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7화 〉 전술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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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나는 이미 보험을 들어놓았다. 30권이 발매되고 상황이 심각해진다면 곧바로 외전을 낼 예정이었으니.
단, 이 보험이 적용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 분노의 화살이 내가 아닌 애꿎은 사람들에게 향했을 때다.
진·릴리 커플의 팬층은 여태까지 보면 알 수 있듯이 매우 두터우면서도 결집력이 상당하다.
일단 마족들 대부분이 이들을 응원하고 있으며, 애달픈 과거와 스토리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오죽하면 주인공과 여주인공인 제논과 메리가 간간이 묻힐 정도로. 사실 이건 어느 정도 노린 거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 나가는 건 제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진주인공은 진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족과 성직자의 사랑 이야기는 이 세상 사람들이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단적인 맛, 즉 매운맛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시켜줬다.
불륜과 같은 죄악이 아닌데도 죄악 같이 느껴질 만큼의 스릴감. 여기에 더해서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낭만적인 사랑까지.
그런데 내가 다 부숴버리려고 작정을 하니 팬층으로서는 결코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마음에는 커다란 상처가 났는데 그 상처가 제대로 아물기도 전에 소금을 촥 촥 뿌린 수준이다.
'악마 숭배자가 아니라 독자들한테 살해당할지도 몰라.'
과장이 아니다. 아카데미에 막 발을 들였을 때 경호를 뚫을 뻔했던 모험가를 기억하는가?
그 모험가도 제논 일대기의 팬인데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이 팬일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보험은 착실하게 들어놓을 생각이다.
'일단 에필로그의 결말은 당연하게도······'
에필로그의 결말은 2차 악마 전쟁이 종식되고 몇 년 후의 이야기다.
몇 년 후에 제논과 메리, 그리고 릴리가 오랜만에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바뀐 점들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식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제논과 메리는 자식이 두 명이고, 릴리는 한 명.
원래 릴리는 진의 죽음으로 인해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진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새로운 희망을 가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천사로 부활시켜주고 싶은데······'
진을 천사로 부활시킨다는 건 여러모로 개연성이 맞는 설정이다. 우선 진의 영혼부터다.
루미너스와 모라가 알려주길, 필멸자가 초월자로 승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가능한 일이다.
특히 '영웅'이라 칭송받을 정도로 강한 무력을 지닌 자는 '발할라'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이건 전에 레오나가 알려준 정보다.
게다가 진은 외부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디아볼스의 영혼을 흡수하고 이성을 유지할 정도로 강하다.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더 나아가 대악마의 영혼까지 본인 것으로 만들었으니 천사로 부활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걸까.'
문득 설정을 정리하고나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아리엘은 특수한 경우이니 예외로 친다지만 다른 천사들은 부활할 수 없다.
루미너스와 모라에게도 들었으나 그들은 대충 얼버무리며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천사는 어떤 이유로 등장하지 않는 걸까. 자격이 되는 영혼은 충분한데 어째서 부활하지 않는 걸까.
'그에 반면 악마는 떼거지로 나타났고.'
'악마'와 '마족'은 전에 없던 종족이다. 기원이 인간이며 의식의 실패로 새로운 종족이 탄생했다지만 모호한 부분들이 많다.
'종'을 바꿀만큼의 무언가의 개입이 있어야만 가능한 상황. 그것도 그렇지만 인간의 기원부터가 애매하다.
어째서 인간만 악마 혹은 마족으로 변하고, 다른 종족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파고드면 파고들수록 속속 튀어나오는 의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루미너스나 모라에게 묻는다면 과연 대답해주실까.
'음······ 아냐. 이건 넘어가자.'
이런 건 내가 직접 탐구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 편이 낫다. 아직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지식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우선 외전에서 진을 어떻게 부활시키는지부터 결정할 필요가 있다. 상처받은 진·릴리 커플의 마음을 깨끗하게 치유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천사로 부활하는 건 신들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으니 패스······ 가 아니라 심히 고민된다.
매일매일 진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가면서, 자식이라는 희망을 바라보며 여생을 살아가는 릴리.
그런 릴리의 자식 앞에 천사로 부활한 진이 딱! 하고 등장하는 거다. 그리고는 진이 자식에게 엄마는 어디 있냐고 묻는 거지.
