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화 〉 실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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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아닌 착각을 경험하고 정신이 아찔해졌으나 겨우겨우 넘길 수 있었다. 또다른 착각이 탄생한 것 같으나 그냥 무시했다.
이제부터 우리 영지는 장례식이 아니라 축제가 펼쳐질 것이며 또다른 화합의 장으로 변할 테니까.
홈즈라는 명확한 예시가 없었더라면 아마 길고 긴 장기전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독자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후딱 끝내는 게 낫지.
하지만 이걸 감안하더라도 내가 줏대 없이 행동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사실 현재 이게 가장 짜증나는 점이다.
독자들의 원성을 무시하자니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고, 그렇다고 기꺼이 들어주자니 휘둘리는 느낌이었으니.
전생에서도 흔히 '쥐흔'이라는 걸 많이 당해본 적이 있어서 끝까지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전개를 바꾸면 다음에도 휘둘릴 테니까.
그러나 독자들이 우리 저택 앞에서 장례식을 진행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단순 이벤트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익명성 뒤에 숨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라 무시할 수도 없다. 저택 앞에서 시위를 하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 온갖 복잡한 감정을 꾹꾹 눌러담으며 그들이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다.
말 그대로 가불기에 걸린 셈. 이에 다음부터 이런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건 물론이고, 내가 직접 머스크에게 부탁했다.
정확히는 머스크와 연줄이 있는 언론사에게 내 말을 전달하는 거지만. 머스크는 내가 직접 부탁하자 기꺼이 요구에 응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논입니다. 독자분들의 성원에 힘 입어 제논 일대기가 완결을 맞이했으나 진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에······]
내용은 대충 이랬다. 제논 일대기를 사랑하고, 작품에 몰입하는 건 좋지만 전개를 원하는대로 바꾸는 건 오로지 작가인 나에게 있다고.
진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건 감동스러운 일이나 동시에 '요구'만큼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번에 발발한 장례식도 말만 이벤트지 나에게 진을 살려달라고 압박을 넣는 거나 다름없다. 그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성숙한 문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특히 지구에서는 그 정점에 서 있는 나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중국이다.
힘만 강한 깡패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듯, 미성숙한 문화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주 좋은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내 팬들이 그런 문화를 가지는 건 한사코 사양하고 싶다. 특히 이런 팬덤 문화는 이제 막 탄생한 탓에 꾸준히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가 잘못을 저질러 그 부모가 호되게 다그치고, 이후에 맛있는 사탕을 입에 물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머니도 다음부터 이러지 마세요. 잘못하면 저만 아니라 제논 일대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욕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미안하구나······
어머니라고 예외인 건 아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에 일조했으나 미숙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새로운 문화 앞에서는 어른이라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건 존재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더 심했겠지.
"어머니 딴에는 이런 이벤트를 벌일 겸 영지의 홍보 효과도 누릴 겸 겸사겸사 좋은 취지로 주도했겠죠. 하지만 이 이벤트의 가장 최악인 점은 저에게 피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는 거예요. 어머니께서 저에 대한 존중을 해쳤다는 뜻과 똑같아요."
"··· ···"
"저도 처음에는 감동했어요. 이만한 인원이 진을 되살리기 위해 모인 셈이니까요. 그리고 그 요구를 제가 받아들여서 성공까지 하고 영지는 때아닌 축제를 벌이고 있죠. 이것만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동시에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게 된 거나 똑같아요."
이벤트 자체는 성공이라 할 수 있으나, 제대로 된 문화 형성에는 실패라고 지적할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이 지구에서 넘어와서 망정이지, 이곳에서 살던 작가가 이런 경험을 겪었더라면 엄청난 회의감이 들었을 터.
물론 익명성 뒤에 숨지 않고 당당하게 나서는 거라 전생보다 심하진 않겠지만, 작가들이 받을 정신적 피해는 덜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 일을 계속해서 펼치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이 원하는 전개를 펼칠 수 없게 돼요. 물론 제논 일대기 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작품이 또다시 나올 리는 미지수지만 문화 자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어요."
"바로잡는다라······ 어떤 식으로 말이니?"
내 설교를 통해 본인의 잘못을 깨달은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보라빛 눈동자에는 미안함을 포함한 연민, 동정 같은 감정이 담겨있다.
아무래도 그 착각 때문인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나를 똑같이 대하고 있었으나 내심 예언자라 믿고 있으니.
그래서 내가 온갖 비극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눈으로 봤다고 믿는 것 같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거짓이라 하기에도 뭐한지라 그냥 넘어갔다. 굳이 말해봤자 또다른 착각을 낳을 게 뻔하니까.
"작가를 위한 이벤트는 펼쳐도, 절대 요구는 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전개가 개연성에 맞지 않게 흘러가면 비판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저는 물론이고 작가들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당장 저조차 평론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이 있는 걸요?"
