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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34화 (435/763)

〈 434화 〉 이래서 판타지란(2)

* * *

좀처럼 오해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내가 살던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6.25 전쟁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리셋되고, 더 나아가 반으로 분단된 비극.

다행히 미국의 원조 덕분에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게 되고, 내전 이후 60년이 흐른 지금은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논란은 많지만 120개가 넘는 국가 중에 10등 안에 들면 충분히 강대국이라 부를 수 있다.

군사력 또한 분단 국가라는 특이성 덕분에 마구잡이로 늘려도 아무 견제도 하지 않았고.

비록 그 주변에 중국, 러시아, 일본 같은 강대국들이 끼여있다는 게 흠이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대한민국은 충분히 강대국이라 할 수 있다.

"못 믿겠는데?"

"60년만에 그런 성장을 보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물론 환경이 다르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한테 지배까지 받은 상태에서?"

안 믿더라. 좀 더 상세히 설명해줘도 그들은 썩 믿지 못하는 눈치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대한민국이 상당히 특이 케이스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강대국으로 우뚝 일어선다?

정말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으며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괜히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물론 이후에도 북한이 시시때때로 도발하고, IMF라는 거대한 경제 위기가 닥쳐왔으나 대한민국은 기이할 정도로 꿋꿋했다.

그래서인지 마음 같아서 더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뒀다.

무엇보다 도중에 귀빈이 방문한 탓에 가족들 간의 담화는 여기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대여!"

"왔어?"

알븐하임의 여왕이자 작고 귀여운 엘프, 아르웬이 우리 저택에 방문한 것이다. 늘 그렇듯이 훌륭한 하체를 뽐내는 은회색 드레스를 입고서.

아르웬은 나를 보자마자 뒤에 케이르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와다다 달려왔다. 달려오면서 길쭉한 귀가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린다.

뒤이어 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려주자 아르웬이 그 안으로 쏙­ 들어왔다.

워낙 체구가 작은 탓에 거의 매달린 수준이다.

"그동안 힘든 일은 없었지?"

"그대가 없던 것만 빼면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 만났으니 그것조차 없어지겠구나."

"음······"

확실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아르웬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가 뒤를 바라봤다.

보좌관으로 함께 따라 왔던 케이르는 어딘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라졌다.

아무래도 우리 둘끼리 좋은 시간 보내라고 알아서 사라지는 것 같은데, 눈치 하나는 빠르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와 아르웬이 서로 부둥켜 안으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슬그머니 그녀를 떼어냈다.

은하수처럼 반짝거리는 은회색 눈동자. 상기되어 붉어진 뺨. 마지막으로 까닥거리는 귀까지.

살아 움직이는 인형처럼 느껴지는 외양이라 마음이 절로 따스해졌다. 나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럼 일단 내 방으로 가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거든. 특히 내 쪽에서."

"버, 벌써? 하, 하지만 그대여. 아직 아침인데······ 무, 물론 나는 언제나 준비돼 있느니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아르웬의 얼굴이 삽시간에 노을처럼 붉어지자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엘프는 담백한 성정으로 유명한데 그녀는 혼혈이다 보니 인간처럼 화끈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그렇고 그런 일은 절대 아니다. 이미 침실에는 아르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명 있으니.

"미안하지만 그런 건 아니야. 다른 주제거든."

"아······ 알겠다."

"혹시 실망했어?"

"아,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다!"

"아닌 것 같은데."

오랜만에 아르웬을 놀려주고는 그녀와 함께 침실로 향했다. 뒤에어 그녀가 온갖 변명을 꺼내놓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래도 그녀의 마음을 살짝 이해하는 것이, 아르웬은 다른 여자와 달리 빈도가 적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실리와 달리 그녀는 알븐하임의 여왕이니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엘프라는 걸까.

게다가 혼혈이라지만 성욕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매달리는 경우는 전혀 없다. 아델리아처럼 정서적인 교류만 하면 충분하다.

'다른 곳에서 하는 것도 힘들고.'

모두 알다시피 엘프는 성관계를 일종의 의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보수적이다.

