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23화 (324/763)

〈 323화 〉 개안(2)

* * *

대심문관 케이트 루이즈 안젤리카. 그녀의 삶은 잘 다듬어진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에 살던 마을이 도적 무리에게 습격을 당하여 부모를 잃었으나, 가까스로 구조되어 신전에 맡겨졌다.

신전은 고아원을 겸하며 그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대부분은 성직자 관련 직종에 투신하는 편이다.

이것만 해도 레일은 어느 정도 깔린 것이나 케이트의 경우는 달랐다. 루미너스의 은총을 받았다는 말처럼, 남들과 비교했을 때 신성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했으니.

아이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성력은 다양한 방면에 사용되지만 그중 '성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케이트가 어린 나이에 대심문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던 이유도 이때문이다. 중간에 누가 불만을 갖지 않았냐고?

불만은 없다. 감히 루미너스가 직접 은총을 내려준 위인인데 누가 불만을 가지랴? 오히려 경외하며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이 늘어날 뿐.

실력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여태까지 케이트가 골통을 부수고 다녔던 악마 숭배자들의 숫자는 헤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

'청염'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녀의 무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머리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원래 악마 숭배자들도 끝까지 몸을 숨기고 싶어했으나, 케이트가 머리채를 직접 끌어다 둔기로 후려친 것이다.

이렇듯 무력과 지력이 뛰어나고, 신을 향한 신앙심은 물론 교단 차원에서 관리한 덕분에 외모까지 아름답다. 그야말로 문무겸비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

하지만 교단에서 깔아준 레일 위만 달려왔기 때문일까. 케이트에게는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큰 결점이 있다.

바로 성과 관련된 상식이 하자가 있다는 점. 어린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이상한 방식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달마다 찾아오는 마법의 날. 그녀도 사람인만큼 초경을 겪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갑자기 흘러내린 피를 보며 깜짝 놀라 담당 성직자에게 달려갔을 때, 그 성직자는 당황하면서도 차근차근 달래었다.

'축하합니다, 케이트 성도. 케이트 성도도 이제 어른이 되셨군요.'

'제가······ 어른이 됐다고요?'

'네. 이 피는 어른이 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 절대 창피하거나 놀랄 일은 아니에요.'

이후로 성직자는 어른이 되었으니 여자의 몸에 대해 하나 둘씩 가르쳐줬다.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청결을 유지해야 되는지 등등.

이것만 본다면 전혀 문제가 없는 교육이었으나, 이다음에 이어진 케이트의 질문이 매우 난처했다.

'저도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건가요?'

'네. 그렇죠.'

'그럼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요?'

'··· ···'

아이를 가진 부모가 대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 0순위.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 건가요?

담당 성직자도 그 질문만큼은 대답하기 곤란스러워했지만, 어찌어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씨앗을 받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단! 이건 케이트 성도가 사랑하는 남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거예요. 알겠죠?'

'그렇다면 사랑이 뭐예요?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이건 케이트 성도가 차차 크면서 알게 될 거예요. 루미너스 님의 은총을 받으신 케이트 성도이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그분도 기뻐하시겠죠.'

교육은 이게 끝이었다. 담당 성직자는 훗날 케이트가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 굳게 믿었다.

그것이 오판이었다는 건 평생을 가도 모르겠지만. 교단은 그녀를 '사람'이 아니라 루미너스의 충실한 '신도'로 대우했으니.

게다가 케이트도 본인이 루미너스에게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어디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신앙심은 여러모로 위험했지만, 한때 큰 사고를 터뜨렸던 루미너스 교단이었기에 최대한 자중했다.

이런 애매한 줄타기로 인해 루미너스조차 직접적으로 다그치지 못 한 것이다.

그 결과로 어린 나이에 추기경에 등극하고, 무력적으로 완성된 '성직자'가 탄생했다. 교단조차 케이트에게 상식이 부족하다는 건 전혀 알지 못 했다.

루미너스에게 은총을 받은 그녀는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넘볼 수 없는 위치였으니. 감히 누가 잘못됐다고 가르쳐줄까.

가끔 가다 그녀의 외모와 배경에 반해버린 사람들이 있었지만, 케이트는 웃으며 정중하게 거부했다.

이미 그녀의 몸과 마음은 오직 루미너스에게 종속되었으며, 그를 위한 일이 본인을 위한 일이라 굳게 믿었다.

때문에 몇몇 성직자가 궁금함을 참지 못 하고 케이트에게 물어보았다.

'케이트 추기경 님은 언제 성혼을 치룰 예정입니까?'

