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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305화 (306/763)

〈 305화 〉 떡밥(3)

* * *

아이작의 아버지, 호크 듀커르 마이샬의 인생은 남들에 비해서 파란만장한 편에 속한다.

평범한 평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어릴 적부터 대단한 무용을 드러내고, 우연히 한 귀족의 눈에 띄어 기사가 된 인물.

사실 평민이 기사가 되는 건 미네르바 제국에서는 흔한 편이지만 그가 쌓은 무공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아스카날 사건이라 칭해지는 드래곤 토벌의 주역이며, 야만수인과 엘프 정찰대가 시시때때로 침범하던 국경지대를 10년 이상 방어한 인물.

호크가 세운 공적들은 하나 하나가 미네르바 제국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던 것들이고, 특히 국경지대 방어는 황실조차 인정할 정도다.

그가 배치되기 전 국경지대는 틈만 나면 야만수인이 침범하여 수많은 피해를 안기는 곳이었으니.

더군다나 야만수인의 대대적인 공세를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작위가 내려지는 건 당연한 수순.

하지만 하루 하루 전투만 하고 살았던 탓일까. 그의 현역 기간은 다른 기사와 비교했을 때 매우 짧은 편이다.

심한 부상을 입는 것만 아니라면 기사에게 은퇴는 없다. 막말로 본인이 괜찮다고 판단되면 죽을 때까지 근무하는 게 가능하다.

지구였다면 몸에 찾아오는 노화로 인해 거의 불가능할테지만 이 세상은 '마나'가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관.

마나는 노화를 방지해줄 뿐더러 신체 강화도 가능케 해주니 기사와 같은 직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설령 신체 자체에 노화가 오더라도 수 십년 간 갈고 닦은 마나 연공법으로 대체하면 끝이다.

흔히 '노익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기인하며 미네르바 제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매우 좋다.

아무튼 호크가 이런 독특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한 이유는 다름아닌 '마음'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신나게 웃고 떠들던 전우가 하루 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야만수인이라 해도 살인을 해야 된다.

그리고 이게 매일 같이 반복된다면, 과연 멀쩡한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호크가 근무하던 당시의 국경 지대가 이러했다. 심지어 그가 젊은 나이에 기사단장이 될 수 있던 이유도 주변의 동료 및 상관이 다 죽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사단장이 된 후에도 이런 비극이 반복됐다. 미치지 않고서야 평범한 사람이 버틸 수 없는 극한의 환경.

다행히 호크는 그런 환경을 묵묵히 감내하며 전투를 이어나갔고, 중간에 사랑스러운 애인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후로 묵묵히 본업을 이어간 끝에 야만수인의 총공세까지 막아내고 더 나아가 뒷일을 맡길 수 있는 후기지수도 배출했다.

마지막으로 제국의 황실으로부터 백작위를 선사받았지만 더이상 정신이 괴로워지는 건 사양한다며 일부러 남작위까지 받았다.

그야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위인. 하지만 호크는 안락한 생활을 위해 이름이 알려지는 걸 거부했다.

제국측도 그의 명성을 이용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군인에 대한 예우는 확실했기에 요구에 응했다.

이렇듯 호크는 화려하다면 화려하고, 잔혹하다면 잔혹한 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단란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장남 데이브와 장녀 니콜은 자신의 뒤를 밟아 네이비 기사단에 입단하고, 막내딸 릴리는 두말 할 것 없이 사랑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차남 아이작은 호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부심이자 역설적으로 골칫덩어리라 할 수 있다.

자그마치 자기 아들이 제논인데 자부심을 가져야지 왜 골칫덩어리라 하는 거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

심지어 호크 본인도 스스로를 방패로 써도 된다며 아이작에게 말했다. 실제로 자신을 방패로 써도 개의치 않았으니.

문제는 아이작의 위상이 높아져도 너무 높아졌다는 것. 저 말을 했을 당시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대문호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지금은? 지금은 그냥 성서 취급 받고 있다.

평범한(?) 대문호와 예언자 혹은 회귀자가 작성한 일대기. 과연 무엇이 더 큰 파급력을 지녔을까.

방패는커녕 그 방패가 창에 꿰뚫리고도 남을 것이리라. 분명 아들이 대성한 건 좋은데 너무 커지다보니 그릇에 담을 수가 없다.

