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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70화 (371/763)

〈 370화 〉 이벤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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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서 하는 질문이지만, 악마 숭배자는 어떤 경위로 악마 숭배자가 되는 것일까?

악마 전쟁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만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악마 숭배자가 되는 일이 많다.

꾸준히 언급했듯이 악마 숭배자는 음지 전체에 손을 뻗고 있으며, 불법적인 일에 연루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범죄와 깊이 소속된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악마 숭배자이지만, 까놓고 말해 이들은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

그들은 졸개 혹은 평범한(?) 범죄자밖에 되지 않았으니. 어디까지나 연관돼 있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설령 흔적을 남겼더라도 악마 숭배자의 소행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악마 숭배자보다는 세력이 큰 범죄조직이라 추측할 뿐.

진정으로 위험한 자들은 어릴 때부터 '세뇌'를 받은 자들이다. 범죄자들은 욕망을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사고를 치지만, 세뇌를 받은 자들은 능동적이다.

세뇌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특히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세뇌된 경우라면 최악의 전쟁까지 발발한다.

그리고 악마 숭배자는 그런 세뇌를 집중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 노하우가 축적되어 알고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 세상은 지구와 달리 '정보'의 교류가 현저히 적은 곳이다. 다시 말해 정보 부족과 환경적 요인으로 특정 사상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들 것이다. 신이 존재하는만큼 신권이 막강한 곳인데 악마 숭배자에 빠져들 수가 있냐고.

아무리 세뇌에 빠져들어도 악마 전쟁 이후 지금까지 전조조차 느끼지 못한 건 이상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역사를 깊게 파고들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악마 전쟁 이후 알븐하임을 제외하면 모든 문명이 리셋 수준으로 퇴보되었으니.

더 나아가 '마족'이라는 신종족의 탄생과 그로 인한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지며 다른 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물론 악마 숭배자가 여태까지 피해를 안 본 건 아니다. 세이비어가 광신에 휘말려 패악질을 부릴 때 악마 숭배자도 큰 피해를 입었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건을 계기로 악마 숭배자가 좀 더 용의주도해졌다.

케이트가 소속된 '이단심문관'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평소에는 평범한 사람인 척하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본색을 드러내는 식으로.

'성역'을 선포할 수 있을만큼의 능력자는 루미너스 교단에서 단 둘, 교황과 대심문관 케이트밖에 없다.

종족 전쟁 발발 전까지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엘프도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홍역을 앓았다.

문명을 세우지도 않은 수인은 두말 할 가치도 필요없고 마족은 악마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정상이라 할 수 있던 드워프도 악마 숭배자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간들의 내전에 무기를 공급하느라 바빴을 뿐.

마지막으로 종족 전쟁까지 터지면서 악마 숭배자가 아무런 방해없이 날뛸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다.

때문에 교류가 거의 없는 마을 전체가 악마 숭배에 빠져든 경우가 허다했으며 귀족이나 성직자를 타락시키는 등.

이처럼 악마 숭배자의 마수는 점차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비록 실패했지만 악마 소환까지 실행할 정도로 위험해졌다.

제논 일대기 덕분에 존재 자체가 드러났다지만,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엄마."

"우리 로라 깼니?"

"응."

어느 평범한 마을의 집. 귀여운 외모의 소녀가 일어나 여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색채였으나 외모로 하여금 장래가 기대되는 10대 초반의 아이였다.

그 외모를 고스란히 물려준 듯한 여인은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보며 빙긋 웃어줬다.

"곧 있으면 아침 식사가 나올 테니 식탁에서 기다려주렴."

"응."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소녀, 로라가 종종걸음으로 식탁으로 향했다.

이윽고 소녀가 식탁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건 건장한 체격의 남자.

로라의 친부로 추정되는 남자는 현재 신문을 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빠. 아빠."

"음? 오! 우리 딸 일어났니?"

하지만 사랑스러운 딸이 인사하자 신문을 보던 걸 바로 멈추고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각진 얼굴에 대충 정리한 수염과 짧게 깎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딸은 아빠를 닮는다 하지만, 다행히 소녀는 엄마를 좀 더 닮았다.

