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42화 (343/763)

〈 342화 〉 이불 밖은 위험해(1)

* * *

나를 기습할 뻔했던 악마 숭배자는 곧장 연행되어 신전으로 끌려갔다. 악마 숭배자는 그 정체가 발각된 즉시 신전으로 이송된다는 법률이 있다.

때문에 연행을 하는 사람들도 성기사들이었다. 케이트 쪽에서 완전히 제압했으니 자폭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겠지. 그래도 주의는 필수다.

원래는 즉결 처형이 원칙이지만 이번에는 예외로 뒀다.

아카데미 내에서 마법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접근할 때까지 살의를 꽁꽁 숨긴 것도 그렇고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인력이다. 악마 숭배자 쪽에서도 꽤나 신망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찔러보는 식으로 보냈을 수도 있다. 케이트가 나를 호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악마 숭배자의 귀에 들어갔을테니.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의 심장을 마비시킨 걸 보면 실력자인 건 확실하다. 만약 중간에 날아온 화살이 아니었더라면 큰 위험에 처했겠지.

그리하여 악마 숭배자가 신전으로 끌려가고, 나는 호위를 포함한 아카데미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여 기숙사로 즉각 복귀했다.

악마 숭배자가 아카데미 내에서 마법을 사용하여, 더 나아가 내 목숨을 노렸으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때까지 바깥으로 안 나간거지?"

"응."

"물건을 시키는 것도 아델 언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시켰고?"

"응."

그로부터 사흘이 흘러, 나는 기숙사 밖으로 단 한 발자국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원래는 조교직과 엘레나의 연구를 위해서라도 바깥에 나서야 되지만, 악마 숭배자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불 밖, 아니 집 밖은 위험하다고. 악마 숭배자의 습격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아카데미 안에 있으면 안전하겠지~ 라는 생각은 사건 당시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무고한 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잘 생각했어. 그럼 아카데미 졸업은 포기할 거야?"

내가 방구석에서 통 나오지를 않자 기숙사로 찾아온 마리가 그리 물었다.

원래 그녀는 수업에 들어가야 되지만, 나의 약혼녀라는 이유로 가지 않아도 출석이 인정된다.

더군다나 그런 사건까지 터졌으니 명분도 부족하지 않다.

"아니. 아카데미 졸업은 해야지. 이건 내가 조심성이 없어서 발생한 문제니 좀 더 조심하면 될 거야."

"그럼 기숙사에서 왜 안 나오는 거야?"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 ···"

내 대답에 마리가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다. 고작 사흘 전에 그런 사건이 터졌는데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아닌 말로 기숙사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화살이 쏘아질 수 있었으니. 물론 그런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에 당분간 기숙사 안에서만 생활할 예정이다. 방금 전 마리가 말했듯이, 복도를 지키는 경비병에게 부탁만 하면 식사와 생활품을 전부 가져온다.

물론 평생동안 기숙사에서 지내는 건 아니고, 아카데미 측에서 보안을 좀 더 강화시키면 다시 밖으로 나갈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기숙사에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날 거고. 지금쯤 소식이 전부 퍼졌을테니 조만간 찾아올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네. 솔직히 너무 불안했거든. 아직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지 못 했나 싶어서."

"자각은 하고 있었지. 그런데 악마 숭배자는 너무 먼 이야기로 생각했어."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대었다. 내가 멍청했다고, 또 안일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생의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심지어 미네르바 제국의 수도, 그것도 아카데미는 치안이 매우 좋은 편이 속한다.

때문에 약간만 조심하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로 복귀하고나서 일주일 간 아무런 일도 없었으니 더욱이.

멍청하다고,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드냐고 욕을 할 수도 있겠지. 이건 나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악마 숭배자가 개새끼인 건 여러 소식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서 쉬쉬하고 있었다.

악마 숭배자는 개새끼, 그것도 내 목을 물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개새끼다.

내 목을 노린 것도 모자라 애꿎은 사람 한 명까지 죽일 뻔했다. 이것 하나만으로 악마 숭배자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물의 아버지가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이건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해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다.

무려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헤일로 아카데미에서 그런 불상사가 벌어졌으니 미네르바 제국의 위신이 어떻게 되겠나.

