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화 〉 떡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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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일러스트 올렸습니다! 표지로는 나중에 올리겠지만 여기에 미리 올릴 게요!! 모두가 알다시피 첫날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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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스 왕국으로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 그것도 제논의 정체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심지어 익명도 아닌 귀족, 그것도 그 나라의 실세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백작급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제보를 한 상황.
자칫하다간 본인의 위명에 큰 해가 갈 수도 있으며 속였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도박수를 던진 상황.
하지만 카마르 백작에게는 저렇게 밝힐 충분한 근거가 있다. 우선 재판 당시 중립을 유지했으며 눈치를 보았을지언정 나를 욕하진 않았다.
다른 귀족과 비교했을 때 최소한의 호감도 있는데다가 그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나에게 뒤집어 씌우면 되거든.
왕국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그 흔들림을 기반으로 왕권을 교체한다거나 그에 준하는 일을 남몰래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건 쿠데타나 다름없으니 말 그대로 가능성이니 내가 생각할 건 아니다.
솔직히 쿠데타고 나발이고 국가가 흔들리게 생겼는데 현명한 지도자라면 그것부터 생각해야 될테니.
아무튼 카마르 백작이 신문을 통해 알린 소식은 대략 이렇다.
[제논은 미네르바 제국 출신이다.]
[제논은 현자는 아니지만 현자에 준하는 현명함을 갖고 있다.]
[제논은 붉은 머리카락과 황금색의 눈동자를 지닌 남자다.]
비록 세 가지밖에 안 되는 단서지만 이 세상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얼마 없다.
게다가 황금색 눈동자와 출신까지 언급했으니 범위는 한없이 좁혀진다.
다만 현자에 준하는 현명함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본인은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는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지.
그래도 마냥 거짓말을 한 건 아니어서 떡밥이 차근차근 달아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음······"
"··· ···"
"으으음······"
"······왜?"
소문이 미네르바 제국, 그리고 헤일로 아카데미에 퍼진지 사흘.
다른 이들이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건 익숙해졌지만, 레오나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레오나는 앞으로 나와 조교 활동을 할 예정이고 그런만큼 지난번보다 만남을 자주 가졌다.
오늘도 마찬가지. 레오나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도 사줄 겸 겸사겸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났건만 지금처럼 쳐다보기만 한다.
입에 스테이크를 한 입 물고 나를 보고, 뼈를 오독오독 씹으면서 나를 보고, 혀로 남아있는 소스를 핥으면서 나를 본다.
"빨간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 으음···"
"··· ···"
"현자에 준하는 현명함이라··· 그것도 맞는 것 같고···"
그럴 바에 아예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지 그러니. 나는 레오나가 무슨 의심을 품는지 깨달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대외적으로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세상 일에 관심이 많다.
듣자하니 내가 구독 중인 신문을 읽는다고 했던가. 비록 셋째 부인의 딸이어도 정치에 관심에 없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겠지.
나는 레오나의 의심 어린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제논인지 아닌지 궁금해?"
"응. 신문에 있는 내용이 딱 너라서."
스테이크를 우물거리면서 대답하는 레오나. 동물귀와 꼬리를 완전히 드러낸지라 정말 귀엽다.
나는 정말로 애완동물 같은 레오나의 모습에 약하게 웃고는 턱을 괴었다. 내가 턱을 괴자 레오나가 스테이크를 꿀꺽 삼키며 말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거야? 너도 스테이크나 마저 먹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 ···"
모두 알고 있겠지만 레오나는 유독 외모 칭찬에 약하다. 지금도 내가 귀엽다고 칭찬하니 얼굴이 붉어지며 쫑긋 솟아오른 귀가 까닥거린다.
꼬리도 이리저리 살랑거리는 것이, 기쁜 마음을 여실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얘도 감정을 숨기는 건 엄청 못 했지.'
레오나는 겉으로 시니컬한 성격을 띠고 있지만 귀와 꼬리를 드러내는 순간 매우 솔직해진다.
사실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성격이 사나워진 게 아닐까.
특히 레오나는 나와 달리 실제 성격마저 내리눌러야 하니 어찌 보면 나보다 더하다고 볼 수 있다.
본디 사람은 욕구를 풀거나 본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야 정신이 건강해진다. 레오나 같은 경우는 나와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해소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가 제논이라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으, 응?"
"내가 제논이면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
"아무 생각 없는데?"
멀뚱멀뚱한 표정을 보면 진심인 듯했다. 하기야 다른 사람과 달리 레오나는 그 놈의 풍습 때문에 나와 이어진 셈이니.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다. 어머니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셋째 부인이라 해도 정치적인 식견이 없는 건 아닐 터.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레오나가 직접 지혜롭다고 자랑스레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 지혜가 어떤 식으로 발동될지 모르겠다만 레오나를 나에게서 떨어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 그래도 레오나가 내 부인이 된 걸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이건 직접 들은 게 아니라 레오나가 알려준 사실이다.
"너희 어머니는 우리 사이를 못마땅해 하지 않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난 네가 마음에 드는 걸?"
"어떤 의미에서?"
"얼굴 빼고 전부."
"그렇··· 뭐?"
순순히 납득하려다가 얼굴 빼고 전부라는 말을 듣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 민망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내 얼굴은 잘생겼다.
심지어 미의 결정체라 칭송받는 엘프 기준으로도 화려한 편에 속한다. 여기에 더해서 보기 드문 적발과 황금색 눈동자까지.
레오나는 내가 어이없어하자 도리어 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아, 하며 깨달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설명했다.
