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85화 (286/763)

〈 285화 〉 폭탄발언(3)

* * *

음성 증폭 마법을 걸었기 때문인지, 세실리의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진다.

예기치 못한 발언을 터뜨린지 5초. 5초 동안 광장에는 쥐 죽은 듯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말 그대로 폭탄 그 자체. 아르웬이 혼혈임을 밝혔을 때와 차원이 다른, 고요한 호수에 이는 파문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해일의 징조였다.

"뭐··· 라고?"

"제논의 여자?"

"이보게. 내가 방금 들은 게 사실인 건가?"

제논의 여자라는, 상상조차 못한 폭탄 발언에 장내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한다.

머스크와 아르웬. 제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이한 사람들. 여태까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법칙이 방금 전, 세실리의 발언을 통해 완전히 깨져버렸다. 이제는 유일도, 유이도 아닌 세 명 째.

무엇보다 세실리가 언급한 제논의 '여자'라는 것. 이건 방금 전 언급된 사람들보다 영향력 자체가 다르다.

"무, 무슨 생각인 거야?"

"··· ···"

옆에 앉은 마리도 얼마나 당황했으면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하고 있다. 그만큼 세실리 폭탄 발언은 많은 의미로 충격을 선사했다.

누구누구의 여자. 그 사람과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만한 의미다.

다시 말해 세실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논, 그러니까 나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공표를 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평소 세실리가 보여주던 모습과 전혀 다른 언행이다.

"진짜야?"

"설마··· 아니지. 마족 공주이니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군."

"그러면 정말로···"

"그래서 마족을 그렇게나 호의적으로 묘사한 건가?"

사람들의 술렁임이 더욱 커지며 저마다 나누는 의견 또한 가지각색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불신하다가 제논 일대기에 묘사되었던 마족을 비교하면서 신빙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술 핵무기마냥 폭탄을 떨어뜨린 충격은 여전하다. 아직은 믿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세실리도 그러한 반응을 확인했는지 좌중을 천천히 둘러봤다. 단상까지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다.

'생각없이 말한 건 아닐텐데···'

만약 저런 말을 할 거라면 진작에 나와 상의를 했을 것이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저런 말을 내뱉는 건 나는 물론이고 특히 마리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현재 아카데미에서는 나와 마리가 공식적으로 연애를 하고 있고, 세실리와는 비밀 연애를 하는 중이다.

마리를 포함한 지인들과 다 함께 다니는 경우는 있어도, 단 둘이서 대놓고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세실리가 저런 말을 한다고 해서 용의자가 좁혀지는 건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지켜보기로 결정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마 모두 놀라셨을 겁니다. 갑자기 제논의 여자라고 한다니 당황스러우셨겠죠. 하지만 부디 침착하시고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세실리는 특유의 고혹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며 연설을 이어갔다. 그녀의 말 덕분에 소란스러움은 잦아들었다.

보아하니 집중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저런 폭탄 발언을 던진 것 같다만 과연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진다.

[제논 일대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우리 마족은 숨 죽이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헬리움 안에서는 다른 종족들처럼 웃고, 떠들고, 화를 내며, 또 즐거울 수가 있었죠.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잔혹했습니다. 우리를 악마로 보는 건 물론, 과거에는 보는 걸 넘어 아예 단정까지 지어 끔찍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과거에 마족이 겪었던 끔찍한 비극. 만약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깊다면 저게 어떤 사건인지 알 것이다.

인간이 광기에 물들여져 미쳐날뛰었던 학살극. 종족 전쟁 당시 자행되었던 수인 학살이 아니라 그전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이다.

신성교국 세이비어가 악마의 씨앗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며 마족들을 학살한, 이른바 '뿌리 뽑기.'

어감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매우 참혹하다. 또한 역사를 알고 저 이름을 되돌아보면 섬뜩할 것이다.

"크흠."

"흠."

세실리의 연설이 본인들을 지정한다는 걸 아는 것일까. 세이비어 교국측이 앉아있는 귀빈석에서 머쓱한 반응이 나온다.

