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화 〉 영물(2)
* * *
내 속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아이를 뒤로 하고, 나는 곧장 옷을 챙겨 입은 후 신전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일단 아르웬에게 맡겨놨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었으나 우선 아이의 정체가 우선이다.
나와 아르웬의 특징을 닮은 것도 문제지만 등 뒤의 날개가 제일 큰 요점이었으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사람들에게 공개된다면 그 파장은 이왜진 이상이라 단언할 수 있다.
천사는 악마와 달리 기록만으로 존재하고, 현재로서는 절멸한 종족이었으니까. 그들의 후손이 엘프라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신화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의 날개를 단 존재가 튀어나온다? 그것도 나와 아르웬의 특징을 닮은 아이가?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데 위의 것까지 합친다면 아찔한 상황이 펼쳐지겠지.
마리에게 반죽음 당하는 건 둘째 치고 아이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알아야 된다.
[종족만 따지자면 천사가 맞단다.]
루미너스에게 물어보니 천사가 맞단다. 나는 듣자마자 몰려오는 아찔함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등 뒤의 반투명한 날개를 보고 천사라 직감은 했다. 그렇다면 머리 위의 새싹은 무엇인가.
장식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귀엽긴 해도 무언가 맞지 않았다. 식물이 되다 만 동물도 아니고.
[이건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넌 천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고 있니?]
'음······ 아뇨.'
책을 많은 읽는 나조차도 천사의 탄생은 모호하게 알고 있다.
누구는 신이 직접 탄생시킨다 말하며, 또 누구는 자연스레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악마와 달리 천사에 대해서 알려진 게 너무 없다 보니 다양한 주장이 오고 가는 실정이다.
[천사는 강력한 신성에서 태어나는 존재란다. 우리 곁을 보필해야 되니 날 때부터 강한 신성력을 타고 나야 하지.]
'이해가 어렵네요. 인류와 달리 그냥 탄생하는 건가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신성이 일종의 씨앗이 되는 거란다. 그 씨앗에서 천사가 탄생하는 거지.]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천사가 신들의 신성을 통해 태어나는 존재라면, 어찌 하여 지금은 천사가 없는 것인가.
천사가 스스로 날개를 꺾고 내려와 엘프가 된 건 역사가 아니라 '신화'에 속한다. 까마득히 오래 전의 사건이라는 뜻이다.
또한 악마 전쟁 당시에도 천사의 도움은커녕 존재하지도 않았고 세계수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퇴치했다.
하나 하나 되돌아 보자면 결론이 나온다. 현재 신들은 천사를 탄생시킬 여력이 없다.
왜? 어째서 신들은 천사를 탄생시킬 여력이 없는 것일까.
죗값을 치르기 위해 스스로 날개를 꺾은 천사들을 기리기 위해? 이건 개연성이 부족하다.
아무리 그래도 악마 전쟁이 발발했는데 멍청한 것도 아니고 보험을 들어야 할 테니까. 문헌에 묘사된 바로, 천사는 그 한 명 한 명이 매우 강력하다.
그렇다면······
[그, 그래서 그 아이는 일종의 편법을 통해 탄생한 거란다. 3000년이 흐르면서 세계수에 농축된 신성이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아 씨앗의 형태로 바뀐 거지. 아이 머리 위에 솟아난 새싹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때문에 천사보다는 '영물'이라고 볼 수 있지.]
의문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을 때, 루미너스가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에 나는 잡념을 딴 곳으로 버리고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럼 일단 천사가 맞다는 소리는 뭐에요?'
[인류로 치자면 순혈이 아니라는 뜻이지. 하지만 신성 속에서 태어난 만큼 초월자인 건 변함이 없단다. 엄밀히 따지자면 세계수의 아이라 보는 게 옳겠지.]
'저랑 똑같이 닮았는데요?'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알고 있니?]
당연히 알다마다. 물과 토양, 마지막으로 풍부한 양분이다.