알븐하임, 그것도 정치기관 엘로디아의 관저가 아닌 이상 하지 말라더라.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아무튼 각설하고, 나는 아르웬의 손을 맞잡은 채 침실 앞까지 다가왔다.

또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지 몰라도 아르웬의 새하얀 얼굴이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상황이다.

똑똑똑­

나는 내 침실 문을 가볍게 노크한 후, 약간의 시간을 기다렸다가 곧바로 문을 열었다.

내 방인데 어째서 노크를 한 거냐면 간단하다.

"아. 왔어?"

"······어?"

"여왕님도 오셨네요."

세실리가 이미 내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방긋 웃으며 반겨준 세실리와 달리, 아르웬은 어리둥절하다 못해 당황한 표정이다.

그런 거 아니라고 계속 말했는데 내심 기대라도 했던 걸까. 나는 여전히 당황 중인 그녀를 이끌며 의자에 앉혔다.

이미 준비된 테이블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다과가 놓여있었으며, 따뜻한 커피까지 준비돼 있다.

"마음 같아서는 둘이서 오붓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아서. 괜찮지?"

"그······ 나는 괜찮다만 어째서 세실리 공주까지 있는 것이냐?"

"그건 저도 궁금했던 참이에요, 여왕님. 그러면 아이작. 이제 설명해줄 수 있어?"

세실리에게도 그냥 침실에서 기다리라고만 했지, 자세한 상황 설명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저런 질문을 한 것이고.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두 쌍의 시선이 나를 바라봤다.

내가 어째서 이 둘만 부른 거냐면 매우 간단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세실리와 아르웬은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세상에서 온 것까지는 얼추 예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세상은 아니다.

일단 그것부터 상세히 파악할 예정이다.

"음······ 일단 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내가 두 손을 맞잡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두 여자가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들의 표정을 세세히 살펴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둘은······ 내 정체를 뭐라고 생각해?"

"정체?"

"그대의 정체 말이냐?"

"응. 그러니까 내가 어디서 왔고, 또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왔는지. 대충 예상하고 있긴 해도 자세히는 모르잖아?"

내 말에 그제서야 이해라도 한 듯, 그들은 동시에 아, 하며 탄성을 뱉었다.

이어서 그녀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말할 생각인 게냐?"

"······정말로?"

각각 아르웬, 세실리의 반응이다. 나는 그들의 물음에 고개를 무겁게 끄덕거렸다.

"응. 제논 일대기도 완결된데다가 앞으로 내가 쓸 책이 그것과 깊은 연관이 있거든. 그러니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밝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전에 나를 어떤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부터 알고 싶어."

"··· ···"

"··· ···"

내 고백에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볼 뿐.

세실리는 나를 신께서 보내주신 은총이라 생각하고, 아르웬은 스스로를 제논 일대기 속 인물이라 착각 중이다.

만약 여기서 모든 사실을 밝혔을 때, 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특히 세실리가 가장 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제논 일대기로 마족들이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었으니.

그런데 제논 일대기가 내 세상에서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구시대적 소설이라 밝히면 얼마나 경악할까.

솔직히 말해서 약간 무섭다. 마리와 가족들은 나라는 사람 자체를 믿기에 무던히 넘어갈 수 있어도 세실리와 아르웬은 전혀 다르다.

"미리 말하면 나는 내 세상에서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어. 작가라는 건 똑같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유명하지도 않았지. 귀족도 아닌 평민에다가 싸움과도 거리가 멀었어."

"··· ···"

"··· ···"

"만약 실망했다면 정말 미안해. 사과밖에 못 하겠어. 하지만 더이상 미루었다가는 속이는 것 같아서 고백하는 거야."

마리와 가족들에게 밝혔을 때보다 훨씬 긴장된다. 사실 당연한 것이, 이들에게는 '아이작'이 아니라 '제논'에 더 큰 의미가 있을 테니.

나는 그들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들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렇게 긴장으로 인해 심장이 점차 크게 뛰기 시작할 때쯤, 세실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네 말은······ 제논 일대기가 정말로 허구의 이야기라는 거야?"

