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4화 〉 요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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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에게 지구의 세계사를 간단하게 알려줌과 동시에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양한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였다 보니 대체적으로 흉년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특이하게도 감자는 꾸준히 재배하고 있으나 '콩'이 없었다.
이 세상의 감자도 질긴 생명력으로 유명하단다. 그래서 기근에 대비하여 꾸준히 재배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맛은 전혀 없는, 밍밍한 맛인데다가 싹이 나면 독성을 띄기에 기피했다고. 대신 꾸준한 개량을 거쳐 전생과 다를 바 없는 감자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 사실이나 콩을 재배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정확히는 콩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다.
'지구에서도 콩은 아시아 쪽에서 넘어오긴 했는데······'
하지만 지난번 방문했던 헬리움에서는 콩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전까지 반강제적으로 고립된 탓에 그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던 모양이다.
설령 넘어왔다고 한들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려 그 마족이 직접 재배하는 작물인데 분명 사악한 기운이 있다며, 믿을 수 없다며 트집을 잡았을 테니.
특히 헬리움은 괴식을 포함한 요리 문화가 정말 다양한 의미로 발달한 나라다. 척박한 환경에 자리를 잡은 탓에 뭐라도 먹어야 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퀴벌레까지 구워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아무튼 연금술이 발달되고, 질소 비료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력을 유지하는 데는 콩을 사용하라고 넌지시 알려줬다.
리나는 내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나에게 질문했다.
"조만간 세실리도 여기로 오지?"
"아마 그럴 걸? 숙······ 아니, 아니."
하마터면 숙청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꺼낼 뻔했다. 나라는 연결 고리가 있어서 그렇지, 리나와 세실리는 엄연히 각 국의 권력자들이다.
사적으로 친하다고 해서 나라 일은 감정적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그들을 믿지 못 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지금 맡고 있는 일이 거의 끝나서 곧 온다고 들었어. 늦어도 사흘 안에는 도착할 거야."
"그래? 그러면 이 부분은 세실리랑 직접 대화하는 게 낫겠다. 굳이 콩이 아니라 지력을 회복시킬 무언가가 있을 테니까. 괜찮지?"
"난 상관 없는데······ 넌 괜찮아?"
"자그마치 예언자 님이랑 얘기하는 거잖아. 당연히 괜찮지."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장난 같지만 전혀 장난 같지 않은 말.
황실을 견제하는 귀족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겠지만, 백성들은 믿어줄 것이다.
실제로 나를 통해 여러 지식들을 얻었으며 그중에는 흉년에 대비할 것도 있으니 예언 아닌 예언인 셈이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나도 저택에서만 지낼 테니까. 때마침 황실에서 온 하녀도 있으니 그 분한테 일을 맡기면 될 거야."
"고마워."
"아. 참고로 말하면 침실 옆에 손님방은 없다?"
"얘, 얘가 진짜! 누굴 진짜 변태로 알고 있어? 그리고 나 황녀야, 황녀! 기품 정도는 유지하고 다니는······"
"기품을 유지해도 사람마다 취향은 있는 법이죠, 황녀님."
그리고 얼굴이나 가라앉히고 그런 얘기를 해.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려 손부채질만 하는 리나를 보며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우아하고 기품이 묻어나오는 그녀가 저렇게 망가지는 걸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쾌감이 든다.
평소에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편인데 내 앞에서는 그 가면이 모두 벗겨지니 그런 걸 수도.
옛날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리마저 최근에는 리나를 놀리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
어쨌거나 놀리는 건 이쯤에 끝내고, 하녀를 불러 그녀에게 손님방 안내를 부탁했다.
나에게서 들은 지식을 정리할 필요도 있고, 무엇보다 정말 반가운 사람들이 우리 저택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야. 아이작. 너 못 본 사이에 더 큰 것 같다? 역시 우리 집안의 핏줄이라 그런가?"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어?"
친애하는 형과 누나, 데이브와 니콜이 오랜만의 휴가를 받아 저택으로 돌아온 것이다.
가장 최근에 휴가를 왔을 때가 작년 제논 축제였으니 정말 긴 시간동안 얼굴조차 비추지 못 했다.
마음 같아서는 면회라도 가고 싶었다만 작년에는 학업 때문에, 최근에는 정체를 밝힌 나머지 그럴 여력이 없었다.
