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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25화 (326/763)

〈 325화 〉 개안(4)

* * *

성에 눈을 떠버린 케이트로 인해 한바탕 폭풍이 몰아쳤지만 다행히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케이트도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양보 아닌 양보를 한 덕분이었다. 여자들의 견제도 전혀 없었다.

사실 이건 나도 나지만 루미너스가 방아쇠를 당긴 거라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나라서 망정이지, 감히 누가 신에게 따지려 들겠나.

물론 그에 대한 업보로 한동안 공공재 신세는 면치 못 했다. 장난식으로 말한 줄 알았는데 진짜로 그러더라.

특히 마리가 가장 심했다. 안 그래도 아르웬 때문에 심란할텐데 갑자기 케이트마저 들이닥치니 질투심이 폭발한 것이다.

내 목을 강하게 깨물어 치아 자국을 남긴다던가, 키스 마크를 새긴다던가, 아니면 틈틈이 내 뺨을 깨문다던가 등등.

나는 그녀만의 애정 및 질투 표현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정도로 끝나는 것도 마리의 넓은 아량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니.

어쨌거나 케이트의 성적 고민은 전부 해결되었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사람도 늘어났으니 팬레터 및 선물을 뜯으며 하루 일과를 지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카데미에 있는 레오나다.

마리의 말에 따르자면 나를 열심히 찾는 중이라고. 듣자하니 그녀의 어머니도 아카데미에 도착한 상황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레오나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그녀의 어머니도 나를 안 좋게 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제논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어느정도 참작은 해주겠지. 그래도 호감을 사기 위해서 반드시 가야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에게 아카데미로 복귀하겠다고 연락을 보냈다. 무턱대고 갔다간 호들갑을 떨게 분명하니 미리미리 알려주는 게 낫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주냐고? 우리 저택으로 파견된 마법사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으면 되더라. 텔레포트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물건 정도는 주고 받을 수 있다.

역시 전능까지는 아니어도 만능에 가까운 마법사답다고 생각하면서 답신을 받았다. 가장 먼저 기숙사 관련 사안.

아카데미는 겉으로 평등을 표방하고 있지만, 마냥 그렇지 않다. 평등보다는 '공정'이라고 봐야겠지.

비록 한 명 당 기숙사 하나를 배정시켜주는 건 똑같다. 하지만 보안을 비롯한 호위는 신분마다 조금씩 다르다.

백작까지는 별 차이가 없어도 후작 이상부터는 보안이 엄격한 기숙사로 배정되며, 레오르트나 리나 같은 왕족부터는 급이 다르다.

그럴 일은 전무하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누군가 침입이라도 한다면? 침입을 하여 왕족의 옥체에 해를 가한다면?

아카데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며 국제적인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특히 테르스 왕국이 지목되겠지.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왕족 이상의 학생은 보안이 이중삼중으로 설치된 기숙사로 배정된다. 이건 타국의 학생도 동일하다.

'히리야는 아카데미로 오려나?'

그건 좀 궁금해지긴 하네. 그대로 재학한다면 그것대로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간에 기숙사 배정은 문제없이 끝났다. 아마 여기에 호위도 추가시키겠지.

호위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다음이 호위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 큰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다.

아델리아는 원래부터 전속 메이드였으니 당연히 곁에 있을 예정이니 상관없다. 문제는 누구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숫자를 배치시키냐는 것.

가급적이면 소수로 다니고 싶은 게 내 마음이나 그러기가 힘들다. 악마 숭배자라는 실질적인 위협이 떡하니 존재하는데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겠지.

그렇다고 남몰래 조용히 다닐 수도 없다. 이 놈의 빨간 머리 때문에 어딜 가나 눈에 띄니까.

단, 변장 마법을 사용한다면 인상을 어느 정도 가려줄 수 있겠지. 내 주위에는 마법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으니 현실성이 높은 이야기다.

특히 헬리움에서 파견될 예정인 '리퍼'가 큰 도움을 줄 터. 그들은 직접적인 호위보다 주변의 위험 요소를 모두 차단할 예정이다.

