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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24화 (325/763)

〈 324화 〉 개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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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가 나를 찾아오는 건 사실 발매 전부터 예상했다. 원래 애매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다고, 케이트의 성지식 또한 그랬으니.

그녀가 24.5권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고, 루미너스와 상담한 뒤에 나를 찾아온다.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여인들에게 넘긴다.

여기까지가 내가 원래 수립했던 계획이다. 여인들도 파멸적인 케이트의 성지식을 알고 있으니 이 기회에 잘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 행위가 한 명의 사람으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교단에서 가르쳐 준 순결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했는지, 나와 루미너스를 위해서라지만 본인의 몸을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건지.

이번 기회에 알려준다면 케이트도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어쩌면 케이트 특유의 광신을 옅어지게 만들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우리와의 관계를 좀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겠지.

적어도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작 님.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오늘 저와 초야를 치루게 해주세요."

"알겠······ 네?"

케이트답지 않게 잔뜩 상기된 얼굴로 요청하기 전까지는. 빠꾸 없다는 표현을 여기서 사용해야 될 것 같다.

나와 주변인이 당혹스러워하던 말던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더니, 눈을 감고 흥분을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나온 성서를 읽고 아이작에게 욕정을 품었습니다. 아이작 님에게 욕정을 품은 저 자신에게 죄악감을 느껴 루미너스 님에게 읍소했죠. 하지만 루미너스 님은 괜찮다고, 단지 제가 늦게 알게 된 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아이작 님에게 품은 감정이 '사랑'이라고 알려주셨죠."

"··· ···"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이작 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어 욕정 또한 느꼈고, 성서에 나온 내용이 사랑을 나누기 위한 행위라는 것을. 사랑을 나눌 때 제가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보다 더 큰 쾌락을 얻는다는 것을. 단지 씨앗을 받는 행위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뒤이어 그녀는 감았던 눈을 뜨며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광기와 더불어 열망이 묻어있었으나, 기이하게도 질척하거나 더럽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했다. 그러나 '색'으로 완전히 물들었기에 순수한 것 뿐이지, 이미 그녀는 다른 의미로 타락한 상태다.

대체 무슨 대화가 오고 갔길래 순진했던 그녀가 이렇게 변했을까. 몹시 당황스럽다.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케이트 특유의 순수함은 남아있다. 그 순수함이 다른 색으로 물들어서 그렇지.

"그러니 아이작 님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와 초야를 치루게 해주세요. 훗날 씨앗을 좀 더 쉽게 받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알아야 하니까요."

"······정말 목적이 그것 뿐이에요?"

평범한 케이트도 아니고 색에 물든 케이트가 의심이 간다. 전이었다면 얘기 좀 모자르구나, 라며 넘어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방법'까지 알게 됐다. 심지어 그 방법 자체만 알고 있을 뿐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해 상식이 아니라 '관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광신도가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해보자.

그들은 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용납이 가능하다고 믿는 괴물들이다.

다행히 케이트는 그런 쪽이 아니지만 뭐랄까...

"네. 그리고 아이작 님도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쾌락은 루미너스 님께서도 사랑하는 남자에 한해서는 괜찮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고..."

그냥 부족하다. 나는 어질어질함에 머리를 짚었다.

케이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성관계를 맺으면서 얻는 쾌락. 이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촉각이다.

아마 루미너스도 그런 의미에서 말한 것 같다만 케이트라서 문제다. 애당초 그녀는 나에게 씨앗을 받는 것부터 신성한 행위로 여기고 있다.

더군다나 케이트는 교단 차원에서 관리한 추기경으로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왔을 터.

원래 늦바람이 가장 무섭다고 하더니 그녀가 딱 그런 케이스다.

여기에 특유의 신앙심까지 합쳐지니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탄생해버렸다.

그리하여 나에게 품은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폭주 기관차처럼 맹렬히 돌진하는 중이다.

"······잠깐만요. 케이트 추기경 님. 저랑 얘기 좀 할까요?"

결국 보다 못한 마리가 케이트를 불렀다. 그에 케이트의 시선이 마리에게로 향했다.

마리는 케이트의 순진무구한 것 같으면서 색에 물든 얼굴에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감정이 포함된 한숨이었다.

뒤이어 그녀는 무어라 설명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케이트 추기경님도 이제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게 된 건가요?"

"성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그걸 읽으면서 부끄럽다거나 파렴치하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마리의 질문처럼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이어도 일말의 부끄러움은 갖고 있다. 이건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감정이다.

실수를 본인의 은밀한 부분이 노출되었을 때나, 아니면 우연찮게 그렇고 그런 분위기에 노출되거나 등등.

과연 케이트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을까.

