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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90화 (391/763)

〈 390화 〉 주술(3)

* * *

혹시 몰라 말하지만 주술은 만능이 아니다. 성공 확률을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매우 낮은 편에 속하며 과정이 불투명하다.

마법은 중간에 연산이 잘못됐다던가, 마나가 부족하다던가 등등. 눈에 보이는 걸 통해 수정할 수 있으나 주술은 그딴 거 없다.

어째서 인간이 주술 대신 마법을 선택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만큼 주술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에 속한 능력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간도 한때 주술의 힘을 빌렸던 적이 있어서 선호하지 않을지언정 배척하지는 않는다.

가끔 몇몇 가문은 주술의 문화가 약하게나마 잔존해 있어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또한 교단에서도 공물을 신에게 바치는 행사가 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주술의 일환이니 생각보다 깊숙히 박혀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민간 신앙으로나마 남게 되었으나 그렇다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주술을 통해 선조의 영혼을 부르는 건 주술사를 고용하는 것보다는 그 후손이 하는 게 나아. 어떻게 하냐면······"

주술을 준비하기 전, 레오나가 주술을 이행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줬다. 다만 자신은 주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큰 기대하지는 말라고.

나는 물론, 아버지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시행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예시를 두기 위한 거에 가까웠으니.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괜찮은 경험을 했다 치고,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놀라워하겠지.

애초에 미리 준비한 공물도 없······

"공물은 이걸로 할까? 세계수의 새싹이잖아."

"정말 이걸로 돼?"

"아니면 무침이라도 해 먹을래? 맛있을 거 같은데."

"됐어."

······진 않고 즉석으로 준비한 게 있다. 그건 바로 아리엘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새싹.

이 새싹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레오나의 설명으로는 아리엘로부터 떨어져 나온 거니 충분한 가치가 있단다.

실제로 알븐하임에 있는 세계수는 이파리 하나마저 굉장히 큰 가치를 지녔다고 했으니 이와 비슷할 것이리라.

하물며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라서 확률을 꽤 올려줄 거라고. 그러나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그럼 남은 건 그 대상과 관련된 건데······"

그건 바로 고인의 시신이나 혹은 관련된 물건이다. 시신이 있다면 영혼을 불러올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고.

만약 시신이 없다면 그 사람이 주로 사용한 애용품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부를 사람은 나의 할아버지다.

아버지는 레오나의 말을 듣고 턱을 쓰다듬더니 다소 애매하다는 뉘앙스로 입을 열었다.

"애용품이라······ 글쎄다. 어머니의 유품은 있지만 그 양반과 관련된 물건은 거의 없어서 곤란하구나."

"정말 하나도 없어요?"

"저택 창고에 박아놓은 게 있긴 있을게다. 한 번 찾아봐야겠지만."

할아버지를 향한 애정이 단 하나도 없어보인다. 할아버지를 칭할 때도 '그 양반'이라고 하는 걸 보면 부자 관계가 어지간히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내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대충 들었을 때는 뼛속까지 무인이었다던데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비슷한 심정이다. 이에 마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시할아버님께서는 대체 어떤 분이셨어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인으로서는 존경할만한 분이지만 아버지로서는 썩 좋지 않았지. 아들을 키운다기보다는 제자를 육성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어떤 분인지 대충 알 것 같네요."

흔히 이 시대에 있을법한 아버지 상이다. 특히 개개인의 무력이 중요한 세상이니 그런 면모가 더 두드러질 터.

하지만 지금의 아버지를 보듯이, 아버지는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자 한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다.

나를 포함해 데이브와 니콜에게 가르침을 내릴 때는 엄격할지언정 평상시에는 이상적인 아버지다.

이런 면을 보면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 사랑을 줬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 시할머님은 어떠셨나요?"

"내가 5살때 쯤에 돌아가셨지. 괴한이 느닷없이 우리 집을 습격했거든."

"······네?"

