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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45화 (346/763)

〈 345화 〉 이불 밖(2)

* * *

무술을 배우는 중이어도 집필은 멈추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멈췄다가 악마 숭배자들이 기세등등해질 수도 있다.

내가 반쯤 칩거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중인데, 집필까지 멈추게 되면 또다시 습격을 하겠지.

아예 집 안에만 박혀있으니 최악의 경우, 마법을 이용해 폭격까지 떨어뜨릴 수도 있다.

너무 과하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지난번 습격으로 깨달았다. 악마 숭배자와 관련된 건 최악의 수까지 가정해야 된다고.

나를 노리기 위해 애꿎은 사람의 심장을 마비시킨 놈들이다. 그러니 나 혼자 잡자고 유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다행히 바크 추기경이 죽은 이후로 세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나는 그들의 씨가 마를 때까지 천천히 힘을 키우면서 집필을 하면 끝이다. 게다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상당히 위험하다.

판타지 세계답게 보안 하나는 철저하나, 그런 보안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암살자도 많았으니.

멀리 가지 않아도 레인이 우리 저택을 손쉽게 털어버렸다. 적어도 인간들의 마법은 엘프와 마족 입장에서 갓난아기 수준일 터.

그때문이 현재 우리 저택은 리모델링을 거치는 중이라고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엘프와 마족이 서로 합심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기숙사에 설치된 보안 마법은 그들 기준으로도 훌륭한 편이라 큰 걱정은 없으나 대비는 필수다.

'근데 완결이 왜 이리 늦어지는 느낌이 들지?'

완결까지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의외로 스토리가 길어지고 있다. 26권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엘프의 숨겨진 신화도 알려졌다.

그러므로 27권부터 제논 일행과 교만과의 전투가 이루어지는데, 여러모로 밋밋한 부분이 있어서 많이 아쉽다.

때문에 이것저것 넣다보니 훌륭한 장면은 많이 나오고 전개도 부드럽게 흘러갔다. 전쟁 파트다보니 자연스레 길어진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장면도 많이 나왔고.'

각 종족에 어울리는 명장면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이라이트 부분이다보니 안 넣을 수가 없다.

게다가 완결을 향해 달라가는만큼 각 종족마다 뽕을 주입시켜주는 건 잊지 않았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엘프과 마족은 마법을 이용한 장엄한 전투를, 다크 엘프와 악마 사냥꾼은 절제된 움직임을, 수인은 호쾌한 돌격을, 마지막으로 드워프는······

'병기겠지?'

직접 싸우는 것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장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전술 혹은 전략 병기를 만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강력한 화력이 일품인 대포라던지, 아니면 내가 인공지능이 탑재된 골렘이라든지.

대포, 그러니까 화약 자체는 발명돼 있다. 내가 군사와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지금 시대에 화약이 존재하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대포보다 전술 병기라는 인식이 강한 마법 때문에 다소 묻힐 뿐이지. 그래도 마법사와 달리 화약은 양산이 가능하여 일반 병사들은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제아무리 기사를 양성한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이 몬스터, 그것도 오우거 이상을 이기는 건 매우 힘드니까.

전생에 '총'이 발명되어 인간이 먹이사슬 최정점에 선 것처럼, 여기도 무기의 발명은 몬스터를 몰아내는데 한몫했다.

무기보다 더 강한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게 흠이지만 넘어가자.

'골렘이 적당하겠네.'

판타지하면 생각나는 전략 병기, 골렘. 가끔 가다 고대의 유산으로 등장하지만 이 세상은 그런 거 없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데다가 돈은 좀 많이 들어도 성능 하나는 확실한 병기.

증기 기관차도 발명된 세상인데 동력으로 움직이는 골렘은 못 만들겠나. 인공지능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고?

그때는 마법을 이용했다고 설명하면 된다. 보나마나 지난번 메리의 마법처럼 자세한 이론을 파고드려고 하겠지.

'아무렴 어때.'

기계문명이 발달하면 제일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높으신 분들이 아니다. 모든 행동을 일일이 손으로 해결해야 되는 일반 시민이다.

비록 책 속의 골렘은 전쟁 중에 발명되었으나, 원래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는 전쟁이다.

이 세상도 종족 전쟁을 통해 인간의 과학과 마법이 크게 발달됐다. 물론 마법은 마족이 비밀리에 전수했으나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개연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미래의 지식이라며 다들 제작하려고 난리도 아니겠지.

'진짜 전쟁 병기로 쓰일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옛날이었다면 꺼림칙했겠지. 하지만 제논 일대기가 완결된다면 차기작으로 지구의 2차 세계 대전을 집필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온갖 전쟁 병기란 병기는 모두 등장할텐데 겨우 골렘 가지고 무슨 난리라고.

