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화 〉 히르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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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에 아르웬 성인 버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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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르트가 사라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씨앗. 성인 남성 주먹보다 훨씬 큰데다가 겉모습조차 범상치 않았다.
우선 씨앗이 황금처럼 반짝반짝 빛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 같으면 쉬이 믿지 못하겠지.
더군다나 크기 자체도 씨앗이 아니라 열매로 생각될 정도로 크다. 여기에 망치로 써도 될 만큼 단단하기까지.
사실 이러한 설명이 나온 곳이 있다. 신화와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절대 모를 리가 없다.
성인 남자 주먹보다 훨씬 큰 크기를 가졌고, 황금의 빛을 뿜어내며 돌로 내려찍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강도까지.
히르트가 엘프들에게 선물했다는 세계수의 씨앗. 그 씨앗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마다 항상 위의 말들이 나왔다.
다시 말해 히르트가 나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씨앗도 세계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키우지?'
신화에서는 씨앗을 심었다는 기록만 있지, 어떻게 키웠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른 식물처럼 땅 속에 심고 물과 영양분을 적당히 주면 되는 건가 싶지만, 자그마치 세계수의 씨앗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걸 누가 키우느냐가 문제지. 일단 마이샬 영지에 심는 건 확정된 사안이다.
단지 그 파장이 얼마나 대단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무려 신화에서만 등장하던 세계수의 씨앗이다.
그 씨앗은 세계수가 성장하여 악마들을 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어언 3000년 전의 일이다.
장수종인 마족과 엘프에게도 까마득한 전설로 취급될만한 이야기인데 내가 그 씨앗을 받았다?
내 명성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까지 뚫어버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분명 되도 않는 수식어가 붙어다니겠지.
제논 일대기 신간이 발매될 때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는데 세계수의 씨앗은 전혀 불가능하다. 과연 어떤 소식들이 줄지어 나올까.
'그것도 그렇고 이건 누가 키우지?'
나는 세계수의 넓은 줄기에 등을 기대며 고민했다. 너무 큰 문제라 히르트가 사라져도 엘로디아로 복귀하지 않았다.
지금 내 손에는 세계수의 씨앗으로 추정되는 코코넛(?)이 쥐어져 있다. 비유가 아니라 외양만 따진다면 진짜로 코코넛처럼 생겼다.
그것이 황금처럼 반짝반짝 빛난다는 게 웃긴 점이지. 손이 큰 편인 내가 두 손으로 잡아야 할 크기는 덤이고.
'키우라고 주신 거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세계수를 바라봤다. 300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도시 규모만한 크기의 신성한 나무.
그렇다면 마이샬 영지에 심어도 이렇게 커지는 것일까. 그러면 살짝 곤란하다. 우리 영지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거든.
물론 히르트 님도 생각이 있으시니 지금의 세계수처럼 성장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세계수는 세계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배로운 나무인데 우리 영지에 심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해졌다.
"흐음······"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치다가 옆을 슬쩍 힐끔거렸다. 아르웬이 곤히 잠든 채 내 어깨에 기대고 있다.
아르웬은 나와 달리 신성력이 풍부한 편이 아니어서 심력을 많이 소비했을 터.
씨앗에 대해 생각도 할 겸 겸사겸사 쉬기 위해 엉덩이를 붙였다. 세계수이니 누군가 접근할 걱정도 없다.
'예쁘네.'
눈을 감고 곤히 잠들어 있는 아르웬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긴 속눈썹과 더불어 바람에 살랑거리는 은회색 머리카락.
엘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미모에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관리해줬다.
'오늘 나랑 만나기 위해 수행원에게 이리 저리 이끌렸다고 했나.
평소 그녀답지 않게 관능적인 드레스를 입고 화장까지 한 걸 보면 확실하다.
그런 상황에서 히르트 님과 대면하여 심력까지 소비했을테니 피로가 누적됐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피로가 해소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 어차피 밤에 또 피로가 쌓이고 쌓일 테니까.
"짹! 짹!"
아르웬의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도중에 흰색 뱁새가 내 손가락 위에 앉착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수에 거주하던 새 몇 마리가 하나 둘씩 나에게 다가왔다.
