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96화 (397/763)

〈 396화 〉 클라크(4)

* * *

두 사람의 무기가 서로 부딪히고,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이 지하 사원 내를 가득 메운다.

지하라는 특징으로 인해 굉음은 메아리가 되어 여러번 울리고, 섬광은 금방 멎어들었다.

거대한 힘들이 서로 마주한 상황이었으나,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자리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으윽······"

정정한다. 클라크는 어깨에 도끼를 짊어진 채 여유로운 반면, 케이트는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고통을 참는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 고통을 보여주듯, 메이스를 쥔 두 손에서 새빨간 피가 뚝­ 뚝­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다.

단순히 무기 간의 충돌이었음에도 손바닥이 전부 까져버린 것이다.

욱신­ 욱신­

손바닥도 손바닥이지만 손목의 상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천만다행히 신체 강화를 한 덕분에 뼈가 부러지는 참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에 버금갈 정도로 고통스러울 뿐이었지. 여기서 조금만 힘이 더 가해졌다면 진짜로 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었다.

케이트는 서둘러 신성력으로 다친 부분을 치료하면서 앞을 바라봤다. 클라크는 공격할 생각이 없는지 가만히 있다.

'힘이······'

대심문관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격전을 치렀다. 악마 숭배자 이전에는 이교도들을 처지하고, 그 과정 속에서 무력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처럼 '힘'에 밀린 적은 사실상 처음이다. 단순히 꽝! 부딪혔는데 스켈레톤은 멀쩡하고 자신만 피해를 입었다.

신성력은 마나처럼 신체 강화를 하거나 무기에 담을 수 있다. 그러니 신성력의 양에 따라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케이트는 루미너스의 은총을 받은데다가 현재에 와서 신성력으로는 따라올 자가 거의 없다.

여태까지 수많은 이교도와 악마 숭배자를 처치할 수 있는 것도, 막강한 적들을 처치할 수 있던 이유도 압도적인 신성력 덕분이다.

[신에게만 매달리는 건 좋지 않아, 어린 친구.]

그런 케이트의 혼란을 정확히 꿰뚫은 클라크가 쓰디 쓴 충고를 날렸다.

그녀의 힘, 그러니까 신성력은 분명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훌륭하다. 이건 사선을 셀 수도 없이 넘나든 클라크조차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힘에만 의존하다보니 '기술'이 한참 부족했다. 여러모로 광신도에게 딱 맞는 취약점이라 해야 될까.

신을 너무나도 맹신하다보니 자기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아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그런 케이스다.

"닥쳐라!"

케이트는 클라크의 충고에 울컥하여 크게 외쳤다. 비록 힘에는 밀렸으나 아직 패배한 건 아니다.

게다가 1초라는 시간만 있다면, 자신에게 신성력이 남아있다면 언제든지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

이에 그녀가 메이스를 쥔 손을 움직이자 클라크는 그럼 그렇지라며 도끼를 쥐었다.

까앙!

황금의 불꽃이 휘감긴 메이스가 휘둘러지고, 도끼 자루가 그 공격을 손쉽게 막는다.

클라크는 도끼를 있는 힘껏 밀친 후, 케이트의 거리가 벌려지자 두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케이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클라크의 신형. 육중한 거구와 어울리지 않게 날쌘 몸놀림이요, 스피드다.

케이트는 클라크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텔레포트가 아닌 이상 몸을 움직인다면 따라 흐르는 바람이 느껴지기 마련.

쿠웅!

"윽!"

허나 그것마저 늦었다는 듯, 그녀가 시야를 돌리자마자 클라크는 이미 동작을 취하고 남은 상황이었다.

맨 처음 조사단을 제압했던 것처럼 발을 강하게 굴러 약한 파도를 일으켰으니.

돌조각을 비롯한 다양한 파편들이 얼굴로 날아와 시야를 어지럽히고, 땅마저 흔들려 균형이 어긋난다.

케이트가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신성력으로 방어막을 형성하는 동안, 클라크는 한 손으로만 손잡이 부분을 잡고 뒤로 물렸다.

