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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09화 (410/763)

〈 409화 〉 충격과 공포(4)

* * *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결말에 대한 반응은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나는 객실에서 그 반응을 하나 하나 깊게 읽으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전생에서도 이런 반응과 비슷한 댓글들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네가 사람 새끼냐, 어떻게 죽일 수 있냐며 비판했었지.

물론 그때도 반쯤 장난에 가까웠다. 뜬금없이 죽이지도 않았으며 지금처럼 복선과 떡밥도 충분히 뿌려놓았으니까.

사실 주인공 못지 않은 조연의 죽음은 약과라고 볼 수 있다. 내 기준으로 제일 큰 내상은 히로인을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는 것.

그거 하나만큼은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기에 아예 언급조차 하는 걸 싫어한다.

신입생 환영회 당시 잭슨이 내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였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진심으로 욱했었지.

아무튼 황궁에서 속속 터져나오는 반응들을 즐겁게 감상하면서 쉬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있지만 말고 한 번 황궁을 둘러보는 게 어때?"

신문을 보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마리가 다가오면서 나에게 제안했다. 나는 그 제안을 듣자마자 그녀를 바라봤다.

객실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가벼운 옷차림의 그녀. 표정을 보아하니 어디로 나가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둘러보자고?"

"응. 어차피 오늘도 황제 폐하를 뵙는 건 힘들 것 같고, 빨라도 오늘 저녁 식사 때쯤에야 만날 것 같거든. 그러니 그때까지만 돌아다니는 게 어때? 나도 황궁의 위치는 전부 알고 있거든."

실제로 그녀의 말마따나 방금 점심 시간을 끝내고 온 참이다. 그때 우리 방으로 온 리나가 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다는 언질까지 했다.

지금처럼 신문을 읽거나 30권을 연재해도 상관없으나 모처럼의 황궁이니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다.

게다가 아카데미와 달리 황궁에서 악마 숭배자가 습격할 일은 0에 수렴한다.

자그마치 황족이 기거하는 공간인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침입할 수 없겠지. 아리엘이 흡수했던 악마 숭배자처럼 고도로 단련된 주술사면 몰라도.

'애초에 위험했으면 케이트를 통해 나를 직접 불렀겠지?'

신들의 경고도 없었으니 황궁을 둘러봐도 큰 사건은 터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위의 생각들을 거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안에만 틀어박혀있는 것도 그렇고, 황궁을 꼼꼼히 살펴볼 기회는 흔치 않으니 밖에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리나한테 말은 했어? 중간에 찾아올 수도 있잖아."

"그건 걱정 마. 이미 집사에게 말을 해놓은데다가 저녁 식사 전에는 다시 돌아올 거거든."

"그래? 알겠어."

나는 신문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는 내가 허락의 의미로 일어나자 방실방실 웃으며 등을 돌렸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갈 수 없으니 아마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올 것이다. 황궁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일하는 곳이니 보는 눈이 많다.

때문에 나 또한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간단한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가고 싶다만 마리가 크게 혼낼 게 분명하다.

"아델 누나는 안 가?"

"나는 여기서 쉬고 있을게. 원고도 지킬 겸 해서 말이야."

"알겠어. 대신 몰래 읽으면 안 된다?"

"··· ···"

왜 대답이 없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내 시선을 피하는 건가.

나는 아델리아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한 쪽 눈을 치켜떴다.

그러자 그녀는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절대 안 읽을게."

혹시 몰라서 아델리아의 눈을 감기고 찾지 못할 곳에 숨겨놓았다. 청각으로도 파악하지 못하게끔 아예 군데군데 돌아다녔다.

"그럼 갈까? 어디부터 가고 싶어?"

"난 황궁에 대해 하나도 몰라. 명소 같은 곳은 없어?"

"명소는 많고 많지. 특히 사교계가 개최되는 연회장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걸로 유명해."

"사교계라······"

사교계라는 마리의 설명에 문득 신입생 환영회가 떠오른다. 그때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난데다가 마리의 색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길게 늘어뜨렸으나 그때는 포니테일로 묶어서 새하얀 목덜미가 온전히 드러났다.

게다가 복장도 등이 훤히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있던 탓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인데 더 눈에 띄었으니.

