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5화 〉 우려하던 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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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에게 특훈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 내 일상은 단순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운동을 끝낸 후, 아버지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그때 아리엘은 내 모습을 지켜보거나 아델리아가 직접 데리고 다닌다.
이 패턴을 이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훌쩍 흘러가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몰려오는 통증들까지.
한 번 제대로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특유의 집중력을 통해 훈련에 집중하는 건 쉽다. 그 이후가 문제지.
아버지도 내 집중력은 전투에 있어서 마냥 좋은 게 아니라고 하셨다. 사활이 걸린 전투는 작은 변수가 큰 결과를 낳기 때문에 주위를 잘 살펴봐야 된다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일종의 습관이어서 고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때문에 아버지도 잘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충고하셨다.
아무튼 내 일상은 대략 이렇다. 아버지에게 훈련을 받고, 집필도 하고, 아리엘과 놀아주거나 등등.
기숙사라는 한정된 공간이어서 답답하긴 해도 나름 알뜰한 삶을 보내고 있다.
"너도 옛날에는 아버지에게 훈련을 받았어?"
"응. 형제들이랑 대련도 했고."
가끔 가다 색다른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빗질을 하고 있는 수인, 레오나처럼 말이다.
나는 빗질을 할 때마다 뭉텅이로 빠지는 밤색 머리카락을 대충 뭉쳐서 바닥에 버렸다.
저번에 레오나의 어머니, 루시아가 말했듯이 레오나는 수인이라 털이 엄청나게 빠지는 대신 그만큼 자라난다.
때문에 털관리는 필수였으며 다른 부분은 몰라도 머리카락은 다른 사람이 대신 관리해줘야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원래는 루시아가 레오나의 머리카락을 관리해줬지만, 이제 그 책임이 나에게로 넘어왔으니 사흘에 한 번씩은 기숙사에 찾아오는 편이다.
"그릉. 그릉."
내 빗질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레오나가 고양이 특유의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 솟아난 동물귀도 까닥거리고, 꼬리 또한 좌우로 살랑살랑거렸다.
정말로 애완동물을 관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기분이 묘해졌다.
"형제들이랑 대련을 할 때 다치진 않았어?"
"많이 다치긴 했지. 뼈가 부러지는 건 기본이고 심할 경우 내장이 삐져나올 뻔한 적도 있어."
"······안 죽어?"
"수인은 회복력이 빨라서 그정도는 경상이야. 아마 다른 종족이 죽을 정도의 부상이 수인에게는 중상일 걸? 과거부터 워낙 거친 환경에서 살다 보니 그렇게 진화한 거지."
섬뜩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레오나도 확실히 수인인 모양이다. 전투종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종족.
"물론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회복력이 약한 편이야. 너도 알다시피 피가 반밖에 섞여있지 않았거든. 대신 머리가 좋아서 기술 같은 건 다 알고 있어."
"기술이라······ 무기는 안 써? 듣자하니 수인은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무기를 쓰고 있다던데?"
건국왕, 히크가 애니머즈를 세우기 전까지 수인은 오직 맨몸으로만 싸웠다. 굳이 무기를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들에게는 강철보다 단단한 발톱과 바위도 씹어버릴 치아가 있다.
또한 무기의 유무로부터 나오는 리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탄탄한 신체 능력까지.
하지만 히크가 문명을 세우기 위해 직접 무기를 들었고, 그 무기가 거대한 양날 도끼라는 건 역사에 명확히 기록돼 있다.
수인 특유의 강력한 근력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서 도끼만큼 적합한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난 딱히? 나는 계승권과 거리가 멀고 몸보다는 머리를 활용하는 편이라 무기는 안 써. 타고난 힘도 형제들에 비해서 강하지도 않고. 그래서 타격보다는 유술을 선호하는 편이야."
"유술이라······ 그게 적합하긴 하겠네."
"한 판 붙어볼래?"
