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화 〉 27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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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 일대기 27권은 인류 연합과 악마의 전면전으로서, 각자의 개성과 전력을 가감없이 발휘하며 전장에 나서게 된다.
엘프와 마족은 텔레포트를 타면서 멋지게 등장하고, 다크 엘프와 악마 사냥꾼은 암습을, 수인은 돌격이라는 말 한 마디에 거침없이 돌격한다.
인간은 특유의 결집력과 근성을 발휘하여 탱커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물 밀듯이 쏟아져 오는 악마에게 숫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는 종족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들이 쓰러지면 남은 종족이 물량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드워프. 그들도 좋은 전력이 되었으나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골렘'이다.
강철로 이루어진 몸체에, 인류를 본따 제작한 외형. 마지막으로 가슴 중심에는 '에너지 핵'이 존재하는 인형.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서 단단한 몸체를 바탕으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전술 병기.
내가 친절하게 외형까지 그림으로 묘사한 덕택에 독자들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이 병기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이용되는지 내 상상력을 모두 동원하여 묘사했다.
예를 들면 안티 매직 마법이 걸려있어서 마법 저항력이 매우 높은 건 물론이고, 주로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와 싸우는 편이다.
게다가 누군가 직접 탑승하거나 컨트롤러로 조종하는 것이 아닌, 자율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악마들은 생전 처음 보는 골렘의 활약에 눈에 띄게 당황하고, 골렘은 생명체가 아닌 인형.
다시 말해 돈과 재료, 그리고 설계도만 있다면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드워프는 직접적으로 전선에 나서는 것보다 차라리 뒤에서 지원을 하는 역할로 두자. 제논 일대기 속에서 묘사되는 드워프가 대략 이렇다.
뭐, 가끔 한 손에는 망치, 다른 손에는 도끼를 들고 돌격하는 드워프가 있지만 그건 극히 예외로 두자.
아무튼 드워프가 발명한 희대의 걸작 중 하나, 골렘이 등장하자 독자들의 반응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드워프들의 꿈과 열정이 집합된 전술 병기.]
[증기 기관차가 한 드워프의 노력과 정신력으로 제작된 거라면 골렘은 현실성이 매우 높다.]
[자율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강철의 인형. 마법으로 가능한 것일까?]
세상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어딜 가나 똑같았는지 강철 골렘이 나오자 눈을 빛내며 각종 이야기를 떠들었다.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사람들고 있고, 실제로 발명되면 무궁무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평가는 덤.
[혹시 마키나에서 몰래 제작하고 있지는 않을까?]
[제논 일대기에 나온 발명품이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왜진이 빠지면 섭섭하지. 애당초 마력 기관을 넘어 미완성으로나마 자동차까지 발명한 마키나다.
골렘이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마키나 측. 그런 거 없다. 하지만 관심은 있다.]
그런 건 없었지만. 짧고 간결했지만 마키나의 입장을 완전히 대변해줬다.
드워프는 천성적으로 무언가를 창작하기를 좋아하는 종족. 골렘의 등장은 그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한 것과 똑같았다.
마력 기관도 발명된 마당에 골렘도 한 번 만들어 보자. 제논 일대기에도 나왔는데 못 만들 건 없다.
조만간 착수에 들어가지 않을까. 드워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항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그렇지, 골렘이 발명되기라도 한다면 문명 발전에 큰 도움을 줄 테니.
세상 어딜 가나 노동력의 가치는 막중하며, 알븐하임처럼 씨앗을 대충 뿌려도 식물이 알아서 자라나는 땅이 아닌 이상 농사는 필수다.
더군다나 농사도 농사지만 시시때때로 약탈을 하러 난입하는 몬스터도 문제다.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는 어찌저찌 처리가 가능해도 오우거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된다.
오우거는 병사 수준으로는 택도 없으며 기사가 등장해야 겨우겨우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골렘만 있다면 그 해 농사는 흉년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허수아비 역할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자율 의지를 무기물에 부여하는 이론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악용될 여지가 있다.]
[사령술과 비슷한 맥락이기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사령술을 파고들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사령술을 연구하는 마법사는 전부 추방됐다.]
