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44화 (345/763)

〈 344화 〉 이불 밖(1)

* * *

아이작이 호크로부터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이불 밖의 상황은 거칠게 흘러가고 있었다.

무려 아이작이 악마 숭배자에게 습격을 당했다. 이것 하나만으로 정세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

미네르바 제국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고, 다른 나라들은 아주 좋은 구실을 마련했기에 공격하기 적절했다.

하지만 적절한 것 치고는 의외로 큰 피해를 주기는 어렵다. 비판 정도는 할 수 있었으나 비난은 못 했으니.

견원지간이었던 테르스 왕국은 프리드리히가 왕위를 넘겨준지 얼마 되지 않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다른 나라도 저마다 개인 사정으로 바쁜 상황이다.

알븐하임과 헬리움에서도 비판을 가했지만, 미네르바 제국의 실수보다는 악마 숭배자에 집중했다. 이 둘은 미네르바 제국보다는 서로에게 신경 써야 됐으니.

그나마 가장 큰 비판을 가했던 곳은 스타비르크 지역. 스타비르크는 틈만 나면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이목을 끌어야 된다.

이렇듯 국가적으로 비판을 가했으나 아이작의 신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오히려 악마 숭배자를 향한 적대감만 키운 상황이다.

특히 악마 숭배자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두 곳인데, 첫번째는 모두가 알다시피 타락한 추기경으로 인해 위상이 제대로 추락했던 세이비어 교국.

두 번째로는 헬리움이다. 악마 숭배자는 인구가 가장 많은 인간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다양한 종족이 섞여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음지에 몸을 깊게 담고 있는 자들 대부분이 악마 숭배자와 연관돼 있다 보면 된다.

특히 이중에서 마족, 그러니까 강경파 마족의 힘이 가장 크다. 오래 전 알븐하임의 다크 엘프처럼 추방당했으나 그들은 매우 불온한 목적을 갖고 있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세상을 파멸로 몰아놓겠다. 그들이 악마로 취급한다면 진짜 악마가 되어 세상을 부수겠다.

이런 목적 하에 차근차근 계획을 수립해 나가고 있었으나 뜬금없이 제논 일대기가 등장한 바람에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모든 게 뒤틀린 상황 속에서, 악마 숭배자가 된 강경파 마족들이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다.

제논 일대기의 작가, 아이작을 공격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타락한 추기경, 바크가 어이없게 사망한 이후로 엄청난 양의 단서들이 쏟아져나왔으니까.

악마 숭배자의 주요 간부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그리고 강경파 마족과 손을 잡은 인물이 누가 있는지 등등.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현재 헬리움에서는 세실리의 주도 아래에 숙청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강경파 마족, 그리고 악마 숭배자와 관련된 자들은 마땅한 이유가 없다면 즉결 처형.

원래 세실리는 현 국왕인 데스칼에 비해서 권한이 작은 편이었으나 연설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데스칼이 그녀에게 권한을 어느 정도 위임한 것이다.

데스칼이 외교처럼 외부적인 일에 집중하고 있다면 세실리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아직 여왕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하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확실한 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아르웬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국정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이다.

"아이작 보고 싶다."

그리고 그만큼 아이작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무럭무럭 차올랐다. 공개 발표 이후 아이작의 얼굴을 못 본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그 잘생긴 얼굴을 깨물고 싶다. 가끔 가다 마리가 아이작의 얼굴을 무는 경우가 있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얼굴을 마음껏 물어뜯은 후에는 쌓인 욕망을 풀기 위해 꽉 껴안고 싶다. 그가 전해주는 온기를 느끼고 특유의 강렬한 체취를 맡고 싶다.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당연히 침대고. 여기에 악주기까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지라 조만간 사랑을 듬뿍 나눌 예정이다.

'마리랑 아델리아 씨는 마음껏 놀고 있겠지?'

세실리는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욕망 대신 질투심이 차곡차곡 쌓인다.

자신은 일을 하느라 바쁜데 다른 두 명은 아이작과 논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게다가 이 놈의 업무는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오래 걸렸다. 예상보다 강경파 마족과 손을 잡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헬리움은 온건파 마족이 건국하여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신념은 조금씩 퇴색되었다.