"형! 누나! 어디 안 다쳤지?"
"물론이지. 우리가 어디 가서 다칠 사람은 아니잖아."
"아하하. 아이작은 여전하구나."
나는 그런 그들에게 포옹을 하는 것으로 열렬히 환영해줬다. 모두 알다시피 그들이 근무하는 곳은 국경지대.
아버지의 대활약으로 근래에는 나아졌다지만 파병을 간 것과 다름없으니 멀쩡히 돌아오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까지 너무 바쁜 나머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괜찮겠지, 아버지가 빡세게 훈련시켰으니 몸 멀쩡히 돌아오겠지.
하지만 막상 만나니 그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심지어 니콜은 훈련 도중에 한쪽 팔이 부러졌지 않았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라도 보내는 건데······ 미안해."
"아냐. 아냐. 괜찮아. 오히려 안 보내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어."
"동감이야. 네가 편지라도 보내는 날에는······ 어우. 상상도 하기 싫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는지 데이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니콜이 피식 웃으며 설명해줬다.
"제논 일대기가 우리 기사단에서 엄청 인기가 많거든. 제논 일대기에 나온 기술을 따라 하려는 단원이 한둘이 아니야. 이 정도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어······ 충분히 알 것 같아."
"알았으면 됐어. 아버지랑 어머니는?"
"아버지는 지금 업무를 보고 계시고, 어머니는······"
나는 모든 일을 내팽겨치고 그들을 저택으로 데려왔다. 제복을 멋들어지게 입은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나 멋질 수가 없다.
또한 그간 꽤 고강도의 훈련을 하고 온 건지, 아니면 성장한 건지 몰라도 둘 모두 키가 약간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창 성장 중인 내가 그리 느껴질 정도이니 실제로 커지긴 커졌을 것이리라.
"근데 저택에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러게."
아무래도 거의 1년만에 돌아온 집이라 그런지 그들은 변화한 저택 내부를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우선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을 뿐더러, 더 나아가 기사들까지 배치돼 있었으니.
이에 나는 하나 하나 알려주면서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가르쳐줬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나는 몰라도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편지를 안 보냈어? 안부 편지라도 보냈을 거 아냐?"
"그럴 시간도 없더라. 훈련이나 임무가 끝나면 곧바로 골아떨어졌으니까. 최근에는 야만수인까지 활동하기 시작하고······"
데이브의 푸념 아닌 푸념에 옆의 니콜 또한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체력만큼은 상급 기사에게 결코 꿇리지 않을 그들인데 저 정도인 걸 보면 확실히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특히 군인은 낮밤 가리지 않고 훈련 혹은 임무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늘도 신체 멀쩡히 돌아온 그들에게 감사함을 가졌다.
뒤이어 먼 길을 돌아오느라 힘들었던 그들이 각각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잠시간의 휴식 끝에 모든 가족이 한 방에 모였다.
모인 방은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는 응접실이었으며.
"아빠. 아빠. 이 오빠랑 언니는 누구야?"
"아빠의 형이랑 누나야. 삼촌이랑 고모라 부르면 돼."
"삼촌? 고모?"
여기에는 아리엘과.
[역시 첫째는 호크 이 놈과 빼닮았구나. 손녀는 며느리를 닮았고.]
클라크도 포함돼 있었다. 참고로 클라크는 두터운 갑옷과 눈가리개가 있는 투구까지 쓰고 있다.
덕분에 정체를 잘 숨기고 다닐 수 있지만, 지금은 투구를 벗고 계셨기에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입에 물고 있는 시가까지 아주 완벽하다. 한 술 더 떠서 시가는 투구를 쓰고 있어도 꾸준히 피우고 계셨다.
"······야. 우리 마차에 있는 동안 시간 여행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어······ 그것보다는 다른 세상으로 온 게 아닐까?"
편지로도 말하지 않았던 부분인지라 데이브와 니콜은 혼란을 감추지 못 했다.
당장 아리엘(천사)의 존재만으로도 극히 혼란스러울 텐데 웬 스켈레톤 한 마리가 가족 모임에 참여했으니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이런 이야기는 편지로도 알릴 수 없는 게, 네이비 기사단은 위치가 위치인지라 편지를 꼼꼼하게 검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이 되어서야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었으며, 가족끼리 말을 맞춰놓은지 오래라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스읍······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죠? 야, 니콜. 내 얼굴 한 대만 쳐 봐."