신문을 접하지 않아도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분명 아카데미 총장부터 시작하여 그 윗선까지 조리돌림당하고 있겠지.

그들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겠으나 정치가 그렇다. 한 번 빌미를 제공하면 사방에서 노리고 들어온다.

물론 마리가 나의 약혼녀로 공표된 이상 아직까지는 흔들림없이 굳건히 버틸 것이다. 당장 나조차도 제국 밖으로 나갈 계획이 없고.

'세실리랑 아르웬이 온다면 달라지겠지.'

나는 아델리아가 구워준 쿠키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세실리와 아르웬. 이 둘은 마리와 다르게 비공식적인 연인들이다.

그녀들 외에 더 많은 여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처럼 대놓고 '공표'할 일은 없으니 예외로 뒀다.

특히 아르웬이 간접적으로 알려줬던 '선물'을 보듯이, 이 둘은 '은원 갚기'라는 이유로 조만간 터뜨릴 예정이다.

'그게 언제일까.'

아르웬은 몰라도 세실리는 이른 시간 내에 공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하지만 공표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굳이 발표하지 않고 나중에 들키더라도 다들 납득하고 넘어갈테니. 제논 일대기 덕분에 구원받은 종족이 바로 마족이며, 세실리는 다음 대 국왕으로 즉위할 것이다.

애당초 헬리움이 국가 차원에서 나를 향해 무한한 감사를 표출했다. 이뿐만 아니라 세실리는 연설 당시 제논의 여자라고 폭탄까지 터뜨렸다.

그 연설 한 방으로 세실리는 제논의 여자라는 인식이 박혀있을테니 나와 대놓고 연애를 해도 괜찮겠지. 이미 떡밥을 여러군데 깔아놓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아르웬은······'

그렇다면 아르웬은 언제쯤 '선물'의 정체를 밝히는 걸까. 이건 좀 궁금하다.

엘프식 공산주의가 짙게 깔려있어서 대충 무슨 선물인지 눈치는 챘다만 개봉 전까지 모르는 법.

아카데미가 보안을 강화할 때까지 바깥으로 나가지 않겠다만, 그녀가 선물을 준다면 알븐하임으로 갈 생각이 있다.

"그러면 언제쯤 밖으로 나가려고? 일주일? 아니면 한 달?"

"짧아도 일주일일 거야. 아카데미에서도 내가 가만히 있어주기를 원할 걸? 그나저나 리나는 요즘 어때? 리나도 머리가 꽤 많이 아플텐데."

"안 그래도 수업에 안 들어오더라. 아마 지금쯤 회의하느라 바쁘지 않을까?"

"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국 내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터졌으니 리나도 골치 아플 것이다.

나의 잘못된 판단과 안일함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으니 더 미안해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번에는 마리가 아니라, 사흘 전에 악마 숭배자를 제압했던 아델리아에게 할 말이었다.

"아델 누나."

"네. 말씀하세요."

마리가 있어서 그런지 존댓말로 대답한 아델리아. 언제나 나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그녀.

이번 일로 깨닫게 되었다. 아델리아는 언제든지 외부의 공격을 막아줄 방패다.

하지만 그 방패가 깨지거나, 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겠다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누나가 말했었지? 간단한 호신술 정도가 아니라, 작은 무기를 다루는 법 정도는 배우는 게 좋겠다고."

그러니 방패가 깨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최소한의 저항을 할 무력을 기르자.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는 걸 넘어 절망할테니, 적어도 위협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

설사 두 손이 잘려나가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목숨일테니.

무엇보다 살기만 한다면 신성력을 통해 모두 복구시킬 수 있다. 루미너스의 말에 따르자면 짧은 시간이라지만 회귀도 가능하다.

"그러니 혹시 오늘부터 가르쳐줄 수 있어?"

"······많이 힘들 겁니다."

"다치거나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아델리아는 결연함이 깃든 내 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 또한 진중함이 가득 담긴 하늘빛 눈동자와 마주했다.

가문에서 전해주는 무기술은 바라지도 않는다. 배우는데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다 내가 배우는 건 전투가 아니라 호신술이다.

아버지도 집무 때문에 바쁘실텐데 당장은 아델리아에게 배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러면 남작님께 먼저 여쭈어보고 허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원칙이니까요."

