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 합법 스토킹(1)
* * *
엘레나와의 대화도 끝났겠다, 남은 건 수업 일정이다. 엘레나의 수업은 알다시피 매우 많다.
일단 1학년 문학과 전체에 들어가는 건 기본이고, 2학년은 문학과뿐만 아니라 무학과도 포함돼 있다.
내가 수업 도중에 하는 일은 엘레나의 보조나 학생들과의 토론밖에 없지만, 그것만 해도 정신적으로 힘들다.
방금 말했듯이 수업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였으니까. 다시 말해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온갖 질문이란 질문을 받아야 된다는 뜻.
게다가 정체까지 밝혔으니 그정도가 더 심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정도는 각오하고 수업에 임했다.
"질문하기 전에,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곧바로 감점 처리하겠습니다. 강의 때는 오직 강의와 관련된 질문만 하세요."
"""아······"""
하지만 엘레나는 그 일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녀의 단호한 경고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쉬워했다.
전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던 조교직이었는데 이런 배려를 해주니 나로서는 감사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에 고마움을 담아 고개를 꾸벅 숙이니 엘레나가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뒤이어 안경을 추켜올리는 걸 보아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갈 모양이다.
아. 참고로 아델리아는 내 옆에 서 있었고, 케이트는 문 옆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곧바로 대응이 가능한 위치.
덕분에 안심하고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을 통해 해석되기 마련이에요. 누군가에는 영웅이었던 자가, 누군가에는 가차없는 학살자로 기록되기 마련이죠. 대표적으로 종족 전쟁 당시 제이스 미라차가 있죠. 엘프 입장에서는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명예를 모르는 악한으로 기록돼 있으나 인간들은 그를 영웅으로 숭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 자체만 보자면 객관적이지만 때에 따라 주관적으로도······"
엘레나가 미리 언질을 해놓아서 그런지 수업 자체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가끔 가다가, 아니 아예 대놓고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전부 무시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 많을텐데, 그렇다 해서 감점을 받는 건 너무 큰 출혈이니까.
심지어 엘레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수를 잘 주는 편에 속하고, 시험마저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여서 사실상 퍼주는 강의다.
그런데도 감점을 받게 된다면 뼈 아픈 실책일테니 학생들도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한 명만 빼고.'
나는 아까부터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한 명의 학생과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음침해 보이는 눈빛이었지만 너무나도 강렬한 분홍색 눈동자.
모두 예상했다시피 체리였다. 그녀는 수업에 집중하기는커녕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분홍빛 머리카락은 전보다 길어졌으며 표정 또한 밝아진 것 같다.
······음침하기 짝이 없는 눈이 문제여서 그렇지. 또한 아우라 때문인지 학생들도 살짝 거리를 벌린 채 앉아있다.
체리 정도되는 외모라면 동급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을텐데 분위기가 그걸 다 씹어먹는다.
'그런데······'
내 착각이 아니라면 전에 봤을 때보다 흉부가 더 커진 것 같다. 이건 내가 변태여서 그런 게 아니고 눈에 띄게 성장한 탓이다.
원래도 세실리처럼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부리던 교복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아우성조차 못 지르고 있다.
너무 꽉 끼는 바람에 단추가 뜯겨져 나가기 직전이었거든. 만약 교복을 의인화 하면다면 컥 컥 소리밖에 못 내지 않을까.
옷에는 신경 쓰는 체리인데 교복이 저 모양 저 꼴인 걸 보면 급속도로 성장 중인 모양이다. 아주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
"흠. 흠."
"··· ···"
그런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옆에서 아델리아가 집중하라고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다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의에 집중해도 체리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는 것 자체는 상관없다.
문제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묘하게 거리를 벌리고 있다는 부분.
누누이 언급하지만 체리는 매우 아름다운데다가 몸매도 훌륭하다. 뒷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헌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오히려 껄그러워하고 있으니 교우 관계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된다.
음침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걸 다 묻어버릴 정도로 체리는 매력이 넘치는 여자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어차피 체리와는 나중에 따로 만날 예정이라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그동안 받지 못 했던 원고를 받아 출판사로 전송해야 됐으니.
1권만 내고 2권조차 내지 않았는데 과연 원고가 얼마나 쌓여있을까. 살짝 기대가 된다.
물론 큰 기대는 안 할 것이다. 체리의 집필 속도는 아직 잘 모르니까. 그래도 2권의 원고는 모두 집필했다고 들었다.
내가 바빠서 미처 못 보내서 그렇지. 나는 엘레나의 강의를 보조하면서 천천히 계획을 수립했다.
"교수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분명 이름이······"
"하시르 켈릭이라고 합니다."
"네. 하시르 학생. 말씀하세요."
수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엘레나에게 질문했다. 살짝 곱슬기가 깃든 금발에 진한 색채의 벽안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를 한 번 힐끔거리더니 이내 본인이 궁금하던 점에 대해 입 밖으로 꺼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역사는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본래의 역사와 다른 기록이 남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예. 그렇죠."
"그럼 그런 역사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그것도 당사자조차 모르고 있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하죠?"
꽤 날카로운 질문이다. 허나 그것이 나를 저격하는 발언이라는 것을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하시르가 저 질문을 하자마자 온갖 다양한 시선들이 나에게 쏠렸으니까. 심지어 엘레나마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딱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 하시르의 질문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 학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말이었으니.