손가락에 앉은 흰색 뱁새뿐만 아니라 카나리아를 포함한 다양한 새들. 내가 새 종류는 몰라서 따로 설명할 길이 없다.
어쨌거나 그 새들은 내가 움직여도 날아가지 않고 자기 둥지에 앉은 것마냥 편히 대했다.
뱁새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는 히르트의 의지여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녀의 축복을 받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순수한 자연의 축복이 있을 거라고 하셨지?'
순수한 자연의 축복.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무려 자연의 여신이 직접 내린 축복이다.
지금 새들이 나에게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접근하는 것도 그 일환일 터.
자연은 그 범위가 너무 애매하지만, 애매한 만큼 큰 효력을 보여줄 테니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음?"
새들이랑 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을 때 불현듯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이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어느새 아르웬이 은회색 눈동자를 드러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잠에서 일어나 몽롱한 눈빛이었으나, 다른 의미의 몽롱함도 포함돼 있다.
"일어났어?"
나는 빙긋 웃으며 정답게 인사했다. 멍 때리는 모습도 어쩜 이리 귀여울까.
그러자 아르웬은 눈을 끔뻑끔뻑거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답했다.
"······폐를 끼쳤구나. 미안하다."
"아냐. 나도 쉬고 있었는데 뭘."
"큼. 큼."
아르웬은 내가 살갑게 대하자 멋쩍게 기침을 하더니 슬금 슬금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금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인지 맞닿았던 어깨가 서서히 멀어져 간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엉덩이를 움직여 그녀와 바짝 밀착했으니.
"그, 그대여?"
"이대로 있자.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거야?"
"하, 하지만 그대는 히르트 님에게······"
겨우 그것 때문인가. 하기야 루미너스와 모라보다 더 높은 격의 신에게 축복까지 받았으니 저 반응은 당연하다.
당장 케이트조차 루미너스에게 은총을 받아 교단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케어했는데 나는 그보다 높은 자연의 여신이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직접 세계수의 씨앗까지 하사받았으니 격 자체가 다를 수밖에.
하지만 모두 의미 없는 일이다. 신에게 축복을 받아도 나라는 사람이 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더욱 과감해질 수 있지. 나는 머뭇거리는 아르웬의 허리를 팔로 감싸안았다.
'엄청 가늘잖아?'
겉보기에도 엄청 가녀린 허리였는데 직접 감싸니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런데도 골반은 성숙하니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히익!"
한편 나의 과감한 행동에 아르웬이 깜짝 놀랐다.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이 팔을 타고 온전히 전달되었다.
이윽고 그녀가 나와 바짝 밀착했을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와서 안 오겠다는 건 아니지?"
"아으······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정말 짓궂어."
하오체를 사용하던 아르웬이 얼굴을 붉히며 작게 투덜거린다. 그 투달거림조차 귀여워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을 풀지 않고 한동안 유지했다. 아르웬도 처음에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으나 시간이 흘러 서서히 힘을 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새들이 우리 곁을 맴돌거나 몸에 안착하는 등. 한 폭의 그림 같은 상황을 연출시켰다.
"······아이작."
"응. 말해."
"히르트 님께서도 말씀하셨지. 그대는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고."
아르웬이 자기 손가락 위에 안착한 카나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히르트 님이 직접 증명하셨으니 따로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이에 고개를 끄덕거리니 그녀가 손을 가볍게 저으며 카나리아를 멀리 날려보냈다.
하늘 위로 비상한 카나리아는 이내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수 쪽으로 날아갔다.
"그렇다면 어찌 하여 이 세계로 온 것이냐? 어떤 세상에서 온 건지 묻지는 않으마. 단, 어떤 경위를 통해 온 것인지 궁금하구나."
"별거 없어. 악마 숭배자들 때문에 여기로 왔지."
"악마 숭배자들?"
"응."
한치의 거짓도 없는 내 담담한 대답에 아르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는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내 앞을 알짱거리는 뱁새를 툭 툭 건드리면서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악마 숭배자가 소환을 잘못해서 내가 큰 피해를 봤거든. 그래서 신들이 나를 이곳에 부른 거야."
"큰 피해라면······ 역시······"
우리 엘프 여왕님께서 또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안색을 굳힌 채 생각에 빠진 아르웬을 힐끔거렸다.