뒤이어 힘과 관성을 이용하여 강력하게 휘두른다.

"······!"

케이트는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 거대한 도끼날에 다급히 뒤로 뛰어갔다. 방어막을 펼쳤다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방금 전에 무기와 무기를 맞부딪히면서, 클라크와의 힘 대결은 답이 없다는 걸 진작에 깨달았다.

콰앙!!

이윽고 케이트가 원래 있던 자리에 클라크의 도끼가 내려찍혔다. 도끼날의 반 이상이 바닥에 박히고, 그 충격으로 사방으로 파편이 튀겼다.

심지어 지진이 난 것마냥 동굴 전체에 진동이 느껴진다. 만약 저걸 정면으로 받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케이트는 호흡을 갈무리하면서 앞의 스켈레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힘 대 힘 대결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신성력은 의미가 없다. 오로지 신체 능력을 비롯한 무력 그 자체로만 쓰러뜨려야 된다.

[흠.]

그사이 클라크는 땅에 박힌 도끼를 회수하면서 잠깐 생각에 빠졌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의 힘이 나오지 않는다.

스켈레톤으로 부활해도 오감이 느껴지는 건 좋다. 마나도 생전의 것과 비슷한 것도 좋다.

허나 스켈레톤으로 부활한 탓에 '근육'이 단 하나도 없어서 생전과 똑같은 전력을 낼 수가 없다.

회피도 그렇고, 땅구르기도 그렇고, 지금의 관성을 이용한 휘두르기도 그렇고. 클라크에게는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군.'

그래도 앞의 풋내기 광신도를 제압할 여력은 충분하다. 그는 도끼를 회수한 후 케이트를 바라봤다.

다시 봐도 아름다운 미모인 건 맞지만, 클라크에게는 것보다 누군가와 닮았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이봐. 이름이 어떻게 되지?]

"뭐?"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뜬금없이 이름을 묻는 클라크에 케이트는 의아함도 잠시, 표정을 다시 굳히며 받아쳤다.

"신의 순리를 거부하는 자에게 알려줄 이름따위는 없다."

[허.]

실로 광신도다운 대답에 클라크는 헛바람을 내뱉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광신도는 상대하기 정말 벅찬 존재지만, 말이 통하게 만드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 말이 통할 때까지 무조건 제압하는 것. 사실 제압보다는 죽이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하나 상황상 좋지 않다.

어차피 죽여도 자신이 모자라서 미안하다고 신에게 고해성사 할 작자들이니 뒷맛도 좋지 않고.

[엘리는 그나마 말은 통했는데······ 어쩔 수 없지.]

버릇처럼 두개골, 아니 머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리는 클라크. 그는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는 케이트를 쳐다봤다.

방금 전 그녀가 이리 말했다. 자신이 사악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라고.

평생을 싸움으로 살아온 그에게 증명하는 방식 또한 전투밖에 없었다.

손자처럼 조리 있게 말하거나 쓰는 건 영 재주가 없었으니.

타앗!

그 생각이 들자마자 클라크는 높이 점프했다. 스켈레톤이라 몸이 가벼워진 건지, 아니면 생전부터 그랬는지 가벼운 몸놀림이다.

케이트는 그가 높이 뛰어오르자 재빨리 시선을 움직였다. 방심하면 그의 움직임을 놓쳐버리니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윽고 공중으로 점프한 클라크는 두 손으로 쥔 도끼를 옆으로 살짝 움직이더니, 이내 부메랑처럼 날려버렸다.

거대한 도끼가 부메랑처럼 곡선으로 휘면서 날아가는 장면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곡예라 생각할 법했다.

물론 케이트 입장에서는 방어는 개뿔 무조건 피해야 되는 공격이었지만.

쾅!

부메랑처럼 빙글빙글 날아가던 도끼가 케이트가 있던 자리에 박혔다. 케이트는 아슬아슬하게 피한 상황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공격이 끝난 게 아니다.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클라크가 허리를 활처럼 휜 후, 강하게 튕기면서 도끼 쪽으로 떨어졌으니.

이어서 도끼 근방에 떨어지자마자 자루를 붙잡고 간신히 회피한 케이트에게 휘둘렀다.

