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기인(3)
* * *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정원의 끝에 있는 쉼터였다. 대리석으로 제작됐는지 온통 흰색이었으며 배치 자체는 정자와 비슷하다.
그 앞에는 꽤 넓은 크기의 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으며 베리트의 말마따나 낚시하기에 딱 적당한 곳이다.
어째서 황궁 안에 이만한 크기의 강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만 곧장 넘겨버렸다. 스케일 하나만큼은 어마어마한 미네르바 제국이니 어떻게든 했겠지.
게다가 역사에 따르자면 본래 미네르바 제국의 수도에는 숲이 많았단다. 그곳을 천천히 개간하면서 수도를 만들었다만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아마 이 강도 그 흔적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이뿐만 아니라 미네르바 제국에는 개간되지 않은 지역이 매우 많다.
원래라면 그곳을 하나 하나 정리하면서 사람이 살만한 지역으로 탈바꿈시켰겠지만 현재 악마 숭배자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때문에 현재 모든 작업이 중단된 상황이었으나 예산이 줄줄줄 새고 있다는 걸 알아챘으니 그렇게 손해는 아니다.
"나는 여기가······"
"짐."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내는 호위 기사. 베리트는 호위 기사가 낚시대를 건네주면서 지적하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짐은 여기가 가장 좋다네.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 생각없이 낚시만 해도 되거든."
휘리릭!
낚시가 취미인 게 확실한지 좋은 터를 잡은 베리트가 낚시대를 힘차게 휘두룬다.
이윽고 멀리 뻗어나간 낚시줄이 아래로 하강하면서, 퐁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찌가 둥둥 떠다녔다.
나와 마리는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호위 기사가 앉으라고 의자를 가져다 줬기에 일어설 필요는 없었다.
"아이작. 자네는 물고기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베리트가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낚시줄에 고정돼 있었으며 뻘쭘한 상황을 깨뜨리기 위해 한 질문인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 강에는 무슨 물고기가 서식하는지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강을 바라봤다. 하류처럼 잔잔하게 흐르진 않지만 그렇다 해서 상류처럼 세차게 흐르지도 않는다.
딱 적당한 속도이니 송어나 연어 같은 물고기가 살지 않을까. 백과사전에서 얼핏 본 것 같다.
"송어, 연어, 블루뱅, 낙고기 등이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밑바닥에는 장어나 운이 좋으면 메기도 살 것 같네요."
보면 알 수 있듯이 몇몇 물고기는 지구의 명칭과 비슷하거나 똑같다. 대신 명칭만 비슷할 뿐, 그 생김새는 판이하게 다르다.
"정답이네. 모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물고기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는 거의 없는데 말이지."
"옛날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물고기에 관한 책까지 읽는 건 조금 힘들 텐데?"
베리트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꺼냈다. 그의 말마따나 내 또래 중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정확히는 책에 파묻혀 사는 책벌레를 말하는 거겠지. 설령 그런 책벌레라도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만 파고들지, 누렁이마냥 잡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종의 떠보기에 가깝다. 아무래도 내가 예언자 혹은 회귀자로 약간이나마 의심하는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정말로 신기하다는 반응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근데 난 아무거나 읽어서 뭐라 할 말이 없네.'
내가 이 세상의 문자를 뗀 지가 4살인가 5살 때쯤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택에 있는 책은 물론, 어머니가 기특하다며 다양한 책들을 구매해주셨다.
판타지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대감, 지구와 다르게 극도로 제한된 취미, 마지막으로 특유의 집돌이 기질이 발휘되어 책벌레가 된 것이다.
이걸 하나 하나 다 설명하려면 괜스레 이상해질 테니 납득이 가게끔 간결하게 답했다.
"문학, 비문학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읽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그런 책을 쓸 수 있던 거겠······ 지!"
피잉!
베리트가 중간에 말을 멈췄다가 이내 힘을 실어 대답했다. 낚시줄이 팽팽해진 걸 보아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잡지는 못했다. 물긴 물었으나 제대로 문 건 아니었는지 낚시줄이 강하게 튕겨져 올라갔으니.
원래 이런 곳에 서식하는 물고기는 원체 날쌘지라 낚시 난이도가 좀 있는 편이다.
"쯧쯧."