레오나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진심이 아닌 장난기가 다분히 묻어있는 미소다.
나는 그녀의 권유에 피식 웃었다가 두 손으로 고개를 붙잡은 후 원위치로 돌렸다.
대련은 아버지와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 번 할 때마다 진이 빠져버리는데 다른 사람과 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그런 걸 보면 니콜 누나랑 아델 누나가 대단하네.'
그들은 무학과 조교로서 주말마다 학생들의 대련 상대가 되어준다.
제아무리 강철 체력을 지녔다고 한들 대련을 쉴 틈 없이 하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레 존경심이 인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리 느껴진다고, 현재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요즘 수업은 어때? 할만해?"
"물리랑 수학 빼고는 할만해. 그건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
"그게 정상이야. 알아들었으면 진작에 마법사를 하고도 남았겠지."
"너도 몰라? 예언자 아니었어?"
"나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아. 그리고 예언자 아니야."
이 세상의 물리 및 수학은 마법으로부터 파생되었다. 마법을 분석하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에 물리학자 혹은 수학자가 마법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은 천재라는 단어조차 부족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설명하는 건데 범인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편하다.
이렇다 보니 그들의 설명을 이해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마법사가 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를 직접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은 아직 없구나.'
원래 문과와 이과가 분리되어야 하지만 헤일로 아카데미는 그렇지 않다.
그저 무학과 문학 이렇게 둘로만 나뉘어 있으며, 그것 외에는 없다.
학문 자체는 발달돼 있어도 분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걸 보면 갈 길이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문과라서 상관없지만.'
나는 레오나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빗질해줬다. 여름철이라 빗질을 할 때마다 뭉텅이로 빠지는 것이 살짝 걱정된다.
빠지는만큼 자란다고 하는데 너무 많이 빠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나는 내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골골거리고 있다.
"혹시 머리를 자를 생각은 없어?"
"한 달이면 원상복귀되는데?"
"그렇게 빨리 자라?"
"여름이라 이정도지, 겨울 때는 더 심해. 그나마 지금이 적당한 편이고."
"관리를 빡세게 해야겠네."
"그렇지.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서방님?"
레오나가 능글맞게 머리를 내 가슴팍에 비비며 부탁했다. 정말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느낌이다.
나는 그녀의 애교에 부드럽게 웃으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더욱 진해졌다.
"아참. 레오나.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뭔데?"
"수인들은 악마 숭배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개새끼들이지. 우리를 노예로 잡는 것도 모자라서 제물로 사용했잖아. 우리나라에서도 공식적으로 항의했고."
레오나의 말마따나 애니머즈도 현재 사태에 분개했다. 특히 종족전쟁 당시 제노사이드의 피해자여서 이런 일에 민감하다.
특히 애니머즈는 아직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도 아닌데 분개했다는 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셈이다.
"개대끼들?"
"어?"
"응?"
레오나가 투덜거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이 특유의 혀 짧은 발음은 덤.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빗질을 하는 걸 멈추며 시선을 옮겼다. 이건 레오나도 마찬가지.
시선을 옮기니 아리엘이 입에 검지 손가락을 물며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리엘? 자고 있던 거 아니었니?"
"방금 일나써."
그리 답하며 이쪽으로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리엘.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뭉치들을 발견했다.
뒤이어 널부러져 있는 머리카락 뭉치를 하나 집어들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리엘.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입을 크게 벌려서······
"에헤이.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지지야, 지지."
"지지?"
"응. 지지야."
먹을 뻔한 걸 내가 간신히 말렸다. 아무리 잘 먹어도 저런 걸 먹으면 아리엘이라도 탈이 난다.
아리엘은 내 지시에 잘 뭉쳐진 밤색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사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레오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귀엽네."
"응?"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진짜 천사가 맞지?"
"그렇지."
"히르트 님이 선물로 주신 씨앗에서 태어났다고?"
"응."
