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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10화 (311/763)

〈 310화 〉 Isaac(3)

* * *

이 세계, 엄밀히 말해서 이 행성은 지구와 비교했을 때 작은 편이다. 이건 신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단, 지구의 70%가 바다고 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실질적인 크기는 지구 못지 않게 클 것이다.

하지만 미네르바 제국, 테르스 왕국, 헬리움, 알븐하임, 애니머즈, 마키나, 세이비어 교국, 벨루아 공국 등등.

여태까지 언급된 나라이며 이밖에도 크고 작은 나라가 존재하지만 지구에 비해서 한참 적은 숫자다.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나라의 수가 매우 적은 이유는 다름아닌 '몬스터'를 비롯한 거지 같은 '자연환경' 때문이다.

제아무리 신의 축복을 받은 엘프조차 몬스터와 자연은 어찌할 수 없으며 판타지 세상답게 사람이 살 수 없는 곳도 많다.

화산 지대, 남극마냥 매일매일 눈보라가 몰아치는 지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환경 등등.

아직 개척되지 않는 지역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몬스터가 점령하고 있으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돼 있다.

이렇다 보니 나라가 적은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덕분에 현재 대기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다.

만약 수 세기가 지났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겠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니 잠시 접어두자.

지금은 모여있는 사람들과 인맥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솔직히 인맥은 이미 다질대로 다져놓은 상황이나 모양은 잡아놓는 게 좋다.

게다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귀빈도 있다.

"만나서 반갑소. 내 이름은 기스 할 베르아노라고 하오."

바로 내 눈 앞의 남자처럼. 머스크와 다른 의미로 훌륭한 풍채를 갖고 있었으며 더티 블론드색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고 있다.

외모 또한 일국의 왕답게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친근한 인상을 준다. 조금만 털털했다면 머스크 사장과 형제라 해도 믿을 정도.

나는 그의 간단하게 인사를 받아주고는 옆의 여자를 쳐다봤다. 사실 이 남자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다름아닌 반려로 추정되는 여인이다.

프리드리히 국왕처럼 하늘색 머리카락과 하늘색 눈동자를 지녔으며, 히리야와 달리 다정한 이미지를 보이는 여인.

"안녕하세요. 벨루아 공국의 공비, 올리비아 할 베르아노라고 합니다. 제논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인은 예법에 맞게 인사했다. 누구와 달리 기품과 우아함이 절로 묻어나오는, 지극히 귀빈다운 인사.

모두들 예측했겠지만 이 여인은 프리드리히 국왕의 장녀이자 테르스 왕국의 1 왕녀다.

대충 들은 바로는 기스가 올리비아에게 한 눈에 반했다던가. 그 뒤로 열심히 구애하다가 기어코 서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올리비아도 처음에는 기스를 귀찮아 하다가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차렸는지 곧바로 결혼했다고. 반쯤 정략 결혼이지만 깨가 쏟아진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논 일대기의 작가,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이라고 합니다. 제논보다는 아이작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킬리스 공작가의 장녀이자 아이작의 약혼녀인 마리 하우젠 레킬리스입니다. 벨루아 공국의 귀빈들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가 인사하자 약혼녀 신분으로 곁에 서 있던 마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단아하게 인사했다.

마리는 대외적으로도 내 약혼녀라 발표된만큼 이처럼 당당하게 설 수 있다.

아마 그녀도 내심 짜릿해하지 않을까. 여태까지 제논이 아닌 아이작의 약혼녀였으나 오늘부로 상황이 달라졌으니.

얼굴을 익힐대로 익힌 사람밖에 없지만 지금처럼 모르는 사람과 만났을 때 그 짜릿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레킬리스 영애. 아이작 님도 그렇지만 마리 님도 정말 아름다우셔요. 두 분 모두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올리비아 왕비님도 아름다우세요."

"그런데 마리 님께서는 제논, 아니 아이작 님을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예상했던 질문이 올리비아의 입에서 나왔다. 겉으로만 본다면 미네르바 제국에서 나를 잡아두기 위해 마리를 붙였다고 생각할 터.