"네가 먼저 쳐. 나도 못 믿겠으니까."
물론 설명을 해줘도 쉬이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결국 서로 서로 사이좋게 한 대씩 때리고 나서야 믿어줬다.
맞기 직전에 신체 강화라도 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내구력이 튼튼했는지 주먹으로 쳤음에도 자국 하나 남지 않는 게 썩 신기했다.
"아이작."
"응?"
"넌 정말······ 여러모로 대단하구나. 이제는 하다 하다······"
"난 가끔 아이작이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아."
니콜은 기가 차서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반응인 반면, 데이브는 꽤 정확한 요점을 짚어냈다.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슴이 절로 뜨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모든 상황 정리가 끝나고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설 수 있었다.
내 무릎 위에 있던 아리엘은 어느새 클라크의 머리 위로 올라가고, 클라크도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팔짱만 꼈다.
정말 훌륭한 시선 강탈에 대화를 하다 말고 계속 그쪽으로 시선이 갔지만 다행히 중간에 멈출 일은 없었다.
"야만수인이 다시 활동을 개시했단 말이냐?"
그리고 아버지는 데이브와 니콜이 알려준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라셨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나도 마찬가지.
이에 데이브는 굳어진 얼굴로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예. 대신 본격적인 활동은 아니에요. 척후조의 말에 따르자면 온건파와 강경파가 갈렸다고 하더군요."
"온건파는 당연히 우리와 대화를 원하는 이들이고, 강경파는 알다시피······"
니콜이 뒷말을 흐렸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강경파는 말 그대로 강경파였으니.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까지 맞잡으신 걸 보니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다.
하기야 야만수인의 포악함을 몸소 체험하신 분이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주 씨앗을 뿌리 뽑았어야 했나."
"그랬다면 온건파, 강경파 나누어질 것 없이 강경파만 남았을 거예요. 무엇보다 네이비 기사단은 전보다 훨씬 강해진 반면, 야만수인은 세가 줄었으니 아버지 때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아버지의 중얼거림에 니콜이 그를 위로했다. 허나 그 위로는 아버지에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 했다.
"세력은 상관없다. 놈들의 주요 전술은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화공(火?)'이었으니까."
"화공이요?"
"그래. '검은 물'을 이용한 화공. 잠입조가 몰래 기지 안으로 들어온 후, 검은 물을 뿌려 불을 지르는 게 그들의 주요 전술이었다. 검은 물은 일반적인 물로 쉽게 꺼지지 않아 모래나 흙으로 덮어야 했지."
"······검은 물?"
나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작게 중얼거렸다. 듣기만 한다면 내가 아는 '석유'와 매우 흡사한 성질을 갖고 있다.
유기물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생의 지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손꼽히는 자원.
이 세상에도 석유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석유는 지구에서조차 어떻게 생성되는지 정확한 원리를 모르고 있다.
공룡이 죽은 시체가 석유가 된다는 말이 있으나 중동을 생각하자. 공룡이 살았던 시절 중동은 바다에 잠겨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 세상은 공룡보다 더 한 존재들이 살았을 것이다. 당장 지금도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 드래곤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공룡은 오죽할까.
'근데 석유로 화공을 쓴다고?'
땅을 깊게 파야 나오는 그 석유를? 전생의 지구에도 석유 사용법을 알기 전, 등불이나 수성전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건 '땅 위로' 나온 석유들을 갖고 온 거지, 직접 땅을 판 건 아니다. 시추 작업이라는 게 괜히 있겠나.
"아버지. 검은 물이 국경지대에 흔한가요?"
"땅을 좀 깊게 파다보면 흔히 나오는 게 검은 물이다. 심지어 야만수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마실 수 있는 물보다 검은 물이 더 많을 정도지."
"야만수인이 틈만 나면 제국을 침략하는 이유가 바로 그 물 때문이야. 물이 너무 없어서 생명이 자라는데 한계가 명백하고, 농사마저 지을 수 없지."
아버지에 이어서 니콜이 추가 설명을 꺼냈다. 세상에 물보다 석유가 더 많은 곳이라니. 무슨 중동도 아니고 가능한 일인가.
'아니지. 중동은 가능했잖아.'
가능하구나. 기술력이 없어서 그 사용법을 모르는 것뿐이지.
