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22화 (423/763)

〈 422화 〉 발사(3)

* * *

세상 모든 제논 일대기 독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논 일대기 30권. 출판사에서 나온다는 소식을 퍼뜨리자마자 사람들은 서점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자기가 가장 먼저 책을 읽겠다고 발표 당일부터 기다리는 모습. 심지어 노숙까지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사회의 한 현상을 보는 듯했다.

인쇄술이 지금보다 발달되기 전에는 비슷한 현상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그러나 29권의 결말을 보고 불안함에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발발한 것이다. 29권의 결말은 미리 깔아놓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거나 다름없었으니.

하루 하루 30권을 기다리느라 몸살을 앓았는데 오늘로서 그 치료제가 나왔다. 독자들은 진이 정말로 죽는지, 전개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달려갔다.

[릴리의 앞에서 가루가 되어 죽은 진. 릴리는 그의 뿔을 더듬으며 오열했다.]

[오열하는 릴리와 같이 순식간에 눈물 바다가 된 세상.]

[결국 제논은 진을 죽였다. 모든 독자들에게 심한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아이작이 미리 발사했던 전술핵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온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세상 곳곳에서 진의 죽음으로 인한 통곡이 울려퍼졌다.

진이 죽는다는 복선은 이미 충분히 깔려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지만, 그걸 넘어설 만큼 충격적인 죽음이었으니.

가루로 변모해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 했으며, 오열하는 릴리 앞에는 오직 그녀가 선물한 목걸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해피 엔딩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심한 내상을 입히는 새드 엔딩.

지구였다면 모를까,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맵다 못해 혀가 가루가 될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게 바로 진정한 '비극'이자 하나의 '이야기'다.]

[작품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결말.]

[진의 죽음으로써, 제논 일대기가 완성되었다.]

[제일 행복한 시간은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만들 때고, 제일 슬픈 시간은 그 사람이 추억이 될 때다.]

비탄에 빠진 독자들과 다르게 평론가는 냉정하게 작품을 평가했다. 대부분 호평이었으며 제논을 향한 칭찬이 이어졌다.

그와 반비례로 독자들은 속을 뒤집어버리는 평가에 열불이 났지만. 그러나 독자들도 그 평가들을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의 죽음을 통해 마족의 비극성을 부각시키고, 사랑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으니. 작품의 완성도가 상승했다는 건 다들 인정하고 있다.

만약 아이작이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드리프트 즉, 전개를 꺾어버렸다면 독자와 평론가가 합심하여 욕했겠지. 그 망할 개연성 하나가 명분조차 제시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어쨌거나 진의 죽음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으며 이로 인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터졌다.

흔히 죽음의 5단계라 부르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다. 진이 결코 죽을 리가 없다. 제논이 다시 살릴 것이다.]

[이대로 가기에는 진과 릴리가 너무 불쌍하다. 에필로그로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했으니 여기서 부활할 것이다.]

가장 먼저 '부정'. 독자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가루가 되어 흩날린 결말을 보고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설마설마 했지만 이런 결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에필로그에서는 다시 되살려 주겠지. 제논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등등.

온갖 부정이란 부정을 하면서 흔히 말하는 행복 회로를 돌렸다.

그것마저 얼마 가지 못 했지만.

[왜! 왜 하필 진인 것인가! 꼭 그를 죽여야만 했는가!]

[꼭 그렇게······ 죽여야만······ 속이 후련했냐!]

[제논은 당장 진을 되살려라. 그렇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겠다. 이처럼 독자들은 믿을 수 없는 결말에 분노를······]

두 번째로는 '분노'. 충격에서 헤어나온 독자들은 진의 죽음에 격분했다.

특히 이 분노의 정도가 가장 큰 세력은 당연하게도 진·릴리 커플을 응원하는 독자들.

그들은 여태까지 몰입하는 걸 넘어섰던 커플이 처참하게 분쇄당하자 분노를 터뜨렸다.

다른 커플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진정한 주인공이라 평가받기 시작한 진·릴리 커플이었기에 그 강도는 감히 헤어릴 수 없었다.

[돈을 줄 테니 부디 결말을 바꿔달라. 어느 한 귀족이 익명으로 요청해······]

[릴리 정도면 진을 되살릴 수 있을 터. 부디 살려달라.]

[순순히 진을 살린다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협상'. 익명으로 거액의 금액을 지불할 테니 진을 살려달라는 귀족부터 시작해, 온갖 협상이 난무했다.

문제는 아이작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 그에게는 부, 명예, 지위,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약혼녀(들)마저 갖고 있다.

남자, 그리고 한 사람에게 있어서 사실상 모든 걸 가지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협상은 무의미했다.

[어째서······ 어째서 진을 죽여야 했는가······]

[꼭 죽여야만 했어요? 진·릴리를 응원하던 몇몇 독자들은 극심한 우울에 빠져······]

[후유증으로 하루 종일 멍을 때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네 번째로 '우울'. 이건 며칠 뒤에 나타난 증상이다.

아무리 꽥꽥 소리를 질러도 아이작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독자들은 하나 둘씩 포기했다.

게다가 작품 외적으로 소란이 터진 거지, 내적으로 그 어떤 결점도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상을 심하게 입은 탓에 후유증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수순. 학자들은 이 현상을 흥미롭게 보면서 연구에 나섰다.

[결말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작품은 작품일 뿐, 진의 죽음은 믿을 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현실이 있다.]

[생애 최고의 작품이자, 고통의 작품으로 기억될 것.]

[죽을 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는 결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용'. 이런다고 변하는 건 하나도 없으니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간 느려졌던 악마 숭배자 이벤트도 점차 활력을 되찾았으며, 이 결말을 통해 연인 및 부부 간의 사랑이 깊어졌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다.

