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3화 〉 우려하던 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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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케이트는 행복감에 하늘로 승천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루미너스의 충실한 종으로서, 욕망이라는 걸 알기 전에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이작을 만나고 나서 성에 눈을 뜨게 되고, 더 나아가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았다.
매일매일 옆에 있고 싶은 기분. 곁에만 있어도 가슴 속의 무언가가 차오르는 기분.
특히 손을 잡을 때는 차오르는 게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올라 몸 전체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케이트는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루미너스가 언급했던 사랑이라고.
신과 신자들이 서로 교감을 하는 것 또한 사랑이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좀 더 농밀하고 질척했다.
그리고 루미너스는 이걸 욕망이라고 표현했으며,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상이라고 설명해줬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응당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며, 자신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지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본 자기 위로조차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만큼의 쾌락을 얻었는데, 아이작과의 관계는 얼마나 황홀할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의 씨앗을 받고 싶었으나 최대한 욕망을 억눌렀다.
강제로 하는 건 범죄다. 이것만큼은 케이트의 머릿속에 착실히 박혀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것조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작에게 들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기에.
언제나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 매일 곁을 지켜준다면 씨앗을 주겠다.
······뭔가 더 추가된 것 같지만 적어도 케이트한테는 그렇게 들렸다.
루미너스 못지 않게 신봉하는 사람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다.
"감히······"
하지만 오늘로서 그 감정이 부서질 위기에 처했다. 아이작과의 관계가 악화된 건 절대 아니다.
감히 그의 지시를 무시하고 사건을 터뜨린 우매한 자들에 분노였다. 그건 바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
이벤트 발췌 당시 아이작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했다.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생길 바에야 10명의 악마 숭배자를 놓치는 게 훨씬 낫다고.
다소 극단적인 면모가 있는 케이트로서는 그의 당부가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선택을 존중했다.
말 그대로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지,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건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으니.
더군다나 아이작이 강조까지 했으니 케이트로서는 전적으로 따를 뿐이다. 아이작이 추구하는 길이 곧 자신이 나아갈 길이며 신념이다.
"······해서, 케이트 씨가 그곳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직접 가고 싶지만 악마 숭배자가 파놓은 함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케이트가 신봉하는 이, 아이작이 다소 힘들어 보이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부탁했다.
사건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가 연달아 터지다보니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황.
하나는 어느 정도 예상한 거지만, 다른 하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기에 아이작으로서는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케이트는 본인의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지른 개자식들 때문에 그가 힘들어 하고 있다 생각 중이지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벌레 놈들이 파놓은 함정이라면······"
"어허."
케이트는 평소처럼 험한 말을 하다 말고 아이작의 타박에 아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아이작의 무릎 위에는 아리엘이 앉아있었으니까.
아이작을 똑 빼닮은 외모로 하여금 사랑스러움을 불러일으키고, 머리 위에 새싹과 등 뒤의 날개는 그녀의 매력을 증폭시켰다.
처음 그녀와 마주쳤을 때는 기함할 정도로 놀랐지만 이제는 익숙한 상황.
게다가 아리엘은 무려 히르트가 아이작에게 직접 준 선물이었으니 그녀로서는 숭배할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언을······"
"아빠. 아빠. 벌레가 뭐야?"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 아빠 무릎 위에서 내려올래?"
"시러. 시러."
아이작의 권유에도 아리엘은 매미처럼 착 달라붙어있을 뿐,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투정에 아이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원래라면 아델리아나 마리에게 맡기겠지만 아델리아는 현재 호크와 훈련 중에 있고, 마리는 수업에 나간 상황.
어차피 케이트도 아리엘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이렇게 붙어있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 ···"
케이트는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왠지 몰라도 가슴 속의 뭔가가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아리엘처럼 투정을 부리고 싶은 건지, 아니면 아리엘과 같은 아이를 가지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감정이 그녀와 큰 연관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도 언젠가······'
만약 아리엘이 케이트의 속마음을 읽었다면 이 음습한 감정을 보고 움찔거렸겠지.
