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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77화 (378/763)

〈 377화 〉 통수(2)

* * *

악마 숭배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어서 이 세상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능력들이 있다.

가장 큰 예시를 들자면 사령술이 있다. 사령술조차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극비로 취급되었다.

죽은 생명을 완전히 되살리는 건 아니나 윤리적으로 심히 어긋난 행위. 이것이 마법인지 아니면 주술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팽배하다.

사령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주술처럼 의식을 치러야 하나 마법처럼 체계적인 면모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령술은 악마 숭배자들의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으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람들도 알고 있다.

허나 사령술은 단순히 죽은 시체만 살리는 능력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능력이 저것일 뿐, 실제로는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다.

죽은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를 한다거나, 아니면 본인의 영혼을 어디론가 임시적으로 이동시킨다던가.

특히 사령술에 완전히 통달할 경우, 신체 수명이 다다르면 아예 몸을 바꾸는 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때문에 악마 숭배자들 중 몇몇은 이런 방식을 사용하여 수명을 늘렸으며, 인신매매를 주로 사업인 것도 이때문이다.

'만물의 아버지'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본인들에게 알맞는 몸을 찾기 위해서.

단, 이 간악한 방식은 악마 숭배자 중에서도 소수 중에 소수만 할 수 있는 행위였기에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여기 성직자 빨리 불러줘!"

"왜, 왜 갑자기 쓰러지신 거지? 너 뭔 짓 했냐?"

"무슨 짓 하기는! 그냥 급하게 달려오길래 붙잡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고!"

현재 헤일로 아카데미 입구는 때아닌 사건으로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이 바닥에 쓰러진 노년의 여인에 허둥지둥거리고 있는 상황.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라고 몸을 흔들거나 알고 있는 응급처치를 하는 등.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었지만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야 죽었으니까.]

그런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어쩔 줄 몰라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보통 같으면 마법사라 생각하겠지만 그의 외모는 다소 특이했다.

'탁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온 몸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밋밋했다.

몸을 완전히 헐벗고 있었지만 생식기도 달려있지 않았고 마치 조각하다가 만 느낌.

얼굴 또한 계란처럼 말끔했으며 오직 입만이 달려있어서 기괴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 년이 오기 전에 빨리 가야겠군.]

남자는 그리 중얼거리면서 아카데미 안으로 이동했다. 저 나이 든 여자는 함정 내지 시간벌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아카데미 내에 있을 최대의 적, 아이작이었으니.

[제아무리 거짓 신들에게 축복을 받은 놈이라 해도 영혼만큼은 못 막겠지. 이 일을 위해서 작업까지 했고. 양은 못 이긴다.

이 대업을 위해서 얼마나 많고 귀찮은 일들을 거쳐왔는가. 그는 단 하나의 목표를 제거하기 위해 거쳤던 일들을 상기했다.

평소 같았으면 몸의 수명이 다할 때마다 인형처럼 갈아끼웠겠지만, 인신매매 사업이 제대로 들통나면서 거의 불가능해졌다.

보금자리였던 미네르바 제국에서 대대적으로 단속에 나섰을 뿐더러 주변 국가도 지원을 나선 상황.

이대로 간다면 노예상업이 완전히 뿌리 뽑힐 터. 그래서 본인이 직접 나선 것이다.

[그 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듣자하니 주변에 미녀가 한 둘이 아니라는데. 엘프 여왕도 있고. 진작에 할 걸 그랬어. 흐흐.]

남자, 아니 영혼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아이작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현재 그는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악마 숭배자의 존재가 탄로난 건 뼈 아프지만, 다행히 자세한 능력까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대업도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잠시나마 노인에게 빙의했을 때도 교단의 성직자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대심문관, 케이트마저도. 지금처럼 영혼이 노출돼 있다면 모를까, 빙의된 상태로는 특정 작업을 거쳐야만 파악이 가능하겠지.

[남을 알고 자신을 알면 무조건 승리한다. 이건 과거랑 다를 바가 없구만.]

아이작에 대해서 모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모았다. 그리고 그가 신들에게 총애를 받는다는 것까지도.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빙의를 시도했다면 이번 일은 무위로 돌아갔을 것이다. 총애를 받는만큼 신성력도 강력할 테니.

