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62화 (363/763)

〈 362화 〉 억울합니다(2)

* * *

상황을 풀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자. 여기에 서로 마음이 맞아 미래를 약속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둘의 사이는 전혀 틀어지지도, 깨지지도 않으며 알콩달콩한 삶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남자에게 수많은 여인들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여러 상황이 겹쳐져 여자 쪽도 어쩔 수 없이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자는 본인이 언제나 1순위임을 강조했으며, 남자도 그런 여자를 존중하여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었다.

이후로 시간이 흘러 남자에게 다른 애인이 생겨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 눈에는 남자가 개새끼나 다름없다. 그것도 3명 이상의 애인을 거느리는 개새끼.

다만 아내가 아닌 정부를 들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첩을 두는 귀족과 왕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왕은 후대를 많이 낳아야 된다는 이념 아래에 수많은 첩을 들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테르스 왕국의 프리드리히가 어째서 로맨티스트라 불렸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개새끼라 부르는 것도 지위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아무튼 간에 여자가 상황을 잘 이해해줘서 다행이지, 만약 남자 쪽에서 생각없이 애인을 늘렸다면 커다란 균열이 발생했을 것이리라.

그러나 끝이 아니다. 만약에 여자 쪽에서도 전혀 몰랐던 남자의 아이가 등장하게 된다면?

그것도 신생아가 아니라 3~4살 정도 되는 아이가 다른 여자와 함께 등장하게 된다면?

두말 할 것 없이 남자는 개새끼에서 쌍놈의 새끼로 진화하는 것이며, 여자 쪽에서도 인내심이 바닥날 것이다.

"그러니까······"

침대에 엉덩이를 붙인 마리가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꾹­ 누르며 말을 흐린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머리가 아픈 것 같다.

나는 그녀가 입을 뗄 때까지 맞은편에 서서 가만히 기다렸다.

뒤이어 마리는 길게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검지 손가락을 펴며 상황을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계수로 향했더니 히르트 님, 그것도 화신체와 영접하고, 그분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축복을 받고 나니 그 아래에는 코코넛만한 세계수의 씨앗이 떨어져 있었으며 그 씨앗에서 아리엘이라는 천사가 태어났다고?"

"응. 아주 정확해."

"혼외자식은······ 아니겠지. 날개까지 있는 마당에 의심하면 신성모독이겠지."

만약 나에게 아리엘만한 자식이 있었다면 최소 15살에 낳았다는 뜻이다. 여러 번 생각해도 말이 안 되겠지.

다만 시대가 시대다보니 그 나이에 자식을 가진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성에 일찍 눈을 떠버리고, 잘못된 교육까지 합쳐지면 그럴 테니까.

흔히 망나니가 그런 테크트리를 타는 편이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진작에 책임졌겠지.

종합하자면 신들의 호의 아닌 호의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다.

"우응~ 푹신푹신."

"좋니?"

"응! 침대보다 푹신푹신해!"

한편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인 아리엘은 세실리에게 안겨 있다. 현재 그녀는 세실리의 커다란 흉부를 베개 삼아 거의 얼굴을 기대는 중이다.

가슴의 반을 드러낸 검은색 드레스라 안 그래도 큰 흉부가 아리엘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세실리도 그런 아리엘이 귀여웠던 건지 그녀의 머리를 살살 보듬었다.

"또 어딜 봐? 이쪽 안 보니?"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때 마리의 스산한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세차게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을 아끼는 그녀의 표정이 시야에 잡혔다. 하긴 나 같아도 저 심정일 것이다.

"후우······ 그나마 다행이네. 다른 여자의 애가 아니라서."

"그······ 마리?"

"네, 여왕님. 말씀하세요."

내 곁에 있던 아르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녀는 공범(?) 비슷한 위치라 내 곁에 서 있는 것이다.

이어서 아르웬은 마리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건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대보다 다른 여인이 아이작의 아이를 갖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왜요? 설마 이왕 이렇게 된 거 먼저 저지르시게요?"

팔짱을 낀 마리가 다소 공격적인 어투로 되물었다.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으며 그 안에 실린 기백 또한 극히 사나웠다.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도 그 기백에 압도되었는지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의사.

무례하다면 무례한 태도였지만 아르웬도 마리의 기분을 이해했는지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 그건 절대 아니다! 나도 도리가 있는데 어찌 그러겠느냐? 단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으니······"

"일단 헤어지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당장 옆에 있는 암여우가 호시탐탐 제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누구 좋으라고?"

"응? 설마 나 말하는 거니?

"너 아니면 누구겠어?"

뜬금없이 저격당한 세실리. 그러나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었는지 어깨만 으쓱이며 여유롭게 대처했다.

그걸 마리의 표정이 살짝 구겨지는 건 당연지사. 여러모로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우······ 어쨌거나 그런 일이 발생해도 낙태를 하거나 쫒아내지는 않을 거예요. 분명 아이작도 슬퍼할 테니까."

"그, 그렇구나."