무언가 복잡미묘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깔린 목소리.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혼란으로 가득 채워진 붉은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온갖 복잡한 감정이 섞여있는 눈빛.

나는 그 눈빛과 마주하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세실리가 더 크게 당황했다.

"자, 잠깐만. 그럼 제논 일대기가 허구의 이야기라도,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다는 것 자체는 진실이야?"

"응."

"어떻게? 어떻게 넘어온 거야? 난 그게 이해가 안 가. 제논 일대기가 정말로 허구의 이야기인데 정작 아이작 너는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다.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인데?"

"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느니라. 정말로 제논 일대기와 같은 세상에서 넘어온 게 아닌 것이냐?"

보아하니 아르웬은 세실리와 거의 흡사한 착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역으로 물었다.

"아까 말했듯이 둘은 나를 어떤 존재라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가장 궁금해."

"나는 2차 악마 전쟁이 발발한 세상에서 넘어온 존재라 생각하고 있었어."

"나도 비슷하니라. 다만 제논 일대기가 정말로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지. 미래의 사람이 과거로 넘어오고, 그 미래를 바꾸었다면 결국 그 미래는 없어지니까."

이들이 저런 착각을 하게 된 경위는 다름아닌 아르웬 때문이다. 전에 엘프식 공산주의 발언 이후로 나에게 다른 세상에서 왔냐고 질문했으니.

가슴을 꿰뚫어버리는 질문인지라 당시에는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었고, 하필 그때 바로 옆에는 세실리까지 있었다.

미래에서 온 건 아니어도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으니까.

다만 아르웬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일종의 '평행 세계'에서 왔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착각을 하나 하나 풀어줄 때가 됐다.

"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제논 일대기 같은 세상에서 온 게 아니야. 어디냐면······"

"어떻게?"

"응?"

"어떻게 넘어온 거야? 나 아니, 우리에게는 이게 가장 중요해."

내가 말을 하려던 찰나 세실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중간에 끼어들었다. 평소답지 않은 급박함이 느껴졌다.

세실리에 이어 아르웬을 쳐다보니 그녀도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이들에게는 어떤 세상에서 넘어왔는지보다, 어떻게 넘어왔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이에 살짝 당황했으나 이것부터 설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그 소식을 들었을 거야. 악마 숭배자의 소환 의식이 진행된 걸로 유추되는 지하 사원. 알지?"

"그건 알고 있지."

"나도 그 소식은 알고 있다."

"그럼 그 소환 의식이 반만 실패했다는 것도?"

내 질문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미네르바 제국이 세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언론을 단단하게 통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혼자서 전세계의 언론을 쥐어잡는 건 힘들 테니 각 국의 지도자에게 설명했다고. 이건 리나에게 들었다.

나는 설명이 보다 더 쉬워질 것 같은 예감에 속으로 안도한 후, 전과 같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설명이 쉬워지겠네. 반만 실패했다는 건, 반은 성공했다는 뜻. 그리고 그 성공의 결과가 바로 나야."

"뭐?"

"그, 그대라고?"

"응. 악마 숭배자의 소환 의식으로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영혼. 그게 바로 나야."

이후로 클라크를 비롯한 나의 탄생까지 천천히 알려줬다. 세실리는 클라크를 알고 있지만 아르웬은 모르기에 조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 부모님을 잃고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덧 심장 마비에 걸려 사망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보니 소환 의식에 휘말린 거라더라.

신들도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겨 기억을 유지시킨 채 이곳으로 환생시켰다. 그 결과가 바로 나,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이다.

"······해서, 지금 둘에게 밝히는 거야. 더이상 이상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그리고······ 더 큰 실망을 겪지 않도록."

"··· ···"

"··· ···"

"그래도 많이 실망했을 거야. 내가 예상한 것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

"하."

변명 아닌 변명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세실리가 기가 찬다는 듯, 헛바람을 내뱉었다.

그 반응에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두려웠다.

그로 인해 고개를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때, 세실리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발언을 꺼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거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알지?"

"어······ 누나?"

"너는 정말······ 뭐라고 해야 될까? 양파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되나? 까면 깔수록 더 알 수 없어져. 정작 본인은 얼마나 대단한지 아무것도 모르고."