'술을 좀 많이 마시긴 했지.'

어린애 입맛인 탓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지만, 그때 마셨던 술은 쓴맛보다 단맛이 더 강해 과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자에 앉아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것도 마리였고. 여러모로 다채로운 경험을 겪었던 환영회였다.

"나중에 너랑 결혼하면 나도 사교계에 발을 들여야 되는 거야?"

"싫어?"

"응."

"역시 거짓말을 안 하네. 난 너의 그런 점이 정말 좋아."

그리 말하더니 베시시 웃으며 팔짱을 끼는 마리. 말랑말랑한 가슴의 감촉이 팔을 타고 전해져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모두 알다시피 그녀 앞에서 거짓말은 무의미하기에 아예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다. 애초에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뭐. 사교계는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지. 보통 사교계에 데뷔하는 사람들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사람들인데 우리는 약혼까지 한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입지를 늘리기 위해 정치를 할 필요도 없잖아? 제논 앞에서 까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콩고물을 얻어먹으려고 알랑방귀를 뀌는 사람은 있겠지."

"그런 게 좋으면 사교계에 데뷔해도 돼. 굳이 알랑방귀를 뀌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괴짜를 포함해서 말이지."

나는 마리의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일단 우리 가족 중에서 사교계에 데뷔한 사람은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아버지를 비롯한 데이브와 니콜은 천성 무인이라 사교계와 거리가 멀며, 나는 전생의 영향 때문인지 지극히 내향적이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제논 일대기를 선택한 작가. 내 정체를 공개한 것도 내 딴에는 나름 용기를 낸 거다.

"꼭 할 필요는 없는 거지?"

"응. 가끔 심심할 때마다 찾아가도 상관없어. 대신 사교계는 오고 가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해. 괜히 사람들이 가기 싫어도 가는 게 아니지."

"정보라······"

정보는 어느 시대이던 간에 매우 중요하다. 그 정보 하나가 없어서 판도가 뒤집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그러나 나에게는 이미 확실한 정보통이 군데군데 존재하고 있다. 각 나라의 지도자가 내 지인인데 정보에서 뒤지는 건 말이 안 되지.

방에만 틀어박혀 있음에도 정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데 무리가 없는 이유가 이때문이다.

물론 마리가 언급한 정보는 사람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울 것이다. 그 사람이 이런 이런 일을 했다던가, 아니면 무슨 소문이 있다던가 등등.

"그럼 더 안 나가야지."

"왜?"

"바람둥이로 낙인 찍힐 게 뻔하니까."

분명 그런 소문이 날 것이다. 약혼녀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와 만남을 가졌다던지, 결혼 후에도 주변에 여자가 많다던지 등등.

원래 사람들은 뒷담화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이런 류의 소문이 무조건 나올 것이다.

솔직히 내 책임이 크긴 하다만 그 화살이 죄다 마리를 향해 날아간다는 게 문제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다 쌓이겠지.

권력의 힘을 빌려서 전부 잡아넣을 수도 있으나 여론이 이상하게 흘러가면 괜히 곤란해진다.

"아. 혹시 내가 걱정되서 그런 거야? 명칭만 본처지 사실 아니라고?"

"응. 맞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설마 내가 그정도로 허술할까 봐?"

"······무슨 말을 하려고?"

너무나도 당당한 대답에 왠지 불안해진다. 마리는 가끔 가다가 너무 당당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었으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악동처럼 진한 미소를 짓더니 팔짱을 전보다 더 강하게 꼈다.

가슴이 짓눌리는 게 모두 느껴질 정도로 밀착되어 부끄러움보다는 당황스럽다.

"다~ 생각이 있지. 일단 제논이 남편인 것부터가 크게 먹고 들어갈 거야. 그리고 여자라면 모두 부러워 할 이야기를 다 꺼내야지."

"·····굳이 묻지는 않을게."

"왜에~ 물어봐. 내가 다 대답해줄게."

마리는 앙탈을 부리며 몸을 흔들었다. 가슴 사이에 낀 팔로 인해 더 난처해지는 기분이다.

여기서 반응을 했다가 말려들 수도 있으니 아예 대답하지 않는 게 현명할 터.