하지만 골렘은 몰라도 자율 의지를 부여하는 이론 자체는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위의 평가처럼 대상만 다를 뿐이지 골렘에게 자율 의지를 넣는 건 사령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점이라면 사령술은 시체를 일으키기에 인륜을 저버린 행위고, 골렘은 아예 처음부터 무기물이었다는 점.
때문에 골렘의 발명은 수많은 의논을 거친 뒤에야 발명하기로 결정이 났다. 아무래도 사령술과 연관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건 나도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나는 제시만 할 뿐, 선택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으니.
[악마의 힘을 빌려 날개를 생성한 루시퍼. 하지만 가장 천한 존재인 인간에게 날개가 꺾였다.]
[타락한 천사가 땅으로 추락하는 연출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굳이 골렘이 아니더라도 하이라이트는 많다. 특히 이중에서 제논과 교만, 루시퍼 간의 전투가 가장 인상 깊을 것이다.
디아볼스에게 '축복'을 받아 검은 날개를 갖게 된 루시퍼. 그는 지상의 제논을 바라보며 선조처럼 하늘로 승천할 거라며 당당히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날개를 뜯고 내려온 선조가 어리석다며,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직접 저버린 멍청이라며 까는 건 덤.
교만으로 똘똘 뭉친 루시퍼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교만으로 인해 패배를 맞이하는 것이다.
클리세라면 흔하디 흔한 클리셰겠지만, 이 세상은 그런 게 없으니 아주 통쾌하겠지.
[잘 뒤졌다.]
[교만이라는 죄악에 정말 어울리는 최후.]
[죽어마땅한 존재.]
원래부터 바닥을 찍었던 루시퍼의 평가여서 그런지 그의 죽음에 독자들은 환호했다.
심지어 알븐하임마저도 우리는 저딴 놈 없다며 칼 같이 공표했을 정도니 그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루시퍼의 죽음과 함께 전쟁도 승리로 직결될 뻔했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아직 하나 남아있다.
[알을 깨고 등장하는 디아볼스. 다음 권이 최종 결착일 것.]
[이제 완결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본인의 창작물에게 죽음을 맞이한 탐욕. 아쉬운 퇴장이나 디아볼스의 잔혹함을 일깨워줬다.]
그건 바로 페이크 최종 보스이자 비극의 시발점이 될 디아볼스의 부활.
디아볼스가 부활하자마자 모든 존재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세계수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전쟁에만 집중하던 모두가 느낀 것이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거대한 악이 태어났다는 것을.
이후로 거대한 손이 탐욕을 벌레처럼 짓누르는 것을 끝으로, 27권은 종료된다.
[제논 일대기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 과연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차기작은 내는 건지, 아니면 휴식기에 접어들 건지 궁금하다.]
완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걸 독자들도 눈치챘는지 완결 이후의 행보를 궁금해했다.
몇몇은 차기작을 낼 거라 말하고, 몇몇은 기나긴 휴식에 접어들 거라는 예측도 했다.
대부분은 후자에 힘을 실었다. 무려 30권에 가까운 장기 연재를 했으니 그만큼 쉬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게다가 악마 숭배자의 위협까지 있었으니 당분간 몸을 사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들이 줄줄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 지금 나는······
"안녕하세요, 머스크 사장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허허. 만남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숙사가 아닌 저택에서 머스크와 만남을 갖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줬다.
알븐하임에서 아르웬과 평화로운 한때를 만끽하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에 어머니를 뵐 겸 잠깐 저택에 온 건데 공교롭게도 머스크가 찾아온 것이다.
기숙사에는 아리엘이 있어서 만남을 거부할 수도 있었으니 타이밍이 좋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내가 저택에 잠깐 방문한다는 소식은 이미 기숙사에도 전달된 상황. 다시 말해 내 호위 기사인 아델리아와 케이트도 곁에 있다.
알븐하임에서는 아르웬과 단 둘이 있어야 되서 못 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신혼 아닌 신혼 생활이 끝났으니 본래의 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도련님."
"아, 고마워."
아델리아가 미리 준비해둔 쿠키와 차를 대령하자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전했다.
뒤이어 곳곳에 초콜렛이 박혀있는 쿠키를 하나 집어들고 한 입 베어물었다.