"단! 아르웬 여왕님처럼 합의를 거친 여자에 한해서만. 만약 아이작이 저희도 모르는 여자와 관계를 맺고 아이까지 가진다면 자비따위는 없어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텐데.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가까스로 억눌렀다.

내가 분위기도 못 읽는 바보도 아니고 저 말을 꺼내는 순간 상황이 악화될 테니 지금으로서는 침묵이 답이다.

동시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평소 마리는 나와 장난도 잘 치고, 서로 서로 죽이 잘 맞는 성격이라 싸울 날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저 말을 꺼낸 걸 보면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애당초 세실리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큰 결정이다.

"그러니 여왕님은 안심하셔도 돼요. 지금은 지금 일에만 신경 쓰면 될 거예요. 아셨죠?"

"그대의 넓은 아량에 감사를 전하마."

"제논의 약혼녀라면 이정도 아량은 있어야죠. 그리고 아이작?"

"으, 응?"

나는 마리의 부름에 자세를 꼿꼿하게 세우며 그녀와 마주했다. 팔짱을 끼고 다리까지 꼬아 도도함을 풍기는 그녀.

이렇게 마주 바라보니 마리도 앳된 티를 벗어던지고 어른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풋풋함을 풍기는 소녀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옆의 세실리처럼 조금씩 성숙미를 뿜내고 있다.

"이번 일은 너도 많이 억울할 테니 넘어갈게. 히르트 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거부할 수도 없잖아?"

"그, 그렇지."

"정조대까지 채울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

"··· ···"

분명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전혀 웃지를 않았다. 독이 바짝 오른 모습도 예뻤지만 가시가 돋힌 장미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녀도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겠지. 내 주변에 여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

여기서 아리엘까지 나타났으니 그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날까봐 진심으로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피임도 하지 않고 하자니 내가 너무 힘들고······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운동이라도 할 걸 그랬나?"

"··· ···"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먼저 임신시킨다면 방금 내가 말한 것들 모두 이행할 테니까 잘 새겨들어. 알겠지?"

"물론이지."

"아. 참고로 네가 강간당해서 그 여자가 애를 배는 건 예외. 세실리 말마따나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거 정말 현실적인 문제네. 비꼬는 게 아니라 당장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두 명이다.

체리와 케이트. 따지고 보면 순하디 순한 편에 속하는 광신도들.

하물며 이 세상은 판타지 세계관 답게 무력이 강한 여자도 매우 많다. 멀리 가지 않아도 니콜, 아델리아, 케이트가 있다.

이들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무력을 보유했으며 케이트의 경우는 대심문관이다.

세실리와 아르웬 이 두 명도 마찬가지. 태생부터 사기인 종족인지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마리랑 체리를 제외하면 나보다 강한 여자들밖에 없네?'

레오나는 잘 모르겠다만 본인의 말로 훈련을 받았다 했으니 필히 강할 터. 수인은 하드웨어가 사기다.

적어도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시라도 빨리 무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아리엘인데······"

"웅?"

마리는 고개를 돌리면서 아리엘을 언급했다. 아리엘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리와 쳐다봤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는 마리와 아리엘. 황금의 눈동자와 호수처럼 청명한 눈동자가 서로 마주했다.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쯤, 아리엘 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귀여워? 이런 애 낳고 시퍼?"

마리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고스란히 입으로 말하는 아리엘.

본래라면 당황했겠지만 마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지 아리엘을 쳐다보기 바빴다.

"이런 애만 있다면 행······ 행······ 보 할 거 가타. 몇 명······ 낳지? 다섯 명?"

"흠. 흠."

본의 아니게 본심이 전부 까발려지자 마리가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물론 한 번 뱉었던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세실리는 마리의 속마음을 듣고 피식 웃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다섯 명이라······ 이럴 때는 인간이 부러워. 나도 그만큼 낳고 싶은데."

"그럼 넌 몇 명 정도 낳고 싶은데?"

"나도 다섯 명이면 좋겠네. 아르웬 님은요?"

"나, 나는 세 명 정도······"

내 의견은 안 묻나요. 듣기만 해도 해탈할 것 같다.

만일 정말로 저 정도나 되는 아이를 낳으면 역사에 이리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자식을 낳은 남자라고.

어찌 보면 영광(?)이라 볼 수 있다만 당사자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육아도 육아지만 그전에 내 허리가 남아나질 않을 테니.

"어쨌거나 돌아갈 때 주의하는 게 좋겠어. 마법으로 숨길 수는 없나?"

"아리엘은 마법에 매우 민감하다. 게다가 저항력도 매우 높아 어지간한 마법은 걸리지 않을 테고."

"응? 지난번에는 네가 마법으로 아리엘을 날게 하지 않았어?"

루미너스와 대화를 막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그때 분명 아르웬의 마법으로 아리엘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직접 부탁했지. 마나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그렇구나. 수면 마법은 걸기도 전에 깼었지?"