에너지? 이걸 어디에 어떻게 쓸 건가? 그 에너지를 사용할 기술이 개발조차 되지 않았는데.
야만수인 입장에서는 석유보다 당장 내일 먹고 살 식량부터 구하는 게 우선이다.
'중요성도 지구보다는 덜할 테고.'
전생은 석유가 없다면 세계 문명의 반 이상이 중단된다. 허나 여기는 '마나'라는 에너지가 따로 존재한다.
엘프와 마족은 숨 쉬듯이 사용하는 에너지. 기계 문명이 발달되지 않는 이상 검은 황금이 아닌 검은 물.
나는 심각한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거쳤다. 앞으로 집필할 2차 세계대전에 석유와 관련된 걸 쓸까 말까 고민했다.
똑똑똑
[아델리아입니다. 아이작 도련님에게 보여드릴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겠습니다.]
그러다가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아델리아가 응접실 문을 노크하면서 나를 부른 것이다.
자연스레 가족들의 대화가 끝나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무슨 소식인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그사이 클라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구를 썼다.
끼익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아델리아의 얼굴. 그녀의 손에는 웬 신문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신문이 나오는 날이구나. 아침부터 데이브와 니콜을 마중하러 가느라 깜빡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누나?"
"이거 한 번 읽어보셔야 할 것 같아서······"
나에게 신문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아델리아. 나는 점점 차오르는 의문도 잠시, 그녀가 준 신문을 읽어보았다.
[20년만에 가뭄이 발생한 이유는 히르트가 진의 죽음으로 분노하셨기 때문이다!]
[전세계 독자들이 통곡한 진의 죽음. 히르트가 이걸 보시고 분노를······]
[혹은 루미너스와 모라가 슬퍼한 것일 수도······ 그들은 히르트와 달리 제논을 직접 만나······]
뭐야, 이거.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가 고개를 스윽 돌려 아델리아를 쳐다봤다.
아델리아는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그······ 신전에 가야 할 것 같으셔서······"
"··· ···"
"준비······ 할까요?"
"하아······"
신의 존재가 뚜렷하면 이런 문제도 발생할 수 있구나. 덕분에 잘 알게 됐다.
'······설마 진짜인 건 아니겠지.'
진짜면 나 울 거다. 이건 진짜 울며 겨자먹기로 진을 살려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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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이 신전으로 향할 채비를 마치고 있을 때, 수도에서 루시아와 함께 살고 있던 레오나.
그녀는 마이샬 영지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모든 채비를 끝냈으며 남은 건 이동하는 것밖에 없다.
이사를 위한 모든 대금도 아이작이 선불한 참이다. 그래서 마음 편히 이동하려고 했건만······
"······어머니. 이게 뭘까요?"
"글쎄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황제가 운명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위인이 죽기라도 했는지.
현재 레오나와 루시아의 앞에는 기나긴 장례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그마치 수도에서 진행되는 장례 행렬. 하나 같이 장례식을 뜻하는 검은색 예복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그들 주위의 호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죽었길래 이만한 행렬이 이어지는 것일까.
"음······ 일단 저희도 출발할까요? 옆에 끼면 될 것 같은데······"
"그, 그러자구나."
일단 이사가 급선무였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누가 죽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에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을 한 명 붙잡고 물어보니······
"······진이요? 제논 일대기의 진?"
"그렇소. 작가 놈······ 아니, 아니. 제논이 진을 죽이다 못해 확인사살까지 시켜잖소. 그래서 저러는 거요."
"··· ···"
"마음 같아서는 나도 참여하고 싶소만 시간이 되지 않아서·····"
레오나는 도통 현실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정말로 이게 창작물 속의 캐릭터가 죽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자신이 알지 못하던 인간의 문화라도 되는 걸까. 레오나는 기나긴 행렬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인간의 문화에 이런 것도 있어요?"
"아니. 나도 처음 보는 거란다."
"으음······"
일단 가기나 하자. 레오나는 어리둥절한 상태 그대로 마이샬 영지로 향했다.
[흑······ 흑흑······]
[진을 행복하게 해주지······ 왜······]
[죽였으면 안 됐어······ 죽었으면 안 됐다고······]
수인 특유의 뛰어난 청력으로 인해 중심부의 목소리까지 다 들렸다. 레오나는 다시 한 번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어······ 이게 맞나?'
진짜 장례식 같아서 머리만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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