뒤이어 로라는 자기 자리에 착석하지 않고 아빠에게로 다가가더니 말없이 두 팔을 펼쳤다.

"안아줭."

"어휴. 물론이지."

아침부터 시작되는 딸의 애교에 남자의 인중이 쭈욱 늘어났다. 그가 얼마나 행복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로라가 남자의 넓직한 품에 안기고, 남자도 사랑스러운 딸에게 사랑을 퍼부어 주고 있을 때였다.

로라의 눈에는 남자가 미처 다 접지 못하고 반쯤 펼쳐진 신문이 보였는데, 그 신문에 실린 소식을 소리 내어 읽었다.

"제논의 선전포고······ 이벤트를 가장한 악마 숭배자와의 전면전?"

"······!"

척!

딸이 신문에 실린 제목을 소리 내어 읽자 남자의 얼굴이 핼쓱해지며 곧바로 집어던졌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신문을 접을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닥에 던져버릴 정도일까.

그런 기행을 이해하지 못한 로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이었지만, 아직 어리디 어린 소녀가 눈치챌리 만무했다.

"아빠."

"으, 응?"

"이벤트가 무슨 뜻이야?"

대신 처음 보는 단어에 대해 질문했다. 남자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려 로라를 쳐다봤다.

갈색 눈동자에는 왕성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다. 이에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벤트는 다양한 곳에서 쓰인단다. 행사와 축제도 이벤트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이벤트라 할 수 있지. 보통 너에게 긍정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쓰인단다."

이렇게만 보면 평범한 교육으로 보인다.

"그렇구나. 그럼 만물의 아버지에게 제사를 하는 것도 이벤트야?"

"물론이지. 대신 이벤트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니 자주 쓰이는 편은 아니란다."

소녀의 입에서 '만물의 아버지'가 언급되지만 않았더라면. 특히 남자의 얼굴에 당황이 모두 사라지고 기쁨만이 남아있다.

위험한 순간을 잘 넘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본인이 좋아하는 단어가 나와서 그런 건지.

로라는 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빠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식사 다 됐어요. 로라도 자리로 돌아가렴."

"넹."

이후로 식사가 전부 준비됐다는 여인의 말에 로라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로라는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았다.

식탁 위에는 간단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마련돼 있었다. 여러모로 여인의 요리 실력을 알 수 있는 부분.

당장 먹고 싶은 욕심에 로라가 손을 뻗었지만, 여인이 그걸 제지했다.

"로라. 먹기 전에 기도부터 해야지?"

"그냥 먹으면 안 돼요?"

"안 돼. 우리가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것 모두가 만물의 아버지 덕분이란다. 그분에게 이 감사함을 전해야지."

"히잉."

여인의 조목조목한 설명에 로라는 투정을 부린 것도 잠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조막만한 손을 모은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여인도 딸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가 두 손을 경건하게 모은 뒤 눈을 감았다. 맞은편의 남자도 마찬가지.

이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엄숙한 목소리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만물의 아버지께 아룁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만물의 아버지께 아룁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만물의 아버지께 아룁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속도로 기도문을 읊는 가정.

겉보기에는 독실한 신자로 보이지만, 기도를 하는 대상이 '만물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세간에서는 악마 숭배자라 부르는 자들. 악마 전쟁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 큰 피해를 안긴 집단.

그들은 정말로 '신'에게 기도하듯이, 엄숙한 자태로 기도하고 있다.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경건하기 짝이 없는 기도가 끝을 맺었다. 세 사람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눈을 뜨며 맞잡았던 두 손을 풀었다.

눈을 뜨면서 그들에게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다. 우선 눈동자가 초첨이 흐릿해졌으며 알 수 없는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건 로라라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왠지 몰라도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끈적한 늪에 빠져버려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편해지겠지만 너무 불쾌한 나머지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했다.

"후우······"

"하아······"

부부의 달뜬 숨소리가 로라의 귀를 파고들었다. 정신이 확 깨어나는 기분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전 생겼던 검은색 기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평범한 부부만이 남아있었다.

"만물의 아버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나도야. 미약한 힘으로나마 보태야지. 우리 로라도 그럴 거지?"

"으, 응."