솔직히 이만한 해피 엔딩도 따로 없다. '돌아왔어'라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를 접목시키에도 편하고.
문제는 진과 릴리가 재회하는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
'환생도 힘드니까.'
이미 디아볼스의 영혼과 진의 영혼이 합쳐진 상황이다. 둘을 분리시킬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필멸자로 환생시키자니 그릇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진이 죽는 것을 정사로 잡은 것이다. 기억을 흐릿하게 넘겨받는 카이르와 달리 마땅히 부활시킬 방법이 아예 없다.
물론 그까짓 설정, 조금만 붕괴되고 상관없지 않냐고 답답해할 수도······
'······잠깐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골똘히 생각해 보니 제논 일대기는 고증만 철저할 뿐, 허구의 이야기라고 명시한 소설이다.
다시 말해 진을 천사로 부활시키되, 원래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
하물며 이건 정사로 편입되지 않는 외전. 진이 죽는 걸 정사로 두고 외전은 일종의 치유제로 삼는 것이다.
'혹시 모르니 맨 앞장에 정사로 편입되지 않는 거라고 해두자.'
그러면 훗날 누군가 토를 달지도 않겠지.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인지라 수첩에 기록했다.
만약 어째서 천사로 부활할 수 없는지 몰어본다?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대답하냐.
다소 뻔뻔하다고 할 수 있다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신들마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비밀이다.
'클라크 할아버지는 알고 계시려나?'
문득 클라크가 떠오른다. 세계의 진실을 일부나마 알고 있는 분.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쳐다봤다.
슬슬 저택으로 향하기 위해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이었으나 클라크는 아리엘과 다정하게 놀아주고 있다.
"할아버지. 이렇게 해도 보여?"
[보이긴 보인단다. 느낌은 썩 이상하지만.]
"그럼 이것도?"
[허허허허.]
······그 놀아준다는 게 조금 괴상하다. 아리엘이 클라크의 눈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스켈레톤으로 부활하여 아무런 지장도 없겠으나 저걸 어떻게 대해야 될지 감조차 못 잡겠다.
그래도 무례한 건 무례한 거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가 따끔하게 한 마디 건넸다.
"아리엘. 할아버지한테 그러면 안 되지. 어서 손 빼."
[난 괜찮다만.]
"할아버지가 괜찮다는데?"
"그래도 예의에 어긋나잖니. 이리 와."
"뿌우!"
내가 다그치자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하는 아리엘. 복어 같아서 귀엽긴 하다만 벌써부터 반항을 한다는 게 문제다.
이에 혼을 낼까 말까 고민했지만 피식 웃어버렸다. 어찌된 게 반항을 해도 이리 사랑스러운 건지.
나는 엄격했던 표정을 모두 지워버리고 따스한 미소를 지어줬다. 뒤이어 두 팔을 벌리며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지 말고 아빠한테 올래?"
"응!"
내 속마음이라도 읽었을까. 아리엘은 반항을 했다는 게 언제인듯, 방긋방긋 웃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착각인지 몰라도 날이 가면 갈수록 성장을 하는 모양이다. 그사이에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으니.
나는 아리엘을 부둥부둥 껴안으며 놀아주다가 클라크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클라크도 슬슬 우리가 저택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어서 옷을 갈아입은 상태다.
"할아버지.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든지 물어보려무나.]
"할아버지께서도 새로운 천사가 태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시죠?"
내 물음에 클라크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눈구멍에 난 황금빛이 그리 알려주고 있다.
이어서 그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어떻게 알았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그건 알고 있지. 그런데 너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
"신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강력한 신성을 씨앗으로 삼고, 그 씨앗에서 천사가 탄생한다고요. 아닌가요?"
[맞다. 고서를 뒤지다 보면 나오는 사실이지. 그리고 네가 말한 대로 현재 천사는 탄생할 수 없다만······]
클라크는 뒷말을 흐리며 내가 아닌 아리엘을 바라봤다. 아리엘은 눈을 동글동글하게 뜬 채로 클라크와 마주하고 있다.
지금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지 않을까. 그도 아리엘이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리엘이 눈만 깜빡이는 걸 보면 생각을 읽을 수 없도록 조치를 했거나, 아니면 너무 빨라서 아리엘이 읽을 수 없는 거겠지.