다행히 그녀는 현재 아이작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작도 아리엘의 애교에 피식 웃어주고는 방금 전 끊겼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이번 일은 케이트 씨에게 전적으로 맡길게요. 악마 숭배자가 파놓은 함정이라면 케이트 씨가 하던대로 처리하시고, 아니어도 케이트 씨에게 맡길게요."
"그러면 이벤트는 어떻게 할 거죠? 예정대로 종료하는 건가요?"
"아뇨. 종료할 생각은 없어요. 단지 경고하는 거죠.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는 건 악마 숭배자를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이건 케이트 씨가 가장 잘하실 것 같거든요."
원래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벤트를 종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종료하지 않는 이유는 머스크의 설득 덕분이다.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대로 끝내버리면 비난의 화살이 애꿎은 사람에게 나아갈 수 있다.
그 대상은 바로 무고한 희생자의 유족 혹은 관계자들. 사람은 남탓을 하게 되면 본인의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니 그 화살이 희생자들 쪽으로 향하지 않기 위해 기회를 주는 것이며, 이번 일에 적합한 사람이 케이트인 것이다.
괜히 애먼 사람을 잡았다가 정작 그 일을 저지른 주모자가 심판을 피할 수도 있다.
"악마 숭배자가 주도한 게 아니라면 대충 죄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조치하시고, 악마 숭배자가 주도한 거라면······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귀찮은 일을 시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믿을만한 사람은 케이트 씨밖에 없어서요."
"저밖에······"
믿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말이 가슴을 울렸던 걸까.
케이트는 왜인지 몽롱해지는 기분에 두 손을 가슴 중앙에 가지런히 모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얼굴에는 열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 그녀는 부드럽게 웃어주는 아이작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말인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달콤한 과실처럼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루미너스의 신탁이 갈증을 해소하는 생명수라면, 아이작의 말은 달콤한 꿀과도 같았다.
"······?"
한편 그런 케이트의 속마음을 들여다 본 아리엘은 눈을 느릿느릿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밝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속마음이 전혀 없이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은 쉽게 읽히는데 유독 케이트의 속마음은 읽기 힘들었다.
이에 아리엘은 두 눈을 비빈 후에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장막밖에 보이질 않았다.
'뭐징?'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 보였는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품자 머리 위의 새싹도 따라 갸웃거렸다.
아이작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다소 피곤하다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럼 준비가 끝나면 저에게 말씀하시고 출발하시면 될 것 같아요. 듣자하니 희생자와 주모자가 수도의 신전으로 온다고 했으니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알겠어요. 감히 아이작 님의 말씀을 무시한 놈들에게 천벌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천벌까지야.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케이트는 말을 하다 말고 우물쭈물거렸다. 그 반응에 아이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그녀가 한동안 망설이는 동안, 빛이 약간이나마 꺼졌는지 아리엘이 특유의 앙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
"응?"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최근 익힌 단어가 많아 또박또박해진 아리엘의 발음. 그녀의 시선은 케이트를 똑바로 향하고 있다.
아이작은 자기 멋대로 속마음을 읽은 그녀에 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케이트가 원하는 걸 알자마자 입을 열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예. 있습니다."
"케이트 씨라면 뭐든지 들어줄게요. 씨앗을 달라는 것 빼고."
"그건 아닙니다. 사실 부탁이라고 해봤자······"
"키쮸."
도중에 끼어든 아리엘의 말. 발음이 또박또박해졌다지만 완벽한 건 아니다.
그나저나 키쮸라면······ 아이작이 설마하면서 케이트와 아리엘을 번갈아 보고 있을 때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거 하나면 됩니다."
"··· ···"
"씨앗을 받기 전의 과정이 바로 이성 간의 입맞춤. 그 성스러운 과정을 원합니다."
뻔뻔하다고 해야 될지, 아니면 당당하다고 해야 될지.
아이작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본인의 욕망을 밝힌 케이트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리엘의 독심술로 인해 속마음이 완전히 까발려졌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디딤돌 삼아 원하는 바를 밝혔다.
진정한 강적이 바로 이런 사람인 걸까.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말을 아꼈다.
"키쮸 뒤에······ 손까지 잡고?"
"예. 그렇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
"그렇죠."
"나도 해죠. 아빠."
"··· ···"
아이작은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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