[너에게는 어머니에게 받은 축복이 있어서 양분과 토양은 의미가 없단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양분을 얻을 수 있었겠지.]
'그러면 물은요?'
[물은 너와 그 아이의 몸에서도 나오잖니?]
'··· ···'
세상에나. 나는 루미너스의 대답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아무리 물이 필요하다지만 그런 걸로 보충하는 건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비위생적인 건 둘째 치고 그냥 미안하다.
그러나 동시에 납득이 된다. 정액처럼 확실한 유전자가 각인돼 있는 액체는 없을 테니까.
어쩌면 나와 붕어빵 수준으로 닮은 것도 이때문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프로디테랑 비슷한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 일화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가이아의 명령에 따라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버리고, 그 피가 바다로 뿌려졌다.
피가 뿌려진 바다에는 거품이 일었으며, 그 거품 속에서 탄생한 존재가 바로 아프로디테다.
이외에도 비슷한 신화들이 있으니 마냥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 과정이 아이에게 약간 미안해질 뿐이지.
'······그러면 제가 씨앗을 땅에 심었다면 어떻게 됐죠?'
[세계수처럼 평범한 성목으로 자랐겠지.]
'그것밖에 없는데 어째서 미래를 알려주지 않으신 거예요?'
[네 영지에 성목이 자라는 것과, 지금처럼 천사가 태어나는 것. 이 두개만 해도 세계의 줄기가 둘로 갈리기 때문이란다.]
'아.'
단번에 이해가 간다. 확실히 둘의 차이는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클 것이다.
이래서 천기누설이라고 했던 거구나.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가 루미너스에게 질문했다.
하늘의 비밀도 알았겠다, 남은 건 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일단 확실한 건 세계수의 씨앗을 으적으적 씹어먹을 정도로 치아가 튼튼하다. 게다가 갓 태어났음에도 힘이 매우 세다.
생각만 해도 엄청난 난이도로군. 졸지에 육아를 하게 생겼지만 뭐 어쩌겠나.
자그마치 히르트 님이 주신 선물인데 사랑으로 보듬어야지. 그 대가로 마리에게 죽겠지만.
해일이 몰려올 게 뻔한 미래를 예측하면서 허허실실 웃다가 문득 생각난 점이 있었다. 이에 루미너스에게 물었다.
'그럼 진은 초월자로 환생하지 못하나?'
제논 일대기 속 세계수는 엘프 영웅들의 희생으로 장렬하게 폭발했으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된다.
물론 초월자가 아니라 필멸자로 환생하면 상관없겠지. 참고로 카이르가 그렇게 부활하여 엘리샤와 재회할 예정이다.
이것도 살짝 조정해야 될 사안인 것 같다. 또한 신성력은 수명을 늘리는 기능도 있으니 릴리를 그에 포함시키면 될 것이리라.
'다시 태어날 연인을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린다라······'
나쁘지는 않다. 대신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건 일종의 보험이다.
우선 대악마의 영혼과 하나로 합쳐져서 소멸밖에 답이 없다는 전개로 나갈 생각이다.
나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본론이라 함은 당연하게도 아이의 처우.
'혹시 주의해야 할 거라도 있나요?'
[그다지 없다만······ 너도 알다시피 원체 힘이 강한 아이라 조심해야 될 거란다.]
'그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요. 다른 거는요?'
[평범한 아이로 키워도 상관없단다.]
그걸 제가 몰라서 묻는 겁니다. 준비도 안 됐는데 갑자기 아이가 생겨버리니 여러모로 난처하다.
이대로 부모님에게 맡긴다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겠지. 심지어 아이는 나와 아르웬을 부모로 인식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에게 맡길까 생각했다만 너무 책임감이 없는 것 같아 곧바로 폐기했다.
어이없는 상황이긴 해도 무려 자연의 여신이 준 선물이니 무어라 항변할 수도 없는 노릇. 그냥 순순히 받아들여야겠다.
[앞으로 사랑을 듬뿍 주면서 아껴주렴. 분명 너와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란다.]
