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화 〉 영물(3)
* * *
사람이 겪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첫번째로 화상, 두 번째는 절단상이다.
세 번째부터는 각각 다르긴 하나 대부분 출산하는 고통을 우선 순위로 두는 편이고, 그 다음부터는 통계마다 다르다.
하지만 남자가 고환을 맞았을 때의 고통은 최소 10위 안에 든다. 만약 성별을 남자로만 둔다면 단연코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지.
바깥에 노출돼 있어도 고환은 엄연히 장기다. 장기를 직접적으로 맞는다면 그 고통은 차마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가끔 가다가 고환에 맞아도 멀쩡한 사람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단련을 한 게 아니라 그냥 고통 자체에 익숙한 거다.
아무튼 간에 일반인이 제대로 적중당한다면 대략 5분 넘게 행동이 불가능하며, 심할 경우 그 유명한 짤의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손가락으로 툭 튕기기만 해도 세상 끔찍한 고통이 몰아치는데 여기서 더 강한 충격이 온다면?
단순히 끔찍한 고통이 아니라 눈 앞에 별이 빙글빙글 돌아갈 것이다. 게다가 이 고통은 즉각적으로 오지 않고 서서히 찾아온다.
'기절' 같은 요행은 절대 바래서는 안 된다는 뜻. 다시 말해 스멀스멀 몰려오는 고통의 파도를 전부 느껴야 된다.
"그, 그대여. 이제 괜찮은 것이냐?"
"··· ···"
나는 아르웬의 걱정 어린 질문에도 아무 대답조차 하지 못 했다. 현재 나는 비명조차 못 지르는 상황이었으니.
식은땀이 뻘뻘 흐르고,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나와 땅바닥에 떨어진다.
어떻게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두 팔로 배를 감싸고 있으나 중과부적조차 안 되는 수준.
굳이 비유하자면 누군가 칼로 내 배에 쑤셔박은 후, 그걸 기어 삼아 이리 저리 돌리는 것 같다.
"압빠?"
귀에 선명히 박히는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 내가 이 고통을 겪게 된 주범.
나는 그 생각을 빠르게 거치고는 고개를 간신히 들었다. 고통은 여전하지만 일단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
이내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나를 바라보는 두 쌍의 눈. 서로 대비되는 은회색 눈동자와 황금색 눈동자.
은회색 눈동자에는 진한 감정이, 황금색 눈동자는 똘망똘망하기 그지 없다.
보아하니 본인이 무슨 잘못을 저지렀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들을 위해서라도 미소를 지어주고 싶지만 고통이 너무 크다보니 다시 고개를 내렸다.
애당초 침대에도 못 간 상황이다. 당분간 이대로 배를 부여잡은 채 기다려야 될 것 같다.
"후우······"
약 5분 정도가 흘렀을까. 고통이 어느 정도 물러가는 느낌에 깊은 날숨을 토했다.
야구공처럼 타격점이 좁지 않아서 망정이지, 만약 야구공이었다면 난 평생동안 후손을 낳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짧은 사이에 비 오듯이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아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눈에 들어오는 아르웬과 아이의 얼굴. 이에 애써 웃으며 괜찮은 척 말했다.
"······이제 괜찮은 것 같아."
"정말인게냐? 만약 아프면 의원이나 성직자를······"
"아냐. 정말로 괜찮아."
알이 터졌다면 당장 의원이나 성직자를 불렀겠지. 하지만 내가 체크한 결과 내 소중한 알들은 멀쩡하다.
더군다나 방금 전까지 루미너스와 대화하고 왔는데 경고를 내려줬겠지. 신들 입장에서도 내 후손이 중요할 것이다.
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다시 한 번 닦아내고 아이를 쳐다봤다.
방금 태어났으나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어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
더군다나 바짝 솟아있던 새싹마저 추욱 처져있다. 아무래도 엘프의 귀처럼 저 새싹이 감정을 표시하는 것 같다.
"얘야."
"웅."
"앞으로 뛸 때는 천천히 뛰어오렴. 그리고 아빠한테 한 것처럼 사람한테 점프하지 말고. 알겠지?"