다행히 종족 자체의 신념은 변질되지 않았으나, 국가가 건립되고 사회가 등장하게 되면서 여러 문제가 쌓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치도 못 했는데.'

세실리는 여태까지 처단했던 강경파 마족, 그리고 악마 숭배자 관련자 명단을 체크했다.

타락한 추기경, 바크가 잡히면서 얻은 단서를 통해 찾아낸 자들. 어둠 속에 숨어들어 선동을 준비하던 자들.

만약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갔다면 훗날 방해물 정도가 아니라 헬리움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었다.

'절제를 이딴데에 이용하다니······'

하지만 그걸 역으로 이용했다. 세실리는 명단을 보며 고운 미간을 와락 구겼다.

마족은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타종족보다 강하며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때문에 마족이 화를 낸다면 그건 상대방이 잘못한 거라는, 좋은 예시가 축적되는 중이다.

그리고 악마 숭배자와 손을 잡았던 마족들은 그걸 이용하여 반란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데스칼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

제논 일대기가 없었더라면 헬리움은 여전히 고립되었을 것이며, 반란분자는 빛을 보고 싶은 마족들의 욕망을 부추겼을 것이다.

선동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뒤의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은 실각했을테고, 그렇게 된다면······

'그 계획이 발동됐겠지.'

제논 일대기 속 식탐이 꾸몄던, 모든 마족의 악마화. 마족에게만 존재하는 검은 마나를 더럽혀 강제적으로 악마로 변모시킨다는 계획.

그러기 위해서는 막강한 무력을 갖춘 자신부터 실각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반란분자들은 이걸 위해서 차근차근 움직였겠지.

마족은 엘프처럼 장수하는 종족이라 넘쳐나는 게 시간이다. 여기에 인내와 경험까지 있으니 못 할 건 없다.

"이제는 모두 의미 없는 짓이지만."

세실리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조차 뭇 남성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명단에 적힌 개자식들은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상황이다. 바크 추기경이 죽고나서 분주히 움직였다만 '리퍼'가 모두 잡아들였다.

대신 사회적 혼란을 유발할 수도 있어서 공표는 나중에 할 계획이다. 국가 전체를 악마화시킨다는 계획은 제논 일대기를 통해 발설(?)되어 공표하든 말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게 아이작 덕분이지.'

책 하나로 세상을 뒤바꾼 게 아니라, 세상을 구했다. 과연 이런 업적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마족을 구원해준 것만 해도 마음을 빼앗기기 충분한데, 헬리움의 존속마저 위기에서 구해냈다.

사실상 헬리움의 마족 전체가 아이작을 흠모하는 거나 마찬가지. 그가 위험하다면 목숨까지 내놓을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다행히 여자로서는 내가 먼저 만나서 다행이다.'

만약 다른 마족 여성이 그의 정체를 알았다면,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그 여자였을 터.

물론 헬리움의 공주였으니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갈 수는 있었겠지. 허나 지금처럼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아이작과 만나게 된 거지만, 이럴 때 헬리움의 공주라는 직위가 정말 좋았다.

'그렇기에 반드시 지켜야 돼. 목숨을 걸어서라도.'

세실리의 붉은색 눈동자가 의지로 강렬하게 빛났다. 그가 위험하다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을 것이요, 죽는다면 복수를 모두 끝내고 따라 죽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마족과 세계의 구원자를 지키기 위해.

아이작이 악마 숭배자로부터 습격을 당할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분노가 터질 뻔했으나 가까스로 억눌렀다. 지금은 분노를 터뜨릴 때가 아니었으니.

언젠가 악마 숭배자를 모두 잡아들인 이후, 잔혹하게 고문한 뒤 개밥으로 집어던질 것이다.

이런 과격한 면모를 보면 뭔가 케이트를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아이작을 신 수준으로 신봉하는 것도 비슷하고.

차이점이라면 세실리는 '사랑'의 감정이 훨씬 크고, 케이트는 '신앙'의 비중이 더 컸달까. 그래도 아이작을 사랑하는 마음은 둘 모두 똑같았다.

똑똑똑­

그때 세실리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어왔다. 감지 마법을 펼쳐놓고 있었기에 누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챈지 오래다.

