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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68화 (369/763)

〈 368화 〉 27권(3)

* * *

옆에서 케이트가 진심으로 감탄하던 말던 나는 쉽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둥절하다.

머스크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분명 파악했다. 악마 숭배자를 가장 많이 처치한 사람에게 나와 독대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

이것만 보면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범한 이벤트도 아니고 '목숨'을 걸어야 된다.

굳이 저 일이 아니더라도 나와 독대할 수 있는 이벤트는 많다. 이에 살짝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머스크 씨? 제 독대에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아이작 님이 생각하시기에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음······"

나는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일단 내가 어떤 위치와 권위를 갖고 있는지부터다.

전생에서 미국 대통령을 장난식으로 부르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세계 대통령.

장난에 가까운 말이지만 미국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과 권위를 단번에 대변하는 것이다.

여태껏 미국만큼 강한 제국은 역사적으로 없었으며, 소련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으니 모두 무너졌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을 넘는 권한과 권위가 나에게 있다. 어디까지나 비교지만 그만큼 막강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사심이 듬뿍 있었다지만 아르웬도 나에게 선물이랍시고 자기 자신을 선물로 취급했지 않은가.

물론 알븐하임의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기도 했지만, 무려 본인들의 여왕을 '선물'로 바칠 정도로 내 위상은 높다.

'이런 사람과 독대하려면······'

그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거나 아니면 역사에 실릴 정도의 국위선양을 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책 하나로 세계를 위기에서 구해낸 사람이다. 대외적인 시선이고 뭐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수 뿌리 오염을 사전에 차단시키고, 음지에서 활약하던 악마 숭배자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라 마족의 염원을 손쉽게 풀어주거나 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진짜 독대할 방법이 하나도 없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이 세계에 있었다면 모른다. 그거라면 내가 직접 만나자고 부탁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 세상은 올림픽은커녕 간단한 스포츠조차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유명한 걸 꼽자면 마상 시합 정도. 앞으로 애니머즈에 올림픽과 유사한 시합이 등장할 테지만 큰 관심은 없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국위 선양을 할만한 분야가 전무하며, 아버지처럼 드래곤을 때려잡지 않는 이상 황제 혹은 왕을 만나는 것조차 매우 힘들다.

귀족으로 태어난 게 아닌 이상, 이 세상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만 높으신 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없는 것 같네요."

"아이작 님은 본인이 어떤 자리에 앉아있는지 잘 생각해보셔야 됩니다. 아이작 님께서 이룩하신 위업은 그 엘프조차 우러러 봐야 하니까요."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전 그저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머스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이벤트를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내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주변에서 한 소리 하겠지.

힘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써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무소불위의 힘을 얻어도 하는 일은 똑같으니 영 와닿지 않았다.

"그럼 악마 숭배자를 처단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는 건가요?"

"저는 제안만 할 뿐, 선택은 전부 아이작 님의 몫입니다."

"그러면······"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잠깐 멈칫거렸다. 내 바로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기에.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케이트가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움찔움찔거리는 중이다.

어서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악마 숭배자를 처단하는 걸로 선택하라고.

아델리아보다 색채가 짙은 푸른 눈동자에는 기대와 불안이 두루 섞여있었다.

"······계획이 있으시니 그런 말씀을 한 거겠죠?"

"휴우."

내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자 왠지 몰라도 케이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본인도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건지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머스크와의 대화가 우선이다.

머스크가 제안한 이벤트는 분명 큰 효력을 보일 것이나, 그에 비례로 부작용도 있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얼마나 많은 악마 숭배자를 처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마 숭배자에는 졸개만 있는 게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케이트 추기경님?"

"예. 그렇습니다. 벌레도 성장하면 성충이 되는 것처럼, 악마 숭배자도 급이 나뉘어져 있죠."