"알겠어. 그정도면 뭐."

아버지도 분명 허락해주실 것이다. 막내 아들이 스스로 무예를 단련하겠다는데 무골인 아버지가 거절할 일은 없을 터.

연락도 기숙사에 마련된 텔레포트를 통해 금방금방 주고 받을 수 있다. 빠르면 오늘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지.

이후로 내가 유려한 필기체를 통해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저택으로 곧바로 발송시켰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남작님께서 직접 찾아오신답니다."

"······뭐?"

아버지가 직접 오신단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신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아델리아도 퍽 당황스러웠던 건지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면서 얼떨떨하게 답했다.

"배울 거면 확실하게 배우는 게 낫다고 하셨습니다."

"누나는? 누나를 못 믿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편지에는 자기가 직접 가겠다고만 쓰여있어서······"

"··· ···"

혹시 일하기 싫어서 핑계 댄 건 아니겠지?

*****

아이작이 악마 숭배자에게 기습을 당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다.

자그마치 아이작이 피습당할 뻔했으니 난리가 나는 건 당연한 수순. 특히 아이작의 예상대로 미네르바 제국이 큰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테르스 왕국의 장인들을 돈으로 홀려 건립한 헤일로 아카데미인데, 정작 취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태였으니.

그런 상황에서, 현재 가장 곤란한 사람은...

"아이씨. 이런 개같은 새끼들이······"

악마 숭배자 때문에 공표 타이밍을 놓쳐버린 아르웬이었다.

원래는 오늘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악마 숭배자가 아이작을 습격하면서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아이작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지 않았나 걱정이 들었으나,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는 안도와 동시에 짜증을 부렸다.

"빨리 보여주고 싶은데..."

그녀는 살짝 우울한 얼굴로 상자 속에 고이 담긴 '선물'을 바라봤다.

이걸 입고 그에게 보여주자니 영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기대가 되었다.

과연 아이작은 어떤 반응을 보여주게 될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술이 흐물거린다.

"······안 되겠다."

이대로라면 또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일주일 내에 발표해야 된다.

이에 그녀는 결정을 내린 표정을 짓고는, 선물이 담긴 상자를 조용히 덮었다.

툭­ 툭­

뒤이어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파악한 후,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수정 구슬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수정 구슬의 정체는 다름아닌 통신용 수정구. 당연하게도 통신을 위해 사용되는 아이템이다.

엘프, 그것도 아르웬 정도 되는 위치라면 텔레파시를 통해 호출하면 되나 거리가 너무 멀면 제아무리 그녀라도 힘든 법.

때문에 통신구의 힘을 빌려 먼 위치의 사람에게 연락을 보내는 것이다.

"아. 아. 들리느냐?"

[네. 들려요, 여왕님. 무슨 일이신가요?]

아르웬이 말하자 통신구 너머로 고혹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작이 들었다면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목소리.

뒤이어 아르웬은 주변에 사람이 없나 재차 확인한 후, 기침을 하면서 목을 간단히 풀었다.

얼굴은 눈에 띄게 붉어지고, 귀는 정처없이 위아래로 까닥이는 걸 보아 그녀의 감정이 어떠한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결정을 내려서 이리 연락을 보냈다."

[어머. 드디어? 그런데 지금 타이밍이······]

"그건 나도 알고 있느리라. 하지만 계속 미루다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음······ 알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뭘 부탁하실 건가요?]

수정구 너머의 여인은 흥미가 돋는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웬은 그녀의 질문을 듣고 잠깐 말을 멈췄다.

평소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신경 쓰이는 여자지만, 이번 일만큼은 자존심을 굽히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의 관계에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보다, 수정구의 여자가 훨씬 앞서 있으니.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남자와 여러번 관계를 치렀다.

"아, 아이작이 뭘 좋아하는지······ 또 어떤 행위를 좋아하는지 알려다오."

[흐응~ 그거야 쉽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랑 함께 알려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기, 기다리고 있으마."

뚝­

그 말과 동시에 꺼지는 수정구. 아르웬은 빛을 잃은 수정구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기뻐야 되니까."

자존심 정도는 깔끔히 접어둘 수 있다.

* *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