이에 그녀는 문 쪽을 바라보며 특유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시죠?"

"공주님. 전에 말씀하셨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 어서 들어오라 하세요."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에 세실리는 반색하며 곧바로 허락했다. 그녀가 허락하자마자 집무실 문이 열리며 한 명이 서서히 걸어왔다.

백색의 로브를 뒤집어 써서 얼굴은 살펴볼 수 없었지만, 작은 체구와 더불어 몸의 굴곡을 보면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실리는 여인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간단하게 손짓했다. 그러자 활짝 열렸던 문이 조용히 닫혔다.

뒤이어 여인이 책상 앞까지 도착하자, 세실리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빙긋 웃었다.

붉은색 눈동자에는 약간의 음흉함과 귀엽다는 감정이 내포돼 있었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특유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부드럽게 인사를 건넨 세실리. 존댓말을 했다만 말투 자체는 친근했다.

그렇다는 말은 눈앞의 여인은 세실리와 구면이라는 뜻. 세실리의 인사에 여인은 머리를 뒤집어썼던 로브를 천천히 벗었다.

로브를 벗자 은회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다. 여기에 엘프임을 증명하는 뾰족한 귀까지.

마지막으로 부끄러움이 담겨있는 은회색 눈동자가 은하수처럼 빛나면서 여인의 정체가 드러났다.

알븐하임의 여왕이자, 정치적으로 큰 적이 될 예정인 여자.

아르웬 엘로디아가 헬리움에, 그것도 비공식적으로 세실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딱!

세실리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마법을 발동시키자 허공에서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집무실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다.

테이블 위에는 간단한 다과와 이제 막 우려낸 것으로 추정된 차가 마련돼 있다.

아이작이 본다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볼 마법이지만, 엘프인 아르웬 입장에서는 도구를 쓴 것밖에 되지 않았다.

"일단 저쪽에 앉아서 얘기할까요?"

"······그래."

아르웬은 세실리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세실리는 대답을 듣고 한 번 웃어주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뒤이어 각자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세실리는 여유로운 태도인 반면 아르웬은 영 어색한지 쭈볏쭈볏거렸다.

연설 당시 헬리움에 방문한 적은 있어도, 이처럼 왕궁으로 직접 온 건 처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공식적인 초대라 큰 잡음은 없다는 것.

"헬리움에서만 나는 차에요. 청심환처럼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켜주는데 탁월하죠."

"고, 고맙구나. 잘 마시겠다."

꽤 긴장한 것인지 아르웬은 품위를 유지할 생각도 하지 못 한 채 차를 마셨다.

평소 보여주었던 여왕으로서의 근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고, 아이작이 앞에 있을 때나 할 법한 행동.

그리고 세실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아르웬이 이곳으로 방문한 이유도 그때문이다.

"그래서, 첫날밤을 어떻게 치루면 좋겠는지 알려달라고요?"

"푸훕!!!"

차를 마시는 도중에 날아온 돌직구. 그 돌직구 한 방에 아르웬이 차를 거세게 분사했다.

천만다행히도 세실리의 얼굴에 뿜는 일은 없었으나 너무 당혹스러운 나머지 주변이 더러워졌다.

"콜록! 콜록! 콜록!"

아르웬이 거친 기침을 하면서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더러워졌던 테이블과 입 주변이 순식간에 깔끔해졌다.

이런 간단한 마법 정도는 왕궁에서도 허가돼 있어서 괜찮다.

이어서 아르웬은 붉게 물든 얼굴로 세실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망과 질책이 담긴 목소리는 덤이다.

"그, 그건 맞다만 그걸 바로 꺼낼 필요는 없지 않느냐······"

"뭐가 부끄러워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존심을 접고 여기까지 행차하셨는데. 저는 기꺼이 가르쳐 줄 용의가 있어요."

그렇다. 아르웬이 비공식적으로 헬리움에 방문한 이유.

그건 바로 앞으로 첫날밤을 치루게 될 그녀에게 '수업'을 해주기 위함이다.

혼혈로 태어난 아르웬은 인간 사회를 돌아다녀 성행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지난번에는 제논 일대기에 첫날밤이 묘사돼 있다.

