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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12화 (313/763)

〈 312화 〉 테르스 왕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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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스 왕국의 상황을 언급하기 앞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제논 일대기는 남녀노소, 종족, 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기는 문화였으니. 이건 발표 당시에도 아이작이 언급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이 말과 현재 테르스 왕국에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소문을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이작이 직접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으나 테르스 왕국에는 아주 불안한 소문이 차츰차츰 흘러나오는 중이다.

[테르스 왕국에는 제논 일대기 23권이 발매되지 않을 것이며, 그 이후의 신작도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

테르스 왕국, 정확히는 왕국민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정도가 아니라 천재지변이다.

지금까지 즐겁게 잘 읽고 있던 백성들은 물론, 예술가들조차 전시회에 참석할 정도로 제논 일대기에 진심이다.

굳이 문화의 나라라는 칭호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무엇보다 제논 일대기는 미네르바 제국만이 아니라 테르스 왕국의 문화력에도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제논 전시회. 무명의 예술가들이 본인의 실력을 뿜내는데 제논 전시회만한 것도 없다.

아무리 재능이 훌륭한 예술가라 해도 빛을 보지 못 하면 아스라이 흩어지는 법이다.

제논 전시회는 그러한 예술가들에게 빛을 보여주며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관심을 받지 못 하던 예술가들이 속속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건 의외로 미네르바 제국이 아니라 테르스 왕국이다.

헬리움처럼 모든 예술가들이 제논 일대기 하나에만 파고드는 건 아니니까. 굳이 제논 일대기가 아니더라도 창작할 분야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테르스 왕국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전시회 개최 자격을 빼앗겨도 입맛만 다셨을 뿐이지,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입장을 취했다.

[테르스 왕국의 백성들은 현재 혼란에 빠져··· 평민 대표단은 상층부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상층부조차 이게 무슨 일인지 알지 못 한다고 발뺌하고 있으나, 이미 소문은 퍼진지 오래···]

그런데 제논 일대기가 더이상 테르스 왕국에 발매되지 않는다고 하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테르스 왕국의 상층부가 아니라 평민들이. 문화의 나라이니 뭐니 해도 그들도 제논 일대기 독자에 지나지 않는다.

읽은 사람보다 안 읽은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유명세를 달리는 제논 일대기.

테르스 왕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거진 필독서로 취급받고 있다. 이건 성서가 되기 전부터 유효한 이야기다.

재미있으니까. 근본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데다 귀족은 물론 평민조차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이 세상의 책은 매우 난해하고 복잡한 단어로 이루어졌다. 이때문에 평민이 읽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문맹률은 의외로 낮은 편이다. 아카데미 같이 시대상에 맞지 않은 교육 기관과 더불어 제지술이 눈에 띄게 발달했으니.

가장 큰 문제는 '중간'에 어울리는 책이 없다는 것. 제지술이 발달한만큼 동화를 비롯한 각종 설화 모음집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영어 수능 같은 책들밖에 없다. 책을 읽을 때마다 문제를 풀어야 된다.

때문에 탐험가나 모험가가 쓴 에세이나 일기를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건 말 그대로 일기 형식이라 적합하지가 않다.

아무튼 위의 여러 이유들이 합쳐져서 마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아랫 단계에 속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1년 전 갑작스러운 휴재 사건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기해보자.

평민들이 목소리를 높여 출판사 앞에 찾아온 건 물론이고, 아이작의 편지 한 통에 그 불똥이 황실로 날아갈 뻔했다.

아마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금주법'에 비견될만한 상황이었지 않았을까.

다행히 전화위복으로 제논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지만 하마터면 제 2의 제이로스 혁명이 발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보시오! 어째서 우리 나라만 제논 일대기가 발매되지 않는다는 것이오?!"

"설마 제논이 미네르바 제국 출신이라 그런 겐가!"

"빨리 나와서 해명해주세요! 하루 하루 다음 권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가요?"

현재 테르스 왕국에서, 또다른 혁명의 불씨가 차츰차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테르스 왕국에는 아주 기이한 문화가 하나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평민이 귀족을 향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목소리라함은 욕설을 제외한 쓰디 쓴 비판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나라였다면 모욕죄로 감옥에 집어넣거나 모가지가 댕겅 날라갔을 터.

하지만 테르스 왕국은 가능하다. '대표단'이 직접 나와 평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귀족을 향해 정책에 대한 쓰디 쓴 비판을 날리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몇 십년 전 발발되었던 '제이로스 혁명' 때문이다. 비록 혁명 자체만 본다면 실패로 끝났으나 어째서 '혁명'으로 기록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혁명 전에는 귀족이 대놓고 패악질을 부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간 또다시 혁명이 발생할텐데 뭐하러 대놓고 패악질을 부리겠나.

이건 현재도 마찬가지. 제논 일대기가 발매되지 않을 거라는 소문에 평민 대표단이 화들짝 놀라 귀족들을 찾아간 것이다.

또한 평민 대표단이 있는 것처럼 귀족들에게도 당연히 대표단이 존재한다.

본래라면 한 달에 한 번씩, 특정 기관에서 서로 마주보며 의견을 나누는 편이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건 우리도 잘 모르는 일이오. 그건 그렇고 이 사안은 우리보다는 제논에게 직접 묻는 게 어떤가?"

귀족측 대표단 중 한 명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평민 대표단에게 말했다.

확실히 그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이런 건 제논, 그러니까 아이작에게 직접 묻는 편이 훨씬 낫다.

여기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봤자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유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말만 그렇지 말을 열었던 귀족, 그리고 귀족의 대표단 대부분은 이유를 알고 있다.