[스읍······ 히르트 님이 주신 씨앗에서 태어났다고 했지? 세계수의 씨앗.]
길고 긴 고민 끝에 질문을 꺼낸 클라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이 아이는 예외로 두마. 아무튼 천사가 부활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물'이 없기 때문이란다.]
"물이요?"
[그래. 물. 세계의 근원이자 만물을 탄생시키는 물.]
물이라는 대답에 더 의아해진다. 자연에도 물이 있으며, 히르트는 자연의 어머니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클라크는 팔짱을 끼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알겠구나. 아마 자연에 무슨 물이 없냐고 하는 거냐겠지.]
"네. 맞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자연이 어째서 자연이겠느냐? 너 같으면 황무지와 쩍쩍 갈라진 대지조차 자연이라 생각할 수 있겠느냐?]
단번에 이해가 가는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확실히 자연이라 하면 울창한 산림과 같은 생명을 싹트는 곳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클라크의 말마따나 사막이나 가뭄이 들어 쩍쩍 갈라진 대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의 여신인 히르트 님이라 해도 물이 없으면 자연의 여신으로 남을 수 없단다. 아, 그전에 물이 어째서 생명과 연관되는지 잘 알고 있느냐?]
"어······ 글쎄요? 물을 3일 동안 마시지 못하면 죽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사람의 신체는 물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허나 이런 과학적인 걸 말해봤자 알아들일 리가 만무하니 대충 답할 수밖에 없다.
클라크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각보다 과학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 생명력을 빼앗아가는 금법이 있단다. 그 금법의 위력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 정도지. 그리고 사람이 미라가 된다는 건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갔다는 의미. 다시 말해 물이야 말로 생명 그 자체라 할 수 있단다. 이제야 알겠니?]
"······네."
판타지와 과학이 두루 섞여 있어서 살짝 떨떠름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흠······ 그럼 바다는요?"
[바다?]
"네. 바다도 자연에 포함되잖아요."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탄생이 시작된 바다. 바다가 있어서 생명이 탄생하고, 더 나아가 인류가 등장할 수 있었다.
대신 바다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뱃사람이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항해술의 발달로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바다를 이용한 무역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해보자.
그만큼 바다는 위대하면서 잠재력이 가득한, 그야말로 모든 것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소리냐? 바다가 왜 자연에 포함돼?]
"네?"
[너 역사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바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위험한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게냐?]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바다가 원래부터 존재했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지 않은가.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말이다.
물론 그의 말마따나 악마 전쟁 당시에 바다가 탄생했다는 소리가 있다.
악마들이 세상을 물로 가득 채우기 위해 몇 달 동안 하늘의 비를 내렸다는 것. 그러나 이건 세계수가 등장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허나 그 영향으로 인해 대륙들이 잠기고 바다가 탄생했다. 또한 그 바다에 악마의 피가 흘러 크라켄과 같은 바다 괴물마저 배양시킨 거고.
이것만 본다면 이 세상만의 신화라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었던 모양이다.
"바다가 원래부터 있던 게 아니었어요?"
[당연하지. 상식 중의 상식 아니더냐? 이걸 모르다니 희한하구나.]
"··· ···"
[뭐, 아무리 너라도 모르는 게 있을 수도 있지. 어쨌거나 바다는 자연에 포함되지 않는단다. 현재는 바다를 건너는 기술이 늘어났다지만 악마의 소굴이라는 건 여전하지.]
바다는 자연이 아니라, 악마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소굴이다. 클라크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나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 도통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혹시나 해서 클라크만 이상한 건지 싶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다? 거기 악마들이 만든 곳이잖아. 뱃사람이 위험한 것도 강력한 해양 몬스터들이 득실거려서 그런 거고."
"바다가 자연이라고? 글쎄. 지금은 자연이라 할 수 있겠다만 악마가 만들어서 자연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거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는데? 네가 그런 소리를 하니 조금 의외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바다는 자연이 아니라, 악마가 인위적으로 만든 소굴이라는 것.
'······이상한데.'
신이 명확히 존재하는 곳이라 해도, 내가 알던 과학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아무래도 이번 방학은 바다를 조사해야겠다.'
재미있는 소재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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