"큭······!"

클라크의 맹공을 간신히 피한 케이트가 침음성을 흘린다. 그러나 피하면 곧이어 클라크가 매섭게 추격하여 또다시 공격을 가한다.

검과 달리 도끼를 사용하는 자들의 공격 패턴은 매우 단순한 편에 속한다. 앞의 스켈레톤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비집고 들어가는 것 자체부터가 도박처럼 느껴진다.

짐승처럼 야성적이고 호전적인 전투 방식이며 그만큼 힘이 막강하다. 방어를 하고 싶어도 그럴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든 피해야 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회피밖에 답이 보이지 않았다. 메이스로 도끼를 강타해 경로를 튼다?

그런 기술은 케이트에게 없다. 지금까지 오직 압도적인 신성력으로 적들을 해치운 그녀로서는 생각치도 못했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강해지는데 기도만 하면 끝이었으니까. 신과 아이작에게 위협이 되는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면 그만이니까.

헌데 그 신앙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니 그녀로서는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쾅!!

클라크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한 후, 한 손으로 잡은 도끼를 강하게 내려친다. 사방에 파편이 튈 정도로 강한 공격이나 반대급부로 틈이 많아진다.

케이트는 이때를 노려 그의 몸을 향해 메이스를 내려쳤다. 황금의 불꽃이 일렁이는 메이스가 클라크의 어깨를 향해 나아간다.

까앙!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지하 사원 내에 울려퍼졌다. 뼈가 산산조각나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그걸 알려주듯이 클라크의 어깨는 멀쩡했다. 철로 이루어진 메이스에 직격당했는데도.

케이트는 말도 안 되는 뼈의 내구력에 입을 크게 벌렸다. 자세히 바라봐도 가격한 스켈레톤의 뼈는 평범해 보인다.

부웅!

그사이 자세를 고쳐잡은 클라크가 회수한 도끼를 옆으로 휘둘렀다. 케이트는 서둘러 감정을 추스리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으로 얽혀있다. 힘 대 힘 대결도 통하지 않고, 기껏 기회를 노린 공격도 무식한 내구도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다.

대체 어떻게 돼 먹은 존재란 말인가. 왜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거지?

설마 자신의 신성력이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평소 신을 향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일까? 루미너스와 아이작의 위한 자신의 마음이 알고 보면 볼품없던 게 아닐까?

이단심문관의 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벽들을 마주하고, 끔찍한 고통과 마주해서는 안 될 욕망을 맞이한 자신이다.

처음에는 힘들어 했으나 모두 극복했다. 그때마다 신앙심으로 벽을 넘고, 고통을 견디며, 욕망까지 겸허히 받아들였다.

'아냐······'

케이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신은 언제나 옳다. 신은 항상 자신이 올바른 길도 인도해주신다.

그러므로 이것 또한 시련일 터.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신성력을 주입하면 그만이다.

그 생각들을 거친 그녀가 다시금 평정을 되찾으려던 찰나, 클라크가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숙한 신자여. 신앙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너 자신을 도구로 여기지 말라는 거다. 이런다고 신이 기뻐할 것 같으냐? 슬퍼하겠지.]

이런다고 신이 기뻐하지 않는다. 광신도가 가지는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첨언이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루미너스를 위해 살아온 케이트에게는 역린이나 다름없다.

"······순리를 거스른 자가 그딴 말을 하니 어이가 없군."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걸로 모든 것을 판별하고, 판별한 걸 신의 의지라며 신에게 떠넘기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지. 그것이야 말로 너희들이 싫어하는 이단이지 않느냐?]

또다시 가해지는 무거운 팩트폭력.

클라크는 좀 전에 말했듯이 스스로에게 말재주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커버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케이트와 같은 광신도를 한두 명 만난 게 아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인간군상과 대면했다.

때문에 케이트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는 발언을 꺼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본질이 남의 입에서 언급되면 격분하는 존재.

특히 그것이 평생을 바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면 눈이 뒤집히고도 남는다.

"닥쳐라!"