담담하게 이야기한 것과 달리 꽤 비극적인 과거다. 질문을 했던 마리는 대답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괜히 지뢰를 건드린 게 아닌지 싶어 눈치를 보는 모습이 썩 불쌍해 보였다. 하긴 나라도 저런 반응을 보였겠지.

아버지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더니 듬직하면서도 다정한 말투로 달래주셨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린 과거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나를 혹독하게 가르쳤던 이유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죄송해요."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지. 어쨌거나 그 양반을 부를 수 있는 수단은 없는게냐? 하다못해 생존 확인만 하면 된다만."

분위기가 다운되려고 하자 아버지는 곧바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특유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레오나는 그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더니 다소 애매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난감하다는 티가 역력하다.

"그게······ 특정 매개체 없이 영혼을 부르면 누가 오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괜히 잘 쉬고 있던 분을 부를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 그 영혼이 빙의를 한다거나 그래?"

"아니. 욕을 오질나게 처먹고 끝나. 너 같으면 집에서 자고 있는데 누군가 억지로 깨우면 짜증나잖아? 그런 거야."

너무 적나라한 비유라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기에는 약간 아쉽다.

"평범한 영혼은 보통 성불을 하게 되잖아. 악령이 아닌 이상 현세에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렇지."

"그러면 한 번 시도해봐도 되지 않을까? 현세에 남아있는 거라면 분명 무슨 이유라도 있을 테니까. 안 그래?"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하지만 적당한 매개체가 있어야······"

레오나는 말을 하다가 말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관찰의 시선.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잠자코 기다렸다. 보아하니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같았으니.

이윽고 레오나는 손뼉을 짝! 하고 치더니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머리카락이면 되겠다."

"내 머리카락?"

"응. 빨간머리는 이 세상에서 극히 드문데다가 그 핏줄이 명확하잖아? 원래라면 피를 뽑을까 생각했는데 머리카락이 더 확실할 것 같아서."

DNA로 따지자면 머리카락이든 피든 상관없지만 여기는 판타지 세계. 내 상식을 가볍게 초토화시키는 세상이니 뭔가 설득력이 높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따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할아버지도 나와 아버지처럼 머리카락색이 빨갛냐는 것.

실제로 니콜은 어머니를 닮아 어두운 남색을 띄고 있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아버지. 할아버지도 머리카락이 빨간색이셨어요?"

"데이브와 똑 닮았다."

"아······ 네."

그 한 마디로 할아버지의 전체적인 외모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아무튼 할아버지도 빨간머리인 건 확실해졌으니 남은 건 머리카락이다.

당연하지만 머리카락은 내 걸 사용하기로 정했다. 아버지는 군인 시절의 버릇이 남아계셔서 여전히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계셨으니까.

게다가 나는 모라의 축복 아닌 축복 덕택에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이뿐만이 아니라 중간을 잘라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순식간에 자라나 있다. 때문에 지금은 완전히 포기한 상황이다.

"어디까지 잘라드릴까요?"

"그냥 대충 잘라줘. 어차피 내일 자랄 텐데."

싹둑­

이 상황을 함께 지켜보고 있던 아델리아가 과도로 깔끔하게 잘라줬다.

머리카락 무게가 상당히 나갔던지라 자르자마자 머리가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목 뒤가 시원해지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 목덜미를 더듬더듬거렸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자라겠지만 신선했다.

"그 모습도 오랜만에 보네."

"네가 보기에는 뭐가 나은 것 같아?"

"난 아이작이 좋아. 앙."

우문현답이구나. 마리는 그리 말하고는 애정 표현으로 내 볼을 살짝 깨물었다.

그동안 레오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은 주술을 치르기 위한 준비 작업에 나섰다.

기숙사가 워낙 넓은데다가 개인 연구실로 사용될만한 방까지 있어서 준비하는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험 용도에 가까워서 크게 준비할 것도 없었다.

"누누이 언급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아줘. 난 전문 주술사가 아니니까."

"알았어. 나도 참고용으로 쓰면 되니까."

"그럼 시작할게."

주술은 정말 간단했다. 공물로 바칠 머리카락과 아리엘의 새싹을 나란히 놓은 후, 영혼을 유혹할 향초만 있다면 끝.