그러나 이 일을 위해 수많은 제물을 바치면서 신성력을 뚫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신성력만 뚫는다면 영혼을 잠식하는 건 일도 아니다. 신성력은 방패에 불과할 뿐, 영혼의 본질은 바꿀 수 없다.

수많은 몸을 갈아타면서 알게 된 사실이며, 덕분에 몇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이 인간이어서 다행이야. 다른 종족이었으면 시도조차 못 했을 텐데 말이지.]

우선 종족이 같아야 된다. 인간의 영혼이 엘프나 마족의 몸에 들어간다?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는 셈이라 정신적으로 붕괴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나마 수인이 괜찮지만 수인은 동물 특유의 습성을 가진 종족. 이것 또한 일상 생활에서 큰 괴리감을 불러일으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때문에 남자가 사용한 사령술, 그러니까 빙의는 같은 종족과 같은 성별만 가능하며 인간의 개체수는 전 종족을 통틀어 압도적이다.

수 백년 동안 적당한 몸을 찾아다녔고, 이번 대업을 위해서 노인의 몸까지 사용했다.

[저긴가?]

이윽고 알고 있던 정보에 따라 아이작이 머무는 기숙사에 도착한 남자.

화려한 외관과 더불어 철통 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기숙사지만, 영혼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리가 없다.

이건 마법이 아니라 '주술'에 가까운 능력이었으니.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침입했다.

영혼이어서 그 누구도 볼 수도, 감지할 수도 없었으며 벽조차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영혼만 빼앗으면 남은 건 농락 뿐이지.]

몸만 빼앗으면 몸의 주인은 승천을 하거나 현세를 떠돌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므로 원래 주인은 죽는 거나 마찬가지. 자신은 능력으로 또다른 몸을 찾으면 그만이다.

뒤이어 남자는 기숙사 하나 하나 뒤지면서 아이작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복도의 맨 첫째에 배치된 기숙사.

[여기는 아니군.]

그곳은 아이작의 약혼녀, 마리의 방이었으나 현재 그녀는 수업에 나가고 없다.

남자는 벽을 통과하며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자마자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서 일어나라! 겨우 이런 걸로 쓰러지면 안 된다!"

"허억······ 허억······"

"이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자들이 많다! 어서 일어나!"

"네, 네에······!"

사자의 포효 소리와 같은 남자의 우렁찬 외침. 그리고 그 앞에 쓰러져 있는 여기사.

호크와 아델리아였다. 호크는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 반면, 아델리아는 땅에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결코 손에 쥔 검을 놓지 않았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대변하고 있는 모습.

남자는 둘의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여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붉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 젊은 남자라 했으니 아니군.]

외모의 특색을 보면 제논과 유사하나 젊지는 않았다. 이에 남자가 그들을 지나치려던 찰나였다.

"··· ···"

마치 남자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호크가 남자가 있는 방향을 빤히 주시했다.

전반적으로 호탕하게 생긴 이미지인 호크. 그런 그가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니 그 위압감이 사뭇 굉장했다.

오죽하면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남자마저도 크게 움츠릴 정도.

영체 상태인데도 사자 앞의 초식 동물처럼,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하아······ 하아······ 어딜 보시는 거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 착각이었나보군."

"그럼 다시 가겠습니다."

"오거라."

다행히(?)도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호크가 훈련을 진행해도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오금이 저린다라는 표현을 이럴 때 사용하는 걸까. 단순히 눈만 마주쳤는데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넣은 것 같다.

[어, 어떻게 된 핏줄인지······]

남자는 서둘러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자를 낳는 건 역시 사자라고, 아버지도 심상치 않았다.

어쩌면 저 핏줄에 뭔가 있는 거라도 아닐까.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거실로 이동했다.

[······저기 있군.]

그리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이 모든 일의 근원, 아이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거실에 배치된 작은 침대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다.

하나로 묶었던 머리카락도 풀었기에 화려한 적발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짜증나게 생겼군.]

남자는 세상 물정 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작을 보며 툴툴거렸다.

