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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98화 (399/763)

〈 398화 〉 누구세요(2)

* * *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몬스터는커녕 동물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가끔 가다가 마을에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 운이 좋으면 하늘에서 날아다니던 새가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내가 저택에만 박혀있고 밖으로 잘 안 나가는 것도 있었으나 우리 영지 자체가 평화로워서 몬스터를 볼 일이 거의 없다.

맹수와 몬스터도 영지에 뭐가 있어야 약탈을 하든 습격을 하든 하겠지.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전에는 그냥 깡촌 그 자체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 길을 잃어버린 맹수나 몬스터가 출몰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도륙내신다.

다시 말하지만 도륙이다.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영지민들이 저리 증언했으니 아마 일방적이겠지.

아무튼 간에 나는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하급 몬스터도 본 적이 없고, 사령술로 부활하는 스켈레톤은 더욱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클라크 님께서는······ 우리의 주술로 부활한 거라고······ 요?"

[그래. 이놈들아. 내가 친히 메세지까지 남겼잖느냐.]

이런 상황인데 내 앞에는 당당하게 말을 하는 스켈레톤이 떡하니 앉아있다. 뼈밖에 없는데 기골이 낡은 갑옷 때문인지 장대한 기골이 돋보이는 스켈레톤.

이것만 해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이 스켈레톤이 사실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인 클라크 마이샬이며 우리의 주술로 부활했단다.

도저히 믿지 못할 이야기에 나는 클라크로부터 시선을 떼어 옆쪽을 쳐다봤다.

그의 옆에는 케이트가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왜인지 몰라도 여전히 주눅든 모습이다.

"케이트 씨?"

"네, 네?"

"정말 이 분의 말씀이 사실인가요?"

스켈레톤은 사령술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악마 숭배자들의 주력기 중 하나다.

사령술사의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스켈레톤의 힘은 물론 다스릴 수 있는 양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당연히 사악한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는데 대심문관인 케이트가 직접 데려온 상황이다.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조합이다.

"네······ 루미너스 님이 말씀하신 귀빈이 확실합니다."

케이트는 내 질문을 듣고 조용히 대답했다. 자신감이 뚝­ 떨어진 목소리에 나는 한 쪽 눈을 치켜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녀가 저리 위축돼 있는 것일까. 설마 클라크와 만나서면서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걸까.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게, 클라크는 겉보기에는 말을 할 정도로 높은 지성의 스켈레톤으로 보인다.

평범한 사람 눈에는 몬스터, 그것도 사령술사가 소환한 망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케이트는 강한 신앙심을 가진 대심문관.

'충돌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애초에 루미너스도 클라크를 데려오라 하지 않았다. 그저 귀빈을 모시고 오라는, 애매한 신탁을 내렸을 뿐이지.

나는 조금 있다가 그녀와 대화를 나눠야겠다 생각한 후, 다시 클라크 쪽으로 쳐다봤다.

[이제 믿겠느냐? 그리고 호크 이놈아. 애초에 네가 직접 내 시신을 갖고 왔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잖느냐.]

말은 하고 있으나 그의 턱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며 두 눈구멍에는 황금의 빛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벙쪄있다가 무안했는지 쓰게 웃으며 코 밑을 긁적거렸다.

믿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믿어야 된다는, 그런 복잡한 표정은 덤이다.

"음······ 그러기는 했지. 그런데 누가 이런 식으로 오라고 했소? 케이트 추기경께서 곁에 없었다면 도끼로 머리를 부쉈을 거요."

[하하하! 재미있는 말이구나. 뭐, 지금은 네가 나를 이길지도 모르겠지. 지금 내가 뼈밖에 없어서 힘은 거의 못 쓰니까.]

"우웅······"

그들을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아리엘이 눈을 비비적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눈을 몇 번 비비던 그녀는 다시 클라크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걸 보아 그에게서 이상한 걸 본 모양이다. 이에 나는 의문을 담아 부드럽게 물었다.

"왜 그러니, 아리엘? 혹시 아픈 데라도 있니?"

"아니. 저거. 저거."

[허허허허.]

