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9화 〉 주사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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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생한 사태가 악마 숭배자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며칠이 흘렀다.
사람들은 내가 알린 공표를 듣고 안도와 동시에 분개했으며, 악마 숭배자를 향한 분노가 더 강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악마 숭배자가 사람 목숨과 인권을 지렁이보다 못한 수준으로 여기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고한 희생자까지 만들어 내는 악랄함까지 추가된 상황이다.
[악마 숭배자는 사령술을 이용하여 제논의 목숨을 노렸다.]
[단순한 사령술이 아닌 영혼을 빼앗으려는 주술에 가까운 능력.]
[악마 숭배자에게 숨겨져 있는 능력들. 과연 그들은 무엇을 갖고 있는가?]
아리엘이 맛있게 먹었던 악마 숭배자에 관한 능력도 밝히는 건 잊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추측성에 불과하지만 아리엘의 증언도 그렇고 이 세상에는 악령이 빙의까지 하니 마냥 헛소리는 아니다.
하물며 마법은 몰라도 주술은 그 범위가 매우 넓어 학자들조차 난감해하는 능력.
마법이 어려워서 모르겠다만, 주술은 범위가 너무 넓어 모르겠다는 말이 있다.
이렇다 보니 현재까지 주술을 주로 사용하는 종족은 사실상 수인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
인간들 중에서도 가끔 사용하나 그건 문명이 닿지 않은 곳에만 한해서다.
[사령술의 원리는 마법이 아닌 주술에 가깝다. 순리에 벗어나는 능력이기 때문.]
[그렇다면 악마 숭배자의 주 능력은 주술인 것인가?]
[엘프는 주술이 아닌 처음부터 마법을 사용했으며 그건 신들로부터 내려왔다. 그렇다면 주술의 기원은 누구로부터 전해졌는가?]
내 목숨을 노린 능력이 주술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관심 또한 급증했다.
본래 주술은 할아버지가 알려주던 전래동화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수인, 그러니까 애니머즈가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좋은 의미로는 주술을 좀 더 파헤치기 위해 학자들이 방문하는 것이고, 나쁜 의미로는 그들이 악마 숭배자의 뒷배가 아닌가라는 의심이다.
전자는 애니머즈의 부족한 지식을 채워줄 수 있었고, 후자는 다소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인간 다음으로 큰 피해를 보는 건 우리 수인이다.]
[악마는 나약한 자들이나 믿는 것. 수인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기에 본인의 자존감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주술은 신을 향한 예의와 소망일 뿐. 자연은 그 누구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
[거기 믿는 종족 중 대부분이 인간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카운터를 제대로 날렸다. 실제로 악마 숭배자를 믿는 종족 중 대부분은 인간이다.
여기에 강경파 마족도 끼어있었으나 그들은 헬리움에서조차 손절을 때릴 정도로 막나가고 있다.
이처럼 주술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시끄러워지는 와중에도 이벤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에도 바닥이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악마 숭배자를 향한 여론이 내핵을 뚫는 중이다.
배척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벌레를 보는 것처럼 혐오하는 수준이랄까. 악마 숭배자를 조금이라도 옹호했다가 매장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째서 그들은 악마 숭배자에 빠져든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아야 된다.]
[악마 숭배자에 가담한 수준이 아닌, 종교 수준으로 빠져든 자들은 대부분 평민들. 도시와 거리가 멀거나 영지에 소속되지 않은 마을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빈민가에 살고 있는 인구 중 90% 이상은 악마 숭배자에 홀려······ 그들은 신들의 사랑과 애정이 아닌, 물욕을 더욱 원하고 있다.]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여러 사실 또한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나 이번에는 꽤 심각했다.
빈민가에서 성장한 사람들 중 9할은 악마 숭배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가 나왔으니까.
특히 빈민가의 경우는 언제 어디서든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서 악마 숭배자들의 주요 먹잇감이다.
"아델 누나. 누나는 테르스 왕궁으로 언제 갔다고 했지?"
"11살이었나, 12살이었나? 아마 그쯤이었을 거야."
"빈민가에서 살면서 이상한 일은 없었어?"
그리고 아델리아는 왕궁으로 가기 전에 빈민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 부분이 문득 떠올라 그녀에게 질문했다.
아델리아는 내 질문을 듣고 빨래를 개다가 잠시 생각하는 듯, 시선을 위로 두며 곰곰히 생각했다.
옛날이었다면 트라우마와 깊게 연관돼 있어서 말하는 것조차 꺼려했겠지만, 지금은 거의 다 해소되어 기꺼이 말할 수 있다.
"글쎄······ 그리고 난 빈민가에서 살던 게 아니야. 내가 태어난 곳은 테르스 왕국에서 제일 유명한 환락가였거든. 애당초 왕족이 빈민가로 찾아오기나 하겠어?"