또한 결정적으로 마족의 인식이 한 단계 껑충 뛰어올렸다. 제논 일대기를 통해 '순정'이라는 이미지를 새로이 장착한 마족들.

30권의 결말은 그들의 헌신과 숭고함을 동시에 보여줬기에 인식이 더욱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독자들은 기나긴 후유증 끝에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듯했으나······

[제논이 진을 죽였으니 예정대로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 끝에 이루어졌으며······]

진·릴리 커플은 여전히 분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확히는 분노와 협상 사이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신문에서는 이들이 심상치 않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기사를 냈지만, 이상하리 만큼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고의적으로 언론을 '통제'하는 것처럼, 장례식을 치른다는 말만 있을 뿐.

또한 세상은 진의 죽음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 자잘한 '이벤트' 따위에는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첩첩산중의 미네르바 제국. 악마 숭배자의 짓인가? 벨로스 자작가를 포함한 여러 곡창지대에 20년만의 흉년이 들어······ 그 흑토마저 힘을 잃었다.]

[제국의 상층부는 서둘러 비축한 식량을 풀고 있으나 기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고 있어······]

[알븐하임. 제국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지원을 보낼 것으로······]

더군다나 공교롭게도 미네르바 제국에 또다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악마 숭배자의 짓인지, 곡창지대로 유명했던 동부 지역에 대흉년이 발생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기근.

무려 20년만의 기근이었기에 제국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대책에 나섰다.

어마어마한 인구를 갖고 있는 제국이었기에 제논이고 뭐고 기근부터 해결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의 주인, 알븐하임이 도와준다고 하기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으나 안심할 수 없었다.

자칫했다가 수많은 인구가 아사로 사라질 뻔했으며 악마 숭배자가 수를 쓰는 이상 곡창지대도 안전하지 않았으니.

이처럼 특정 세력의 언론 통제와 기근이 절묘하게 겹치는 바람에 '장례식'은 묻힐 수밖에 없었으며······

"빨리 기근을 해결해 줄 방법을 알려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희 세상은 인구가 70억이었다며? 70억 인구를 부양할 무언가가 있었을 거 아냐?"

"있긴 있는데 난 할 줄 몰라. 알고만 있을 뿐이지."

아이작은 기근 사태를 접하자마자 찾아온 리나와 대화하느라 '장례식'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

마이샬 영지와 그렇게 멀지 않은 지역. 그 지역의 광장에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괄목할 점은 다양한 종족이 바글바글 모여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물론이고 수인, 마족, 엘프, 심지어 드워프까지.

종족 전체가 화합을 이룬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할 구경거리라도 있는 건지 거의 모든 종족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황이다.

"이야. 나 이렇게 다양한 종족이 모여있는 거 처음 보네."

"나도."

호위를 위해 그 광장으로 모인 모험가, 로이와 앤은 그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모험가로서, 이렇게 많은 종족이 한 곳에 모인 건 이번이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첫번째는 단연코 작년에 개최했던 제논 축제. 그 축제에 버금갈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규모면 제논도 무릎을 꿇겠는데?"

로이는 이벤트를 위해 전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을 둘러봤다. 오직 장례식 하나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진·릴리 커플 추종자이며, 릴리의 앞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진을 추모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쳤다.

그렇다 해서 모두가 진·릴리를 응원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그들을 호위하는 인력도 많다.

이외에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단지 심심해서 참석한 사람들, 또다른 축제라 생각한 사람들 등등.

말만 장례식이지, 사실상 축제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이대로 마이샬 영지로 향하는 거야? 이걸 어떻게 다 관리하는 거지?"

로이의 옆에서 앤이 팔짱을 끼며 의문을 표했다. 로이와 자신은 호위를 위해 이 행렬에 참석할 예정이다.

허나 이 지역에서 마이샬 영지까지의 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수준이다. 중간에 몇몇 영지가 끼어있으며, 마지막으로 수도도 있다.

분명 이 규모에서 더 불어날 텐데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고, 더 나아가 영지를 통과하기 위해 검수까지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의문이다.

"아. 그거? 지나갈 영지에 이미 다 말을 해놓았대. 소문으로는 마이샬 남작 부인이 부탁을 했다던데?"

"마이샬 남작 부인?"

"응. 이 장례식 자체를 주최했다고 소문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소문이야, 소문. 그래도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으니 다행이지."

"흠······"

그렇다면 다행이고. 솔직히 호위 의뢰 자체도 괜찮은 수준을 넘어 반드시 참여해야 할 정도다.

무려 3개월 동안 모아야 하는 자금을 이번 호위 하나로 충당할 수 있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흠이나 그걸 다 커버할 수 있었다.

"드워프들이 관을 제작하고, 마족이 그 관을 직접 갖고 간다네. 보아하니 관도 마족의 문화에 맞게 제작된 거라고 들었어."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

"그래도 재미있으니 된 거 아냐?"

로이와 앤이 서로 떠드는 동안이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음성 증폭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인지, 광장 전체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좌중들이 한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확인하니 실제 장례식처럼, 중앙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인 검은색 예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다.

장갑마저 흰색 장갑을 낀 것이, 실제 장례식과 다를 게 없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호위하는 인력들마저 검은색으로 깔맞춤한 상황. 이건 로이와 앤도 마찬가지다.

로이와 앤은 본분대로 장례 행렬을 호위하기 위해 마저 따라 움직였다.

"제논이 보면 어떤 반응을 할 지 기대된다."

"이런다고 과연 진을 살려줄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또다른 핵이 마이샬 영지로 친절하게 '발사'되면서.

"나 같으면 기가 차서 살려줄 것 같긴 해."

상호확증파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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