"하지만 작가가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니? 독자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무시하라 하세요. 그에 따른 결과는 고스란히 자기한테 돌아올 테니까요. 작가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독자는 작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해요. 이게 올바른 문화이자 시민 의식이에요."
꾸준히 언급하고 있으나 이곳은 전생과 달리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비판하는 것조차 얼굴을 내밀고 대놓고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여기에 계급 사회까지 합쳐지니 다소 깐깐한 문화가 형성돼 있다. 비판을 했다가 되려 욕을 먹거나 압력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군다나 이 세상의 문학은 제논 일대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능 문제마냥 어려웠던 탓에 반쯤 귀족의 전유물로 취급받았다.
제논 일대기가 등장하면서 새로이 형성된 문화는 다양한 순기능을 낳았으나 이처럼 부작용도 차츰 등장하는 중이다.
"이걸 조율하는 일은 매우 힘들 거예요. 그러나 서로 잘못된 점을 배우다 보면 결국 좋은 문화가 남게 되겠죠. 제논 일대기가 아주 좋은 예시가 되고 있으니 앞으로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거예요."
"······정말 놀랍구나. 나는 단지 이러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정치적인 의도도 포함돼 있죠?"
내 기습적인 질문에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솔직담백하게 답했다.
"아니라고 할 수 없겠구나. 마이샬 영지는 미네르바 제국에서도 밀어주는 문화 도시로 발전하는 중이니. 거기에 보탬이 되고 싶었단다."
어머니가 저지른 일은 분명 큰 효과가 있다. 이번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논 일대기 및 마이샬 영지의 입지를 똑똑이 드러냈으니까.
동시에 어떤 부작용을 끼치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명과 암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암을 떨쳐내고 명을 키우고 싶으나 문화라는 게 양면성이 매우 짙다.
문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조차 많고 많은 단점을 안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 있어서 완벽한 건 하나도 없다.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은 것.
"그럼 어머니도 깨달으셨으니 조금만 자중해주세요. 진을 부활시키는 건 어머니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성원, 마지막으로 신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다음부터는 부탁을 하되, 요구는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아시겠죠?"
"새겨듣도록 하마. 그리고 너의 어미로서, 또 한 명의 독자로서 성숙치 못한 행동을 한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마."
내 부탁에 어머니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에게 사과의 말을 전달했다. 짙은 남색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어머니도 새롭게 태어난 문화 때문에 성숙치 못한 행동을 했을 뿐이지,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 한 명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녀의 사과는 기꺼이 받아줄 수 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 드세요. 이건 선례도 없었고 무엇보다 몰라서 그런거니 너그럽게 용서해드릴게요."
"고맙구나. 가끔 보면 아이작은 이 엄마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제논 일대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어머니는 그리 말하다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부르셨다.
"아이작."
"네. 어머니."
"너는 정말로 미래에서 온 사람이니?"
"아뇨."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이 돌아왔다. 저 질문에는 단칼에 대답할 수 있다.
어머니도 내 단호한 대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또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떻게 그런 비극들을 잘 알고 있는 거니?"
"상상······ 이라고 대답한다면 믿으실 거예요?"
"믿기 어렵지만 네가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지."
말은 저렇게 했으나 아니라고 한다면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두 손을 맞잡고 고민에 빠졌다.
사실 고민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것이, 이미 내 정체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리나. 아리엘의 독심술로 밝혀진 거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는 내가 환생자라는 걸 안다.
'슬슬 얘기할 필요가 있겠네.'
가족과 약혼녀, 마리조차 모르고 있는 진실. 비록 사고 때문에 그런 거라지만 이건 잘못됐다.
게다가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착각만 더 깊어지겠지. 최소한 가족과 약혼녀 마리, 더불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2차 세계 대전을 집필하는 순간 의심이 더 짙어질 테니까. 차라리 속 시원하게 밝히는 일이 훨씬 낫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거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어머니와 마주했다. 어머니는 혹여 내가 안타까운 일이라도 겪었을까봐 걱정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어도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은 나를 가족이라 생각하겠지. 이런 믿음이 가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어머니."
"말하렴."
"저는 그런 비극을 겪진 않았지만, 수많은 비극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어요. 제논 일대기 속에 등장한 비극들도 그곳으로부터 따온 거고요."
"역시······"
반응을 보아하니 이 정도는 예상하신 듯하다. 허나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터.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이에요.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는 점. 이 점은 아셨으면 좋겠어요."
"물론이란다. 중간에 영혼이 바뀌었다면 이 엄마가 못 알아차릴 수가 없지. 넌 여전히 배려심이 깊고, 어리숙한 것 같으면서도 지혜로우니까. 이건 옛날부터 똑같았지."
어머니는 내 말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다행히 내가 우려하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듯했다.
