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78화 (379/763)

〈 378화 〉 통수(3)

* * *

"그러니까······ 무고한 희생자와 유족 두 명 모두 악마 숭배자였고, 저의 명예에 흠집을 낼 겸 접근하기 위해 자작극을 펼쳤다고요?"

"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입구에 죽은 채로 발견됐다."

"네."

"이게 끝?"

케이트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본인도 확신이 서지 않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게 발단과 전개, 그리고 위기까지는 완벽하나 절정과 결말이 없다. 중간에 이야기가 끊겨버린 느낌이다.

악마 숭배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들이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혹시 몰라 케이트가 성역까지 선포했으나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낮잠을 자다가 중간에 일어난 탓에 살짝 비몽사몽할 뿐이지. 너무 급박했던 것과 달리 다소 허무했다.

뿌우우웅!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쉬이 걸러들을 수 없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워낙 큰 소리여서 누구인지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껴안고 있는 아리엘에게서 나는 소리였으니.

이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무엇을 보는지 몰라도 고개를 든 채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아리엘?"

"웅?"

"방금 그거 아리엘이 뀐 거니?"

"머가?"

아리엘은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아리엘은 방귀, 엄밀히 말해 기본적인 생리 현상이 없다.

태생이 태생이다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래도 걱정된 탓에 자세히 검사까지 했다.

검사 결과, 사람으로서 있어야 할 부분은 다 있었으나 거의 쓸모가 없었다.

성인이 먹는 양보다 더 많이 먹어도 배변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트림 정도가 끝이다.

헌데 방귀를 뀌었으니 나로서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아리엘이 한 거 말이야. 뽀옹­ 소리가 나면서 속이 비워지는 느낌."

"그게 방귀야?"

"그렇지."

뿌웅!

"이거?"

"······응."

굳이 확인시켜줄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나는 천진난만한 아리엘의 화답에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뭘 먹었길래 방귀까지 뀌는 걸까. 혹시 자기 전에 먹은 간식이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자 걱정부터 앞섰다. 실제로 돌도 씹어먹는 아리엘이나 진짜로 먹었다간 큰일난다.

지난번에는 그릇까지 깨작깨작 먹을 뻔했으니 나로서는 걱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다.

"혹시 아빠가 자는 동안 이상한 거 먹은 건 아니지?"

"··· ···"

꽤 날카로웠던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아리엘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돌리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렇다면 뭘 먹은 걸까. 기숙사 안에는 아리엘이 잘못 먹을만한 음식이 없다.

굳이 있다면 냉장고에 넣어둔 반죽 정도. 그러나 그건 아리엘이 한 입 먹고 바로 뱉은 적이 있다. 아주 혼이 났었지.

뿌우웅­

대체 얼마나 많이 먹은 거야. 방귀쟁이 뿡뿡이마냥 계속 방귀를 뀌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참고로 아리엘을 혼낼 생각은 전혀 없다.

정말로 순수한 의미로 걱정되서 묻는 말이다.

"아빠가 걱정되서 그래. 그러니 말해줄 수 있니?"

"우응······ 구름 초코 쿠키?"

"구름 초코 쿠키?"

구름 초코 쿠키라니. 평범한 음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름이다.

아델리아가 새로 만들어 낸 쿠키라도 되는 건지, 아니면 아리엘이 자기 멋대로 지은 이름인지 헷갈렸다.

그동안 아리엘은 이리저리 손짓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 떴어. 그리고 구름 초코 쿠키가 앞에 둥실둥실 떠다녔어. 그래서 먹었는데?"

"······?"

"······?"

나와 케이트는 설명을 듣자마자 서로를 쳐다봤다. 표정을 보아하니 같은 마음인 모양이다.

아리엘의 빈약한 설명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초코 쿠키라니.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수첩과 마법필을 준비했다.

그림으로 그리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테니 괜찮은 선택지다.