이건 그녀뿐만 아니라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마리의 허리를 붙잡아 나에게 밀착시켰다. 우리의 애정을 과시함과 동시에 확인을 시켜주기 위함이다.

"많은 분들이 제국에서 저를 잡기 위해 마리를 붙인 거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니에요. 제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마리가 고백했거든요."

"정말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올리비아는 물론 기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리를 바라본다.

이에 슬쩍 마리를 쳐다보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은근슬쩍 나에게 더 밀착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 모습이 깨물고 싶을만큼 귀여웠지만 보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네. 정체를 밝힌 건 그 직후였죠. 그래도 마리는 제가 누구이던 간에 신경 쓰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지?"

"응..."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팔을 붙잡는 마리. 매사에 당돌하던 때와 달리 지금처럼 애정을 과시하면 사람이 달라진다.

올리비아는 그런 우리 둘의 관계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럼 마리 님은 아이작 님의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고백한 거예요? 이건 좀 궁금하네요."

"당연히 얼굴이죠. 지금도 매일매일 뜯어먹고 사는 걸요?"

이런 솔직한 부분도 좋다. 올리비아는 마리의 당당한 대답에 당황했다가 이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납득할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저는 제 남편이 제일 잘생겼답니다."

"허허. 나도 젊었을 때는 잘생겼지."

"살이나 빼고 말하세요."

올리비아를 포함한 벨루아 왕국과의 이야기는 아무런 탈없이 진행됐다. 예민한 부분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특히 올리비아는 내 곁을 지키는 아델리아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전의 테르스 왕족처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아는 체를 했다가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서 피하는 것이다.

방금 전에도 히리야가 울고 불고 빌었으니 어느 정도 눈치를 챘겠지. 하지만 내가 그녀를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던 이유는 다름아닌 아델리아의 평가다.

아델리아가 테르스 왕국에서 생활하고 있을 당시 올리비아가 친언니처럼 대해줬다고. 비록 3개월이라는 짧디 짧은 기간이었지만 라라 못지 않게 위안을 줬다고 알려줬다.

만약 벨루아 공국의 공비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델리아의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벨루아 공국도 제논 일대기로 많은 이득을 보셨죠?"

"물론이라오. 현재 국고가 너무 많이 채워져서 어디에 쓸지도 고민인 상황이오."

기쁨이 가득한 기스의 대답처럼 벨루아 공국은 출판사 못지 않게 금전적 이득을 본 나라다.

올리비아가 옆에서 눈치를 주기 위해 헛기침을 했지만 이미 행복감에 젖어든 기스를 막기에는 무리였다.

벨루아 공국은 원래부터 중립국임과 동시에 상업이 발달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일단 국가적 지리부터가 사기라 해도 무방하다.

인간, 드워프, 수인, 엘프 이 모든 종족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으니까.

비록 영토는 다른 나라보다 작았으나 그 중요도는 전에 언급했던 스타비르크 지역 그 이상이다. 전략적 요충지임과 동시에 교통의 중심이었으니.

수틀리면 명분이고 나발이고 정복 전쟁을 펼칠 수 있는 이 시대에 중립국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스의 통치력을 예상할 수 있다.

만약 마력 기관차가 발명된다면 벨루아 공국에 0순위로 설치되지 않을까.

제논 일대기가 멀리 뻗어나가기 위해서 벨루아 공국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되니 머스크처럼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 자식을 소개시켜주고 싶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지라."

"괜찮습니다. 나중에 제 자식과 만나면 되겠죠."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하하하."

내 자식이 몇이나 나올지 몰라서 문제지. 아직 그들은 나에게 마리뿐만 아니라 여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설령 낌새를 눈치챘더라도 대놓고 말하진 않겠지. 괜히 말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도 있었으니.

그렇게 벨루아 공국과의 대화가 슬슬 끝나려던 차에, 올리비아가 나와 마리가 아닌 아델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델리아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흠칫한 것도 잠시,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인사에 올리비아도 간략하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작 님."

"네. 말씀하시죠."

"정말 훌륭한 호위 기사를 곁에 두셨군요. 보기만 해도 든든해요."