저런 식으로 대놓고 물 먹여도 그들로서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당장 최근에 타락한 추기경 사건이 발발했으니.

현재 세이비어는 케이트가 멱살 잡고 캐리하고 있는 것이지, 만약 그녀마저 루미너스 교단을 저버렸다면 뿌리가 통째로 뽑힐 뻔한 대사건이다.

발언권이 거의 없을 뿐더러 세실리가 역사적 팩트 폭행을 가하니 그들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례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대놓고 비꼰 것도 아니고 본인들에게 비극이 닥쳐왔다고 했으니까.

[우리 마족은, 태생부터 비극 속에서 태어난 종족이었습니다. 매일매일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악마와 싸워야 했으며, 때로는 버티지 못할만큼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사람과, 지키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저희는 내면의 악을 억눌렀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이건 제논 일대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분 덕분에 우리 마족이 더 밝은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되었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잔존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본인의 미래를 모르듯이, 저희 마족은 언제 어디서나 내면에 악에 집어삼켜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건 여러분들의 생각이 아니라, 저희 마족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죠.]

[하지만 제논 일대기에서 그러한 마음을 잘 표현한 덕분에 우리 마족은 비로소 악마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저를 보듯이 미네르바 제국의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현재까지도 주변 국가와 활발한 교류를 맺는 중이죠. 게다가 전시회에서는 우리 헬리움의 문화가 얼마나 강한지 여러분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마족의 진정한 적은 여전히 안에 남아있습니다. 제논 일대기에 나온 식탐의 계획처럼, 내면의 악을 자극시켜 헬리움의 마족들을 전부 악마로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런 끔찍한 비극은 은인 덕분에 더이상 발생하지 않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헌데, 저희가 눈치채지 못 했을 뿐, 제논 일대기에는 그에 대한 해답이 미리 나와있었습니다.]

[제논 일대기에 등장하는, 칠죄종이자 색욕을 담당하고 있으며 여느 마족처럼 비극을 겪어 악마가 된 여인, 릴리스입니다.]

그거 설정 오류라니까. 나는 세실리의 연설을 듣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편지로 설정 오류라고 고백하고 싶으나, 독자들이 정말로 멋진 복선이라며 추켜세우는 통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령 아니라고 잡아떼도 믿을지가 의문이고. 일단 좋은 게 좋은 것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릴리스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 악마가 되었으나, 놀랍게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악마가 된 마족은 이성을 잃고 분노와 비탄에 집어삼킨 괴물이 되는 것이 정상이나 그녀는 그렇지 않았죠. 모두들 악마측으로 넘어간 마족이니 당연시 여기겠지만, 이것만 보아도 우리 마족에게는 큰 변화라 볼 수 있습니다.]

[이후로 진이 내면의 악을 굴복시켜 본인의 힘으로 만들었고, 뒤늦게 릴리스의 묘사가 재발굴되면서 현재 헬리움이 시끄러워졌습니다. 내면의 악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쪽과, 아무리 그래도 힘들다는 쪽. 헬리움의 국운이 걸려있는 사항이기에 한치의 양보도 없는 내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실리의 말마따나 헬리움은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여도 꽤 부산스럽다.

알븐하임이나 애니머즈처럼 정치적인 혼란에 빠져있던 적이 매우 드물었으며 현재 터진 상황은 정치고 나발이고 큰 의미가 없다.

자그마치 국가가 아니라 종족 단위의 명운이 걸린 상황. 21권이 나오면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여 여러모로 위험 요소가 많다.

과연 세실리는 '절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제어'를 선택할 것인가.

이 사안이야말로 이번 연설의 핵심이며 헬리움이 아니라 마족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저, 세실리 드라트 아이실리아 빈은··· 은인의 예언을 따르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실리는 헬리움의 건국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던 '절제'가 아닌 '제어'를 선택했다.