지금 객석에 앉아있는 대표단의 대부분이 아이작의 재판 당시 모였던 사람들이었으니.

처음에는 아이작을 어떻게든 조지기 위해 여론을 형성시켰으나 그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상황이 180도 틀어졌다.

하물며 테르스 왕가가 그토록 숨기고 싶던 치부마저 알게 된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웃기는 소리! 제논은 제논 일대기를 그 누구도 차별없이 즐기기를 원하는 호인! 우리 테르스 왕국만 쏙 빼놓는 건 말이 안 되잖소!"

귀족의 정론에 또다른 정론으로 파훼하는 어느 한 평민의 반론이 나왔다. 그 반론에 장내에 또다시 시끌거리기 시작했다.

대표단 사이에 끼여있는 중재인이 어떻게든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소문이 돌기 시작한 시기는 오늘부로 일주일. 인터넷도 없는 세상이라 소문이 퍼지는 건 느리나, 그 소문이 제대로 퍼진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진실을 확인할 방도가 전혀 없으니까. 한 번 피어오른 불씨는 점차 번져나가 거대한 화재로 변모한다.

"제논이 우리나라에만 판매를 금지한다고 직접 말했었소! 그러면 믿으시겠소?!"

결국 보다 못한 귀족이 진실을 밝혔지만···

"지나가던 개가 야옹거리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누가 그걸 믿겠소? 그 제논이 우리나라에만? 어째서?"

"그렇소. 우리나라에만 팔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을텐데 그대들은 어째서 모른다는 거요?"

"마침 잘 말했군. 그 이유에 대해 어서 말하시오! 납득이 된다면 순순히 물러가리다!"

제 무덤만 파게 된 꼴이었다. 그 발언을 꺼낸 귀족은 같은 귀족들에게조차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테르스 왕국, 엄밀히 말해 상층부는 가불기에나 걸린 거나 다름없다.

이대로 모른 척 잡아뗀다면 시간을 벌 수 있겠지만 만약 정말로 제논 일대기가 발매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혁명이다.

고작 제논 일대기가 안 팔린다 해서 혁명이 발발하는 건 지나친 억측이지 않냐는 질문이 나오겠지.

여기서도 제이로스 혁명이 한몫하고 있다. 제이로스 혁명이 발발한 이유는 평민에게 예술을 허락하지 않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탄압이 아니라 '검열'에 가깝다. 귀족은 예술을 행하는데 있어 자유로웠던 반면 평민에게는 지나치게 제한을 두었으니.

만약 이에 불만을 품고 진행한다? 곧바로 감옥에 처박는 건 기본이고 특히 '풍자'를 할 경우 바로 처형이다.

다시 말해 '검열'은 테르스 왕국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역린임과 동시에 무기다. 위쪽에서 검열을 하려들면 이때다 하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으니까.

"설마 소문대로 제논이 미네르바 제국 출신이라서 그런겐가? 만약 그런 거라면 어떻게 될지 그대들도 잘 알지 않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늙수레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 외침에 귀족 대표단이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제이로스 혁명이 터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노인은 혁명의 산증인이자 이 자리에서 가장 큰 목소리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귀족 대표는 노인의 외침에 인상을 구기면서도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할 말은 많은데 할 수가 없다.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재판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모두 밝혀야 된다. 그러면 아이작의 위신을 조금이나마 깎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너 죽고 나 살자에 가까우며 테르스 왕국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

심지어 아이작은 적당한 명분도 있다. 자기 호위 기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아주 낭만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이래나 저래나 테르스 왕국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떠도는 소문에 따르자면 22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했소. 22권의 주내용은 질투의 비극적인 과거가 드러나고, 복수를 하는 내용이지. 이건 어떻게 설명한건가?"

"설마 우리 폐하께서··· 아니지. 이건 넘어가도록 하는 게 좋겠소."

"이건 예민한 사항이니···"

프리드리히가 쌓아올린 이미지가 서서히 깎여나가고 있다는 것. 당장은 의심 단계지만 의심만으로도 위험한 수준이다.

당장 평민 대표단도 그 이야기가 나오자 서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왕을 건드리는 건 그들에게도 도박수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으나, 반대로 말하자면 그게 진실로 밝혀지면 테르스 왕국은 끝이다.

아이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현재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제발 이대로만 지나가라···'

'오늘만 버티면 한 달을 버틸 수 있어.'

귀족들은 부디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고 있다. 오늘의 모임이 끝나면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시간동안 머리를 최대한 굴리면 뾰족한 수가 나올 것이리라.

그렇게 얻는 것 없이 제자리를 빙빙 도는 의견들만 나오고 있을 때, 아주 따끈따끈한 비보 하나가 그들의 귀로 날아왔다.

비보의 정체는 다름아닌 제논, 그러니까 아이작의 편지 한 통.

편지의 내용은 늘 그렇듯이 예의 바르고 공손했으며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전 말했듯이 모두가 즐기는 문화를 원합니다. 만약 그 문화를 싫어한다면··· 그 나라의 문제가 아닐까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능글맞은 편지에 이 새끼가? 라는 반응을 지었겠지만.

"이것 보시오! 제논도 우리나라가 문제라고 하잖아!!"

"어서 빨리 이유를 말해! 안 그러면 직접 왕궁으로 처들어갈테니까!"

"혁명 맛 좀 보고 싶소?!"

테르스 왕국에게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겠소. 만약 그 시간에 우리를 설득하지 못 한다면···!"

남은 기간 일주일. 이전에 아이작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직접 입을 열도록 만들테니 그리 아시오!"

테르스 왕국도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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