"정확히는 수인 기준이겠네. 수인 기준에서 너는 암컷처럼 생겨서 별로 인기 있는 얼굴이 아니거든. 무엇보다 우리 오빠나 지나이처럼 생기지 않았잖아?"
"··· ···"
"그래도 난 네 빨간머리랑 눈이 마음에 드니까 신경 쓰지 마. 내가 아직 인간보다 수인의 문화가 익숙해서 그래."
확실히 문화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니 레오나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어안이 벙벙한 건 변함이 없다.
"그··· 아이작?"
"으, 응?"
"넌 내가 싫은 게 아니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을 때 레오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도 싫은 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라고 대답했었지.
하지만 똑같은 질문을 날리는 걸 보아 아무래도 의심을 저버러진 못한 모양이다.
"절대 아니야. 전에도 말했겠지만 너 같은 미녀가 매달리는데 그 어떤 남자가 거부하겠어?"
"그럼 짝짓기는 언제 할 거야?"
"어··· 짝짓기?"
"응."
짝짓기라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인간도 마찬가지만 수인은 짝짓기, 그러니까 성관계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수컷이 암컷에게 씨앗을 내려줌과 동시에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이른바 낙인을 찍는 행위.
다소 야만적인 풍습을 유지 중인 수인의 문화 특징상 암컷을 지배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레오나는 내가 자신을 지배해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거 봐. 나를 지배할 생각이 없으니까 대답도 망설이잖아."
"여자를 지배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건 사랑 같은 감정이 아니라 소유욕이지."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어?"
"뭐?"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나를 좋아하고, 더 나아가 짝짓기까지 맺을 수 있냐고. 난 하라는 대로 할 수 있어."
레오나는 농담 하나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정신없이 놀리던 나이프와 포크도 차분히 내려놓은 상태다.
나는 한없이 진지한 그녀와 마주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말해야 그녀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이에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쯤,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레오나의 귀가 위로 쫑긋 세워졌다.
저 반응은 좋은 생각이 났을 때만 나오는 레오나의 버릇이다. 꼬리까지 바짝 선 걸 보아 뾰족한 수가 떠오른 모양이다.
"그래! 이 방법이면 되겠구나!"
"무슨 방법?"
내가 갖고 있는 상식과 전혀 다른 상식을 가진 레오나여서 불안하다.
뒤이어 그녀는 어느새 변해버린 황금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더니 흥분을 담아 나에게 알려줬다.
"나를 소유하는 게 껄그럽다면, 그렇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응?"
"나를 향한 소유욕이 들도록 만드는 거지. 어때? 괜찮지 않아?"
수인답다면 수인답다고 해야할지. 단순명료한 해결 방안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동시에 의문이 든다. 그녀는 어째서 다른 남자가 아닌 나를 선택한 것일까.
제아무리 수인의 문화라 해도 내가 간접적으로 힘들다는 표시를 여러번 알려주고 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조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꼭 나여만 해? 나 말고도 더 멋진 남자가···"
"너 제논이라며. 너보다 훌륭한 남자, 아니 사람이 있을까?"
"··· ···"
"내가 이럴 줄 알고 이 말을 한 거지. 두고 봐. 입으로 네 불알을 물어서라도 끝까지 따라갈테니까."
레오나는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진하게 웃으며 당당히 선언했다.
암사자에게 고환이 물려 억울한 표정을 짓는 숫사자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나 저래나 쉽게 포기할 여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럼 내가 소유욕이 들도록 어떤 행동을 할 거야? 이건 좀 궁금하네."
"그건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음···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뭔데?"
한 번 쯤 보고 싶었던 거다. 나는 조금 망설였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레오나에게 부탁했다.
"잠깐 일어서봐."
드르륵
내 부탁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분고분 일어나는 레오나. 살랑거리는 꼬리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줬다.
나는 언제 봐도 개성적인 미모를 지닌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헛기침을 토했다.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부끄러웠지만, 이건 레오나가 먼저 선전포고를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이에 살살 눈치를 보다가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그녀와 똑바로 마주한 후 내가 원하는 걸 입 밖으로 꺼냈다.
"일단 두 손을 들고···"
"두 손을 들고."
"발톱을 세우는 것처럼 행동해봐."
"이렇게?"
내 말에 따라 짐승처럼 발톱을 세우며 위협적인 제스쳐를 보이는 레오나. 나는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부탁을 건넸다.
"그리고 포효하듯이 크앙! 이라고 외쳐봐. 송곳니까지 드러내고."
"크앙!"
행동 하나의 파급력은 절대 무시하지 못 했다. 제 딴에는 진지하게 임했지만 내 눈에는 덩치 큰 고양이가 애교를 부린 것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면 받아들일만 하지 않을까? 본인부터가 스스로를 소유물이라고 인식하는 중인 마당이다.
나는 속에서 야금야금 올라오는 소유욕을 꾹 억누르며 다시금 헛기침을 했다. 이이상 시켰다간 이상한 부탁까지 할 것 같다.
"···됐어. 이거면 충분하겠다."
"음··· 그래? 소유욕은 들어?"
"조금은."
"크아앙!!"
내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레오나.
그에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본인도 머쓱했는지 혀를 삐죽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헤헤. 이번 건 좀 아니었나?"
"··· ···"
저 삐죽 나온 혀를 잡아당기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렇듯 레오나에게도 내 정체에 대해 알려주고 며칠 후.
[아이작. 이 편지를 보는 즉시 영지로 돌아오거라.]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두가 나를 제논이라 착각하고 있다. 학업이고 뭐고 빨리 돌아와.]
정말이지, 웃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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