그건 케이트도 다를 바가 없다. 그녀는 클라크가 정면으로 본인의 신념을 부정하자 격분하여 달려들었다.

푸른 눈동자는 화염처럼 이글거리고, 시골 처녀의 순수함을 담은 미모는 분노로 얼룩졌다.

"감히 순리를 거스른 자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느냐!"

사실 이때부터 게임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분노로 인해 메이스에 휘감긴 불꽃은 전보다 훨씬 강해졌으나 그뿐이다.

도발에 넘어가 자기 감정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풋내기. 클라크에게는 그리 보였다.

그래도 추기경으로서의 자질과, 신앙심만큼은 진짜일 것이다. 메이스에 담긴 신성력을 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단지 여느 광신도처럼 비틀린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게 문제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극단적이지 않다는 걸까.

[된다.]

클라크는 버럭 외치며 달려드는 케이트를 바라보며 묵묵히 대답했다. 이어서 굳게 쥔 도끼를 서서히 위로 들었다.

[사람은 물론이요, 더 나아가 신조차······]

서로의 무기가 또다시 격돌하기 직전, 클라크는 마지막 말을 뱉었다.

[결코 완벽하지 않으니.]

왠지 몰라도 씁쓸함이 느껴지는 말과 함께.

콰앙!!

지하 사원 전체가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

케이트와 클라크의 전투는 생각보다 빨리 종료되었다. 만약 입도 벙긋하지 않고 싸웠다면 길게 이어졌겠으나, 클라크가 케이트를 도발함으로써 일찍 끝난 것이다.

물론 그 여파로 인해 지하 사원 내부는 엉망으로 변했다.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기껏 정리했던 유골들이 사방팔방 흩어졌으며, 몇몇 개는 손상됐다.

만약 이 여파를 학자들이 보았다면 울상을 지었겠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밖으로 대피한 상황. 당분간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괜스레 들어갔다가 전투에 방해가 된다면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는 일이고, 설사 끝났다 해서 지원 병력이 오지 않는 한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니.

그러므로 현재 지하 사원에는 케이트와 클라크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케이트는 기절하여 바닥에 누워있었으며, 클라크는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고고학자로부터 받은 제논 일대기를 읽고 싶었지만 방금 그 전투로 인해 다 소실됐다.

이건 담배도 마찬가지. 땅바닥에 떨어진 게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봐도 나오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기절한 케이트의 옆에서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으며 지난일을 회상하는 일이 끝이다.

"으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 케이트가 눈쌀을 찌푸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의식을 차릴 징조였다.

클라크도 그 소리를 듣고 시선을 옮겼다. 시선을 옮기니 케이트가 몇 번 인상을 구기다가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이윽고 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눈동자가 드러나고, 몇 번을 깜빡이다가 이내 눈꺼풀이 완전히 개방됐다.

"······"

이제 막 의식을 차린 케이트는 옆에 앉아있는 클라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처음에는 웬 스켈레톤인가 싶었지만 머지않아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의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더 나아가 따끔하게 꼬집었던 말 또한.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처럼 화가 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 반대로 머리가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클라크의 묵직한 안부 인사에 케이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거렸다.

기절하기 직전에 날렸던 일격의 여파 때문일까, 온몸이 욱신거렸다.

근육 하나 하나에 통증이 이는 건 물론, 손바닥이 또다시 까진데다가 이번에는 손목까지 부러진 것 같다.

신성력으로 어찌 어찌 치료할 수 있겠으나 그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어째서······"

[왜 안 죽였냐고? 네가 말한대로 난 사악한 존재가 아니니까.]

"··· ···"

그녀의 생각을 미리 읽은 클라크가 먼저 가로챘다. 케이트는 그 답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많은 의미로 클라크는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자신의 모든 게 통하지 않았다.

여기서 또다시 고집을 피워봤자 같은 결과가 나올 터.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은 이곳에 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귀빈을 모셔오라는, 루미너스의 신탁. 괜히 클라크와 싸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몸을 일으켰다. 그 짧은 사이에 망가진 두 손과 근육통은 거의 다 치유했다.

"후우······"

[할 말이라도 있나?]