그녀도 장난에 가까웠는지 더이상 앙탈을 부리지 않고 조신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팔짱은 전혀 풀지 않았다.

"칫. 그럼 정원이나 갈까?"

"정원?"

"응. 황궁의 정원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거든. 사교계가 개최될 때마다 연인들이 항상 방문하는 곳이기도 해."

"우리가 가도 되는 거야?"

"정원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곳이라 괜찮아. 연회장에 들어가려면 미리 허락을 받아야 되거든."

나쁘지 않다. 데이트 장소로도 딱 적당하다.

아카데미도 괜찮지만 오랜만에 시끌시끌한 것보다 조용히 걷는 것도 꽤 괜찮을 것이다.

"알았어. 거기로 가자."

"킥킥. 알았어."

내가 기꺼이 허락하자 또다시 키득키득 웃는 마리.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의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웃어?"

"그냥. 재미있을 거 같아서."

"뭐가?"

내 의문에 마리는 다시 한 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게 있어."

******

아이작과 마리가 간만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쯤이었다. 평화로운 그들과 달리 바깥은 현재 난리도 아니었다.

충격과 공포의 결말. 희망이라고는 일체 없으며 고문만이 가득한 전개.

그 전개로 인해 독자들이 받은 감정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부정적이었다.

"제논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제발! 제발 진이 죽지 않는다고 말 한 마디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좀 행복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부정적이면 출판사 앞에서 독자들이 모여 거세게 항의를 할 정도. 29권이 발매된 지 보름조차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반응이다.

휴재 사태를 비롯한 온갖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도 독자들이 출판사 앞에 시위를 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항의를 한 것이지, 내부적인 요인으로 문제가 된 적은 전무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일은 제논 즉, 아이작에게 향하는 중이라는 것.

그전까지만 해도 제논을 지키겠다며 시위를 한 사람들이, 이제는 제논을 잡아 족······ 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허허허허. 매튜 저것 보게나. 재미있지 않나?"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저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릴 텐데 이 사람은 말 한 마디도 없어. 허허허허."

그 광경을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머스크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출판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만 해도 얼이 나갈 지경인데, 아이작은 단 한 마디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이런 일에 대비하여 미리 결말을 알려달라고 편지까지 부쳤는데 대답조차 없다.

듣자하니 이 일을 예견하고 황궁으로 도망쳤다나 뭐라나. 머스크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지금 저택도 난리라고 했나?"

"네. 저택 앞에서도 시위대들이 몰려있습니다. 대신 뒤탈이 날 수도 있으니 우리보다는 조용한 편입니다."

실제로 마이샬 가 저택 앞에도 시위대가 몰려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출판사처럼 목소리를 높히거나 격렬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제논의 가문이다 보니 그 경호가 엄중할 뿐더러 자칫 사고라도 난다면 상황이 수습조차 못할 정도로 커질 테니까.

지금으로서는 독자들의 분노가 사그라들 때까지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일 나은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여기서 제논 일대기 30권을 받고, 그 내용이 희망적이길 바라는 것.

'만약 정말로 진을 죽인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머스크는 제논이 진을 죽일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우선 구독자 수가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갈 것이다. 진·릴리 커플을 응원하는 독자 전체가 빠져나가겠지.

그렇게 된다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출판사는 제논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중인데 구독자가 나가면 답이 없어지니.

현재 직원을 계속해서 채용하는 이유도 구독자를 최대한 관리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잉여 인력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

무조건 막아야 된다. 진을 어떻게든 부활시켜서 해피 엔딩을 맞이하도록 만들어야 된다.

'부활만으로는 부족해. 부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행복한 생활상까지 보여야 독자들의 마음이 치료되겠지.'

진이 죽는다면 독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내상을 입게 된다. 단순히 부활만으로 완전히 치유하기는 힘들 터.

이처럼 모든 계산을 마친 머스크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다소 쉬어버린 목소리로 매튜에게 말했다.

"······매튜."

"예. 사장님."

"창문 여유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게나."

"알겠······네?"

알 수 없는 머스크의 명령에 어리둥절해 하는 매튜.

이에 머스크는 소리없이 웃더니 혼이 나간 음성으로 말했다.

"조만간 창문이 다 깨질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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