"어째서 부끄러운 거죠? 루미너스 님께서 당연한 거라고 하셨습니다."

없구나! 나는 확신을 얻게 되어 이마를 탁­ 쳤다.

다시 말하지만 케이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색에 물들었을 뿐이지.

루미너스를 위해서라면 모든 명령을 이행할 것이며, 나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성직자.

이 커다란 종이에 '색욕'이라는 새로운 욕망만 추가된 거지, 뿌리 자체는 건재했다.

"······그럼 케이트 추기경께서는 아이작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건가요?"

이건 마리가 아니라 세실리의 질문이었다. 의문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그녀도 사실 케이트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나를 마족의 구원자임과 동시에 신들이 내려준 은총이라 여기고 있었으니.

지금은 한 명의 남자로서 대우하고 있지만, 내심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나 또한 그 마음 자체는 부담스러워해도 겸연히 받아줬다. 케이트처럼 대놓고 숭배하지는 않으니까.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세실리 공주님. 제 몸은 오직 루미너스 님과 아이작 님에게만 허락된 겁니다. 다른 누군가가 더럽힐 일은 절대 없습니다."

"루미너스 님은 그렇다 쳐도 아이작은 어째서죠?"

"이 세상에 빛을 뿌려줄 사람이자, 루미너스 님뿐만 아니라 신들이 축복해준 성인이기 때문이죠."

꽤 모욕적으로 여겼는지 인상을 와락 구기며 대답한 케이트.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정체 발표 당시 내 손으로 뺨을 쓰다듬게 했던가. 그때의 케이트는 더러운 것이 씻겨져 나간다는 표정이었다.

세실리는 케이트의 대답을 듣고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꺼냈다.

"그럼 만약에, 만에 하나 아이작과 비슷한 업적을 세운 성인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어떡하실 거죠? 설마······"

"세실리 공주님께서는 아이작 님과 같은 성인이 언제 나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

웬일로 설득력이 높은 논리를 내세운 케이트. 그 논리 하나에 세실리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그도 그럴게 내가 세운 업적들은 전세계를 변화시킨데다가 악마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었다.

케이트는 그녀를 싸늘한 눈빛으로 한 번 노려보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싸늘했던 표정은 모두 사라졌다. 오직 첫날밤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상기된 얼굴만 남아있을 뿐.

뒤이어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더니 기대 반, 흥분 반의 표정으로 선언하듯이 말했다.

"아이작 님에게 맹세하겠습니다. 제 몸은 모두 아이작 님의 것입니다."

"··· ···"

"꼭 씨앗을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좀 더 쉽게 받기 위해서 행위를 해야 된다고 판단하는 바, 다시 한 번 요청하겠습니다."

"하아······"

어쩌다 사람이 이렇게 됐을까. 나는 착잡함에 마른 세수를 했다.

대뜸 찾아와서 저런 요청을 하는 것도 케이트답다면 케이트답다고 할 수 있겠지. 그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뒤늦게 눈을 떠버린 게 문제지. 일단 거절부터 할 생각이다.

"······죄송합니다, 케이트 씨. 아직은 안 됩니다."

"아직이라는 말씀은······"

"케이트 씨 말고도 더 있어서······"

이 말만큼은 꺼내기 부끄러웠는데 케이트라서 어쩔 수 없다. 이런 저런 변명보다 '차례'를 기다리라고 하는 게 정답일테니.

케이트도 내 대답을 듣고나서 아쉬워할지언정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모습이다.

"그렇군요. 만약 제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건 좀 아쉽네요."

당신이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난 이미 말라죽었을 거야.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케이트는 추기경이다. 그것도 현재 세력이 가장 강한데다가 루미너스의 총애를 받고 있는 성직자.

날 때부터 신성력이 수준급으로 강한 사람인데 저런 사람과 정사를 치루게 된다면?

빈말이 아니라 악주기의 세실리와 아델리아의 체력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사람과 하는 셈이다.

심지어 막대한 신성력을 토대로 회복력까지 강하니······

'······진짜 좆됐는데?'

나는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케이트를 힐긋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내 말을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

야설이나 얇은 책에 등장하는 성녀는 절대 다수로 빠르게 타락한다. 이후로 성녀의 면모는 완전히 사라지고 서큐버스로 재탄생한다.

설마 케이트도 그런 케이스이진 않을까. 심지어 강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원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식으로 가르쳤길래 이렇게 나사가 빠진거지?'

그래서 루미너스에게 직접 물었다. 대체 뭐라고 가르쳤길래 케이트가 다른 의미의 성녀가 된 거냐고.

일단 케이트는 저택에 잠깐 머물게 하고 나 혼자만 신전에 찾아간 것이다.