베리트는 텅 비어버린 찌를 보며 혀를 차다가 다시 미끼를 끼워넣었다. 이런 건 호위 기사가 해도 될 법한데 스스로 하는 모습이다.
뒤이어 다시 한 번 낚시줄을 멀리 던지고, 찌가 퐁당 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뿐히 안착했다.
"방금 무슨 말을 하다가 말았지?"
"잡다한 책을 읽었으니 제논 일대기를 쓸 수 있던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리트의 물음에 호위 기사가 대신 대답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베리트는 다시 여유를 가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지. 문학은 귀족의 전유물이라면서, 온갖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된 책을 볼 때마다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분명 같은 단어인데 해석을 해야 될 정도였다네."
"심히 동감하는 바입니다."
"혹시 그런 면이 짜증나서 쉽게 쓴 겐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네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전생의 작가 기질이 발동된 것도 있다만 결정적으로 차라리 내가 직접 쓰겠다는 마음이 컸다.
베리트도 내 발빠른 대답에 허허하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말을 아끼더니 꽤 뼈가 실린 말을 꺼냈다.
"그래야지. 자고로 글을 제대로 깨우쳐야 책에 가까워지는데, 이전까지는 아예 멀어지도록 만들어놨어. 글은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닌데 말이야."
"··· ···"
"제논 일대기 덕분에 글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네. 아카데미 입학생 중 문학생의 숫자가 대폭 늘어난 것도 그 영향이지."
낯부끄러운 칭찬에 괜스레 머리를 긁적거렸다. 옆을 슬쩍 바라보니 마리가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전생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제논 일대기는 문학과 거리가 먼 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셜록 홈즈, 얼음과 불의 노래, 마지막으로 크툴루까지. 이것들 모두 명작이라 칭송받음에도 순수문학과 거리가 멀다.
이 세상의 제논 일대기도 위와 비슷한 경우라 봐야겠지. 순수문학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만으로도 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제논 일대기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신 너무 유명해져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지?"
"제논 일대기와 비슷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설령 쓴다 하더라도 욕보인다며 스스로 펜을 놓거나, 아니면 압박을 받기 일쑤죠."
체리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보증을 해놓았기에 글을 쓸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보고 있다.
출판사에서도 미래를 위해 공모전 비슷한 이벤트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다른 곳도 아닌 세이비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세이비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단체에서 '감히'라는 이유로 반발했으니 출판사는 오죽하겠나.
조각을 해도, 연극으로 선보여도, 심지어는 영화까지 제작해도 글만큼은 무조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네는 제논 일대기와 비슷한 문체의 글이 나와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 문체는 자네만의 문장이네만?"
베리트는 고개를 살짝만 돌리며 의외라는 뉘앙스로 물었다. 그는 이른바 상징성을 해쳐도 상관없냐고 질문한 것이다.
제논 일대기는 예언서로 집중조명 받기 전만 해도 특유의 문체로 각광받았다. 그 잠재력이 제대로 폭발하여 인기를 끌게 된 것이 5권이고.
수능 문제마냥 어려운 책들 속에서 바로바로 상상이 가게 만드는 문체의 등장.
그 문체는 나만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으며 여기에 성서로 취급까지 받으니 여러모로 따라하기 꺼려질 수밖에 없다.
"아까 전에 글은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글은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 문체는 자네만의 전유물이지."
나는 덤덤한 그의 대답을 듣고 확신했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라고.
방금 전만 해도 글은 모두의 것이라 해놓고 스스로가 모순적인 발언을 꺼냈다.
이에 잠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는, 정리가 다 되자마자 청산유수처럼 입을 열었다.
"폐하. 저는 원래 있던 문자를 잘 이용했을 뿐입니다. 마치 요리하는 것처럼 말이죠. 훌륭한 요리사라 한들 재료가 엉망이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문자를 이용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재치있게 사용한다고 해서 죄가 되지는 않죠."
언어폭력을 행한 사람이 나쁘지, 그 언어에는 죄가 없다. 또한 그 언어를 익살스럽게 사용해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를 익살스럽게 쓰는 걸 장려해야 된다고 봐야 된다. 언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다양성'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전생에도 한글이 창조된 지 몇백 년이 지났음에도 갖가지 단어가 창조되는 걸 보면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언어야말로 그 누구도 제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설령 그 언어를 창조한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신이라 해도?"
"언어를 빼앗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건 신이라 해도 불가능할 겁니다. 사람은 또다른 언어를 창조할 테니까요."