아쉬우면서도 뿌듯함이 담긴 말.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아델리아가 아닌 마리를 쳐다봤다.

모두 알다시피 마리는 사람의 진의를 깨닫는 능력을 타고 났다. 다시 말해 올리비아가 한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는 뜻.

그리고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확인됐다. 올리비아는 라라와 더불어 아델리아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덕분에 나 또한 호의를 담아 대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공비님의 말씀처럼 크로스 경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사로서."

"그···"

내 말에 올리비아는 무어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달싹거리며 망설였다. 그녀는 머지않아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작 님."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올리비아의 인사. 나를 겨냥한 건지 아니면 아델리아를 겨냥한 건지 몰라도 긍정의 의미로 끄덕거렸다.

이리하여 벨루아 공국과의 대화가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응? 당신들은···"

"오랜만이네. 아니, 오랜만입니다."

놀랍게도 이다음으로 다가온 사람들은 다름아닌 수인들. 그것도 나와 안면이 있던 수인이다.

한 명은 레오나의 이복형제이자 사자 수인인 발칸 라이언즈. 또 다른 한 명은 하이에나 수인 지나이 크로추커.

지금 이 자리는 각 나라의 대표가 찾아오는 것인데 이 둘이 찾아온 걸 보면···

"설마 대족장이 된 거예요?"

"누구 덕분에 됐지 뭡니까. 하하하."

지나이가 내 물음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나를 저격하는 발언에 옆에서 발칸이 매섭게 노려본다.

설마 정말로 지나이가 대족장이 된다니, 떨떠름한 상황이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전개다.

현재 애니머즈는 강한 왕이 아니라 현명한 왕이 필요했으니. 지나이는 나쁜 쪽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뿐이지 왕의 귀감으로서 충분하다.

그런데 그 무수한 반발을 이겨내고 대족장이 될 줄은 생각치도 못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자가 대족장이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헌데 자그마치 그 제논의 조언이었으니 납득이 되는군요."

지나이를 매섭게 노려보던 발칸이 나에게 말했다. 전과 달리 예의 바르면서 공손한 말투였으며 레오나의 오빠다 보니 뭔가 어색하다.

이에 내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거리자 지나이가 투덜거렸다. 무례한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자기 혼자 투덜거렸다. 다 들려서 문제지.

"제논의 조언이니 빼도박도 못하게 대족장이 될 수밖에 없네. 이젠 나도 도망칠 구석도 없고 모르겠다."

"투덜거릴거면 밖에 나가서 투덜거리십시오."

놀랍게도 발칸조차 지나이에게 존댓말로 대하는 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지만 예상하건데 지나이의 지혜가 입증된 모양이다.

나는 왠지 기이할만큼 어울리는 둘의 케미에 웃음을 흘렸다가 근황에 대해 물었다.

"요즘 애니머즈는 어때요? 제가 말한 것처럼 잘 되고 있나요?"

"반발은 있지만 투쟁심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대회이니 많은 수인들이 동의하고 있죠. 수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능을 한꺼번에 분출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지라."

"다행이네요. 그 외에는요?"

"머리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놈들밖에 없어서 힘듭니다. 힘으로만 관료를 뽑으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었지. 어쩐지 쉽게 털어먹더라니."

"흠. 흠."

지나이가 대놓고 까는데도 불구하고 발칸은 헛기침만 할 뿐이지 별 다른 변명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부 다 팩트인 것 같다.

그래도 애니머즈는 앞으로 발전할 날만 남았으니 걱정할 건 없어보인다. 지나이도 다른 건 몰라도 할 건 하는 성격이라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실례지만 레오나와는···"

"어허. 그 얘기는 개인적으로 해. 지금 하면 안 된다고."

지금도 보아라. 극히 민감한 사항을 발칸이 생각없이 꺼내려고 하자 지나이가 다급히 제지하고 있다.

그녀의 말마따나 개인적으로 말한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말했다간 이상하게 꼬일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지나이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애니머즈와의 대화도 이리 끝나고, 이다음으로는···

"오랜만이로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의 차례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달리 존댓말이 아니라 특유의 어른스러운 말투를 유지했다.