"있다."

아직까지 반말을 사용하는 케이트.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는 기색이다.

이윽고 그녀는 표독스러워진 눈으로 클라크를 바라보며 질문을 꺼냈다. 적의가 가득한 말투는 덤.

"아까 조사단이 알려줬다. 너의 목적이 아이작 님과 호크 경을 찾아가는 거라고."

[그래.]

"무슨 목적으로 찾아가는 거지? 진실로 답하지 않는다면 죽어서라도 널 막겠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 막 치렀던 전투로 깨달았다. 그러나 못하고 자시고 해야 되는 일이다.

클라크도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특유의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아들과 손자를 만나러 가는 건데 이유가 필요한가?]

"······뭐?"

[아들이랑 손자를 보러 가는 거라고. 원래라면 영혼만 가도 되지만 아들이 내 시신을 묻어주고 싶어해서 말이야. 이 방법밖에 없었지.]

"······?"

케이트는 그 대답을 듣고 눈을 깜빡거렸다. 만약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개소리로 취급했을 터.

하지만 그녀는 이미 '신탁'을 받고 온 상황이다. 지하 사원으로 향하여 귀빈을 모시고 오라는.

그 생각이 들자 망치가 머리를 세게 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직감까지 든다.

"자, 잠깐만. 아니, 잠깐만요."

[음?]

"시, 실례지만 이름······ 아니, 서, 성함이 어떻게······"

질문을 하고 나서도 아니기를 빌었다. 만약 진짜라면 자신은 큰 죄를 저지른 셈이니.

허나 야속하게도, 클라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클라크 마이샬.]

"마, 마이샬······"

아이작과 호크는 듀커르라는 미들네임이 있으나 클라크는 없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 호크 때부터 미들네임을 하사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클라크에게 미들네임이 없어서 더 신빙성이 높다. 있었다면 거짓으로 기울었겠지.

케이트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분에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뻐끔거렸다. 뒤이어 작게 말했다.

"왜······"

[음?]

"왜······ 안 알려줬······ 습니까?"

알려줬다면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케이트는 뒷말을 삼켰다.

그 질문에 클라크는 한 쪽을 치켜뜨며 무슨 헛소리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두개골밖에 없었으나 눈구멍에 난 빛이 그런 표정을 표현하고 있다.

[물어보지도 않았잖나. 다짜고짜 신의 뜻이라며 덤벼들고서는.]

"하, 하지만 조사단도······"

[그놈들은 안 믿었어. 솔직히 나 같아도 믿지 않았겠지. 갑자기 부활한 스켈레톤이 유명인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다. 이러면 믿겠어? 신탁을 받지 않는 이상 전혀 안 믿을 거야. 그래서 가만히 있던 거고.]

"··· ···"

의도는 없었겠지만 클라크의 말 하나 하나가 단검이 되어 케이트의 가슴을 찔렀다.

사실 기회는 있었다. 케이트가 조사단으로부터 정보를 더 받았다면 클라크의 이름도 들었을 테니까.

허나 그녀는 그 기회를 모두 뿌리치며 클라크와 대면하고, 더 나아가 전투까지 벌였다.

조금만 더 길게 알아봤다면, 신앙에 휘말리지 않고 침착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대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터.

"··· ···"

죄악이다.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루미너스가 내려준 신탁을 멋대로 거부했으며,더 나아가 아이작의 조부를 해칠 뻔했다.

다행히 클라크가 자신보다 훨씬 강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니. 이건 그저 죄다.

자신은 루미너스와 아이작 둘 모두에게 죄를 저지른 것이다.

"으윽······ 윽······"

[응? 어?]

"우으으. 으어어엉······"

그 생각이 들자 케이트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클라크는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크게 당황했다.

[야, 야. 왜 울어?]

"죄송합니다. 흐윽······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울지 마.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자세한 정황은 몰라도 어떻게든 위로하는 클라크. 거친 삶을 살아와도 눈물을 흘리는 여자에 대한 배려는 있는지 등을 토닥였다.

"흐어어엉······!"

큰 소용은 없었지만.

* *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