'물론 그래야죠. 아참.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 독심술이 있는 것 같은데 초월자는 다 그런 건가요?'
[우리가 다른 이의 속마음을 읽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거란다. 이외에도 다양한 능력이 있지만 그 아이는 너와 비슷한 '권능'을 갖고 있을 거란다. 동물에게 사랑받는 것부터 시작하여 식물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지.]
나는 아이의 잠재력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혈이 아니라 혼혈이어도 권능은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모양이다.
당장 걱정할 건 아이의 존재를 공표할지, 아니면 어떻게든 끝까지 숨길지다.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온갖 파도란 파도가 몰려올 터.
그렇다고 아르웬에게 맡기자니 양심이 터진 것 같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기숙사로 돌아가자. 그리고······'
마리에게 맞아죽을 준비부터 해야지. 나는 착잡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상황에서 제일 눈이 뒤집힐 사람이 바로 그녀다. 기껏 양보해서 사랑하는 남자를 보냈는데 웬 아이 한 명과 돌아온다?
눈이 뒤집히는 걸 넘어 이혼 선언을 해도 할 말이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미안하구나. 어머니는 분명 널 아끼는 마음에 선물을 줬을 텐데······]
'괜찮아요. 마리도 이해해 줄 거예요.'
머리로는 이해하겠지. 마음은 반대겠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조금씩 설계하면서 루미너스와의 접신을 끊으려던 찰나였다.
천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럴까, 문득 궁금해진 부분이 있다.
'루미너스 님.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은 히르트 님의 친자식이죠?'
[응? 그, 그렇지.]
'그리고 천사는 친자식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탄생한 존재고요.'
[······그렇단다.]
'그러면 두 분은······'
나는 질문을 하려다 말고 중간에 미간을 좁히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더라?
가끔 가다가 무슨 말을 할지 잊어버리는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특히 전생에서 인터넷 검색을 할 때마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현재 내 상황이 그렇다. 분명 질문할 거리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확히는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느낌. 또한 기시감까지 느껴졌다.
[얘야?]
'······아니에요. 나중에 여쭈어 볼게요. 죄송합니다.'
[그래. 다른 질문은 없니?]
'네.'
루미너스와의 교신은 거기서 종료되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눌러담고 침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침소로 돌아가자 보이는 건······
"슈웅~!"
"꺄하하하!"
마법으로 아이를 공중에 띄우고 있는 아르웬. 그리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공중을 유영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둘 다 입가에 해맑은 미소가 지어진 걸 보면 정말 잘 놀고 있던 모양이다.
"아. 왔느냐?"
아르웬은 내가 돌아오자 반갑다는 표정으로 맞이했다. 나는 즐거워 보이는 그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닐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결과였다.
뒤이어 그녀가 마법을 취소하며 아이를 푹신한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아이도 나를 발견했는지 황금빛 눈을 귀엽게 깜빡였다가 이내 해맑게 웃었다.
"압빠!"
아이는 그리 외치며 침대 밑으로 영차영차 내려왔다. 나는 그녀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어느새 나를 완전히 아빠라고 인식하는 귀여운 아이. 비록 얼떨결에 도맡게 된 아이였으나 루미너스의 말마따나 사랑으로 키우면 될 터.
게다가 훗날 나와 주변인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예언까지 했으니 결코 짐은 되지 않을 것이다.
도도도도!
아이가 열심히 나를 향해 달려온다. 반투명한 날개까지 파닥거리는 걸 보아 정말로 내가 좋은 모양이다.
이에 나는 허리를 살살 굽히며 두 팔을 벌렸다. 아이의 귀여움에 홀려버려 나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초월자로 태어난 아이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갓 태어난 아이에게 힘 조절을 바랐던 것 자체가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걸.
폴짝!
아이가 가볍게 점프하자마자 쏜살처럼 날아오고.
퍼억!
"······어?"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아래에서부터 몰려오면서 깨달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