클라크에게 삿대질을 하며 '저거'라고 칭하는 아리엘. 클라크는 그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나 그녀는 아직 클라크가 증조부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게다가 스켈레톤이라 저거라고 칭할 수밖에 없겠지.

조만간 교육시켜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그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겹쳐져 있는데?"

"겹쳐져 있다고?"

"응. 사람이랑 뼈가 겹쳐져 있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헷갈렸으나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좀 더 편한 이해를 위해 수첩을 준비했다.

아마 뼈 안에 영혼이 깃든 게 아니라, 마치 갑옷을 착용한 것처럼 영혼에 뼈가 들러붙은 모양이다.

이윽고 이런 식으로 보이냐고 아리엘에게 물으니 그녀가 맞다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맞아! 이렇게 보여!"

"그렇구나. 아리엘은 영혼이 보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겠네."

[그러고보니 그 애가 세계수의 자식이라고 했지?]

클라크가 턱을 쓰다듬으면서 아리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한 가지 의문점이 들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응? 왜 부르냐.]

"할아버지께서도 제논 일대기를 포함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계시나요?"

만약 아무것도 몰랐다면 내가 아닌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을 것이다. 그가 눈을 감았을 당시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하지만 클라크는 나를 보자마자 자기 손자라는 걸 곧바로 알아챘다. 게다가 아리엘의 정체에 대해서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알고 있다.

이를 보면 그가 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아는지 약간 궁금해진다.

[물론이지. 장례도 못 치렀는데 성불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다고 현세에 개입할 수도 없으니 이곳저곳 떠도는 거지.]

"응? 원래 장례식을 치러야 성불할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지. 나도 장례식이 고인에 대한 예우인 줄만 알았는데 죽어보니 아니더구나. 뭐, 그것과 별개로 내가 세상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건 다른 이유에서지.]

"다른 이유에서요?"

혹시 신의 도움이라도 받은 건가 싶었다. 그러나 클라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의 상상을 한참 초월한 것이었다.

[아들 놈이 죽을까봐 곁에 있었거든.]

"······뭐요?"

그 대답에 아버지가 크게 당황하여 되물었다. 소름이 끼친다기보다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얼굴이다.

클라크는 그 반응에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범인으로서는 생각치도 못할 말을 꺼냈다.

[아무리 그래도 형제 없이 혼자 남겼는데 미안해서라도 곁에 있어야지. 물론 걱정과 달리 혼자 알아서 잘 크긴 했다만 악마 숭배자가 남아있지 않느냐.]

"··· ···"

[다행히 내가 흔적을 잘 지워서 아들을 노린 놈은 없었지. 근무지가 국경 지대인 것도 있고.]

"아니. 그런 거면 내 꿈에서라도 나와서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던가 했어야지. 가끔 꿈 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이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던데 아버지는 왜 안 그러셨소? 그러면 편히 장례를 치렀을 텐데."

아버지가 기가 찬다는 듯이 따졌다. 보아하니 이제 클라크가 자신의 친부라는 걸 완전히 믿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의 말마따나 꿈에서 죽은 가족이나 먼 조상이 등장하여 조언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신 이건 극히 드문데다가 꿈 특징상 일어나면 대부분 까먹는 편이라 큰 소용은 없다.

허나 클라크는 아버지의 질책에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어디까지나 느낌상) 묵직하게 답했다.

[안 된다. 그러면 네가 악마 숭배자의 존재를 알아차릴 게 뻔하잖느냐. 네 어미도 놈들한테 당했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지.]

"뭐? 설마 그 도적 새끼들이 악마 숭배자였소?"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클라크에게 다급히 물었다.

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7살 때쯤이었던가, 도적떼의 습격으로 어머니를 잃으셨다고.

아버지가 어렸을 때에는 각 영지마다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여서 당연히 도적떼가 많겠지만, 그게 악마 숭배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정확히는 악마 숭배자가 매수한 놈들이었지. 전란이 들끓는 시기였으니 간단한 매수로도 충분했을 게다. 하필 그때 내가 다른 지역에 있어서······ 정말 미안하구나.]

"······됐고. 이미 지나간 일이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빌 수밖에 없지. 아무튼, 어디서 뭐 하다 죽은 거요? 아버지께서는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잖소."

