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20화 (421/763)

〈 420화 〉 발사(1)

* * *

제논 일대기 30권은 아버지가 직접 출판사로 전송하셨을 테니 어머니에게 머리가 잡힐 일은 없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염려는 하지 않았다.

대신 아리엘과 클라크가 마음에 걸렸다. 비록 아버지가 잘 설명할 거라고 하셨으나 어머니가 아닌 저택의 고용인들이 문제다.

현재 우리 저택은 황실에서 직접 지원을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거린다. 집 전체를 관리하는 집사부터 시작하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까지.

이외에 호위 기사들까지 파견을 온 탓에 저택의 규모에 비해 다소 붐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리엘과 클라크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다.

입 막음도 숫자가 적을 때나 효과를 보는 거지, 이처럼 보는 눈이 많다면 난감한 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날 테니까.

그렇다고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자니 지금은 영 마땅치 않다. 제논 일대기 30권이 나오는 순간 아리엘과 클라크는 자연스레 묻힐 가능성이 높다.

클라크는 곧 있으면 장례를 치를 거라 묻혀도 상관없으나 아리엘은 아니다. 그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야 뒷수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편이 낫다는 것. 대신 클라크는 스켈레톤이라는 걸 빼고 사람이나 다름없기에 적절한 변장만 한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방학이 되자마자 저택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우리 저택으로 향하는 인원은 나, 아델리아, 아리엘, 마지막으로 클라크 이렇게 4명이다.

마리는 잠깐 부모님을 뵈고 난 후 저택으로 올 예정이며, 레오나도 본인의 어머니, 루시아와 함께 올 것이다.

특히 레오나는 단순히 방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 자체를 마이샬 영지로 이사한다.

곧 있으며 한 가족이 되는데다가 루시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악마 숭배자에게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영지로 이사를 하는 거고.

마지막으로 체리는······

"이번 방학은 작품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좋은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네. 아이작 선배님처럼 어떻게 해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오랫동안 회자될 수 있을까라는? 그런 영감이 떠올랐거든요."

"··· ···"

"사실 제가 생각해 놓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이 모든 게 꿈이었다는······"

"그건 절대 하지 마."

부디 빛길 엔딩 만큼은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엔딩도 충격과 공포이긴 하지만 나쁜 의미에 가깝다.

만약 설정을 짜임새 있게 꾸며나간다면 다양한 해석이라도 가능하지, 대뜸 그런 식의 엔딩을 내놓는다면 평가가 수직낙하할 것이다.

체리도 내 당부를 듣고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지 어두침침한 눈을 느리게 깜빡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왜 진을 죽이는 거예요?"

저 말을 체리한테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다보니 더 궁금하겠지.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꺼냈다.

"······그래야만 하니까."

"진을 버리는 건 아니죠?"

그 말과 함께 체리가 불안했는지 두 손을 다소곳이 모았다. 보아하니 충격과 공포의 결말을 본인에게 연관시킨 듯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끼는 것마저 가차없이 버릴 수 있다던지. 아니면 사람을 도구로 본다던지 등등.

다른 사람도 아닌 정신적으로 불안한 체리라서 예상이 가능했다.

"절대 아냐. 오히려 진을 아끼기 때문에 캐릭터성을 더 부여한 것뿐이지. 만약 버렸다면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거야."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라······"

그 말에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체리. 나는 안심하라는 듯,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줬다.

그러자 체리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전보다 확실히 생기가 돈 눈동자라서 미소를 지어줬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불안해 하지 마. 난 적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매몰차게 대하진 않거든."

"··· ···"

"집필도 좋지만 간간이 편지라도 부쳤으면 좋겠어. 그리고 의견 같은 건 글보다 말로 주고 받는 편이 더 나으니까 저택에 찾아와. 난 언제나 반겨줄 테니까."

"······네."

내 말에 부끄럽다는 듯이 조용히 답한 체리. 그녀의 새하얀 볼에 미미한 홍조가 일어났다.