머스크의 질문에 케이트는 늘 그렇듯이 악마 숭배자를 벌레로 비유하며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악마 숭배자에 한해서 전문가나 다름없다. 나와 만나기 전에도 뚝배기를 깨고 다녔으며 최근에는 타락한 추기경까지 잡아들였으니.

뒤이어 그녀는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악마 숭배자에게는 특별한 표식이 있습니다. 졸개는 목걸이나 반지밖에 없지만, 그 이상은 몸에 문양을 새기죠. 다만 평상시에는 그 문양이 드러나지 않아 겉으로는 판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음······ 문양이면 증거가 되기 어려운데 괜찮을까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피부를 통째로 도려내면 되니까요."

"··· ···"

도살자가 돼지를 도축하는 것처럼 정말 쉽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케이트. 그 말에 나와 머스크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태까지 신나게 악마 숭배자를 도륙하던 케이트면 몰라도, 나와 머스크는 살생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말을 너무 쉽게 해버리니 심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그렇습니까? 그것 말고는 없나요?"

"피부를 도려내는 게 힘들다면 머리만 따서 가져오거나 심장을 적출해서······"

"우으······"

케이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머스크가 부르르 떨며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옆에 있던 나도 소름이 돋는 기분에 엉덩이를 슬금슬금 움직였다.

케이트 입장에서는 늘 하던 일이어서 가능하겠지만, 나나 머스크 같이 폭력과 거리가 먼 사람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다 해서 그녀가 사이코패스라던가 쾌락살인마 같은 부류는 절대 아니다. 악마 숭배자를 말 그대로 벌레 취급하는 것 뿐.

신앙심이 독할 정도로 강한 거지, 선한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마도.

"······어쨌거나 그······ 등급에 따라 점수를 책정하는 식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건 국가보다는 교단 차원에서 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물론입니다. 저희 루미너스 교단은 이미 성전까지 선포했으니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모라 교단에게도 전달해야 되겠네요."

"누구한테 전달하는 거죠? 루미너스 교단은 몰라도 모라 교단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세실리 공주님이 있습니다. 아이작 님의 빛을 직접적으로 받으신 분이죠."

"··· ···"

케이트의 대답을 들은 머스크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안 하겠다는 표정이다.

대충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아 나 또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제 와서 말을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군요. 그럼 두 교단이 서로 조율해서 정확한 등급을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겸사겸사 노하우와 주의 사항도 알려주시고요."

"귀담아 듣겠습니다."

"남은 건 발생할 수도 있는 부작용인데······ 만에 하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장 걱정되는 점이 바로 저것이다. 의도 자체는 좋지만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여지가 매우 높다.

전생에서조차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까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이곳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마녀 사냥'처럼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악마 숭배자로 지목할 수도 있다.

또한 조금이라도 연관돼 있는 사람을 고문하거나 화형으로 처단하는 등. 광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죽하면 과거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가 루미너스가 직접 제지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 역사는 반복된다고, 좋은 의도로 행했다가 똑같은 사건이 터질 수도 있다.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는 건 필사적으로 막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곧바로 취소할 겁니다."

케이트조차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뒷말을 흐렸을 쯤, 내가 바로 나섰다.

그러자 내게로 몰리는 시선들. 나는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 숭배자 10명을 놓치는 것보다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게 더 뼈 아픈 일이에요. 실수든 고의든 그런 일이 발발하면 이번 일은 곧바로 취소하겠습니다."

"하지만 놓쳐버린 악마 숭배자가 더 큰 피해를 만들 수도 있는······"

"저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싶으면 그리 하세요. 애당초 악마 숭배자는 음지에 숨어 살뿐더러 양지에 나오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설령 정체를 숨기고 있다 한들 신성력을 조금만 부여해도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면서요? 이런 것도 없이 곧바로 척살하면 살인자지 뭐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내가 드물게 강경한 태도로 나서자 케이트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머스크도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를 어떻게든 만나겠다는 이유로 무고한 자가 피를 흘리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그런 사람이 발생하면 내 책임으로 돌려버릴 예정이다.