"우응?"
내 당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빡이는 아이. 나는 그 반응을 멍청하게 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아듣는 것보다 못 알아듣는 게 더 많다.
나는 기회가 되면 차차 설명해야겠다고 다짐하고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복부는 여전히 칼로 찔린 것처럼 욱신거렸지만 그렇다고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읏차."
"응?"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린 후, 그녀가 팔을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윽고 말똥말똥하게 뜬 황금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마주했다. 아이도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본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을까. 등 뒤의 날개도 날개지만 특히 머리 위의 새싹이 너무 앙증맞다.
'그런데 이름은 뭘로 하지?'
처우는 둘째 치고 가장 중요한 이름부터 지어야 된다. 언제까지고 아이라 말할 수 없으니까.
그런 내 생각을 독심술로 읽었는지, 아이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힘차게 외쳤다.
"이름?"
"응. 이름. 앞으로 이름을 정할 거야."
"이름!"
이름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확실하다. 나는 귀여운 아이의 반응에 피식 웃고는 아르웬을 쳐다봤다.
아르웬도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 동의하는지 나와 마주하자마자 못 말린다는 미소를 지었다.
"혹시 좋은 이름 있어?"
"그······"
내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쭈볏거리는 아르웬. 처음에는 촌스러운 이름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건가 싶었다.
"아기?"
"응?"
그때 아이가 의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와 아르웬은 그 말을 듣자마자 동시에 아이를 쳐다봤다.
새싹은 어느새 위로 바짝 세워져 있고, 아이 눈 또한 아르웬을 똘망똘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뒤이어 아이는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며 쪽쪽거리더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하나씩 말했다.
"아이작."
"그거 아빠 이름······"
"사이 나은. 아기. 이름?"
"··· ···"
모두 알다시피 아이에게는 독심술을 갖고 있다. 내 속마음을 읽자마자 어눌한 발음으로 욕 했었지.
다시 말해서 저 단어들은 아르웬의 속마음을 읽고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그 생각을 거치고 나서 아이가 꺼냈던 단어들을 천천히 종합하기 시작했다.
'아이작 사이에 낳은 아기의······ 이름?'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아르웬은 이름을 미리 정해놓았던 모양이다.
지금 내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이름.
첫날밤을 치른 지 일주일도 흐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2세의 이름을 정하다니, 뭔가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생각이다.
"··· ···"
물론 본인은 속마음이 완전히 까발려지자 얼굴이 실시간으로 붉어졌지만.
나는 붉은 노을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아르웬을 보며 약하게 웃었다. 아마 정말로 부끄럽겠지.
그리고 그 마음은 얼마 가지 않아 행동으로 옮겨졌다. 울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다가 침대 쪽으로 몸을 던졌으니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것이, 아르웬이 수치스러워할 때마다 보이는 반응이다.
"에르······ 에르······ 엘······"
"응?"
"엘······ 리샤! 엘리쌰!"
그거 제논 일대기 속 엘프 여왕의 이름이잖아. 설마 아이 이름을 엘리샤로 지을 생각이었던 걸까.
이에 곧장 침대 쪽을 바라보니 아르웬이 갓 잡은 물고기마냥 몸부림을 친다. 두 다리도 동동 굴리며 본인의 심정을 대변했다.
꽁꽁 숨기고 있던 속마음이 전부 드러났으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겠지.
지난번 세실리와의 웅장 대결 당시 엘프식 공산주의적 발언까지는 아니겠지만, 본인의 욕망이 가감없이 드러난 상황이다.
"미띠······ 게따. 죽고······ 싶따?"
"어허."
계속 읽고 있네. 나는 아이를 가볍게 다그친 후 아르웬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서둘러 진정시켜야 할 것 같다.
"아르웬."
"우으······"
"너랑 나 사이에 낳은 아이 이름은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니 아이 이름부터 짓자."
마리조차도 정하지 않은 자식 이름인데 아르웬은 정하다니, 이 사실이 들키는 순간 즉각 사형이다.