'겸사겸사 싸인까지 해주면 괜찮겠지.'

왠지 가르츠가 불쌍해졌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그에게 타자기를 비롯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친필 싸인은 원없이 해줄 수 있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 눈에 띄어도 상관없지만 너무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라고, 아무리 제논이라지만 호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예 중의 정예를 호위로 붙여야 된다는 의미인데 그런 전력이 놀고만 있겠나.

'사람'이 무기이자 군사 자산 그 자체인 세상인지라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제국도 바보가 아니어서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런 일을 예견한만큼 인원 선정은 마친지 오래다.

그런데 난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다. 미네르바 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호위 병력을 파견할 의지를 표했으니.

단순한 호위 파견만으로도 국제 정치가 섞여버렸으니 제국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플 것이다.

때문에 내 곁을 '직접적으로' 호위할만한 인력은 아델리아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델리아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그녀가 다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리는 완전히 제국민이라 제국이 직접 호위 중이라는 것. 여태까지 아무런 일이 없던 이유도 이 덕분이다.

내가 문제여서 그렇지. 나는 난감함에 아카데미 복귀를 미루어야 되나 고민했다.

"그러면 그때까지 제가 호위로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예?"

"저는 어디에 종속돼 있지도 않고, 오직 루미너스 님과 아이작 님에게 충성하고 있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문제에 고민하고 있을 때 내 귀로 들어온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언제 우리 저택으로 찾아왔는지도 모를 케이트였다.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 찾아오셨······ 아니, 그 전에 제 고민은 어떻게 아셨나요?"

"루미너스 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필요할 거라고 말씀하셨죠. 호위 문제는 다른 분에게 들었고요."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나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으나 케이트의 얼굴을 보고 허, 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토스가 아니라 내 고민을 알아차리고 루미너스가 보낸 모양이다.

'다행히 눈도 정상이고.'

나는 케이트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그때와 달리 정상이었다.

그때는 뭐랄까, 질척이는 것 같으면도 케이트 특유의 순수함이 섞여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평온했으나 혹시 또 모른다. 언제든지 씨앗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으니.

아무튼 이건 넘어가도록 하고, 호위 관련으로 돌아가자.

"······케이트 씨께서 제 호위를 맡으신다고요?"

"예."

"흐음······"

나는 케이트가 직접 내 호위로 나선다는 말을 듣고 아델리아를 힐끔거렸다. 예기치 못한 경쟁자가 생겼다고 판단했는지 눈치를 보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헛기침을 하기까지. 그래도 아델리아는 단순한 호위 기사가 아니라 나를 끝까지 보필하는 전속 메이드이니 겹칠 일은 없다.

이에 다시 한 번 케이트의 호위에 대해 하나 하나 세세히 따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미너스가 보냈다 했으니 다른 국가도 모두 받아들이겠지.

물론 이건 이거고 실용성을 따져야 된다.

'무력은······'

악마 숭배자의 뚝배기를 부수고 다니던 위인인데 따지는 것조차 어불성설이지. 이건 패스하도록 하자.

두 번째로 정치적 중립. 세이비어는 벨루아 공국과 함께 중립을 고수하고 있으니 문제가 될만한 사항은 없다.

마지막으로 명분. 케이트는 대심문관이라는, 세이비어 내에서 가장 높은 직급을 달고 있어서 호위 기사로 지내기에는 과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호위의 대상이 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악마 숭배자의 위협에 시달릴텐데 그녀만한 호위는 또 없을테니.

더군다나 '성역'을 일시적으로 선포할 수 있어서 이만큼 적절한 인력은 또 없을 것이다.

종합하자면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전혀 없고, 걸리는 게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호위 기사라 할 수 있다.

"······괜찮겠네요. 확실히 케이트 씨만한 인력은 거의 없을 거에요.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아델 누나처럼 전속 메이드는 아니라는 점 유의해주세요. 제가 기숙사로 들어갈 때 케이트 씨는 제 허락 없이 못 들어올테니까. 아셨죠?"