솔직히 제논 일대기에 묘사된대로 이행한다면 첫날밤 자체는 무리없이 지나갈 터.

하지만 아르웬은 아이작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라 좀 더 심도 깊은 교육이 필요했다. 아르웬 쪽에서도 열의를 가지고 있으니 거부할 명분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마리도, 아델리아 씨도 아닌 저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네요. 그리고 통신구를 통해 원격으로 알려드린다고 했을텐데?"

"시,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세계수의 이슬로 만든 성수는 효력이 금방 떨어져서······ 빨리 진행할 필요가 있다."

"성수?"

처음 듣는 이야기에 세실리가 한 쪽 눈을 치켜뜨며 의문을 자아냈다. 그에 아르웬은 성수에 대해 천천히 설명했다.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세실리의 반응은 사뭇 볼만했다. 마치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 했다는 표정.

마지막으로, 아르웬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나온 세실리의 반응은······

"아르웬 여왕님."

"말하거라."

"의외로 음흉한 구석이 있으셨군요. 그런 걸 첫날밤부터 사용하다니."

"뭐, 뭣?"

세실리가 진심으로 감탄 아닌 감탄을 자아내자 아르웬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제딴에는 엘프의 전통에 대해 말한 것이나, 세실리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 그럼 사용이 안 되는 건······"

"아뇨. 그건 엘프의 전통이니 막을 생각은 없어요. 단지 좀 부러워서요. 만약 저도 그런 게 있었더라면······"

아이작과 좀 더 농밀한 밤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세실리는 구태여 뒷말까지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아르웬에게 강의를 해주는 것이었으니. 그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좋아요. 그럼 알려드리기 전에, 아르웬 여왕님."

"그, 그래."

"여왕님께서 아이작과 이어지는 순간, 저희 둘은 아이작이 신들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싸우면 안 돼요. 그것이 정치적으로든, 아니면 사적으로든."

그 얘기에 아르웬은 곧바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붉게 물든 얼굴이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으나 세실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세실리의 말마따나 아이작이 아르웬과 이어지는 순간, 헬리움과 알븐하임은 좋든 싫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된다.

만약 아이작이 한 쪽만 거리를 두게 된다면 필시 그 나라에 부정적인 영향이 갈 터. 그 반대도 통한다.

"아이작도 같은 마음일테고 결정적으로 그는 사랑에 차별을 두지 않아요. 그는 우리 모두를 사랑할 것이고, 그럴만한 능력도 갖고 있죠. 하지만 여기에 균열이 가는 순간 큰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그, 그건 알고 있다."

"알고 있다 해도 힘들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언젠가 아르웬 여왕님께서 섭섭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어요. 섭섭함은 곧 질투로 귀결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문제가 되는 거죠."

제아무리 아이작이 체력을 키운다고한들 결국 몸은 하나다. 다시 말해 한 사람에게 신경 쓰면 다른 사람은 자연히 소외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황제 혹은 왕이 정실을 소외하고 첩에만 신경을 쓰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가 있다.

비록 아이작은 왕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그의 애인들은 나라에 큰 중축을 담당하는 중이다.

"그러니 아이작을 독점할 생각은 버리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저도 과거에는 그런 마음을 품었지만, 지금은 장난식으로만 하고 있으니까요. 알겠죠?"

"명심하겠다. 나는 그와 이어지는 것만 해도 족하니."

"좋아요. 이건 신뢰의 문제이니 맹약은 걸지 않을게요. 그러면······"

세실리는 화사한 미소를 짓더니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었다. 붉디 붉은 눈동자가 아르웬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아르웬이 그 미소에 긴장하고 있을 때 쯤, 세실리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수업에 들어가도록 할까요? 그전에 첫날밤에 입을 속옷부터······"

"그, 그건 미리 준비한지 오래다."

"색깔은?"

"빨간색."

그 대답에 세실리가 감탄하면서 평가했다.

"이제보니 음흉한 게 아니라 음탕하네요. 엘프는 다 그런가?"

"으, 음탕해?!"

"장난이에요. 그럼 다음은······ 강점을 이용하는 방법. 잠깐 일어날까요?"

마족과 엘프의 합작품(선물)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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