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29화 (330/763)

〈 329화 〉 레오나(1)

* * *

체리도 아니고 레오나가 스토커로 신고되었다. 누가 신고했는지 몰라도 현재 레오나는 기사들에게 체포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자체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나에게 데려온 걸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만하다. 아마 내가 직접 처벌하기를 바랬겠지.

사실 레오나가 제일 먼저 잡혀온 게 도리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잡혀왔다면 나는 따끔하게 처벌했을 것이며, 그 뒤에 잡힌 레오나도 그와 비슷한 벌을 받았겠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레오나는 나와 안면이 있으며 무엇보다 약속이 잡혀있다. 내 쪽에서 먼저 말을 하거나 그녀를 찾아갔어야 됐는데 내 잘못이다.

그래서 기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먼저 약속을 잡았던 친구인데 실수로 깜빡하고 있었다. 내가 제논이라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었을테고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은 일체 없고 오직 진실만을 얘기했기에 기사들도 레오나를 풀어주었다. 내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라 내가 마무리 지어야지.

"미안해. 너를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그리하여 어찌어찌 잘 마무리되었으나 내 잘못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진지하게 사과했다.

기사들이 다소 강압적으로 체포했는지, 레오나는 튼튼한 몸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가 들통날 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아카데미조차 제대로 못 다닐 뻔했으니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를 뻔한 것이다.

"응? 아냐. 아냐. 조금 놀라긴 해도 이정도는 괜찮아. 그냥 조용히 기다렸으면 됐는데 내가 무턱대고 찾아간 거지."

내 사과에 레오나는 손을 휙­ 휙­ 내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정말 미안하다면 오랜만에 스테이크나 사줘. 알았지?"

넉살도 좋은 편이고. 나는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농을 건넨 레오나를 보며 피식거렸다.

바지 밖으로 나온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정말로 괜찮은 모양이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새로 입주한 나의 기숙사. 학생용 기숙사와 달리 VIP용 기숙사는 주인의 허락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다.

"스테이크는 원없이 먹여줄게. 지금도 먹으러 갈까?"

"지금은 괜찮아. 방금 전에 어머니랑 같이 식사를 하고 온 참이거든."

그러고 보니 마리에게 들은 적이 있다. 레오나의 어머니도 아카데미에 와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상견례 아닌 상견례를 위해 레오나의 어머니와 반드시 만나야 된다. 안 그러면 매듭을 마무리하지 못 할테니.

나는 실실 웃는 레오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부드럽게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아카데미 생활은 어땠어? 별 일 없었지?"

"난리도 아니었어. 네가 제논이라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한동안 그 얘기만 돌아다녔거든."

"그것 외에는?"

"난 공부만 하고 다녀서 잘 모르겠는데? 아! 마리 그 애가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가 전부 나가떨어졌어. 호위벽이 단단했거든."

저건 마리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한동안 피곤한 일정이 이어졌다고.

나는 레오나에게서 근황에 대해 이것저것 들었다가 이내 두 손을 맞잡았다. 뒤이어 한동안 고민하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생각이 확고하셔?"

모두 아시다시피 레오나의 어머니는 레오나가 내 부인이 되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그녀는 레오나의 진정한 행복을 기원하고 계셨으니. 문화에 따르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에 이끌리기를 원하고 있다.

"······응. 안 그래도 확고하셨는데 네가 정체를 밝히고 나서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지셨어."

레오나는 내 질문을 듣자마자 살랑거리던 꼬리를 멈추더니 음울하게 말했다. 쫑긋 솟아올랐던 귀가 추욱 늘어지는 건 덤.

아무래도 상황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느릿느릿 끄덕였다.

솔직히 제논이라는 거대한 방패가 생겼으니 레오나의 어머니도 허락을 내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족장의 세 번째 부인, 그것도 유일한 인간으로서 꽤 굴곡진 인생을 살았을 터.

거대한 방패가 지켜줄 바에야 차라리 평범한 인생을 살아라. 내가 예상하는 부분이다.

"음······ 역시 직접 만나봐야 알겠네."

"그것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이리 말씀하셨어. 내가 너의 부인이 되어도 도움이 되는 게 있냐고."

"그런 말씀까지 하셨어?"

"응."

내가 놀란 듯이 묻자 레오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팔짱을 끼며 잠깐 고민했다.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이긴 하지만, 현실을 깨달으라는 직설이기도 하다.

실제로 레오나는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게 거의 없었으니. 그나마 있다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로서 풀어지는 스트레스 정도랄까.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본인이 원하는 레오나의 인생과 모순되었으니.

'이걸 잘 이용하면 되겠네.'

아무래도 어머니로서의 모성애가 발동된 탓에 저런 실수를 범한 듯했다. 이래나 저래나 레오나가 진정한 행복을 찾기를 원하는 건 확실하다.

그러면 나 또한 진정성으로 나서면 그만이다. 나는 우울해져 있는 레오나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슥­

"······응?"

내가 머리 위에 손을 얹자 레오나가 두 귀를 바짝 세우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나와 비슷한 황금빛 눈동자를 보며 부드러이 웃어줬다.

쓰담­ 쓰담­

"으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레오나가 귀여운 소리를 낸다. 쫑긋 솟아난 두 귀도 쓰다듬기 편하게 옆으로 늘어졌다.

정말이지, 사자가 확실한데 같은 고양이과라 그런지 고롱­ 고롱­ 소리까지 낸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데 수인들 눈에는 못 생겼다니.

나는 긴 시간동안 레오나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귀를 만지거나, 뺨을 꼬집는 등. 수인이 좋아할만한 스킨십이란 스킨십을 열심히 해줬다.

수인은 다른 종족에 비해서 스킨십의 빈도 및 중요도가 매우 높다. 고양이과가 새끼들에게 그루밍을 해주거나, 개과가 입으로 뺨을 물거나 등.