설령 그것을 실제로 발명해도 상관없는 것이, 어찌 되었든 간에 기계문명을 발전시키는 셈이다.

골렘도 나중에 가면 농사용이나 몬스터 퇴치용으로도 쓸 수 있겠지. 나는 그냥 마음 편히 쓰면 된다.

'그런데 루미너스 님이 나중에 그 드워프들이 전차를 끌고 온다 했나?'

나는 집필을 잠깐 멈추고 전시회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떠올렸다. 마력 기관 발명가, 에인스를 포함한 3명의 얼간이들.

아마 그들이 또 호기심에 전차를 발명하여 끌고 오지 않을까. 루미너스의 예언과 비교하자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관이 점점 신기하게 변하네. 여기도 마찬가지고.'

원래 이 세계도 언밸런스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냉장고와 에어컨도 있는 마당에 정작 증기 기관차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이라 치부했으니.

예상컨데 마법을 우대하고 기술을 도외시하는 문화 때문일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이 마법과 다를 게 없다면, 그 반대도 통할테니까.

하지만 곰곰히 되새겨보면 기계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건 내가 굳이 책으로 집필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마법의 명백한 한계 때문이다. 마법은 '만능'이지, '전능'이 아니니까.

내가 그걸 앞당긴 거라고, 언젠가 이루어질 거라고 루미너스에게 직접 들었다. 그러니 마음껏 적도록 하자.

'근데 가장 중요한 게 있지.'

나는 중간에 집필을 하다가 중간에 멈췄다. 사실 27권은 거의 다 마무리되었지만, 딱 하나가 걸렸다.

그건 다름아닌 이름. 그러니까 악마와 대항하는 연합군의 명칭이다.

연합군이니까 아무렇게 지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의 존망을 걸고 치루는 전쟁이다.

가끔 가다 몇몇 판타지 매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돌격 직전에 주인공이 XXX를 위하여!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다.

그 포효 하나로 동료를 포함한 군대의 사기를 최고치까지 끌어올리고, 그 기백에 압도된 적군이 쓸려나가는 하이라이트.

그런 멋진 장면이 27권에 포함돼 있으나 정작 이름이 못 정하고 있다.

'지구(Earth)의 유래도 고대의 언어를 기반으로 했다는데······'

여기도 3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만큼 언어도 다양하게 변했다. 현재는 공용어를 표준으로 삼고 있으나 옛날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그들 대부분이 수명이 1000년 가까이 되는 엘프와 마족이어서 그렇지. 심지어 대부분 500살이 넘을 정도다.

때문에 사전을 빌려서 적는다면 문제가 없어도, 그걸 어떻게 녹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정하지 않고 돌격! 이라는 한 마디로 퉁쳐도 된다. 하지만 임팩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적어야 된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행성 이름을 멋지게 적었지?'

당장 머릿속으로 생각나는 행성들을 꼽아도 죄다 멋진 이름이다. 이름 하나로 임팩트가 왔다 갔다하니 신중하게 적을 필요가 있다.

나는 미리 인쇄한 종이에 펜을 두드리며 깊이 고민했다. 솔직히 자연의 여신인 히르트의 이름을 따서 적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이거 하나로 행성의 이름이 정해져도 별 상관없다. 히르트가 자연이자 이 세상의 전부인데 누가 이의를 건다고.

'그러면 히르트를 살짝 변형해서······'

내가 고민에 고민을 모두 거쳐서 펜을 눌리던 찰나였다.

드드드드­

"음?"

난데없이 울리는 진동. 나는 종이에서 펜을 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과 1초도 되지 않았지만 아까 그건 명백한 지진이다. 내가 신열을 앓았을 때 울렸던 지진.

"뭐지?"

"아이작. 너도 느꼈느냐?"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단련실에서 나왔다. 방금 전까지 아델리아를 훈련시키고 있어서 가벼운 차림이셨다.

보아하니 아버지도 진동을 느낀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느꼈어요. 아무래도 지진인 것 같은데요?"

"흠······ 저번에도 지진이 발생했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알겠다."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들어가는 아버지. 나는 그에게 고생하라는 덕담을 남기고 다시 펜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종이에 히리트 님을 기반으로 한 행성의 이름을······

드드드드드­

"··· ···"

적지 말라는 건가. 나는 혹시나 싶어서 종이에서 펜을 뗐다.

그와 동시에 멈추는 진동. 뒤이어 설마하여 다시 종이에 갖다 대니······

드드드드드드!!

아까보다 큰 진동이 기숙사에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작! 빨리 대피하거라!"

"도련님! 어서 밖으로······!"

"··· ···"

도대체 왜?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조만간 신전에 방문해서 물어봐야 할 듯했다.

******

그로부터 약 사흘이 지나고······

[알븐하임. 제논에게 줄 선물이 준비되었다.]

이불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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