이미 아이작의 명성은 호크가 현역 시절 세운 공적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그의 방패가 아니라 아이작이 방패가 되어 가문을 수호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뜬금없이 호크가 방패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주님!! 영주님이 정말로 제논인가요?!"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하고, 맞다면 맞다고 말씀해주세요!"

"남작님! 카이르는 왜 죽이셨나요!"

어떻게 되긴, 난장판이지.

현재 마이샬 저택의 대문 앞에는 무수한 인파가 몰려든 상황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으며 신문의 소식을 접한 평민들이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마이샬 영지에 거주 중인 영주민이기도 하다. 신문을 보고나서 한 두 명씩 대문 앞에 몰려오더니 며칠이 지나자 그 인파가 셀 수도 없이 많아졌다.

다행히 대문을 경비하는 인력들이 가까스로 통제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통제일 뿐. 힘으로 뚫는다면 가뿐하게 뚫릴 것이다.

당장 대문 앞이 이런데 저택 내부는 과연 평화로울까?

"정녕 발뺌할 것이오? 이 모든 정황이 마이샬 남작을 표현하고 있소."

"현재 마이샬 영지는 성지를 넘어 성역으로 발전되고 있는 바, 신의 보호하는 곳에서 거짓말을 할 셈인가?"

"그대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제논이라는 거지?"

전혀 아니다. 현재 호크는 어디선가 몰려온 귀족들을 상대하느라 바빴다.

밖에서 시위 아닌 시위 중인 평민들은 몰라도 귀족의 방문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다 받아야 된다.

게다가 이것마저 거부하게 된다면 도리어 확신을 주게 될 수도 있으니 그것만큼은 피해야 된다.

이에 호크는 손님 맞이용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는 귀족들을 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대체 저의 어디를 봐서 제논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붉은 머리에 황금빛 눈동자."

"기사로서 풍부한 경험도 있지. 그걸 토대로 제논 일대기의 전투 장면을 넣었을테고.

"원래 황량했던 도시를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킨 걸 보면 현자 못지 않는 현명함도 있겠지."

호크의 질문에 너도나도 사이좋게 대답하는 귀족들. 호크는 그걸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붉은 머리카락과 황금색의 눈동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데이브와 아이작도 갖고 있다. 릴리는 신생아이니 예외로 두자.

기사로서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제논 일대기에 넣는 것? 그건 자신이 아이작에게 알려줬기 때문에 가능하다.

'내가 모르는 전투 방법도 있고.'

현역 시절 남들보다 굵직한 사건들을 겪은 호크지만 제논 일대기에는 그가 겪지 못 했던 것들도 많다.

게다가 말만 그렇지, 아이작이 홀로 창작한 게 대부분이다. 자신은 그저 고증 관련 부분만 조언했을 뿐.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없던 영지를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킨 건 저들만의 착각이다. 황실에서 다 해줬지 자신은 결재 서류만 왕창 찍은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이 절묘하게 박자를 이루다보니 다들 호크를 제논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후우... 여러분들의 생각과 달리 전 제논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주시겠습니까?"

"알겠네. 대신 다음에는 좋은 대답을 들었으면 좋겠군."

"우리도 제논을 건드리긴 싫으니 가보도록 하겠네."

"그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카이르는 왜 죽..."

마지막에 질문하던 귀족은 다른 귀족의 손길에 질질 끌려나갔다. 끌려나가면서도 어떻게든 대답을 듣고 싶다는 발악이 포인트.

호크는 한바탕 폭풍이 스쳐지나간 듯한 느낌에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하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생각이 없는 애는 절대 아닌데...'

아이작이 히리야의 뺨을 때린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 리나가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호크에게도 연락을 취했으니.

이번 사태도 아마 그 일이 원인인 것 같다만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하니 갑갑할 따름이다.

'보아하니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건 확실해.'

지금 당장은 아이작이 원하는대로 방패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그가 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영지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 순위.

호크는 서둘러 아이작이 도착하기를 기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족들을 돌려보냈지만 그렇다 해서 업무가 끝난 건 아니다.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피곤하다 해서 뒤로 미룰 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 바깥에는 영주민들이 무리를 지어 소리치고 있으니 그것부터 진정시켜야 된다.

'대체 무슨 생각인게냐, 아들아.'

*****

호크가 귀족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처럼,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한 명 마이샬 영지에 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제논 일대기의 출판사, 머스크 그리드.

전과 같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는 느닷없이 밝혀진 제논의 정체에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정말로 제논이 붉은 머리에 금안을 가진 자가 맞소?"