'루미너스 님.'

[미안하구나.]

'이게 미안하다고 될 일이에요?'

자초지종 설명을 다 듣고나서 따질 수밖에 없었다. 가르칠 거면 제대로 가르치지 어째서 더 이상하게 만든 건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물론 루미너스도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케이트가 저리 된 직접적인 원인은 교단에게 있었으니까.

교단에서 조금만 더 자세히 가르쳤다면, 신앙심을 조금만 더 자제시켰다면 관념이 저정도로 뒤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가 총알을 장전······ 아니지, 화살의 시위를 매겼다고 쳐요. 적어도 루미너스 님께서는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도록 조절해야 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화살이 엉뚱하게 날라갔고, 활마저 저에게 떠넘겼네요?'

[··· ···]

루미너스는 조목조목 따져드는 내 울분에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못 했다. 솔직히 화살이 애 먼 곳에 날라간 것까지는 괜찮다.

활을 나에게 넘기는 행위, 그러니까 이미 색에 물든 케이트를 나에게 떠넘겼다는 게 가장 큰 요점이다.

최소한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가르쳤다면 모를까,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다고 떠넘긴 셈이다.

이러니 내가 화딱지가 나지. 다만 내게도 책임이 있는데다 루미너스도 억울한 게 있어서 따지기만 한 거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더 크게 화냈을 것이다.

'후우······ 루미너스 님.'

[말하거라.]

'솔직히 케이트와 제가 이어지면 루미너스 님에게도 이득이 있는거죠?'

[아니라고는 못 하겠구나.]

나와 케이트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훌륭한 성직자로 성장할 것이다. 추기경은 기본으로 따놓은 당상이겠지.

성직자의 숫자가 많아지고, 그 질이 높아진다면 신에게도 큰 영향이 간다. 그리고 신은 그들에게 더 큰 신성력을 부여할 수 있다.

사실상 선순환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케이트가 처음부터 다짜고짜 씨앗을 달라고 한 거고.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별 말은 하지 않을게요. 대신 진짜로 말라죽을 수도 있으니까 신성력만 듬뿍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왜요. 설마 못 준다는 소리는 아니죠?'

그러면 진짜 죽을텐데. 케이트뿐만 아니라 레오나와 아르웬도 예약돼 있다.

특히 레오나는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튼튼한 수인에다가 발정기까지 겹치면 어찌 될지 모른다.

[그 반대란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신성력을 줄 수 있단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모라도 마찬가지고.]

'어째서죠?'

내 의문에 루미너스가 왠지 모를 흐뭇함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이것도 네 책 덕분이란다. 앞으로 인구수가 더 많아질 예정이거든. 우리가 축복을 내려줄 아이들이 많아진다는 뜻이지.]

'······진짜였어요? 설마 했는데.'

[물론. 따라만 해도 만족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연인과 부부간의 금슬도 증가했는 걸? 멀리 가지 않아도 네 주변에 있을거란다.]

'······설마.'

주변에 있을거라는 말에 두 분이 떠오른다. 나와 마리가 첫날밤을 가졌을 때 한창 불타올랐던 분들.

[잘하면 동생을 또 한 명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굳이 말하진 않으마.]

"아이고······"

나는 진심으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아버지가 더 피곤해보이셨는데 이때문이었구나.

그리하여 루미너스와의 대화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그러면 지금까지 확정된 사람이 나랑, 세실리, 아델 언니, 아르웬 님, 그리고 케이트. 이렇게 5명인가?"

"레오나 그 애는?"

"그 애는 아직 완전 확정이 아니야. 그러니 만약이라는 케이스에서 넣자. 그러면······"

"체리까지 넣어. 그러면 남은 사람은 레오나, 리나, 체리 이 세 명이겠네."

"하루에 한 번씩 한다고 해도 주기가 너무 길잖아. 일주일에 한 번도 못 하는 거야?"

케이트를 제외한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계획 아닌 계획을 짜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나와 밤일을 치루는 주기를 짜는 것 같은데, 여기에 아직 확정도 안 된 사람들까지 포함시킨 모양이다.

"안 되겠어. 난 제외시키자. 난 정실이니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

"와······ 이럴 때만 정실이래. 너무한 거 아냐?"

"꼬우면 아이작한테 먼저 고백했어야지."

"칫."

"저기······ 내 의견은 안 물어 봐?"

그에 소심하게 물으니.

"죄 많은 공공재는 빠져있어. 넌 열심히 운동이나 해. 말라죽기 싫으면."

"네."

마리에게 역공만 당해버렸다.

이거 슬프구만.

"슬픈 척 하지 마. 자업자득이잖아?"

진짜로 자업자득이라 할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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