남자의 질문에 로라는 마지못해 긍정적인 대답을 꺼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남자는 억지로 수긍하는 듯한 대답에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단란한 식사뿐. 남자가 먼저 식기를 듦으로서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로라도 방금 전의 찝찝함을 털어내며 엄마의 맛있는 요리를 입에 넣었다.

"여보. 요즘 상황은 어때요?"

"난리도 아니야. 그 자······"

남자는 욕을 하려다 말고 로라를 힐긋거렸다. 그녀는 현재 밥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욕설은 좋지 않다.

"······그 인간이 우리를 제대로 물 먹이기 시작했지. 당신도 신문을 본 적 있지?"

"물론이죠. 진실을 모르는 자가 권력을 가지니 저희로서는 답답하네요."

"진작에 해결했어야 됐는데. 고작 책이라고 너무 안일했어."

부부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로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도통 무슨 주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진중한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나 심각한 사태인 듯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길러 온 '눈치'를 통해 자신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밥이 더 중요하다.

"로라."

"웅?"

허겁지겁 밥을 먹는 도중에 여인이 부드럽게 불렀다. 로라는 몸을 흠칫 떨며 그녀를 쳐다봤다.

여인은 로라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손가락으로 상냥하게 닦아주며 당부조로 말했다.

"우리 로라는 그런 사특한 책을 읽으면 안 된다. 언제나 중요한 건 만물의 아버지의 말씀이야. 알겠지?"

"응."

"착하다, 우리 딸."

로라는 여인이 자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아도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란 소녀의 미소다.

그리하여 단란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여인이 식탁 위의 식기들을 모두 치울 때쯤이었다.

"로라."

"왜 아빠?"

"오늘도 교육을 받는 거 잊지 마렴."

미처 읽지 못한 신문을 읽던 남자가 흘러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로라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교육'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으니. 안 그래도 새하얀 얼굴이 푸르죽죽해질 정도다.

손에는 땀이 차기 시작하고, 머리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녀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교, 교육?"

"그래. 오늘 받기로 했잖니?"

"하, 하지만······ 기도문을 다 외우면 안 한다고······"

스윽­

딸의 반항에 남자는 신문을 아래로 내리며 눈을 드러냈다. 로라는 그 눈을 보자마자 헛숨을 크게 들이삼켰다.

식사 전까지만 해도 분명 다정한 아빠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오직 '교육자'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드는 눈빛에 로라가 시선을 내려깔았을 때, 남자가 신문을 식탁 위에 올리며 무겁게 말했다.

"로라."

"··· ···"

"설마 만물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는 거니?"

"아, 아니."

"그럼 왜?"

연이은 질문에 로라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싫어."

"뭐?"

"아픈 건······ 싫어·····"

그 말을 하면서 로라가 한 쪽 팔을 손으로 살며시 붙잡았다. 아픈 부위를 만지는 것 같은 반응이다.

그런 반응을 본 남자는 상관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교육이 그런 거란다. 그런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거지. 또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응당 거쳐야 할 난관이란다."

"··· ···"

"다른 애들도 교육을 받고 있잖니?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 마을 전체가 만물의 아버지를 위해 존재하는 거니."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지. 아빠도 어릴 적에 그랬단다. 너희 엄마도 그렇고."

남자의 설명에 로라는 욱신거리는 팔을 붙잡으며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리니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말에 동조했다.

아픈 건 싫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이게 정상적인 거라고 설명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가 만물의 아버지를 경배하며,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제시라도 하는 순간 끔찍한 고통이 뒤따른다. 자신도 한 번 제시했을 때 심한 회초리를 맞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맞는 말이겠지. 반항을 하면 할수록 더 큰 고통이 뒤따를 뿐이다.

로라는 추욱 늘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

"그래. 아빠는 우리 딸이 훌륭한 승천자로 거듭날 거라 믿는단다. '계시'를 받았을 때 군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잖니?"

"응······"

"그럼 먼저 지하에 가 있으렴. 아빠도 곧······"

쾅! 쾅! 쾅!

남자가 미처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큰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

그 소음에 집 안의 모든 사람이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른 시간에 누구지?"

"어제 제이크 씨가 술 먹고 해장하러 온 거 아닐까요?"

"하. 이 자식이 진짜. 여기가 무슨 해장하러 온 곳인 줄 아나."