확실히, 전에 비해서 엄청난 성장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인형을 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중이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체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치는 여자다. 활력이 넘쳤다면 신입생 사이에서도 인기몰이를 하지 않았을까.

'망나니가 꼬이는 것만 방지해야지.'

나는 부끄러워하는 체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저택으로 돌아갔다. 왜인지 몰라도 실로 오랜만에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방학 동안에는 외전까지 모두 마무리한 이후 편히 쉴 계획이다. 겸사겸사 차기작에 대한 것도 적고.

물론 진의 죽음으로 인해 당분간 세상이 시끄러워질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 저택과 출판사 앞에 시위대가 몰려있다 하지 않았나.

이것만 잘 넘긴다면 어느 정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한테 레오나도 정식으로 소개시켜드려야 하고······'

제논 축제 당시 레오나와 그녀의 어머니, 루시아가 우리 저택에 찾아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내 친구로서 소개를 한 거지,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번 겨울 방학에 제대로 도장을 찍을 예정이다.

그렇다고 레오나가 빌붙어 사는 것이냐? 그건 절대 아니다.

아델리아처럼 메이드 교육을 시켜도 되고, 특히 그녀에게는 '주술'이라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그 주술만으로도 악마 숭배자에 대한 위협이 대폭 줄어드니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할머니! 할머니도 예뻐!"

"도대체 뉘집 애길래 예쁜 말만 골라서 할까? 할머니한테 뽀뽀해줄래?"

"이렇게? 쪽!"

"꺄아~!"

일단 어머니에게 아리엘부터 소개시켜주고. 아버지가 미리 말을 해서 그런지 어머니는 아리엘을 상냥하게 받아주셨다.

상냥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냥 사랑을 퍼부어주셨다. 지금 아리엘을 번쩍 안아든 채 물고 빨고 정신이 없으셨으니.

아리엘도 어머니의 사랑과 속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세상 그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로 얘가 세계수의 씨앗에서 태어난 애라고?"

"······네. 아버지가 설명하셨을 거예요. 알븐하임으로 향했을 때 히르트 님과 만남을 가졌고, 그 아래에 씨앗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씨앗에서 아리엘이 태어났죠."

"히르트 님께서 정말 사랑스러운 축복을 주셨구나. 이 새싹도 그렇고 날개도 그렇고 어쩜 안 귀여운 구석이 없어."

"히히."

아리엘이 정말 마음에 드는지 아예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비비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아리엘이 천사라는 것보다 손녀 자체가 좋으신 모양이다.

이에 아리엘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새하얀 치아를 환히 드러내며 웃어줬다. 사랑을 무럭무럭 받아서 그런지 미소에 행복이 가득 묻어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농담을 건넸다.

"그렇다고 릴리를 소외시키면 안 돼요. 아리엘은 손녀고, 릴리는 어머니 자식이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마려무나. 우스갯소리로 너와 마리 사이에 애가 태어나면 족보가 꼬인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실현될 줄은 몰랐네."

"아리엘한테 고모가 있어?"

어머니의 속마음을 읽은 아리엘이 특유의 앙큼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전히 어머니와 뺨을 맞대고 있어서 무언가 웃기기도 하고 귀엽다.

"응. 아리엘한테는 고모가 2명 있고, 삼촌이 한 명 있단다. 지금 보러 갈까?"

"응! 고모 보러 갈래!"

데이브와 니콜은 이번 겨울 방학에 휴가를 얻었다. 머지않아 저택으로 오겠지.

형제들도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는 거라 간만에 길고 긴 만담을 나눌 생각이다.

이윽고 어머니가 아리엘을 데리고 옆방으로 향하자 나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바로 옆방에 릴리가 자고 있는데다가 만일을 대비하여 복도에 누가 지나가는지 확인까지 마쳤다.

"아우우."

"어떠니, 아리엘? 아리엘보다 나이가 적은 고모, 릴리란다. 이렇게 보니 릴리가 크면 어떻게 될 지 가늠이 가는구나."

"고모? 아리엘의 고모야?"

"우우."

공교롭게도 릴리도 잠에서 깨어나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다. 못 본 사이 성장하여 체구가 약간 커졌으며, 눈 또한 전보다 커진 것 같다.