"······네."

대답이 왜 늦어, 이 여자야. 심지어 입이 일자로 그어진 것이 대놓고 실망을 표출했다.

설마 성욕을 못 참고 내 기숙사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제아무리 케이트여도 그건 선을 넘는 행위다.

나는 부디 그녀의 인내심이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기를 빌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사실은 교단에도 이미 말을 하셨나요?"

"말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을 겁니다."

"왜죠?"

"제가 뭘 부탁하던 간에 들어주던데요?"

"··· ···"

"게다가 아이작 님께서도 허락하셨으니 그들도 흔쾌히 받아줄 겁니다."

설마 본인이 세이비어 내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 중인지 전혀 모르는 건가.

의심이 갈법도 한 것이, 케이트는 루미너스를 추종하는 걸 제외하면 전혀 관심이 없다.

타락한 추기경, 바크를 처단한 것도 루미너스의 이름을 더럽히던 벌레를 처단한 거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세이비어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을 꼽자면 케이트이지 않을까. 만약 그녀가 마음을 먹었다면 교황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 편이라서 천만다행이다.'

만약 적으로 두었다면 골치 아팠겠지. 나는 속으로 안심했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케이트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케이트 씨는 본업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악마 숭배자가 곳곳에 남아있을텐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죠?"

"달콤한 과일에 벌레가 꼬이듯이, 그 벌레 놈들도 아이작 님을 해치려 달려들테니까요. 숨어있던 벌레도 튀어나와 아이작 님을 노릴 겁니다."

"··· ···"

"아이작 님을 보호할 수도 있고, 버러지 같은 벌레들도 퇴치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언제든지 씨앗을 받을 준비까지 할 수 있겠죠.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말만 뺐으면 동감해줬을텐데 그러지를 못 하겠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나 저래나 나에게 든든한 방패가 생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악수 신청이었다.

"그럼 잘 부탁하겠습니다, 케이트 씨."

"··· ···"

내가 악수 신청을 해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케이트.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고 있다.

무안하기보다는 의아함이 들어서 케이트를 바라봤을 때였다.

꿀꺽­

침은 갑자기 또 왜 삼키는 거야.

"하아······ 하아······"

변태 같은 숨소리는 또 뭐고. 얼굴은 왜 빨개져.

왠지 몰라도 스위치가 커져버린 듯한 모습에 손을 슬쩍 내뺐을 때였다. 케이트는 어딘가 다급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내 손을 붙잡았다.

한 손으로 아니라 두 손으로. 그리고는 부담스럽게 주물주물거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당황하여 손을 내빼려고 해도 그녀는 절대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태에서 인사를 건넸다.

"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작님······"

"어······ 네."

"아이작 님의 손······ 정말 부드럽네요. 언젠가 이 손으로······"

왠지 무서워져서 손을 강제로 내뺐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내가 손을 내빼자 케이트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자신의 두 손을 얼굴에 가까이 대었다.

그리고······

"스으읍······ 하아······"

"··· ···"

마치 마약을 흡입하는 마약 중독자처럼, 아주 깊게 숨을 들이켰다. 언뜻 야하게 들리는 날숨은 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케이트를 쳐다봤다. 그녀는 한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가 이내 한 손을 아래로 내렸다.

목과 쇄골, 가슴과 배,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자, 잠깐······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일까. 케이트는 자기 손이 위험한 곳에 도착하려던 찰나에 다급히 도망쳤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내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캣잎도 아니고."

케이트는 신체 접촉조차 위험한 것 같다. 적어도 눈을 뜨기 전까지는 저리 심하지 않았는데.

"맞잖아. 인간 캣잎."

"··· ···"

아델리아의 팩트폭력 아닌 팩트폭력은 한 귀로 흘려듣자.

그리하여 호위 문제가 해결된 나는 아카데미로 출발할 채비를 마쳤고.

"...케이트 씨?"

"네. 아이작 님. 말씀하세요."

"...아니에요."

제일 위험한 시한폭탄을 곁에 두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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