가족들이 나를 다른 사람 취급을 하는 것만큼 나에게 있어서 괴로운 일은 없을 테니까. 내가 여태까지 환생자라는 걸 밝히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지금처럼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고, 때로는 장난을 치면서, 가끔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이상적인 관계. 나는 이걸 진정으로 원하고 있었다.
"그럼 가족들을 불러주실 수 있나요? 클라크 할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 그리고 마리와 세실리 누나, 아델리아 누나, 마지막으로 레오나까지. 아, 어쩌면 아르웬도 방문할 수도 있으니 포함시켜야겠네요."
케이트는 개인 사정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체리는 훗날 천천히 알려줄 생각이다. 리나는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패스.
어머니는 내 부탁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셨다가 조곤조곤하게 말씀하셨다.
"좋긴 하다만 너무 복잡할 것 같구나. 우선 마리를 포함한 우리 가족끼리 모여서 얘기한 후,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밝히는 게 나을 것 같아.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가 이런 저런 질문이 섞이면 어지러울 수도 있잖니? 특히 세실리 공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질문할 거리가 상당히 많을 테고."
하긴 그럴 것이다. 마리와 아델리아 이 두 명은 제논 일대기의 작가, 제논이 아니라 아이작이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니까.
레오나는 수인의 미묘한 문화로 인해 다가온 거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세실리와 아르웬은 다소 입장이 다르다. 그들은 나를 예언자 혹은 회귀자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착각을 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동안 대화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으니 어머니의 말마따나 따로 대화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마리를 포함한 우리 가문 일원만 모이는 걸로 하죠. 다른 사람들은······ 제가 따로 얘기할게요."
"그래. 그전에 혹시 네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니?"
"아리엘의 독심술 때문이긴 해도 리나가 알고 있어요."
"그래? 의외구나. 마리가 알면 서운해하겠어."
안 그래도 예상하고 있다. 분명 마리가 툴툴거리며 삐지겠지. 그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한 상황이다.
아무튼 간에 내 진정한 정체를 밝히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어머니는 본인이 직접 사람을 부르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때동안 잠자코 기다리다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상하게도 긴장되지 않는다.
이미 떡밥과 복선을 너무 많이 뿌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미 예견하고 있던 미래이기 때문일까.
'뭔가 속시원한 느낌이네.'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고, 더 나아가 그동안 숨겼던 진실까지 밝힌다.
제논 일대기가 진정한 의미로 완결이 되면서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나타나는 것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다른 생각으로 거쳤다.
'확실히 이 세상은 비극에 익숙하지 않아.'
여태까지 꾸준히 의심하고 있던 부분. 당장 신화에서조차 비극적인 내용이 거의 없었다.
루미너스와 모라, 마지막으로 히르트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부었으며 굳이 있다면 악마 전쟁에서 사랑하는 신자들을 잃은 것밖에 없다.
게다가 비극의 결정체라 부르는 전쟁 또한 다소 심심하게 진행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종족 전쟁마저 엘프의 오만과 인간의 득세에만 집중해서 다루었지, 부정적인 면모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기껏해야 종족 전쟁 참전자가 남겼던 일지 정도. 전쟁이 비참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으나 기록물로 따지자면 글쎄?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2차 세계 대전은 충격이어도 와닿긴 힘들 거야.'
피와 강철의 전쟁은 말 그대로 판타지처럼 느껴질 것이다. 제논 일대기처럼 과하게 몰입하기 힘들다.
따라서 비극을 주로 다룬 작품이 하나 필요할 터. 때마침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신들이 모두 죽고, 세상에는 악마로 가득 찼으며, 영웅들이 모두 패배하여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
죽음에서 부활한 망자들이 속출하고, 그 망자들이 각기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세상을 황폐화시키는 세계.
오직 비극과 절망만이 가득한 세상이며, 한 줄기 희망을 붙잡으며 아득바득 살아가는 필멸자들의 투쟁.
마지막으로 예언의 시간이 되자 하늘에는 멸망을 알리는 '비'가 쏟아지고, 온 세상이 '바다'에 잠긴다는 이야기.
'누가 써줬으면······'
좋겠지만 어림도 없을 것이다. 진의 죽음마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는데 이런 상상을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쩔 수 있겠나. 내가 써야지. 매운맛에 익숙해지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과 같은 상황이 나타나지 않을 터. 참고로 제논 일대기와 같은 세계관이며 외전격 스토리다.
만일 제논 일대기에서 제논 일행이 패배했다면? 이런 식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다 죽일 거야.'
내 소심하고도 작은 복수.
'이 정도는 봐주실 거죠? 설마 신께서 쩨쩨하게 그러진 않겠지.'
나는 신들에게 그리 말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우선 주인공은······ 역시 마족으로 해야겠다. 불우한 과거는 덤이고.'
훗날 이 책이 '다른 의미'의 성서로 취급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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