"······?"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고개를 들자 특유의 농염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실망과는 거리가 먼 반응에다가 그 반대로 나에게 더 빠진 듯하다.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대여."

"응?"

"후우······ 정말 모르겠구나. 정말로 모르겠어."

이제는 아르웬까지. 그녀는 세실리와 달리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다행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좋았으나, 예상하지 못 했기에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이작."

"응?"

"내가 천천히 설명해줄게. 후우······"

잠깐 한숨을 내쉰 그녀는 기다란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며 내 집중을 이끌었다.

이어서 특유의 고혹적인 목소리로 내가 이해하기 쉽게끔 잔잔하게 설명해줬다.

"악마 숭배자로 인해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영혼이 있어. 그 사람은 신들의 축복을 받아 전생의 기억을 유지하고 이곳에 다시 태어났지.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지?"

"응."

"그런데 그 사람이 예언서를 집필해서 세계를 구했다. 하지만 그 예언서는 진짜 예언서가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다. 이걸 믿으라는 거야?"

"··· ···"

듣다 보니 못 믿겠네. 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세실리도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뀌었다.

팔짱을 끼면서 풍만한 가슴이 돋보였지만,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솔직히 너도 못 믿겠지?"

"정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지. 현실은 소설보다 더하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걸 직접 겪을 줄은 전혀 몰랐구나."

아르웬의 푸념 아닌 푸념처럼 나 또한 지극히 동의하고 있다. 일단 내 인생 자체가 소설 같은 삶이니까.

어쨌거나 세실리의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이긴 하다.

물론 저걸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못 믿겠지만 저 말이 다 사실이야. 그리고 내가 살던 세상은 제논 일대기와 같은 작품들이 수두룩해. 어떤 면에서는 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세상이 있어?"

"온 우주의 예언서를 모아둔 곳인 게냐? 그러면 이해할 수 있겠다만."

세실리의 반응은 그렇다 치고 아르웬의 말은 상당히 재치 있었다.

나는 순간 빠져나오려던 웃음을 최대한 감췄다. 그래도 긴장이 완화되어서 전보다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살던 세상이 어떤 곳이냐면······"

리나와 마리, 그리고 가족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꺼냈다. 오직 인간만이 존재하며 마나와 마법, 그리고 몬스터 또한 없는 세상.

인간의 피조물로 하늘을 날 수 있고, 바람과 파도 없이 항해를 할 수 있으며, 전세계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곳.

당연하지만 핵폭탄에 관한 건 제외했다. 이것만 들어도 충분히 놀랄 텐데 이것까지 합친다면 절대 안 믿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설명이 끝나자, 세실리와 아르웬은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마 지금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방금 전과 다르게 기대를 품으며 반응을 기다렸다.

"그럼 인간의 피조물로 텔레포트도 할 수 있어?"

"어······ 응?"

"네가 말한 건 마법조차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그럼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텔레포트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세실리는 예상과 전혀 다른 질문을 꺼냈다. 인간의 피조물로 하늘과 바다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냐면, 텔레포트도 가능하지 않느냐.

나는 이에 당황하여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가 소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텔레포트 즉, 순간이동에 관한 개념은 말 그대로 '마법'의 영역이다. 지구의 과학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

이런 내 반응에 세실리는 물론, 아르웬마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되는 것이냐? 하늘과 바다를 지배하는데 어째서 공간을 지배하지 못 하는 게냐? 혹시 그곳은 좌표 개념이 없는 것이냐?"

"좌표 개념은······ 내가 알기로 약 400년 전에 발명된 걸로 알아."

"그러면 좌표와 좌표를 이으면 되지 않으냐? 하늘을 나는 피조물을 만들 정도인데 어째서 그걸 못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구나."

"나도. 인간도 노력만 기울이면 충분히 할 수 있잖아?"

그것 참.

"개념 자체는 매우 쉬운데······"

"개념이고 나발이고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라니까?"

"대체 그곳의 물리학자는 뭘 하길래 공간 개념을 모른다는 게냐?"

아인슈타인이 들으면 뒷목 잡을 말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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