적발금안의 소녀와, 아기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모습. 내 손에 사진기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찍고 싶은 광경이다.

"고모야, 안녕. 난 아리엘이야."

"우웅?"

"나? 나는 릴리의 조카."

"아웅?"

"고모는 말을 못 알아들어? 난 알아듣는데?"

옹알이만 하는 릴리와, 그런 릴리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아리엘. 뭔가 이상하다.

나는 물론 어머니도 이걸 듣고 살짝 놀라셨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리엘에게 질문했다.

"아리엘. 너 혹시 릴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거니?"

그 질문에 아리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뒤이어 그녀는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가 릴리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고모는 말을 못 해. 그래서 생각을 읽는 거야. 고모는 왜 이렇게 작은 거야? 아리엘은 태어날 때부터 이랬는데?"

릴리와 만나고 나서 출생의 비밀(?)에 의구심이 들었는지 아리엘이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꺼냈다.

그녀가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무슨 신화마냥 씨앗에서 태어난 아리엘과 달리 릴리는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여 낳은 결실이었으니.

나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고민하다가 어머니가 아이에게 걸맞는 대답을 해주셨다.

"왜냐하면 아리엘은 황새가 늦게 물어다 줬기 때문이란다. 릴리는 제때 데려줬지만, 아리엘은 황새가 깜빡하고 늦게 데려다줬지 뭐니?"

"그런 거야?"

"응. 설마 할머니가 거짓말을 하겠니?"

"우응······"

아리엘은 미소 지은 어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녀의 속마음을 읽어 거짓말을 간파하려는 것 같다.

여태까지 아리엘의 독심술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븐하임의 첫날밤 당시, 아르웬이 본인의 욕망 섞인 속마음을 꾹꾹 담아놓았다가 아리엘이 다 밝혔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놀랍게도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고모가 저렇게 작은 거야?"

"그렇단다. 이제 알겠지?"

"응!"

어떻게 속이신 거야. 나는 입을 동그랗게 말며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속마음을 감추려면 감출 수 있겠다만 즉흥적인 거짓말은 감추기가 몇 배는 어렵다.

그런데도 손쉽게 아리엘을 속이시다니. 만약 속마음으로 모른 척해달라고 했으면 아리엘이 더 장난스럽게 굴었겠지.

다시 말해 어머니는 순수히 본인의 역량(?)으로 아리엘을 속이신 거다.

"자. 그럼 아리엘."

"우응?"

어머니는 요람에 앉아 릴리를 보던 아리엘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아리엘은 눈을 깜빡거리며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바라봤다.

뒤이어 어머니는 아리엘이 나를 마주하도록 안아들더니, 이 기회에 잘 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리엘. 잠깐 이 할머니를 도와줄 수 있겠니?"

"어떤 도움?"

"아빠의 속마음을 읽으면 된단다. 그럼 아이작?"

"··· ···"

어머니가 눈을 부드럽게 뜬 채로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보랏빛 눈동자는 자애롭기 그지 없었으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낮게 가라앉은 어조로 한 가지 질문을 날리셨다.

"이 어미가 하나 묻도록 하마. 괜찮지?"

"······네, 뭐. 상관없어요."

"고맙구나. 그러면······"

어머니는 잠깐 뜸을 들이시더니, 아리엘을 한 번 힐끔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진은 정말로 죽는 거니?"

역시나 예상한 질문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아리엘의 독심술을 통해 내 마음을 확인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까. 내가 이럴 때를 대비하여 이미 아리엘과 입을 맞췄다는 것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듣는다면 거짓말을 하라고, 그러면 상으로 맛있는 간식을 주겠다고.

이런 근거가 있기에 평소와 달리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어머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하지만 이때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아리엘? 아빠 말이 맞아?"

"응. 맞아."

"흐음······ 그렇구나."

내가 전술핵의 격발 장치를 눌렀다는 것을.

"그럼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겠네."

"물론이죠."

"그거 기대되는구나."

당시에는 절대 알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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