자주 있던 일인지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라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특수한 목적으로 개설된 지하. 보통 집에 지하실이 있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었으니. 로라는 이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세요?"

"아. 실례합니다. 혹시 이곳에······"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로라는 기계처럼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현재 그녀는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지하로 갈수록 어두워지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내려앉았으나 그녀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익숙했으니까.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이제는 눈 감고도 걸어갈 수 있을 수준이다.

'이게 맞는 거야······'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계단 끝에 도착했다. '죄인'을 수용하는 것처럼 굳게 닫힌 철문과, 안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

끼이익­

로라는 그 문을 조심스레 밀어냈다. 기름칠을 하지 않아 불쾌한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두터운 철문이 열리자 눈에 들어온 건 '놀이기구'를 포함한 다양한 '교육' 자재들.

돌돌 말려있는 채찍이 벽에 걸려있었으며, 고문에나 사용할 법한 꼬챙이도 존재했다.

결코 놀이기구나 교육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그 반대로 고문용에 가깝다. 그러나 로라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이것들 모두가 '성장'을 위한 발판이라고.

스윽­

로라는 남자가 오기 전, 입었던 옷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상의부터 벗어던졌다.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상체만 드러내도 충분하다.

이윽고 로라의 상반신이 완전히 드러나고, 이제 막 성장기에 돌입한 상체가 드러났다.

'교육'으로 인해 발생한 흉터와 자국들을 포함해서. 팔에 푸른 멍이 든 건 물론이고, 등의 상태는 매우 심했다.

치료를 제때 하지 못했는지 채찍에 맞은 듯한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며, 심지어 화상 자국까지 선명했다.

꼬챙이를 불에 달군 후 지진 것 같은 화상 자국. 그야말로 '고문'의 흔적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오는구나······'

닫지 않았던 철문 너머 발자국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로라는 앞으로 있을 교육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잡아먹혔던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발자국 소리가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이었다는 걸.

더 나아가 자신의 아빠는 맨몸으로 왔는데 지금은 횃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정말 미친 놈들이라니까. 이 마을 전체가 악마 숭배자에게 잡아먹혔다고?"

"그럴 가능성이 높지. 들어보니 제논 일대기를 사특한 책이라며 욕하고 있대."

"나 원 참. 근데 여기는 뭐 하는 곳······ 어?"

그런데 이상하다. 이 목소리는 자신의 아빠가 아닌데.

로라는 의아함에 감았던 눈을 뜨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횃불을 든 채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저런 장비를 차고 다닌 적은 없었으니.

이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구······ 세요?"

"애가 왜 있······ 뭐야, 저 상처?"

"여기 채찍도 있는데? 아니, 씨발. 이건 고문 도구잖아? 꼬챙이까지 있어."

"와······ 이 미친 새끼들. 일단 빨리 성직자 불러 와. 이건 좀 심각한데."

저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낯선 사람들. 아빠는 어디 가고 저 사람들이 지하에 온 걸까.

도통 상황 파악이 되지 않고 있을 때, 횃불을 들고 있던 남자가 서서히 다가왔다.

"꼬마야. 괜찮니? 일어날 수 있어?"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이 충격이었는지 중얼거리는 남자.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면서 대답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알겠지?"

"하, 하지만······ 아빠가 교육하러 올 텐데······"

"······교육?"

교육이라는 단어에 눈쌀을 찌푸리는 남자. 로라 입장에서는 험악한 얼굴이어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그는 고문 도구로 가득 채워진 지하실을 한 번 훑어보다가 설마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교육이란 게 저걸 이용하는 거니?"

"네······"

"언제부터 받았어?"

"7살 때부터······"

"지금 네 나이는?"

"12살이요······"

"미친 새끼들. 일단 일어나."

"하, 하지만 아빠가······"

단단히 세뇌되었는지 끝까지 일어나지 않으려는 로라. 갈색 눈동자에 짙은 혼란이 새겨졌다.

남자는 그런 로라를 딱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엉망이 된 몸을 가려주기 위해 망토를 덮어줬다.

이어서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고는 재치 있는 답을 꺼냈다.

"그냥 땡땡이친다 생각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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