잠깐 숙연해지는 시간이 있었으나 아버지가 곧바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사실들이 튀어나와 따라잡기가 버겁다.

클라크는 아버지의 질문을 듣고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지더니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와 마주하자 왠지 모를 긴장감에 몸을 딱딱히 굳혔다.

뒤이어 그는 확실하지 않다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손자야. 들어보니 네 책에 칠죄종? 악마 숭배자의 최고 간부 비슷한 놈들이 등장한다는데 맞느냐?]

"어······ 네, 네. 각각 분노, 질투, 색욕, 교만, 탐욕, 나태, 탐식. 이렇게 7명이에요."

[쉽게 말해 그런 놈들을 내가 다 쳐죽이고 나도 같이 죽었다고 보면 된다.]

"네?"

뭔 그딴 괴물이 다 있어. 주인공인 제논조차 칠죄종 중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나를 비롯하여 듣는 사람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지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 같으면 허풍처럼 들렸겠지만 전에 리나에게 들었다. 지하 사원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있었다고.

또한 소환 의식은 성공했지만 반만 성공하고 내가 이곳으로 소환됐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이 바로 눈 앞에 있다.

모두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만 떡 벌린 채 경악하고 있을 때쯤, 클라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옛 일을 회상하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신 7명이 아니라 5명이었어. 칠죄종인가 뭔가 하는 것처럼 칭호는 비슷했지. 절망, 타락, 비탄, 후회, 부정.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당시에는 군주들, 즉 우두머리였지.]

"그걸 혼자서 다 죽였다고요?"

[지하 사원이라는 특징을 이용했단다. 지형이 좁아서 화력이 강한 마법은 못 썼거든. 더군다나 소환 의식이 거의 다 끝나갈 찰나여서 텔레포트로 도망갈 수도 없었고. 만약 공간이 넓었다면 한두 명밖에 못 데려갔을 걸?]

저걸 겸손이라고 해야 되나. 워낙 증거가 뚜렷하다보니 허언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런데도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니. 무엇보다 꿈에서 보았듯이 그는 스스로 영웅임을 포기한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드는 한 가지 의문.

도대체 우리 가문은 과거로부터 어떤 사명을 부여받고, 또 어떤 역사를 지녔길래 클라크가 스스로 영웅임을 포기한 것일까.

들어보면 세대와 세대를 이어서 온 것 같은데 알려진 게 단 하나도 없다. 이건 조금 이상하다.

[뭐. 그놈들 말고 추기경 중에 한 놈이 있었지만 손자랑 얘가 잘 처리해줬지. 이뿐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드러나서 하나 하나 궤멸되는 중이고.]

"저······ 클라크 할아버지?"

[응?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게냐?]

"네. 악마 숭배자의 뒤를 쫒는 건 할아버지대에서 끊은 거죠?"

[내가 고의로 끊었지.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내가 몸 담고 있던 단체가 궤멸했거든.]

이로써 확실해졌다. 클라크 대에서부터 끊어졌으나 우리 가문은 먼 과거부터 최근까지 악마 숭배자의 뒤를 쫒고 있었다는 걸.

그러면 대체 무슨 이유로 쫒기 시작한 걸까. 기록물이란 기록물은 클라크가 전부 소멸시켜서 없지만, 이제는 당사자가 앞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무언가 긴장되는 기분에 침을 꿀꺽 삼킨 후,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질문했다.

"그럼······ 저희 가문은 대체 무슨 이유로 악마 숭배자의 뒤를 쫒기 시작한 건가요?"

[궁금한 게냐?]

"궁금할 수밖에 없죠."

빨간머리에 황금빛의 눈동자. 눈에 띌래야 띌 수밖에 없는 외모에다가 대대로 이어져오는 출중한 재능까지.

허나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다. 빨간머리 때문이라도 한 줄 정도는 있어야 되는데 말이다.

이를 보면 철저하게 음지에서 활동했다는 뜻.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용사의 후예라던가, 아니면 숨겨진 왕족의 후예라던가 그런 걸까.

역사가 완전히 소실되어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클라크가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노예였지.]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자유를 갈망하는 노예.]

전혀 생각치도 못한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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