레오나에게도 아리엘에 대한 설명은 모두 끝낸지 오래다. 다만 그때는 아리엘이 자고 있었기에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리엘도 처음 보는 수인이 신기했는지 황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마주했다.
나는 그녀가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빗질을 잠시 멈췄다. 지금은 둘의 만남이 더 중요한 것 같으니.
"읏차."
이에 아리엘을 번쩍 안아든 뒤 레오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내가 안는 순간까지도 아리엘의 시선은 여전히 레오나에게 고정돼 있다.
이건 레오나도 매한가지. 색채가 서로 비슷한 황금색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삽시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리엘. 인사해. 레오나라고, 앞으로 아리엘의 또다른 엄마가 될 사람이야."
"엄마?"
"응. 엄마."
뭔가 느낌이 이상한 소갯말이었으나 저것 말고 딱히 할만한 인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레오나의 발정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확정된 사항이니 미리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빠 기운이 없는데?"
"······조금 있으면 있을거야. 아직은 아니니 언니라고 불러도 돼."
"우응······ 아랐어. 그럼 레오나 언니?"
"하, 한 번 안아봐도 될까?"
아리엘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렸는지 레오나가 다급한 음성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두 팔을 벌리며 다리를 동동 구르는 것이, 간절하다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워낙 절박하게 보였기에 그녀가 원하는대로 아리엘을 조심스레 넘겨줬다.
아리엘도 레오나가 싫진 않은지 순순히 그녀의 품 안에 안겼다.
"스읍······ 하아. 정말 히르트 님의 자식이 맞구나. 자연의 향기가 강하게 느껴져."
아리엘을 안자마자 냄새를 맡는 레오나. 정수리 위에 솟아난 새싹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것까지 맡을 수 있어?"
"물론이지. 혼혈이어도 감각만큼은 수인에 가깝거든. 그런데 이 새싹은 언제 자라?"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 크면서 자랄 것 같은데?"
할짝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레오나가 돌발 행동을 취했다. 갑자기 아리엘의 뺨을 혀로 핥는 것이 아닌가.
저것이 레오나의 강한 애정 표현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과연 아리엘이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
다행히 아리엘의 반응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단지 무슨 행동을 한 건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을 뿐.
레오나는 그런 표정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신 뺨을 핥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찹살떡 같은 뺨이 혀로 그루밍으로 인해 흔들거렸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거부하고도 남을 애정 표현이었겠지만 아리엘은 천사.
그것도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니 아마 레오나의 감정을 진작에 파악한 것으로 추측됐다.
살랑 살랑
레오나가 연이어 애정 표현을 하는 동안 그녀의 꼬리가 아리엘 쪽으로 넘어왔다.
아리엘은 그루밍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까먹었는지 시선을 꼬리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흔들거리는 꼬리를 바라보다가 조막만한 손으로 덥썩 붙잡았다.
"우왕."
"할짝. 신기해?"
아무래도 일부러 만지라고 꼬리를 갖다 댄 모양이다. 레오나는 아리엘의 반응에 그루밍을 하다 말고 입을 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엘은 붙잡은 꼬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서서히 얼굴에 갖다 대었다.
처음에는 좀 더 가까이 관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순전히 우리의 오판이었다.
"아앙."
입을 크게 벌린 아리엘이 꼬리를 안에 넣더니.
"암!"
콰악!!
그대로 강하게 깨물었고.
"캬아아아앙!!!"
난데없는 기습에 레오나가 고양이처럼 거센 비명을 터뜨렸다.
"아, 아리엘! 그거 빨리 뱉어! 뱉으라고!"
"우움?"
"먹지 마! 먹으면 혼난다! 빨리 뱉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대형 사고가 터져버렸다.
******
그 시각 아이작의 명령으로 파견을 갔던 케이트는······
"이 놈들인가요? 감히 그분의 명령을 무시한 게?"
"예. 그렇습니다."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 낸 당사자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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