"그것만 알려주면 여기 있는 돈 모두 그대에게 주리다!"

"어차피 밝혀진 마당에 더이상 망설일 것도 없지 않소?"

머스크는 온갖 감언이설과 뇌물로 자신을 현혹시키려는 귀족, 그리고 부자를 보며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덥썩 받아버리고 싶다. 이건 전과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이전까지만 해도 제논의 정체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신의를 지키겠다고 딱 잘라 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다소 미묘하게 다르다. 그는 호크를 비롯한 아이작의 주변인과 달리 무슨 상황이 터진 건지 짐작조차 하지 못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신문을 보긴 했으나 그 소식이 퍼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다.

호크도 호크 나름이지만 머스크가 진정한 의미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인 셈이다.

'이걸 말해야 돼, 말아야 돼?'

머스크는 사장실까지 처들어 온 귀족들의 얼굴을 낱낱리 훑어보며 난감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신문만 본다면 제논의 정체가 거의 드러났으나 확실치가 않다는 게 문제다. 지금 당장 호크를 제논이라 여기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니.

만약 자신이 맞다고 대답한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아이작 쪽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 빠져나갈 구멍도 없어서 울고 싶을 정도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습니까? 어차피 곧 있으면 제논의 편지가 올텐데 이러시는 건 곤란합니다."

"그 편지는 대체 언제 오는 거죠?"

"그냥 맞다, 아니다라고만 할 수는 없는 거요?"

"이미 다 밝혀진 마당에 그것조차 말할 수 없는가?"

이 새끼들아. 그것도 못 참냐. 소식이 터진지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머스크는 위의 말을 터뜨리고 싶은 욕구를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차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다고, 그를 압박하던 사람들도 마지못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물러나려고 했다.

덜컹!

"사장님! 제논에게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충실한 부하이자 비서, 매튜가 제논의 편지를 들고 오기 전까지는.

매튜의 난입에 머스크를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그, 그거 어서 내놓게. 빨리!"

그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매튜도 순간 아차하며 실수했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머스크의 빠른 판단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윽고 매튜가 따가운 시선들을 받으며 머스크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머스크는 전달받은 편지를 천천히 개봉시켰다.

신문에 소식이 실린 시간과, 편지가 도착한 시간의 차이가 짧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찌익­

"무슨 말이 적혀있소?"

"빨리 말해주시오!"

좀 기다려, 이 새끼들아.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고.

머스크는 인내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무턱대고 편지를 빼앗진 않았다는 걸까.

뒤이어 그는 첫 문장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첫 문장은 담백한 소개였다.

이다음에 이어진 건···

"······어?"

"왜 그런가?"

"설마 카마르 백작의 말이 틀린 건 아니겠지?"

머스크가 당황한 반응을 보이자 사람들이 저마다 관심을 표했다. 몇몇은 긴장하고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만 꾹 다물고 있다.

이어서 머스크는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들어올린 후에는 그들과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온답니다."

"온다고?"

"누가? 제논이?"

"네."

히리야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정확히 일주일 후."

거대한 유성이 되어.

"공연장에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마이샬 영지로 떨어졌다.

******

한편 비슷한 시간, 알븐하임.

"소문이 사실일까? 이게 사실이라면 범위가 엄청 좁혀지잖아."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 그래도 난 사실이었으면 좋겠어. 우리도 어서 여왕님을 제논에게 선물해야 되잖아."

"나도. 근본도 없는 마족한테 질 수 없지."

제논의 정체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엘프들도 하나 둘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논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나 아르웬에게도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제논의 정체가 밝혀지는 즉시 아르웬을 선물하기로, 다른 누구도 아닌 전 국민이 합의한 상황이었으니.

여태까지 마족에게 밀려있던 엘프였던지라 이번에 단단이 벼르는 중이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선물해도 알븐하임 그 자체나 다름없는 여왕에게 비빌 수는 없을테니.

이렇듯 알븐하임의 여론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고 있을 때, 아르웬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의외로 매우 당황하고 있다.

'그때는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이런 건 처음인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건 책에서도 설명이 없었잖아. 아니, 그전에 카이르랑 엘리샤는 관계를 맺었던가? 그런 묘사도 없었어.'

혼자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시면서.

'아이작이 싫어하진 않겠지? 그 지방덩어리 여자랑 비교하지 않으려나? 아래는 자신 있는데... 으으. 아니야. 나도 전혀 꿀릴 게 없어.'

너무 앞서나간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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