"허허허."
내 말이 재미있었는지 베리트가 특유의 너털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그는 미끼도 물지 않은 낚시줄을 천천히 회수했다.
낚시줄을 모두 회수한 그는 낚시대를 호위 기사에게 넘기고는 몸을 빙글 돌렸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였기에 등을 돌리자마자 나와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올라간 입꼬리, 우묵하게 패여있는 눈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한참동안 나를 마주하던 그는 옆의 마리를 힐끔거리더니 이제 알겠다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기하군. 그 혀 놀림으로 마리를 꼬신 건 아닐 테고······ 자네도 알다시피 이 아이는 가식을 떠는 사람을 싫어하거든."
"서로 마음이 맞아 연을 맺은 것뿐입니다. 제가 정체를 밝히기도 전에 말이죠."
"호. 그건 몰랐는데. 하긴, 만약 정체를 밝히고 추파를 던졌다면 더 싫어했겠지."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베리트. 그와 동시에 마리가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이며 내 곁에 찰싹 붙었다.
나 또한 말없이 그녀의 어깨에 기대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모습.
베리트도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약간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보아하니 리나가 자네에게 가도 끼어들 자리는 없겠군. 그래도 너무 외롭게 만들지는 말게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걸요? 리나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거든요."
마리가 대답한 것이다. 겉으로는 베리트를 안심시키는 말이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르다.
그녀의 말처럼 절대 외롭게 만들지는 않을 테고, 무엇보다 리나의 진정한 속내를 파악한 지 오래다.
제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딸아이의 은밀한 취향에 대해서는 절대 모를 것이다.
그건 황제, 베리트도 마찬가지. 그는 내가 아닌 마리가 말했기에 더 신뢰가 가는지 입꼬리를 진하게 올렸다.
"고맙구나. 이 자리에 앉아서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앞으로 리나에 대해서는 너희들에게 맡기도록 하마."
"눈물을 흘리게 만들진 않을 겁니다."
"아무렴. 그것만 해도 충분하겠지."
베리트는 그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복귀하려는 듯한 모양이다.
정확히 15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만 꽤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바싹 긴장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다.
"자네들은 좀 더 구경하다 오게나. 짐은 잠깐 딸아이를 보러 가야 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그래. 아, 혹시 궁금한 거라도 있나? 조만간 만찬을 즐길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말하게."
돌아가기 직전에 베리트가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한 가지 질문했다.
"제 아버지와 무슨 인연인지 궁금합니다."
"흠······ 마이샬 경이라······ 꽤 신세를 지긴 했지."
예상했던 질문인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는 베리트. 보아하니 간단하지 않고 꽤 복잡한 인연인 것 같다.
아버지가 과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허나 황제까지 인연이 닿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다.
이윽고 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명료히 답했다.
"잠깐이지만 짐의 호위 기사로 발탁됐던 자였다네. 당시 짐은 5남 2녀 중 3남이라 대충 던져준 느낌이 강했지. 아카데미가 아닌 기사 양성소를 졸업한 평민이었거든."
"그렇군······"
"그리고 그 짧은 사이에 황권 다툼에 휘말려 국경 지대로 차출됐다네."
"······요. 예?"
황권 다툼이라니. 듣기만 해도 복잡한 정치가 얽히고 섥힌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당황하는 동안 베리트는 꽤 머쓱했던 일인지 뒤통수를 매만지며 나지막히 말했다.
"조금 복잡한 사연이라 나중에 말하겠네. 그래도 마이샬 경에는 빚진 게 조금 있지. 백작위를 주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인데 본인이 거절했고."
"그······ 아버지는 네이비 기사단이었던 걸로 압니다."
"아까 말했듯이그 전에는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못한 평민이었다네. 그런 자가 아무 입증 없이 젊은 나이에 네이비 기사단으로 전출 간다? 그것도 난리도 아닌 국경 지대로? 무슨 뜻인지한 번 생각해 보게나."
"··· ···"
"뭐. 간단한 설명은 여기서 끝내겠네. 조만간 다시 만날 테니까 말일세."
베리트는 그 말만 남기며 호위 기사와 함께 멀어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허탈한 마음에 헛바람을 뱉었다.
'······진심 엿 같았겠다.'
왜 그렇게 정계를 싫어하시는지 알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