죽음을 겪었다고 말해도 착각에 빠질 것 같아 말을 아낀건데, 도리어 그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진 것 같다.
이래나저래나 착각을 하는 건 똑같을테니 굳이 부연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재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 나는 다리 사이에 고이 보관돼 있는 씨앗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할까? 혹시 어떻게 키우는지 알아?"
"흐음······ 너무 오래 된 기록이라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세계수의 씨앗은 성직자들이 키웠다고 적혀있지. 세계수는 신성력을 먹고 자라거든."
"신성력이라······ 그럼 우리 영지에 심어놓으면 알아서 자라는 거야?"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의 교단이 세워졌으니 땅 자체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니라. 문제는 그걸 누가 키우냐는 건데······ 믿을 사람이 있느냐?"
"한 명 있긴 있는데······"
케이트에게 부탁할 수 있다만 그렇게 되면 공백이 생겨버린다. 악마 숭배자에게 직접 위협을 받은 이후 케이트와 아델리아의 자리는 비울 수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된다는 소리인데, 그만한 사람은 딱히 가족을 제외하면 딱히 없다.
허나 아버지도 아버지대로 바쁘고, 어머니는 릴리를 육아 중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노릇.
그렇다면 믿을만한 사람은······
'······머스크 씨한테 부탁해볼까?'
머스크에게 직접적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중간관리직에 가까운 개념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혹여 누군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성직자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물론 세계수의 씨앗으로 추정되는 만큼 허튼 짓을 할 사람은 없겠으나 신뢰할 사람은 꽂아놓아야 된다.
"일단 천천히 생각해보자.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지?"
그 말을 하면서 아르웬의 허리를 감쌌던 팔에 힘을 주었다.
아르웬은 내 능글맞은 태도에 쑥쓰러워하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아이작."
"응."
"혹시······ 선물은 언제 받을 생각인 건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용기를 낸 아르웬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언제든지 준비돼 있다."
"너무 이르지 않을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으나, 밤이 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그 시간동안 성지에 방문하여 책을 읽어도 되고, 내가 준비한 '선물'을 줘도 된다.
하지만 아르웬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댔다.
"우리 엘프의 고리타분한 전통 때문이니라. 준비를 하는 데에만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거든. 준비만 해도 최소한 몇 시간은 걸릴테니."
"몇 시간? 대체 뭘 하느라 그 정도나 걸리는 거야?"
"생명의 샘에서 몸을 정갈하게 씻는데 1시간이 소요되니라. 이밖에 자잘한 관행을 포함하여 3시간은 넘겠지."
"너는 다 했어?"
내 물음에 아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렇게 피곤해 했던 거구나.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지체없이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무엇보다······
"알았어."
"그, 그렇다면······!"
"선물 받으러 갈게."
시간은 많고, 밤은 길다.
아르웬은 내가 기꺼이 허락하자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이 무너지는 건 얼마 가지 않았다.
쪽!
내가 기습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훔쳤으니까.
아르웬은 순간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몰라 그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엉덩이를 털었다.
마지막으로 엘로디아로 복귀하기 직전, 능청스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아으으으······"
아르웬은 선물을 주기도 전에 장렬히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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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아르웬의 말대로 엘프 특유의 고리타분한 관행이 이어졌다.
생명의 샘이라 불리는 곳에서 1시간 동안 씻고, 이후로 자잘구레한 관행이 이어지며 무려 3시간이나 허비했다.
덕분에 엘프들이 어째서 출산률이 바닥인지 여실히 깨닫게 됐다. 이러니까 본방을 치르기도 전에 나가떨어지는 거지.
내 기초 체력이 남들보다 탄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제대로 된 선물을 받기도 전에 골아떨어질 뻔했다.
어쨌거나 가운과 속옷만 입은 채 선물을 받게 될 예정인 아르웬의 '침소'로 향하고······
"와, 왔느냐?"
"와······"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아마 눈치챘겠지만······ 나는 알븐하임의 여왕이자, 알븐하임의 상징 그 자체."
그리고 그 선물이 얼마나 상스럽고 야한 것인지.
"우리 알븐하임에서는 그대에게······"
붉은 속옷 차림의 아르웬과 마주하게 되면서.
"알븐하임 그 자체를 선물할 것이니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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