정말 짜증날 정도로 잘생긴 미모다. 잘생김의 상징인 높은 콧대와 갸름한 턱선. 마지막으로 적당한 길이의 속눈썹까지.

머리카락까지 긴 탓에 순간 여자로 착각할 뻔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몸을 갈아탔던 남자지만 아이작만한 미남은 극히 드물었다.

제논 일대기로 명예와 부를 챙기고, 여기에 약혼녀를 포함한 아름다운 미녀들까지.

악마 숭배자의 가장 큰 적수이기 전에 그냥 짜증나는 존재다. 남자는 이 대업을 진행하기를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의 몸을 차지하면 아이작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설령 들켜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그의 몸에 상해를 입히면서 협박을 해도 되고, 정 안 되면 탈출하면 그만이니.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를 부여잡고 오열할 사람들을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짜릿해졌다.

[그나저나······]

얘는 누굴까. 남자는 아이작의 몸을 차지하기 전, 그가 인형처럼 껴안고 있는 대상을 바라봤다.

아이작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으며,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되질 않을만큼의 미모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머리 위의 새싹과 등 뒤의 날개.

외양만 본다면 문헌 속의 천사가 확실하나 남자는 그럴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간의 수명을 초월한 그의 삶 속에서도 천사는 없었다.

사실 아이작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었고, 그 자식을 위해 날개를 달아줬다. 당연히 그 날개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고.

[그런데 20대도 안 됐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얘는 대체 뭐지?]

정보에도 없던 사실에 남자가 의아함을 품고 있을 때였다.

번쩍­

아이작의 품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리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이작의 닮은 황금색 눈동자.

뒤이어 그녀는 시선을 돌려 영체 상태로 있던 남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방금 전 호크가 우연히 본 거라면, 아리엘은 두말 할 여지도 없이 남자와 마주하고 있다.

[뭐, 뭐······]

그에 남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아리엘은 꼬물꼬물거리며 아이작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작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서 충전이 필요했던 상황이었으니.

이윽고 아리엘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작디 작은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꽈악!

[뭐, 뭐야?!]

잡았다. 아니, 잡혔다.

남자는 아리엘이 영체 상태의 자신을 붙잡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수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체 상태의 자신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

게다가 그들조차 볼 수 있는 것뿐이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다. 허나 아리엘은 직접 만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남자가 당황하는 동안 그의 발을 붙잡은 아리엘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행동에 나섰다.

"아앙."

텁­

영체의 발 끝을 입에 넣은 아리엘. 그 행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쭈욱 이어졌다.

"쭈압. 쭈압. 쭈읍."

맛있는 음식을 빨아먹는 것처럼, 남자의 발 끝부터 시작하여 흡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부터 시작했으나 무릎과 허벅지를 지나, 마침내 사타구니까지.

[으아아악!! 이, 이거 놔!!]

영체임에도 고통을 느끼는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둥거렸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시도했으나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아이작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그에게로 손을 뻗었으나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이작에 간신히 닿을 뻔했던 손이 서서히 멀어졌으니. 아리엘이 기어코 몸통 부분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도, 도대체······! 이 년은 뭐야?! 뭐냔 말이다!]

"쭈웁."

[이, 이런 건······ 계획에······!]

쏘옥­

마침내 영혼의 머리까지 먹어버린 아리엘. 그녀는 아이작이 가르쳐줬던대로 꼭꼭 씹어서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꺼억."

시원한 트림 한 방과.

뿌웅­

귀여운 방귀까지. 아리엘은 방귀를 뀌자마자 뒤를 돌아봤다.

방금 전 시꺼먼 영혼과 달리, 순수함을 알려주듯이 새하얀 기운이 하늘 위로 몽실몽실 솟아나고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리엘은 기운이 천장을 뚫고 사라지자 다시 시선을 아이작 쪽으로 옮겼다.

일련의 사태 속에서도 아이작은 곤히 자고 있었다.

"하암······"

아리엘도 부족한 잠을 청하기 위해 꼬물꼬물거리며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작도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아리엘의 몸을 살포시 껴안았다.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부녀의 행복한 단잠이 이어지고.

"아이작 님! 아이작 님! 빨리 문을 열어주세요!!"

뒤늦게 찾아온 케이트가 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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