"그 쿠키가 어떻게 생겼니?"

"사람처럼 생겼어."

"사람처럼?"

"응. 눈코는 없고, 입만 있었엉. 옷도 안 입었고."

아리엘의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미간이 조금씩 구겨진다. 정말 아리엘은 이런 걸 본 게 확실한 건가.

뒤이어 그녀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그러자 아리엘은 물론 케이트도 내 수첩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렇게 생겼니?"

"응! 맞아! 이렇게 생겼어!"

"··· ···"

발랄한 대답을 보니 내가 그린 그림이 맞는 것 같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첩에 그린 그림을 다시 체크했다.

입만 덩그러니 존재하는 달걀 귀신. 이 말이 딱 어울리는 외양이다.

"음······ 케이트 씨?"

"네. 말씀하세요."

"악령이 보통 이렇게 생겼나요? 제가 알기로는 좀 더 기괴하게 생긴 걸로 아는데."

판타지 세상인만큼 귀신이나 혼령, 그리고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악령도 존재한다.

특히 악령 같은 경우는 교단 차원에서 퇴마를 진행하며, 그외의 평범한 귀신은 한을 풀어주거나 주술을 이용해 성불시킨다.

하지만 수첩에 그려진 것처럼 생긴 귀신은 여태까지 없던 걸로 안다.

귀신조차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이건 달걀 귀신마냥 아무것도 없었으니. 좀처럼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아뇨. 악령은 생전에 한이 맺혀 사악해진 존재. 이보다 더 끔찍한 몰골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물리력까지 행사할 수 있죠."

"그렇군요. 아무튼 아리엘. 이런 걸 먹었다고?"

"응."

뽀옹­

또다시 들리는 귀엽고 앙큼한 방귀 소리. 아무래도 소화(?)가 진행 중인 것 같다.

"아이작 님. 제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말해도 될까요?"

"아, 네.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악마 숭배자는 아이작 님에게 빙의를 시도하려던 것 같습니다."

"빙의라······"

꽤 신빙성이 높은 가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빙의는 말 그대로 귀신에게 홀린 상태를 의미하는 것.

빙의가 이루어진다면 대상자의 몸은 빼앗기게 된다. 대신 영원히 빼앗기는 게 아니고 조치를 취한다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빙의의 유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만약 연기를 통해 넘어가기라도 하는 순간 사단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케이트 씨의 말은 악마 숭배자가 처음에는 인신매매범에게 빙의하고, 그 다음에는 유족에게 빙의했다는 건가요? 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예."

"뒤이어 영혼 상태로 저에게 접근했다가 아리엘이 맛있게 먹은 거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귀신은 전생에 맺힌 한이 강해서 현세를 정처없이 떠도는 존재. 다시 말해 '순리'를 거부할만큼의 한이 쌓여야 된다는 말이다.

그걸 과연 '의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악마 숭배자는 순수히 본인의 의지만으로, 그것도 혼령 상태로 나에게 접근했다.

다행히 아리엘이 맛있게 먹어치운 덕분에 대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능력은 매우 위험하다.

"아까 말씀했다시피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저도 처음 겪은 상황······"

뿌웅­

심각한 상황 속에서 울려퍼지는 방귀 소리. 케이트는 아리엘를 힐끔거렸다가 설명을 마저 이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확신을 못 내리겠습니다."

"교단에 이와 관련된 전문가는 없나요?"

"영혼 관련 부분은 성직자가 아니라 주술사가 더 잘 알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전 퇴마만 할 줄 알지, 성불은 시키지 못 합니다."

"케이트 씨조차도요?"

"예. 주술은 자연을 비롯한 '순리'에 간섭하는 능력. 제아무리 강력한 신성력이어도 신이 만든 순리에서 벗어나지는 못 합니다. 때문에 사령술도 주술에 가까운 편이죠."

기우제처럼 단순한 능력인 줄만 알았더니 전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인간조차 마법을 배우기 전에는 주술을 사용했으니 그 효과는 확실하다.