게다가 진행 방식도 전생에 자주 치렀던 제사와 매우 유사했다. 엎드려 절하다가 가끔씩 목례를 하는 식이다.

여기에 차이점이 있다면 화려한 음식상이 없으며 향초가 빨리 태워진다는 것 정도? 이에 향초를 자주 교체해야 된다.

마지막으로 보조 역할을 하는 레오나는 주술이 정상적으로 이행되도록 곁에서 주문을 읆조린다.

본인은 전문적인 주술사가 아니라 하지만, 아리엘의 새싹을 손쉽게 뽑은 걸 보면 '믿음' 하나는 확실하니 맡겨도 될 것이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휘이잉­

사방이 막혀있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으로 인해 향초의 연기가 세차게 휘날리다가 금방 흩어졌다.

주술을 시작하기 전 레오나가 언급했던 '전조'가 확실하다. 향초의 연무가 빠르게 흩어지는 건 영혼이 반응했다는 소리.

동시에······ 그 대상이 죽었다는 뜻과 연결된다. 아버지는 그걸 확인하시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디 가서 죽을 양반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할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감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만약 이리로 온다면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려달라 해야겠지."

그닥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자였지만 그래도 일말의 정은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리 말씀하시고는 전보다 경건하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엄숙해져서 전보다 진심을 다해 절을 올렸다. 고인에 대한 예우는 전생이든 이 세상이든 다를 바가 없었으니.

그런 우리의 믿음이 통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리엘의 새싹이 '믿음'을 강화시켰던 것일까.

틱!

잘 타고 있던 향초가 중간에 뚝­ 부러졌다. 그 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나와 아버지, 그리고 레오나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이건 레오나가 알려줬던 '징조'에 부합하지 않는 현상인데. 이에 레오나를 바라보니 그녀도 당황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여 안 좋은 일이라도 발생할까봐 걱정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우리가 바쳤던 공물로부터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두둥실­

내 머리카락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아리엘로부터 뽑았던 새싹까지.

그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은 현상에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쯤, 기다란 내 머리카락으로부터 변화가 생겼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 스으윽­ 빠져나오더니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 번만 발생한 게 아니라 연이어 떨어진다.

"······온 게 맞는게냐?"

"그, 글쎄요. 레오나?"

"보통 영혼이랑 대화할 수 있는데······ 저건 나도 모르겠네."

레오나조차 모르는 걸 보면 분명 평범한 현상은 아니다. 아버지는 혹시 모르니 뒤로 물러나라고 지시하셨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만일에 대비하여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윽고 문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쯤, 불현듯 아리엘이 생각나 그녀를 쳐다봤다.

아리엘은 떠오른 머리카락과 새싹 쪽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알다시피 그녀는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 누가 왔는지 확인하면······

툭­

그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에 머리카락과 새싹이 땅에 떨어졌다. 미약하게나마 불어오던 바람도 금방 멎었다.

분명 조용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는데 폭풍이 스쳐지나간 기분이었다.

"······끝났나?"

"그, 그런 거 같은데요?"

"대체 뭐길래 이 고생을······"

아버지는 앞으로 걸어가시다가 바닥을 확인하고는 우뚝 멈추셨다. 내게는 뒷모습만 보였으나 도중에 말을 멈춘 걸 보면 필시 심상치 않은 일일 터.

이에 조심하면서 아버지 옆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바닥을 확인하자마자 나 또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곧 가마.]

내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문장이 떡하니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걸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딱 한 명, 아리엘을 제외하고는.

"아빠. 아빠. 아까 그 사람 누구야?"

"······봤니?"

"응. 내 머리 쓰다듬고 갔어."

"··· ···"

일단 아리엘이 먹지 않은 걸 보면 착한 사람인 건 확실하네.

******

현재 미네르바 제국이 조사하고 있는 지하 사원이 있다. 악마 숭배자들이 다른 차원의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몰래 건설한 장소.