다른 종족은 몰라도 자칫하다간 헬리움 내에 거대한 정치적 적대 세력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

그 상황을 대변해주듯, 앞 좌석에 앉아있던 헬리움의 귀족들이 서로 속닥거리는 중이다. 몇몇은 불만을 가득 담으며 다리를 꼬는 행동까지 보였다.

사뭇 심각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세실리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의문이 들었다. 만일 이대로 연설이 끝나면 대실패라고 볼 수 있다.

분열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세실리의 위치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처음부터 폭탄을 터뜨린 것일까.

[아마 여러분들은 이해하지 못 하실 겁니다. 제가 한 말이 대체 제논의 여자인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더 나아가 어째서 제어를 선택했냐고 말이죠.]

세실리는 뒤숭숭해진 분위기 속에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라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듯이 얼굴이 더욱 환해진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에게 이목이 쏠린 좌중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사랑과 애정, 그리고 따뜻함과 다정함을 품고 있는 붉은색 눈동자. 나는 그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그녀의 의중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뒷말을 흐리던 세실리는 눈을 천천히 감더니.

[제 대답입니다.]

펄럭!

등허리 쪽에서부터 악마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와 동시에 머리의 뿔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으며 색채 또한 붉은색으로 칠해진다.

내면의 악을 완전히 굴복시키면서 얻게 된 능력, 악마화. 말 그대로 악마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여 악마가 되는 것.

"뭐, 뭐야?!"

"저, 저, 저···!"

"아, 악마? 공주님이 악마라고?!"

세실리가 악마화를 하자마자 예상했던대로의 반응이 터져나온다. 그녀의 악마화는 나를 포함하여 장인어른, 장모님만 알고 있는 정보.

"아, 아이작?! 저, 저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러므로 내 곁에 앉아있던 마리가 경악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이럴 때는 대충 놀란 척을 해줘야겠지만···

"빨리 설명해봐! 저게 어떻게 된 거냐고!"

"으아아아. 이거 좀···"

놓고 말해주면 안 되겠니. 놀란 건 이해할 수 있다만 멱살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연기를 해야 되는데 마리의 격한 반응 때문에 그러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든 확인했다. 전반적으로 놀람을 넘어 경악 수준에 이르렀으나 그중 과격한 건 당연하게도 세이비어 측.

주변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지만, 어서 빨리 퇴치해야 된다니, 중대 사항이라니 등등. 성직자들이 케이트에게 간청하는 중이다.

허나 케이트는 요지부동으로 자리에 앉아있을 뿐, 오히려 진정하라고 타이르고 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그녀도 만만치 않은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모두 놀라셨을 겁니다. 현재 제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악마, 그 자체일테니까. 하지만 저를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을 눈으로 보는 중이고, 또한 이성을 완벽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귀에 똑똑히 박혀오는 세실리의 목소리. 악마화를 해서 그럴까, 안 그래도 고혹적이었던 목소리가 좀 더 농염해진 듯한 착각이 든다.

덕분에 사람들도 어느 정도 침착을 되찾고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다. 다만 표정들을 보아하니 하나 같이 미덥지 못 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족이 악마가 된 상황이다. 제논 일대기 출범 전이나 그 이후에도 악마가 된 마족이 깽판을 쳤다는 소식이 가끔씩 들리고 있다.

세실리는 요란했던 광장의 소음이 차차 줄어들고, 머지않아 고요함이 되돌아오자 곧바로 설명에 나섰다.

[저를 보십시오. 악마의 날개가 생기고, 흰자위는 거멓게 변한데다가 뿔 또한 크게 변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악마와 다를 게 없는 형상이죠. 그러나 저는 이성을 뚜렷하게 유지하는 중입니다. 누군가 생각나지 않나요?]

­···설마 릴리스?"

세실리의 질문에 누군가 홀린듯이 대답한다. 비록 작디 작은 소리였으나 고요해진 광장 속에서는 충분히 큰 목소리다.

이에 세실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악마화 상태를 유지한 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저 스스로 제논의 여자라고 소개했던 이유, 절제가 아니라 제어를 선택한 이유. 그 이유를 제가 직접 여러분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였구나. 세실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의미로 제논의 여자라 말한 게 아니다.