쿠키 특유의 고소함과 초콜렛의 단맛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쿠키를 우물거리면서 머스크에게 질문한다. 원래는 입 안의 음식물을 다 먹고나서 얘기해야 되지만 머스크라 문제 없다.
그도 이런 부분에서는 연연하지 않은 건지 두 손을 맞잡은 채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제논 일대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유통 문제라 보면 되겠군요."
"유통이요?"
"예."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과 관련된 사항인 듯싶었다. 모두 알다시피 출판과 관련된 일은 전부 위임한지 오래다.
머스크가 금괴 몇 덩이를 떼어먹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나와 머스크 사이에 쌓여있는 신뢰는 고작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그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직접 찾아와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다니. 분명 심상치 않다.
이에 나는 쿠키를 모두 삼킨 뒤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였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악마 숭배자 때문입니다. 악마 숭배자의 자폭 테러로 인해 벨루아 공국의 인쇄소가 무너졌죠."
"··· ···"
악마 숭배자 이야기가 나와서 그럴까. 여유롭게 쿠키를 하나 집어들던 케이트가 움찔거리며 그대로 정지했다.
이윽고 쿠키를 도로 내려놓더니 싸늘하디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벌레 놈들이 저질렀다고요?"
"예. 인쇄소뿐만 아니라 5명의 사상자도 발생했습니다. 그중 2명에게는 위로금을 포함한 편지까지 작성하여 발송했죠."
"······루미너스시여. 죄없는 자들에게 안식을."
사상자, 그것도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말에 케이트가 성호를 그으며 애도했다.
나 또한 가슴이 착잡해진 건 마찬가지인지라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로 인해 피해자가 생긴 것이었으니. 동시에 악마 숭배자가 무슨 이유로 그런 테러를 저질렀는지 금방 깨달았다.
"······벨루아 공국은 세계의 교두보라 불리는 국가에요. 그렇다는 건······"
"머리를 노릴 수 없다면 팔다리를 잘라버리겠다는 의미죠. 인쇄소를 세우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마 숭배자가 그걸 가만히 지켜볼 리가 만무하다는 거죠. 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부에도 피해가 갈 확률이 매우 큽니다."
무슨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급로를 끊어버리겠다니. 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당장 내 곁에는 케이트라는 최악의 카운터가 있으니 뚫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번에는 나의 안일함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었지, 명확히 인지한 이상 순순히 당할 일은 0에 수렴할 것이다.
그러니 머스크의 말마따나 머리를 노릴 수 없으니 팔다리를 자르는 식으로 노선을 틀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이작 님을 찾아온 겁니다. 돈으로 많은 걸 살 수 있고, 무너진 건물을 짓는 것도 일은 아니죠. 하지만 사람의 목숨과 시간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 ···"
분명 멋진 말이긴 한데 머스크의 탐욕과 직결되다보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도 집게사장처럼 돈에 미친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악마 숭배자들 쪽에서도 발악하겠죠. 사람들도 인쇄소에서 일을 하는 걸 무서워 할 겁니다."
"머스크 씨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본론이 뭐죠?"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보내셨던 편지에 담긴 내용. 그러니까 질문과 답신입니다."
"그거랑 무슨 상관이죠? 설마 악마 숭배자를 많이 잡는 사람에게 질문과 답신을 하는 거라면 거부하겠습니다."
악마 숭배자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쉽게 토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비록 내 옆의 케이트는 벌레 잡듯이 잡아버리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케이트인 건 아니잖나.
게다가 질문과 답신, 그러니까 QnA는 순전히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다. 거기에 목숨까지 걸어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머스크는 그런 내 대답을 예상했는지, 껄껄 웃으며 예상 밖의 대답을 꺼냈다.
"하하. 그건 아닙니다. 악마 숭배자를 잡는 사람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노선을 잡았으니까요. 제일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닌 보상입니다."
"보상이요?"
"네. 예를 들면······"
잠시 뜸을 들인 그는 싱긋 웃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아이작 님과의 독대라던가?"
"······?"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보상에 눈만 깜빡이고 있을 때.
"오······"
옆에서는 케이트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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