아르웬마저 존댓말을 사용하면 뭔가 어색하기에 이게 편하다. 무엇보다 평소 오만하다고 알려진 엘프였기에 다른 사람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이네. 나야 잘 지내고 있었지. 아르웬 너는?"

나는 존댓말을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말을 놓기로 정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아르웬은 머스크와 함께 나의 정체를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러니 평소의 친분도 드러낼 겸 겸사겸사 반말을 해도 아무 문제도 없다.

아르웬은 내 정다운 인사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매일매일 바쁘지만 그대를 만난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지. 오늘 그대를 만나니 그간의 고생이 풀리는 것 같구나."

"어··· 그래?"

무언가 의도가 다분히 묻어있는 아르웬의 대답이다.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를 확인했다.

마리는 싱글벙글 웃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저 미소는 속내를 감추기 위한 미소라는 것을.

하물며 아르웬이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별 일은 없었지?"

"없었다. 알븐하임도 차차 안정되는 중이고, 엘프는 하나로 단결되고 있지. 이 모든 게 그대 덕분이다."

"난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단지 약간 도움을 줬을 뿐이지."

"그래서 말인데···"

아르웬은 잠깐 말을 흐렸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리의 대화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인맥을 다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에 그녀는 왜인지 몰라도 얼굴을 붉히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선물을 주려고 한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알븐하임의 백성들 모두가 동의한 바이지."

"아. 저번에 말했던 선물?"

"그래."

"그게 뭐야?"

나는 질문을 하면서도 그녀의 곁에 서 있는 호위기사, 케이르를 힐끔 쳐다봤다. 아예 아르웬의 호위 기사로 발탁된 모양이다.

케이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자기가 말해줄 수 없다는 무언의 표시.

그사이 아르웬은 뺨을 붉히더니 쑥스럽다는 목소리로 대답을 꺼냈다.

"무, 무슨 선물인지 궁금하다면 알븐하임으로 오거라. 단, 오기 전에 연락을 보내는 건 잊지 말고."

"흐음··· 오늘은 안 돼?"

"오, 오늘? 아,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대체 무슨 선물이길래 여왕의 품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격렬히 거부하는 것일까.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르웬을 쳐다봤다.

그런 그녀의 외침 때문일까. 이쪽을 향한 시선들이 심상치 않았다. 특히 세실리 쪽이 더 그렇고.

이대로 가다간 이상한 소문이 번질 수도 있으니 수습에 나서야 될 것 같다.

"알았어. 시간이 나면 언젠가 알븐하임에 방문할게. 얼마 걸리진 않을거야."

"으으··· 알겠다. 폐를 끼쳐서 미안하구나."

"폐는 무슨."

"그러면··· 그대여."

"응?"

나를 부른 아르웬은 입을 오물거리더니 힐긋거리기 시작했다.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걸 보며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지는 동안, 아르웬이 개미가 지나가는 듯한 크기로 말했다.

"···느냐?"

"뭐라고?"

"그, 그대는··· 무슨 색을 좋아하느냐?"

뜬금없이 좋아하는 색에 대해 묻는 아르웬. 나는 한 쪽 눈을 치켜뜨며 의문을 자아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웬은 혼자서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몰라도 얼굴에 두 손을 파묻고 있다.

이러다가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았기에 서둘러 답했다. 일단 좋아하는 색은 따로 있었으니.

"굳이 있다면 빨간색?"

"···그대다운 답이로구나. 알겠다."

"그것도 선물이랑 관련 있는 거야?"

내 질문에 아르웬은 차마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 하더니 작게 대답했다.

"···그렇다."

대체 무슨 선물인거지.

아무튼 아르웬과의 대화를 그걸로 끝났고.

꽈악!

"아악! 갑자기 왜?"

"흥. 몰라도 돼."

마리에게 옆구리를 꼬집혔다.

"선물은 무슨... 엘프가 그렇게 야해도 되는거야? 신의 선택은 무슨. 참 나..."

그녀는 아르웬이 말한 선물의 정체를 깨달은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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