현재까지 많고 많은 이왜진이 터졌지만, 그중 등장인물이 모티브가 되었던 사람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실리가 악마화를 보여줌으로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실존한다! 라는 말이 나올테니까.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바로 앞의 세실리였으며 제논의 여자라는 밝혔던 것도 이때문이다.

'진짜 머리 잘 썼구나.'

세실리가 말한 제논의 여자는,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된 사람을 칭하는 것일 터. 다시 말해 자신은 제논이 모델로 삼은 사람이다! 라는 일종의 선전이다.

이 선전이 먹힐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제논 일대기의 위상도 위상일 뿐더러 악마화까지 실현한 참이다.

더욱이 이 세상의 사회 문화는 지구보다 격하된 상태. 그러니까 앞뒤의 개연성이 절묘하면 전부 통할 것이다.

거짓말일 가능성? 신들에게 물어봐라. 신들도 세실리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왜냐고? 세실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제논의 여자라는 건 내 여자라는 뜻이니 거짓은 없다.

물론 세실리가 제논을 알고 있는 것인지 물어볼 수도 있다. 허나 그 케이트조차 나를 찾기 위해 애매한 신탁을 받은 마당에 제대로 된 신탁을 내려줄리가 만무하다.

사회, 정치, 사상, 마지막으로 거짓말의 유무까지. 세실리는 현재 본인이 잡을 수 있는 토끼란 토끼를 다 잡아버렸다.

나와 따로 상의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자신감 때문이겠지. 이정도면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나저나 제논 일대기를 아예 성서로 찍었구나.'

이 부분은 쓴웃음이 나온다. 대신 이건 감수하고 있는 것이, 악마화를 보여주는 건 나에게도 알려줬다.

사흘 후부터 온갖 기사거리가 터져나오겠지. 아버지의 업무량이 늘어나는 소리가 여기까지 생생하게 들린다.

[제논의 여자이자 헬리움의 공주, 세실리 드라트 아이실리아 빈이 선언합니다. 더이상 우리 마족은 내면의 악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악을 무서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방금 전 제가 보여줬듯이, 더이상 새장 속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새는 새장 속이 가장 안전하지만, 새장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세실리는 악마화를 천천히 풀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상황까지 선명하게 보여주니 주변에서 탄성이 터진다.

악마화를 해제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마족은 이제 앞으로 나아갈 미래만 남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습니다. 천사처럼 하얀 날개는 아니더라도, 이 순수한 어둠이 물든 날개로 날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실리는 그 말과 함께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녀가 단상 밑으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광장은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으며···

짝­ 짝­ 짝­

나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짝짝짝짝짝!!!

광장을 가득 메우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그리고 환호 소리가 다 함께 엉키기 시작했다.

특히 마족들이 누구보다 열광하고 있었는데, 세실리의 연설을 듣는다면 그럴만도 하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괴롭혔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야말로 해방의 날이 될 수도 있었으니.

노예에게 묶어놓았던 족쇄를 풀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능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족에게는 구원이나 다름없다.

"세실리 공주님! 감사합니다!!"

"공주님과 제논에게 축복이 있기를!!"

"제논이시여!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우. 낯뜨거워라. 세실리를 향한 찬사 말고도 나를 향한 찬사까지 섞여있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는 우렁찬 박수 소리에서도 들려오는 찬사에 얼굴을 붉히면서 헛기침을 토했다.

어떻게든 얼굴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싶었으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지.

"마리. 우리도 일어날···"

마리를 부르려던 찰나, 문득 다른 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이에 시선을 돌리자마자 움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히리야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으니.

"··· ···"

"··· ···"

나는 그녀와 말없이 시선을 마주하다가 인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홱 돌렸다.

왠지 몰라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설마 연설 중에도 나를 지켜보고 있던 건 아니겠지.

'···아니겠지?'

히리야가 나에게 저 정도의 관심을 주진 않을텐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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