그루밍은 익히 들어봤겠지만 개과가 뺨을 무는 건 이상하다 여길 수도 있는데,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너를 절대 해치지 않겠다, 라는 신뢰의 표시다. 가끔가다 대형견이 자그만한 동물의 머리를 한 입 물었다가 곧바로 뱉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윽­

"음?"

그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참을 쓰다듬는 도중에 살랑거리던 레오나의 꼬리가 내 팔을 감싸는 것이 아닌가.

방금 말했던 것이 '가족'에게도 통용되는 애정 표시라면, 이건 엄연히 '반려'에게나 허락되는 일이다.

꼬리를 만지게 허락해주거나, 그 꼬리로 상대방의 신체를 감싸는 것. 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오나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내 손길에 취해있는데도 꼬리가 알아서 움직이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릉. 그르릉. 그릉."

본인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일까. 레오나는 더 쓰다듬어달라는 듯이 머리를 더 내밀었다.

그렇게 서서히 내밀고, 또 내밀다 보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슬글슬금 다가온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것도 잠시, 그녀가 내 무릎 위에 엉덩이를 붙이며 몸을 기대자 아무 말 없이 안아줬다.

"흠. 흠."

아델리아는 나와 레오나 간의 애정 행각이 이어지자 헛기침을 하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줬다.

굳이 안 해도 될 헛기침을 하는 걸 보면 적당히 하라는 무언의 표시가 담겨있을 터.

나는 쓴웃음을 흘리면서도 레오나와의 스킨십을 멈추지 않았다. 얘가 그동안 정에 굶주린 건지 몰라도 더 진해진 것 같다.

'하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겠지.'

이렇게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얼마 없겠지. 정체를 숨기면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건 내가 경험해봤다.

그나마 지금은 줄다리기를 할 필요도 없이 정체를 시원하게 밝혔으나 레오나는 아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레오나."

"그릉. 그르릉."

"레오나?"

"그릉. 응?"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가슴을 얼굴로 비비고 있던 레오나. 그녀는 내 부름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쫑긋거리는 귀로 하여금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가까스로 억눌렀다. 어쩜 이리 중독성이 있을까.

"정체를 숨기고 다니는 거, 힘들지 않아?"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

"그럼 내가 도와줄까?"

"뭐?"

도와준다는 말에 레오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내 손을 감싸던 꼬리의 힘도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당황보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레오나와 마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이 당당하게 나설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어······ 어떤 식으로?"

"제논 일대기의 카인드 알고 있지?"

"모르면 이상하지."

카인드는 분노, 사탄의 동생이자 국가의 낡은 전통을 부수고 새로운 대족장이 된 인물이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으나 비상한 두뇌를 통해 국가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킨 수인.

"그 카인드의 모티브가 너라고 한다면, 다들 납득하지 않을까?"

이미 릴리스의 모티브가 세실리고, 엘리샤의 모티브가 아르웬이라고 굳게 믿는 상황이다.

이때문에 독자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사칭범이 나타나 피곤한 일을 만들었지만 케이트의 활약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러니 내가 소문을 풀어서 카인드의 모티브가 레오나라는 걸 알린다면,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겠지.

레오나는 내 의견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별로 안 끌리는데?"

"별로 안 끌린다고?"

"응. 그러면 네 도움만 받는 것 같잖아."

순간적으로 이해가 안 갔지만 레오나의 성격을 알고나서 납득할 수 있었다.

정체를 숨긴 채 아카데미에 입학한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레오나는 다소 자립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애교를 부르는 지금과 달리 타인에게는 꽤 사납고 시니컬한 성격을 띄고 있다. 이를 보면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을 터.

"어머니가 그렇게 싫어하는 정치가 섞일 수도 있어. 지금은 지나이가 대족장이 되었지만 내부적으로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애니머즈 쪽에서 나를 이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여기에 카인드의 모티브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음······ 확실히 일리가 있네. 내 생각이 짧았구나. 이건 보류하는 게 낫겠다."

"잘 생각했어. 그리고 지금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아. 만약 너를 만나지 못 했다면 스트레스가 더 쌓였겠지. 난 지금이 훨씬 좋아."

그 말과 함께 레오나는 나를 꽉 껴안았다. 수인 특유의 강한 근력 때문인지 전달되는 압박감이 남다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밀어내지 않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응답해줬다. 그러자 레오나의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할짝­

여기에 더해서 혀로 목을 핥기까지. 이성이 본성에 잡아먹힌 건지 그루밍을 시작한 것이다.

만약 경험이 없었더라면 소스라치게 놀랐겠지. 하지만 이제 레오나의 행동 패턴을 어느 정도 꿰고 있었기에 가만히 두었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나를 좋아하는 미녀의 그루밍을 받는 건데 누가 싫어하겠나. 더럽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레오나."

"할짝. 응?"

"혹시 어머니랑 내일 만나도 될까?"

남은 관문은 단 하나, 레오나의 어머니다. 그녀와의 말싸움에서 승리를 점해야만 레오나를 얻을 수 있다.

원래는 수인 특유의 문화 때문에 마지못해 받은 거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이 싹 가셨다.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완······ 아니, 여자를 그 누가 거부하겠나. 그녀 쪽에서 떠나간다면 내 마음에 큰 스크래치로 남겠지.

"되긴 되는데 그전에 스테이크부터 먹으면 안 될까?"

"··· ···"

"나 벌써 배고파."

"방금 전에 어머니랑 식사했다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레오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놓았다.

"스테이크가 들어갈 배는 따로 있어서······"

"··· ···"

"헤헤."

으르렁거리던 사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밥 달라고 삐약거리는 고양이만 남아있다.

* *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