아르웬은 내 위로에 그나마 진정되었는지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걸 멈추었다.
뒤이어 얼굴을 돌려 나와 아이를 마주했다. 귀까지 빨개진 게 어지간히도 창피했던 모양이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거라."
"말하면 난 죽어."
"압빠 주거?"
"지금은 안 죽어."
조만간 죽겠지. 나는 뒷말을 삼키며 아이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순하디 순하다.
아이가 어딘가의 감자 머리 꼬마마냥 천방지축이 아니라 다행이다. 만약 성격까지 그랬다면 지옥이 닥쳤겠지.
"어디 보자······ 무슨 이름이 좋을까?"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르웬도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는 특유의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아르웬을 번갈아봤다.
등에 달린 반투명한 날개는 조금씩 펄럭이고, 머리 위의 새싹은 올곧게 뻗어있다.
외모가 너무 개성적이서 이름조차 쉽게 지을 수 없었다. 제논 일대기는 가상의 이야기라 내 마음대로 지었으나 이건 신중해야 된다.
일단 딸이니까 여자 이름으로 짓는 건 확정이다. 다만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으음······"
"영차."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쯤, 가만히 앉아있던 아이가 두 다리로 일어섰다.
그 행동을 보며 고민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혹여 아이가 이상한 짓이라고 할 수 있으니 신경이 곤두섰다.
뒤이어 아이는 두 다리로 나에게 다가오더니······
"압빠."
그대로 내 품에 쏙 들어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두 팔로 그녀를 감싸안았다.
"히히."
내가 안자마자 방실방실 웃으며 행복해 하는 아이.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것이, 아무래도 내 품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흐뭇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로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다.
신들이 말한대로 사랑을 담아 키울 테지만,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사랑 받을 아이인 건 확실하다.
"······아리엘."
"우응?"
"아리엘이 가장 나은 것 같네."
전생에는 7대 천사라고, 아주 유명한 천사가 있다. 아리엘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아도 매우 강력한 존재다.
특히 그녀를 상징하는 건 다름 아닌 자연. 동물과 자연을 각별히 사랑하는 천사다.
세계수의 씨앗에서 태어난 아이이니 가장 적합한 이름이지 않을까.
나는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눈동자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다시 한 번 알려줬다.
"네 이름은 아리엘이란다. 알았지?"
"아리엘?"
"응. 아리엘."
"아리엘!"
아이도 마음에 들었는지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찰나······
번쩍!
반투명했던 아리엘의 날개에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개를 바라봤다.
새하얀 빛무리에 휘감겼던 날개였으나 머지않아 서서히 옅어졌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 바로 깨달았다.
본래 반투명했던 날개였으나 전보다 명확해지고, 색채 또한 눈에 띄게 밝아졌다.
보아하니 이름을 선사하면서 본인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한 것 같다. 머리 위의 새싹은 여전했지만.
'새싹은 신체가 성장할 때 자라려나?'
나는 전보다 천사에 가까워진 듯한 아리엘을 보다가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사고 나발이고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울 예정인데 상관이 있겠나.
마리한테 좀 얻어터지긴 하겠다만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히르트 님이 주신 아이라 하면 그녀도 마지못해 받아들일 터.
"아리엘."
"우응?"
"아빠 이름은 아이작이야. 아이작."
"아이······ 자크?"
"응. 아이작."
"압빠!"
그래. 그냥 아빠라 부르렴. 그게 더 편하겠네.
나는 작게 웃어주고는 아이의 몸을 빙글 돌려 아르웬과 마주했다.
"앞의 엘프 이름은 아르웬이야. 누군지 알겠니?"
"맘마!"
"그래. 편하게 부르렴."
"우응······"
아르웬이 대답하자마자 아리엘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새싹 또한 그녀에게 약간 기울어져 있다.
보아하니 속마음을 읽는 듯하다. 과연 아르웬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떽드?"
"······어?"
"떽드. 어뜨케 하지?"
"··· ···"
너무 안 좋은 것만 알려주는 것 같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