그곳을 조사하고 있는 건 미네르바 제국측이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각기 다른 이유로 지원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의미를 다 한 사원인데다가 군데군데 이끼가 낄 정도로 사람의 손과 멀어져 있는 상황이었으니.

무엇보다 소환에 성공했다는 진실을 어떻게든 감추기 위하여 미네르바 제국측에서 제한을 뒀다. 이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되면 제국은 여러 의미로 큰일나니까.

다시 말해 현재로서 그 사원을 조사하고 있는 인원은 고고학자를 비롯한 미네르바 제국측에서 지원을 온 인력들이었다.

"이보게. 이 두개골을 봐."

"음? 어우. 머리가 완전히 박살났군. 아주 시원하게 깨졌겠어. 복구하기 어렵겠구만."

"흔적을 보아하니 저 커다란 도끼로 내려친 것 같은데······"

사원을 발견하고나서 조사한 결과,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선 소환을 시도했다는 것과 그 소환이 반만 성공했다는 증거는 발견한 지 오래다. 지금은 그 주변부터 차근차근 체크하고 있다.

이 소환을 방해한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사원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등등.

고고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연구할 것들이 산더미였으며 오죽하면 숙식까지 해결할 정도로 열을 태우고 있다.

"사원을 발견할 정도면 필시 악마 숭배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건데······ 어째서 세상에 알리지 않은 거지?"

"자네도 알잖아. 악마 숭배자가 얼마나 용의주도한지를. 역사를 숨기는 것정도는 쉬웠을 거라네. 영웅만이 그들의 존재를 알았겠지."

"영웅조차 악마 숭배자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니······ 그것 참 소름돋는군. 게다가 이 영웅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어."

"패배한 영웅의 말로가 그렇지."

따닥­

그들이 신나게 연구를 하고 있을 때, 불현듯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에 고고학자 중 한 명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연구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응?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무슨 소리?"

"따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네."

"어딘가 돌이라도 떨어졌겠지."

"그런가?"

슥­ 슥­

고고학자는 그리 답하고 솔을 이용해 두개골에 묻은 먼지를 정성스레 털어냈다.

현재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시신은 주변에 널린 인골에 비해서 그나마 멀쩡한 것이다.

일단 뼈가 붙어있는 건 기본이었고 생전에 착용한 복장까지 낡았을지언정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고고학자들도 현재 본인들이 관리하고 있는 시신이 이 소환을 막은 사람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도 그럴게, 다른 시신들은 어디 하나가 박살나 있다던가 아예 분리돼 있었으니까.

"우선 키는 대략 190cm를 넘는군. 골격을 보아하니 남자로 추정되네."

"엄청 크군. 무기는 저 도끼?"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네. 다만 누구인지만 알았으면······"

따닥­ 따닥­

이번에는 확실히 들렸다. 고고학자들은 조사를 하다가 말고 동시에 행동을 멈췄다.

돌이 떨어지는 소리라 하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 마치 뼈와 뼈가 부딪히는 것 같은······

번쩍!

그순간 고고학자들이 조사하고 있던 해골의 눈에 빛이 새겨졌다. 생전의 눈동자가 어떤 색인지 알려주듯이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의 빛.

물론 고고학자들에게는 공포가 따로 없는 현상이었다.

"으아아아악!"

"스, 스켈레톤! 스켈레톤이다! 누가 사령술을 부렸어!!"

고고학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멀어지고, 다른 곳을 조사하고 있던 인원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사이 해골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자리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곁에 뒀던 커다란 양날도끼를 한 손에 쥐면서.

이윽고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얼굴을 쓸어내리는 행위를 취하던 해골은 앞을 멀거니 쳐다봤다.

[염병.]

놀랍게도 말을 하는 스켈레톤. 깨어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욕이라는 게 조금 걸리긴 해도 분명히 말을 했다.

사령술을 통해 되살아난 존재 중에서 말을 하는 개체는 극소수다. 말을 한다는 건 지성이 있다는 뜻이니.

그러거나 말거나 스켈레톤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손자를 너무 잘 둬도 탈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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