"아. 그것도 그렇네."
"혹시 내가 악마 숭배자라고 의심하는 게 아니지?"
아델리아가 장난식으로 물었다. 그에 나는 능청을 떨면서 여유롭게 답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예쁜 꽃이 피어났나 싶었지. 왕궁에서도 모진 일을 당했는데 이런 걸 보면 태생부터 그런 건가?"
"흠. 흠.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네."
내 농담 아닌 농담에 아델리아가 헛기침을 하며 부끄러워한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는 걸 보면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가 타자기의 인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복사되는 페이지.
지금 뽑는 페이지가 제논 일대기 28권의 마지막 분량이다. 27권이 발매된지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28권을 모두 집필했다.
'아리엘은 지금 자고 있지?'
나는 두터운 원고를 깔끔하게 정리하다가 침대 쪽으로 시선을 힐긋거렸다. 침대 위에는 아리엘이 곤히 자고 있다.
창문에서 내려쬐는 뙤약볕을 직격으로 맞고 있는데도 쿨쿨거리는 그녀.
원래라면 커튼을 치겠지만 아리엘의 태생이 태생이다보니 그러지 않았다.
머리 위의 새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광합성을 하고 있었으니. 이건 며칠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비가 올 때는 하루 종일 늘어졌으니.'
아리엘은 햇빛을 쬐고 안 쬐고에 따라 컨디션이 갈린다. 그리고 이제 슬슬 장마철이 다가오는 중이다.
다시 말해 아리엘을 본격적으로 케어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비가 왔을 때 하루 종일 내 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으니 당분간 집필을 못 할 수도 있다.
'리나도 조만간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으니······'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나는 집필한 원고를 우편물 안에 고이 넣었다.
'기대된다.'
28권의 결말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주사위를 던질 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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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와 그에 따른 악마 숭배자들의 만행으로 인해 세상이 시끄러워져도 조용한 곳이 있기 마련.
아이작의 고향이자 마이샬 가문의 저택이 바로 그런 곳에 속한다.
제아무리 세상이 시끄러워도 마이샬 저택만큼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물론 영지가 나날이 발전되고 있는데다가 유동 인구가 급증한 바람에 업무적으로는 바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크 같은 가주에 한해서다.
더군다나 데이브와 니콜은 현재 군대에 입대하여 업무와는 거리가 먼 상황. 다시 말해 호크 혼자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호크마저도 아카데미로 간 상황이라 남은 인력이 거의 없는 상황.
가끔씩 저택으로 찾아오기는 하지만 밀린 업무를 결재하려면 빠듯해도 너무 빠듯할 수밖에 없다.
"이런 힘든 일을 엄마처럼 여린 사람에게 넘기다니. 너희 아빠도 무심하다. 그치, 릴리야?"
"우응?"
"그래. 릴리만 엄마의 고충을 알아주는구나. 그래도 너희 아빠가 아직 힘이 넘쳐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
"웅."
안나가 투덜거림에 요람에 누워있는 릴리가 손가락을 빨면서 옹알이로 대답했다.
정말로 알아듣는 건지 몰라도 말똥말똥한 황금색 눈을 보면 그간 힘들었던 게 모두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안나는 그런 릴리의 귀여운 반응을 보며 그녀의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엄마의 친숙하고 애정 어린 손길에 릴리도 맑게 웃어주는 걸로 화답했다.
"어쩜 우리 자식들은 하나 같이 예쁘지?"
꽈악!
그 말을 하자마자 조막만한 손으로 안나의 손가락을 붙잡은 릴리.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힘이 느껴질 정도로 강했다.
"······힘도 강하고."
"아우!"
"그래. 그래. 엄마 잠깐 일하다 올게. 유모?"
"네."
안나는 유모에게 릴리를 맡긴 이후, 호크가 일하는 집무실로 돌아갔다.
가주가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다면 보통 안주인이 대행을 하는 편이며, 현재로서는 안나가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
호크도 혹시 몰라서 그녀에게 도장을 쥐어줬으니 현재 영지 관련 업무는 안나가 결재하고 있다.
'사실 힘든 것도 없지.'
솔직히 말해서 힘든 건 거의 없다. 황실에서 파견을 나온 공무원들이 대신 일하고 있다.
호크가 피곤해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성격과 과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기사로 살면서 군수비리를 직격으로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안 그래도 꼼꼼한 성격인데 여기에 위쪽을 향한 불신까지 겹치니 서류 한 장이라도 눈에 불을 켜고 체크했다.
다행히 황실 쪽에서도 마이샬 가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리와 거리가 먼 공무원들을 파견했다는 걸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걸리는 게 없었으며 안나가 그나마 여유로워질 수도 있는 이유가 이덕분이었다.