이 강의실에 내가 있다는 게 문제지만. 엘레나는 하시르의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설명했다.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하지만 그러한 역사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예요.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지만, 그렇다 해서 패자의 기록마저 사라지지 않아요. 만약 역사가 유실되거나 아예 없어진다는 건, 그만한 힘을 가진 자가 고의로 행한 일이에요. 새롭게 바뀐 엘프의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여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었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자면 뭐가 있죠?"
"가장 대표적인 건 다크 엘프의 추방 사건과 금지된 마법인 합체가 있겠네요."
숨겨진 역사가 왜 숨겨진 역사라 하겠나. 그만큼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이자 국가를 넘어 종족의 뿌리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
다크 엘프 추방 사건은 종족 전쟁처럼 엘프의 교만이 극에 달한 비극이고, 합체는 너무 위험한 탓에 폐기된 마법이다.
"하지만 숨겨진 역사보다 더 위험한 건 역사의 흐름을 뒤트는 것이죠."
"역사의 흐름을 뒤튼다고요?"
"네. 최근까지 어두운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악마 숭배자들이 바로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타락한 추기경까지 있을 정도로······"
그 말을 하면서 엘레나는 문 옆의 케이트의 눈치를 봤다. 다행히 케이트는 별 생각이 없는 건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흠. 흠. 그들은 역사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역사를 조금만 깊게 파고들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가령 이상이 없던 귀족이나 영웅이 자살을 한다거나, 아니면 반역죄로 잡혀들어간다던가 등등. 만약 학생께서 대의를 품고 세계를 구할 의향이 있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신변이 꽤 위험해질 겁니다."
"··· ···"
엘레나의 설명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산증인까지 떡하니 존재하고 있으니 확실히 와닿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악마 숭배자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마음을 놓는다면 그 즉시 파고들겠지.
악마 숭배자가 완전히 박멸되지 않는 이상 나는 평생동안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 된다.
"뭐, 그래도 조언 정도는 줄 수 있겠죠. 안 그런가요, 아이작 학생?"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함정 아닌 함정이다. 그걸 안 믿는다는 게 골때리지.
엘레나는 내 대답을 장난으로 받아들였는지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러지 말고 가벼운 조언 정도면 될 거야. 난 조언을 해달랬지, 미래를 알려달라 한 적이 없어."
"후우······"
나는 착잡함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당황스럽진 않다.
뒤이어 강의실 내의 학생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딱 한 명, 빛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체리를 제외하고는. 대신 그녀는 미소를 지어주는 걸로 대신했다.
'······무서운데?'
눈은 죽어있는데 입만 웃고 있으니 섬뜩하게 느껴진다. 설마 저것 때문에 동급생들이 기피하는 건가.
어쨌거나 말은 해야겠지. 나는 학생들의 시선이 괜스레 머쓱하져 머리를 긁적거렸다. 솔직히 조언이라고 해봤자 별 것 없다.
"엘레나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숨겨진 역사를 찾는다는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길을 걷는 것과 똑같습니다. 무슨 기록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어쩌면 별 것 아닌 기록일 수도 있죠. 최악의 경우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니지만. 미지의 길을 걷기는커녕 내 머릿속에 있던 상상을 그대로 끄집어낸 거나 다름없다.
그게 전부 다 들어맞아서 현재가 된 것일 뿐. 나는 따로 역사를 파헤치지도 않았다. 남들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삼았을 뿐.
"그런데도 길을 걷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학자로서 연구를 하는 건 기본 소양이니까요. 다만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점. 이 점만큼은 명확히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그렇다. 괜히 학자들을 향해 변태같다는 욕 아닌 욕을 하는 게 아니다.
학자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분야 자체를 사랑해서 투신한 사람들이며, 관련 지식을 얻기 위해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비록 제논 일대기는 허구의 이야기지만 이 세상의 역사를 고증으로 삼았다.
여기에 전생에서 접한 다양한 클리셰를 집어넣다보니 이 사단이 난 거고.
"사실 숨겨진 역사라 할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만약 훗날 학자가 되고, 특정 분야에 연구를 하신다면 다양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테니까요. 학자가 바로 그러한 직업입니다."
"그럼 제논 님께서는 어떻게 진실을 파헤친 거죠?"
한 학생이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대답을 할 생각이 없다.
정확히는 못 한다. 나는 분명 정체를 밝혔을 당시에 이리 발언했다.
제논 일대기 속 이야기는 모두 내 머릿속에 나온 이야기라고. 이 모든 일이 우연이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질문을 한 학생은 믿지 않는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학생의 자유지만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네요.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를 끌어내어 책을 쓴 거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뇨."
"그럼 패스하도록 하죠. 여기까지 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종료 선언에 학생들이 당황한다. 그래도 곧바로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 내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나는 그 박수 세례를 받으며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도 슬슬 익숙해진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엘레나의 강의 종료 선언 이후에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엘레나와 함께 나갈 생각이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동안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하다가 체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도통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나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중이다.
그 시선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져서 쓴웃음을 지었다가 손을 살살 흔들어줬다. 그러자 그녀에게 반응이 나왔다.
씨익
아까 보았다시피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분명 웃는 건데 도저히 웃는 것 같지가 않다.
'아니. 얘가 왜 또······'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냐. 이후로 다른 수업에 들어갔을 때······
"······체리?"
"네······"
"너 아까 역사 수업 들었지 않았어?"
체리가 또 앞자리에 앉아있는 걸 보고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선배님을 보고 싶어서······"
"······"
"절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내 잘못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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