'루미너스 님이 선택한 남자와 하겠습니다.'

'······그런 분이 있을까요?'

있다. 바로 제논 일대기의 작가,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이라는 청년이.

케이트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으나 시간이 갈 수록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남자가 루미너스 님이 선택한 남자라고.

이 세상을 구원할 한 줄기의 빛이자 깨끗하게 만들 성인(?人)이라는 것을.

그래서 직접 찾아가 씨앗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왜인지 몰라도 아이작은 완강히 거부했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구애한 남자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어째서 거부하는 건가. 혹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반응을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다. 단지 부담스러워하며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뿐.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제논 일대기가 더 강한 빛을 뿌릴수록 케이트의 열망도 강해졌다.

그가 사방에 빛을 뿌리는 것처럼, 자신 또한 그에게 빛을 받고 싶다고. 이미 그의 빛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 여자들도 있겠다, 케이트는 조용히 기다렸다.

이건 루미너스가 내려주는 '세례'와 비슷한 것이었으니. 그러니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내자.

몸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에게 씨앗을 받을 날만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발간된 제논 일대기를 읽고, 평소 자각하지 못 했던 '욕망'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주조연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진정한 의미로 하나가 되는 초야. 케이트도 '나이' 상으로는 성인이니 24.5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작 님에게······ 품어서는 안 될 욕정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개안해버렸다. 연인들의 아름다운 초야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24.5권.

내용도 내용이지만 케이트의 성관념을 깨뜨린 건 다름아닌 대사였다.

[너의 아이를 갖고 싶어.]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릴리가 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했던 말이다. 그리고 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짐승이 되어 릴리를 탐하게 된다.

아이를 갖고 싶다. 그 대사가 케이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여자가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남자의 씨앗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어째서 남녀가 옷을 다 벗고 맨몸으로 부둥켜 안는 것일까.

어째서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작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일까. 설마 이게 정말로 씨앗을 받기 위해 과정인 것일까.

항상 담백하고 수수한 일상을 보냈던 케이트에게 24.5권은 커다란 자극이자 짜릿한 경험이었다.

성에 무지했던 순수한 아이처럼, 그녀는 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정독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전혀 모른 채.

유전자에 각인되었던 '본능'이 개화해버린 것이다.

'그 분을 떠올리면서 짐승처럼 제 자신을 탐했습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제 손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

'그 분께서 용서해주실까요? 불경한 마음을 품은 저를?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더러워진 저를?'

일련의 과정 끝에 케이트는 고해성사를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케이트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24.5권에 나온 행위가 무엇인지 잘 몰라도, 아이작에게 욕망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죄악이다.

분명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일텐데도 불구하고 '쾌락'이라는 욕망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으니까.

심지어 그 쾌락이 향하는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작이었다. 루미너스처럼 숭배해야 할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었다.

[··· ···]

그런 케이트의 마음을 속속 알게 된 루미너스는 대답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녀가 품은 욕망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이었으니.

하물며 자각하지 못 하고 있겠지만 그녀는 이미 아이작에게 푹 빠져있는 상태다. 이른바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광신도에 가까운 신앙심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게 된다.

부모와 아이 간의 사랑도 사랑이고, 연인끼리의 사랑도 사랑이며, 친구와의 사랑도 사랑이다. 신과 신도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원래 케이트는 루미너스를 향한 사랑처럼, 아이작도 이와 비슷한 경우였다. 여기서 요점은 루미너스는 실체가 불분명한 초월자고 아이작은 인간이라는 것.

이 차이 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또한 24.5권으로 하여금 그 감정이 폭발하여 욕망의 형태로 나타났을 터.

죄악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그녀는 아이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걸 죄악으로 여기고 있다.

케이트를 교육한 교단의 잘못과 특유의 신앙심이 섞여 정체성이 뒤흔들린 것이다.

[걱정 말거라, 아이야. 네가 품은 감정은 절대 죄악이 아니란다.]

'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약하면서도 가장 강한 감정이지.]

그래서 루미너스는 고뇌에 빠진 케이트를 위해 조금씩 알려줬다. 그에 케이트의 맑은 눈동자가 깜빡였다.

다른 신도였다면 이런 대화가 불가능했겠지만, 최근들어 신성력이 부쩍 증가한 그녀였기에 가능한 일.

물론 아이작처럼 직접적인 미래 예지를 하는 건 불가능하고 '상담'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그를 향해 욕정을 품은 것도, 그를 가지고 싶다는 소유욕이 든 것도 자연스러운 거란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는 없겠구나.]

'이 마음이······ 사랑이라고요?'