'그래도 그 양이 많다는 게 흠이지만.'
오늘 업무는 1시간 정도만 하면 끝이다. 지금은 초창기라 그렇지,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면 업무도 점점 줄어들 것이리라.
어서 빨리 일을 끝내고 릴리를 봐야겠다며 집무실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남작 부인?"
"응? 아, 네. 제이스 씨."
복도를 거닐고 있다가 말끔한 청년 한 명과 마주했다. 황실에서 파견을 온 공무원 중 한 명이다.
공무원답게 정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었으나 특유의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는 남자.
그는 안나를 보자마자 손에 든 우편물을 그녀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제논 님으로부터 우편이 도착했습니다."
"정말요?!"
"예."
우편이 도착했다는 말이 두 손을 맞잡으며 소녀처럼 기뻐하는 안나.
편지가 왔다면 편지가 왔다고 말했겠지만, 저 두툼한 우편물을 보면 확실하다.
저 안에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제논 일대기 28권의 원고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이제 슬슬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으며, 진과 릴리의 행복한 미래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마워요. 혹시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
"없습니다. 그럼 이만."
"조심히 가세요~"
안나는 제이스의 딱딱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가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그녀의 품 안에는 이미 우편물이 안겨있었다.
"우리 아들도 참. 일을 못하게 만드네."
제이스가 사라지자 안나는 그가 전달한 우편물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이 우편물을 그대로 출판사에 전달해야겠지만 내일이어도 상관없다.
오늘은 주말이었으니까. 머스크는 아무리 바쁜 상황이어도 휴일만큼은 꼬박꼬박 챙겨주는 사장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읽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겸사겸사 검수를 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어서 빨리 읽어야지.'
다과를 챙길 여유도 없다. 게다가 이건 원고라서 다과를 즐기면서 읽었다가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안나는 제논 일대기 28권에 담긴 원고를 품에 꼭 안으며 집무실로 향했다.
누군가 업무적인 일로 집무실에 찾아올 수도 있으니 그곳에서 읽을 계획이다.
'어디 보자. 주인공들이 디아볼스를 어떻게 처리하려나?'
디아볼스의 본격적은 등장은 27권 막바지에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걸 보며 올 것이 왔구나라며 다음 권을 한참 기다렸다.
마족은 디아볼스가 방출하는 어둠으로 인해 전투 불가. 엘프를 비롯한 다른 종족은 전쟁으로 피해가 워낙 큰 나머지 전략적 후퇴.
남은 건 제논 일행밖에 없었으며, 그들조차 루시퍼와의 전투로 체력이 상당 부분 빠진 상황이다.
그야말로 최악이라 할 수 있었으며 과연 이걸 어떻게 타파할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다.
그리고······
"에게. 이게 뭐야?"
상당히 진이 빠지는 전투가 이어졌다. 디아볼스는 분명 대악마가 맞지만, '그릇'의 한계가 너무나도 명백했다.
흥분한 나머지 힘을 방출했다가 그릇에 금이 가버렸으며 그걸 제논 일행이 집중적으로 노린다.
더 나아가 릴리의 무한에 가까운 서포트로 제논 일행은 전혀 지치지 않았다. 또한 그동안 쌓인 유대감을 통해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적재적소로 공격을 가한다.
특히 진의 악마화가 가장 압권이다. 제논이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면 진은 전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전투씬 자체는 화려하고 서로 간의 협동을 잘 보여줘서 괜찮은 편이지만, 매력적이라고 한다면 글쎄?
특히 디아볼스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칠죄종에 비해서 한참 떨어졌다.
"너무 허무하네."
안나는 생각 외로 심플한 전개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원하는 게 이게 맞긴 하다만 막상 마주하니 허탈감이 밀려온다.
그래도 릴리와 진의 행복한 미래를 떠올리면 그리 나쁜 선택지는······
[나아간다. 디아볼스가 뿌린 어둠이. 가장 추악하고 어두운 칼날이. 가장 아름다운 빛을 향해 날아간다.]
"어?"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시간 속에서, 진이 사력을 다해 손을 뻗었지만······]
[콰악!]
[어둠이 빛의 심장에 꽂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뭐야 이게. 안나는 보라색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기어코 그릇이 깨져버린 디아볼스가 날린 최후의 일격. 그 일격은 제논도, 진도, 메리도 아닌 릴리를 향해 쏘아졌다.
진이 필사적으로 그 일격을 대신 맞기 위해 소리까지 외쳤지만······
그 일격이 릴리의 심장에 꽂히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어?"
말도 안 돼. 안나는 황망하게 중얼거리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는 없었다. 그 문장이 끝이었을 뿐.
"······씨발?"
안나 입장으로서는 욕이 절로 나오는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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