도박성이 짙어서 그렇지.

마법이 50의 힘을 사용하여 50의 결과를 얻는다면 주술은 30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고 0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조사를 해야겠어.'

마법은 몰라도 주술에 대해서는 조사한 적이 거의 없다. 현재로서는 잘 사용하지도 않는 능력이기도 하고, 불확신한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조사할 이유가 생겼다. 오늘은 아리엘이 막았지만 다음에 또 막아줄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

"알겠어요. 오늘 일은 수고하셨고, 이제······"

뿡­

더러운 걸 먹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건가. 나는 시도때도 없이 괄약근을 여는 아리엘을 쳐다봤다.

정말로 소화가 안 되는 건지 배를 감싸며 울상을 짓고 있다. 하긴 나를 노릴 정도로 타락한 영혼이었을 텐데 많이 힘들겠지.

그렇다고 약을 처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건 진짜로 배가 아픈 게 아니니까.

"아리엘. 배가 많이 아프니?"

"으응······ 조금."

"잠깐 누워보렴. 아빠가 낫게 해줄게."

"정말로?"

"아빠 못 믿어?"

그리 묻자마자 아리엘이 호다닥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나에게 물려받은 붉은 머리카락이 침대 위로 흩뿌려진다.

나는 귀여운 행동에 빙긋 웃어주며 아리엘의 상의를 살짝 올렸다. 그러자 앙증맞은 배꼽과 오동통한 배가 온전히 드러났다.

스윽­

뒤이어 내 커다란 손을 그녀의 배 위에 올렸다. 내 손이 워낙 크다보니 한 손으로도 다 덮을 정도다.

적어도 어린 아이들에게 만병통치약이라 할 수 있는 맘스터······ 아니, 엄마 손은 약손.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모두 다 한 번쯤은 받아봤을 애정 어린 손길.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많이 담겼는지에 따라 효과가 나뉜다는 속설이 있다.

"아빠 손은 약손. 아리엘 배는 똥배."

커다란 내 손으로 작은 아리엘의 배를 살살 문질러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리엘과 눈을 마주하며 빙긋 웃어주기까지.

참고로 이 행위는 실제로도 효과가 있다. 내장의 가스를 전부 퍼뜨리고, 더 나아가 사랑을 제대로 확인시켜주며 아픔이 더뎌진다는 이론이다.

아리엘도 나의 사랑을 느꼈는지 베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나 또한 웃어주며 노래와 약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불러줬을까.

뿌우우웅!

완전히 소화가 됐는지 아리엘이 시원하게 가스를 분출했다. 정확히는 가스가 아닌 영혼을.

"흐아······"

살겠다는 표정을 보아하니 안에 남아있던 모든 걸 배출해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배를 좀 더 문질러주다가 슬며시 떼어냈다.

"이제 괜찮니?"

"응! 이제 안 아파!"

"다행이네. 읏차."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리엘을 번쩍 안아들었다.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체구의 소녀.

신들이 당분간 위기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 그건 아리엘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곁에 둘 수는 없는 법. 초월자여도 사람이니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해야 된다.

'빨리 힘을 기르자.'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기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도까지만.

그리 생각하면서 아리엘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을 때였다. 문득 앞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에 앞을 바라보니 케이트가 멍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살짝 벌려져 있었으며 두 눈은 초점이 흐릿하다.

그 모습에 불안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 케이트 씨?"

"네, 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지······"

"아뇨. 없습니다."

없다니 다행······

"하아······ 하아······"

"······?"

"아이작 님의 약손······"

거, 배는 왜 문지르고 있는 거죠.

"저······ 아이작 님?"

"······말씀하세요."

"저도 배가 좀 아픈 것 같······"

"거짓말 하는 아이에게는 안 줄 거예요."

다 큰 성인한테 하면 다른 의미의 약손이 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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