[그렇단다. 너는 자각하지 못 했지만 그전부터 아이작 그 아이에게 사랑을 품고 있었지. 혹시 아이작의 얼굴을 떠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았니?]

케이트는 루미너스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확실히 그랬던 적이 많다.

지난번 웬 짝퉁 제논이 자신의 뺨을 만졌을 때도 아이작이 떠올랐다. 그를 만나 더러워진 몸을 깨끗히 만들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광신에 가까운 마음을 품게 됐다.

'이것이······ 사랑······'

[그래.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품게 될 감정이니.]

'그럼 어젯밤 제가 한 행위는······ 더럽지 않은 건가요?'

[··· ···]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루미너스. 케이트는 말한 건 다름아닌 수음이다.

그래도 자연스러운 건 자연스러운 것이니 머지 않아 힘겹게 답할 수 있었다.

[그렇단다. 오히려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행위지.]

'해도 해도 욕망이 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 ···]

또다시 말문이 막힌 루미너스. 미래까지 엿볼 수 있는 초월체라 해도,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케이트가 겪고 있는 감정도 똑같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싶다만 방금 전 말했듯이 그는 미래를 알고 있다.

무수하게 놓인 상황들 속에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고 싶은 것이 루미너스의 진심이다.

문제는 케이트의 사고방식이다. 그녀는 죄악을 느끼고 있었지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은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 여기서 잘못 말했다간 성관념이 완전히 뒤틀릴 수도 있다는 의미. 그것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된다.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그래서 루미너스는 저택에 있을 아이작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 중 최선은 다름아닌······

[네가 사랑해 마지 않는 그 아이가 모두 해결해줄 거란다.]

아이작에게 토스해버리는 것. 만약 아이작이 들었다면 신이고 뭐고 바락바락 소리쳤을 게 분명하다.

책임감 없는 신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곤란한 사안을 넘기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니.

루미너스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머릿속에 박히는 걸 생생하게 느끼며, 다정하게 위로해줬다.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이라 해도, 그것이 뭉치고 응어리가 진다면 병으로 발전하게 된단다. 적어도 그 마음을 아이작에게 고백하는 게 좋겠구나.]

'제가 품은 욕망도 고백해야 될까요?'

[그건 아이작보다는 그의 곁에 있는 여인들에게 물어보려무나. 그들은 너의 큰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니.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렴.]

이건 사실이다. 본래 이런 고민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잘 알테니까.

더군다나 케이트가 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건 그들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적어도 상황이 더이상 꼬이는 일은 없을 터.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민은 해결되었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을 만나봐야 알 것 같아요.'

[그래. 절대 죄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단다. 넌 단지 그 아이의 씨앗을 받고 싶을 뿐이잖니?]

'··· ···'

[응?]

어라. 이게 아닌데. 루미너스는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는 실시간으로 바뀐다. 이건 제논 일대기 사태를 겪기도 전에 알고 있는 진리와도 같은 것.

그런데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미래가 바뀌었다.

정말 미약한 미래지만, 적어도 케이트에게 있어서 큰 미래가.

이에 그는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케이트를 불렀다.

[아이야?]

'씨앗만······ 이 아니어도.'

[음?]

케이트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며, 수줍게 고백했다.

'꼭 씨앗이 아니어도······ 괜찮은 건가요?'

[··· ···]

'성서에 나왔던 그 행위와 쾌락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긴 괜찮다. 남녀가 정을 나누면서 쾌락을 느끼는 건 자연의 섭리니까.

하지만 케이트는 달랐다. 씨앗도 씨앗이지만 그 행위를 통해 얻게 될 쾌락에 집중하고 있다.

뒤늦게 개안해버린, 순수한 성직자는 더이상 없다.

'대답해주세요. 루미너스 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를 통해 얻게 될 감정과 쾌락은 괜찮은 건가요?'

그리고 루미너스는 고민에 고민을 거쳐, 매우 힘겨운 음성으로 답했다.

[······괜찮단다.]

'감사합니다. 루미너스 님.'

그 대답에 케이트는 입꼬리를 올리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부터 아랫배가 찌르르 울리는 것이, 그의 씨앗을 받게 될 날이 기대되었다.

'아아. 아이작 님······ 어서 저에게...'

[··· ···]

루미너스는 사랑해 마지 않은 신도가 실시간으로 '색'에 물드는 장면을 직관했다.

*****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루미너스 님.'

[미안하구나.]

'이게 미안하다고 될 일이에요?'

한바탕 소동을 겪은 아이작이 루미너스에게 따지러 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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