아르웬이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이 태어난 이후 아르웬과 밤일을 치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마리도 그걸 재빠르게 눈치 챘는지 설마하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뭐야. 그럼 첫날을 제외하면 한 번도 안 했어?"

"두 번째 날까지는 했지. 그런데 셋째 날에 아리엘이 태어나서······"

"나?"

그래, 너요. 이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새싹 천사님.

사실 여기서 마리와 비견될 정도로 억울한 사람은 아르웬이다.

하마터면 마리에게 잘못 찍힐 뻔했을 뿐더러 아리엘 때문에 단란했던 생활이 전부 무위로 돌아갔으니까.

그렇다고 원망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리엘은 무려 히르트 님이 직접 주신 선물이다. 원망을 하게 되는 순간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전혀 모른다.

"흠······ 확실히 그건 좀 억울하겠네. 그렇다고 막 데려갈 수도 없고."

"한 번 물어볼게. 아리엘?"

"왜, 압빠?"

"아리엘은 아빠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어?"

내 질문에 아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 위의 새싹도 따라 기울어졌다.

아무래도 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좀 더 세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리엘은 아빠 얼굴을 못 봐도 괜찮아? 아빠가 일이 있어서 그래."

"엄마들도?"

"응?"

"엄마들도 없어?"

아리엘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으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마리와 세실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들을 엄마라 지칭했다.

이에 확인을 위해서 다른 질문부터 꺼냈다.

"그······ 아리엘?"

"우응?"

"혹시 이 언니도 엄마고, 이 언니도 엄마야?"

"응! 엄마! 엄마 많아!"

엄마가 많아서 좋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아리엘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뒤의 날개도 파닥거리는 게, 누가 보아도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태어나자마자 처음 맞이한 아르웬은 몰라도 마리와 세실리도 엄마라 인식하다니.

나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차근차근 질문했다.

"어째서 엄마라 부르는 거야? 아까 책에서도 봤잖니?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고."

"응. 근데 엄마한테서 압빠가 느껴져."

"내가 느껴진다고?"

"응! 압빠의 느낌. 엄마들한테도 나."

더욱 아리송해지는 대답이다. 내 느낌이 다른 이들한테도 난다니. 이게 당최 무슨 말인 걸까.

다른 여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도통 알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아이작이랑 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전부 엄마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중 마리가 가설 하나를 던져줬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이니 맹신해서는 안 된다. 굳이 지금 할 필요도 없고.

중요한 건 아리엘이 나와 떨어져도 괜찮냐는 것. 이에 다시 한 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리엘은 아빠가 없어도 괜찮아?"

"압빠 없으면 시른데······"

내 말 뜻을 이해했는지 아리엘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 위의 새싹도 제 감정처럼 추욱 늘어졌다.

그 반응을 보자마자 가슴이 아파왔으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리엘도 소중하나 아르웬도 마찬가지로 소중했으니.

지금 흐지부지된다면 언제 또 아르웬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몇 밤만 자면 돼. 버티기 힘들다면 엄마들한테 부탁해도 되고. 아리엘이 먼저 찾아오면 돼."

"우응······"

"아참. 압빠 말 들으면 아리엘이 가장 좋아하는 거 줄게. 아리엘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뭐야?"

"압빠."

가슴 찢어지는 대답만 돌아왔다. 분리 불안은 아이에게 위험하다는데 아무래도 일찍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르웬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하지만······"

"나는 괜찮다. 그대와 이어졌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의 은회색 눈동자에는 진한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솔직히 많이 억울하겠지.

그러나 히르트 님이 주신 선물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쉽고 억울해도 이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상황이 대충 종결되려던 찰나, 아르웬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아리엘이 입을 열었다.

"······갈래."

"응?"

"압빠 없이 갈래."

갑작스레 선택을 번복한 아리엘이다. 나는 물론 모든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쳐다봤다.

세실리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아리엘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아르웬을 쳐다보며 말했다.

"난 압빠가 조아. 하지만 엄마 슬픈 거 시러."

"아리엘?"

"몇 밤 자면 대?"

천사로 태어나서 그럴까. 따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양보'와 '배려'를 하는 아리엘이다.

이 어찌나 선한 존재일까. 아르웬을 위한답시고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나는 감동받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뒤이어 번쩍 안아들고는 그녀의 뺨을 내 얼굴로 마구 비볐다.

"어휴. 누구 닮아서 이리 착한 걸까? 우리 아리엘은 정말 착하구나."

"헤헤헤."

"웃는 것도 귀여워. 아빠도 최대한 빨리 갈게. 그동안 엄마들 말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응!"

이래서 자식을 낳는다는 거구나. 온갖 사고를 쳐도 감싸주는 부모님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모두가 흐뭇한 상황에 빠져있을 때, 나에게 애정이란 애정을 듬뿍 받고 있던 아리엘이 입을 열었다.

"아싸."

"······?"

"아이작이랑 더 할 쑤 이따?"

뭐야. 누구를 바라보고 하는······

"···아르웬?"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순식간에 사람 한 명 쓰레기로 만드는구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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