터 확인해도 되겠느냐?]
'네. 마음대로 하세요.'
클라크는 내게 허락받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 움직임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마냥 묘사하니 기분이 영 어색하다.
이어서 그는 내 몸 구석구석 확인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하체를 확인하더니 흐뭇한 목소리로 자기 핏줄이라 하는 건 덤.
약간 부끄러워지긴 해도 나름 자존심이었던지라 무던히 넘어갔다.
"흠······ 확실히 몸의 전체적인 밸런스는 괜찮구나. 특히 하체가 아주 튼튼해. 이건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내 입으로 저런 말을 하니 정말 이상하다. 부디 속으로 말했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클라크는 근육으로 가득 찬 하체를 주먹으로 몇 번 두드렸다. 과장이 아니라 강철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고 있는 허벅지다.
여태까지 살기 위해서 기초 체력 및 근력만큼은 꾸준히 기사급으로 진행 중이다.
그래야만 밤에 버틸 수 있으니까. 만약 신성력이 없었더라면 여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여리여리해 보이는 몸은 그대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체형이라 생각하면 된다.
"근육량이 다소 부족하지만 신성력 덕분인지 매우 유연해."
여기까지는 클라크가 한 말이고.
"그냥 속으로 말하면 안 될까요. 제가 제 입으로 저런 말을 하니 영 이상해서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한 말이다. 입이 멋대로 움직이니 슬슬 뭔가 어지럽다.
[아. 그러냐? 알겠다.]
클라크도 이 부분은 상관없는지 부드럽게 넘어갔다. 나는 어색함을 넘어 기괴함까지 느껴지는 첫 빙의에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레오나는 내 반응을 보고 입을 파르르 떨고 있다.
하기야 귀신에 쓰인 것마냥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답하는 걸 수준을 넘어 몸까지 삐걱거리는 웃기긴 하겠지.
나는 웃참 중인 레오나를 현타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빙의는 어떻게 푸는지 알아?"
"푸흡······ 그, 그냥 입에서 새싹을 떼면 돼. 그러면 클라크 씨의 영혼도 빠져나올 거야."
"그래. 고마워."
그녀의 말에 따라 혓바닥에 달라붙은 새싹을 떼어내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빙의가 풀리자마자 손을 쥐었다 폈다하거나 다리를 움직였다. 다행히 내 의지에 따라 잘 움직였다.
짧은 시간이라지만 빙의를 당했던 탓인지 기괴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전 무력이 강했던 클라크가 내 몸에 빙의하여 대신 싸우는 것 자체는 좋다. 허나 그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적응은 필수다.
"······우선 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네. 대련을 하면서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생각이야. 실제로 주술사들이 그런 방식으로 싸워."
"알겠어."
적응도 할 겸 겸사겸사 아버지와 대련을 한다면 어느 정도 어색함이 풀리겠지.
나는 곧장 사람을 시켜 아버지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원래라면 내가 가는 것이 맞다만 그러면 이 침실에는 레오나, 아리엘, 클라크 이 세 명밖에 없다.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도 있고 만에 하나 모르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 그대로 만약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이리로 오는 동안 적응을 위해서 다시 빙의 상태로 돌입했다.
"안 돼요! 제 몸이라고요! 제 몸으로 흡연을 하겠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레오나도 있는데!"
물론.
"살아있는 몸으로 한 번만 피면 안 되겠냐?! 이 할아버지의 부탁이다! 폐속 가득 시가의 연기가 들어오는 기분! 한 번 느껴보고 싶구나!"
중간에 내 몸과 내 몸이 서로 싸우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됐지만.
내 오른손은 시가를 향해 뻗어가고, 내 왼손은 오른손목을 꽉 붙잡은 채 실랑이를 벌였다.
30분도 안 된 시간에 금단 증상이라도 도진 모양이다. 이로써 몸이 담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정신이 담배를 원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푸하하하하! 흐하하하! 아이고! 아이고, 배야!"
"언니. 아빠랑 할아버지 왜 저래?"
"으흐흐흑. 크크크큭······!"
구경꾼이 2명밖에 없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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