아무튼 길이 어느 정도 잡혔겠다, 이후의 이야기는 교단끼리 잘 합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조금이라도 악마 숭배자와 연관돼 있다고 처단하지 않는 것. 악마 숭배자가 손을 뻗친 곳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실제로 가까이서 지내던 이웃이 악마 숭배자였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으며, 심지어 용병 또는 모험가 중에서도 악마 숭배자가 있다.

"제가 고용한 용병도 악마 숭배자였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정말 위험하지 않았나요?"

"늘 상비하고 다니던 포션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실제로 머스크가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신변을 위해 고용한 용병이 악마 숭배자였다는 사실.

다행히 포션 덕분에 겨우겨우 살았지만 목숨을 허망하게 잃을 뻔했던 사건이다.

"나머지는 교단에게 맡기기로 하고, 제일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보상이죠."

"저와 독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솔직히 목숨을 걸고 진행하는 이벤트인데 독대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사인본을 주거나 간단한 스킨십을 하는 등. 부가적인 보상을 줄 테지만 이것도 부족하지 않······

"아뇨.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이작 님과의 독대는 평생 이루지 못할 영광일 수 있는데 겨우라니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이작 님은 스스로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인지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보상이라는 게 뭐죠?"

"1등이 독대고, 그 외에 업적을 쌓은 사람들을 위한 보상입니다. 가장 큰 예로 싸인본이 있겠네요."

"······그건 차차 생각해보겠습니다."

독대만 해도 어질어질한데 내 싸인본을 보상으로 하다니. 납득이 되면서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머스크도 보상 관련은 천천히 생각하기로 계획했는지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건 나에게 허락을 받는 것 뿐.

또한 굳이 저런 보상이 아니더라도 돈을 크게 풀 예정이란다. 이건 교단과 계약을 해야 되는 사항이라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이렇듯 하나 하나 정립이 되어가고, 머스크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였을 때.

"아이작 님?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케이트가 뜬금없이 나에게 부탁을 건넸다. 평소 그녀가 부탁하는 일은 극히 드물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다음에 이어진 그녀의 부탁은 나로 하여금 황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악마 숭배자를 처치할 수 있도록, 당분간 호위직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케이트 씨도 참여하려고요?"

"예. 아이작 님과 독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이건······ 하."

설마 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될 줄이야. 나는 난처함에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특정 분야에 한해서 앞뒤가 꼭 막혀있는 성격이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해도 불공평하다며 고개를 흔들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녀를 호위에서 떨어뜨릴 수 없다. 아델리아가 있다지만 케이트만큼 안전한 사람은 세상을 뒤져봐도 거의 없을 것이리라.

물론 헬리움의 결사단체, 리퍼에게 호위를 받아도 되나 그들에게 케이트만한 신성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거절하겠습니다. 무슨 이유를 대도 거부할 거예요."

"어째서죠? 저는 루미너스의 충실한 종으로서, 아이작 님과 독대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독대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해도 그럴 건가요?"

"다른 분들에게 불공평하잖습니까?"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케이트 씨가 옆에 없으면 안 되거든요."

"······예?"

내 대답에 케이트가 크게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나는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케이트 씨가 옆에 없으면 안 된다고요. 그러니 독대든 뭐든 다 해줄 테니까 호위직에서 물러날 생각하지 마세요. 알겠죠?"

"··· ···"

"케이트 씨?"

"하아······"

뭐야. 이 사람. 눈이 갑자기 왜 풀리는 거야. 저 뜨거운 숨소리는 또 뭐고.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케이트는 풀려진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천천히 얼굴을 감쌌다.

이윽고 얼굴을 붉히더니 왠지 모를 색기를 듬뿍 담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알겠······ 습니다."

"··· ···"

"평생······ 아이작 님을 지킬게요."

평생이라는 말은 안 했는데요.

"허허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당신은 왜 또 도망가는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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